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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님, 그 입 좀 다물어 주세요-143화 (144/151)

#143화

발목을 타고 오르는 날카로운 통증에 요하네스가 신음했다.

“윽.”

의자 채 넘어져 있던 라모나가 바닥에 떨어진 유리 조각으로 요하네스의 아킬레스건을 그어 버린 것이었다.

통증에 요하네스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사이 라모나는 급히 자신의 손을 묶은 밧줄을 잘라 내려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요하네스가 라모나의 머리채를 잡는 것이 더 빨랐다.

“꺅!”

라모나가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

요하네스는 벌겋게 핏대가 선 눈으로 그녀의 머리를 마구 흔들어 댔다.

“라모나, 감히 네가? 감히 네가!”

라모나가 요하네스의 얼굴에 또 한 번 침을 뱉었다. 이를 악문 그녀가 소리쳤다.

“지옥에 떨어져도 모자랄 건 당신이야!”

“주제도 모르는 것이!”

분노한 요하네스가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으나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바람에 꼴사납게 넘어지고 말았다.

라모나는 그런 그를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어쩌지, 나야 여기서 죽으면 끝이라 해도 당신은 평생 발 한쪽을 질질 끌면서 살아야 할 텐데. 그 꼴을 못 보는 건 아쉽네.”

그녀의 눈에 싸늘한 빛이 감돌았다.

“황위 경쟁에서 밀려난 당신은 사람들의 동정조차 받지 못할 거야. 찢어진 발목마저 웃음거리가 되겠지.”

“쓸 데 없는 소리.”

“가서 알폰조 전하에게 목숨을 빌어 봐.”

“고작 알폰조 따위가 이 자리를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으냐?”

요하네스의 말에 라모나는 굴하지 않았다. 그녀가 꼭 누구처럼 예쁘게 웃으며 비아냥거렸다.

“그 꼴을 보면 불쌍해서 살려 줄 지도 모르잖아?”

“이 빌어먹을 년이!”

화를 참지 못한 그가 라모나의 머리를 유리 조각에 처박으려던 때였다.

퍽!

“억!”

언제 포박을 풀어낸 건지 쪼르르 달려 온 티아가 요하네스의 뒤통수를 걷어찼다.

“으으읍!”

아직 입에 물린 재갈은 풀지 못한 채였다.

“티아?”

티아는 요하네스가 정신을 차리기 전 재빨리 라모나의 다리를 풀어 주었다.

“으으읍! 으으읍! 으읍!”

티아가 다급히 라모나의 팔을 끌어당겼다. 고개를 끄덕인 라모나가 간신히 자리에서 일어나던 때였다.

“여기! 여기다! 납치범이 여기 있다!”

병사들의 고함이 들렸다.

로베르트가 자신을 구하러 온 것이라 여긴 라모나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러나.

“……황실 근위대?”

병사들의 옷차림을 확인하자마자 라모나의 얼굴은 급격히 굳었다.

‘바네사 황녀가 내게 누명을 씌웠구나.’

어느새 정신을 차린 요하네스가 상황을 파악했는지, 쿡쿡거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라모나는 곧 묘한 광경을 목격했다.

‘뭔가…… 분위기가 좀 이상한데.’

요하네스와 라모나를 발견한 병사들이 당황으로 어쩔 줄을 몰라 하는 것이었다.

그사이 요하네스는 큰 소리로 외쳤다. 여전히 바닥에서 일어나지 못한 채였다.

“여기 황족 시해범이 있다. 당장 체포하도록!”

그러나.

뚜벅.

“조용히 하는 게 좋을 텐데.”

“……알폰조?”

병사들의 뒤에 나타난 사람을 발견한 순간 그의 얼굴이 형편없이 일그러졌다.

알폰조는 병사들에게 명령했다.

“폐하의 명이다. 감히 황제 폐하의 이름을 사칭하여 레이디 슈타이덴을 납치한 범인을 체포하도록.”

그제야 라모나는 이게 어찌된 영문인지 파악했다.

하지만 안도도 잠시, 그녀는 곧 한 가지 사실을 눈치챘다.

바로 그 어디에도 로베르트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 * *

상황을 전해 들은 멜리사가 준비해 준 바텐베르크의 마차 안.

알폰조는 레이디 슈타이덴과의 마지막 대화를 떠올렸다.

<선대 메닝엔 공작 말입니다.>

<그 재수 없는 늙은이는 왜?>

<아니오. 지금 메닝엔 공작의 아버지 말입니다. 그도 마차 사고로 목숨을 잃었지 않습니까.>

<……!>

<폐하께서는 그 일의 진범을 알고 계십니까?>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레이디 슈타이덴에게 알폰조는 제안했다.

<어머니, 그 증거를 제게 주시죠.>

<……아들?>

<폐하께서도 이미 그 증거의 존재를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알폰조의 말대로였다.

황제는 분명 레이디 슈타이덴을 사랑했다. 이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하지만 레이디 슈타이덴은 황제의 사랑을 믿지 못했다. 언제 사그라들지 모르는 황제의 애정에 매달리는 대신 그녀는 다른 선택을 했다.

바로 마리안느의 죽음에 얽힌 증거가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었다.

그녀는 그 증거를 내세워 황실을 압박하지 않겠다고 황제에게 약속했고, 대신 알폰조가 서부로 갈 수 있게 지원해 달라 요청했다.

그들 모자는 황위 다툼에 끼어들지 않겠으니 그저 조용히만 살게 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생각에 잠겨 있던 알폰조가 오래된 로켓 목걸이를 손으로 꽉 쥐었다.

‘어머니.’

친구의 복수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도, 그러면서도 복수심을 버리지 못한 마음도 모두 이해했다.

그러나.

‘그런 방식으로는 아무것도 지키지 못함을 이제 알았습니다.’

이윽고 마차는 황궁에 도착했다.

“멈추시오.”

황실 근위대장은 바텐베르크의 마차를 멈춰 세웠다. 천천히 숨을 들이마신 알폰조가 마차에서 내렸다.

“바텐베르크 후…… 2, 2황자 전하?”

후작의 마차에서 내린 알폰조를 발견한 황실 근위 대장이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화, 황자 전하께서는 어쩐 일로…….”

“폐하를 뵈러 왔다.”

요하네스가 간과한, 그러나 알폰조는 놓치지 않은 사실이 하나 있었다.

그건 바로 황제는 레이디 슈타이덴을 사랑한다는 점이었다.

황제를 만난 알폰조는 레이디 슈타이덴이 황제를 사칭한 누군가에게 납치되었다는 사실을 전했고, 분노한 황제는 그에게 즉시 운용 가능한 병력을 내어 주었다.

다만 이 계획에는 맹점이 있었는데.

<황실 근위대라……. 좋은 계획이군. 하지만 황제 폐하께는 납치범이 요하네스라는 사실을 비밀로 하도록.>

그거야 로베르트 메닝엔에게 달린 문제였다.

* * *

그와 같은 시간 메닝엔 공작저.

“세상에, 신이시여!”

불쑥 나타난 로베르트를 보고 깜짝 놀란 유디트가 입을 틀어막았다.

유디트가 휘청하자, 시녀장 댄버스 부인이 황급히 그녀를 부축했다.

유디트는 로베르트를 향해 떨리는 손을 뻗었다.

“로베르트? 세상에, 세상에 이런 일이…….”

“할머님 죄송하지만 잠시.”

로베르트는 유디트를 제쳐 두고 곧장 집무실로 향했다.

놀란 것은 클레멘스도 유디트와 마찬가지였다. 바쁘게 서류 위를 뛰놀던 그의 손이 동상처럼 우뚝 멈췄다.

“……로베르트?”

쾅!

로베르트는 대답 대신 문을 닫았다.

그가 살벌한 기세로 클레멘스의 책상을 짚고 섰다.

“라모나를 죽이려 하신 겁니까?”

“그래.”

“제 어머니로는 모자랐습니까?”

로베르트의 질문에 클레멘스의 눈이 커졌다. 이내 클레멘스가 로베르트의 시선을 피했다.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구나. 그건 사고였다.”

“제 평생 할아버님을 비겁하다 손가락질하는 날이 올 줄은 몰랐습니다만.”

“그렇게라도 해야 네 마음이 편하겠다면.”

클레멘스는 차분한 손길로 옷매무새를 만졌다. 그리고 굳건한 눈빛으로 로베르트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하려무나.”

자신은 한 점 부끄러움도 없다는 듯한 태도였다.

“……빌어먹을.”

아드득. 로베르트가 이를 악물었다.

클레멘스는 마저 말을 이었다.

“오히려 잘된 일이지. 만약 네 어미가 살아 있었다면 후계자 자리를 두고 모자란 뷔나우 놈들이 메닝엔의 일에 간섭하려 들었을 테지. 너도 알지 않느냐.”

그의 얼굴에 주름이 깊어졌다.

“리안드로의 죽음에 뷔나우가 관여했다는 것을.”

“정말, 정말이지 비겁하시군요.”

로베르트가 싸늘한 얼굴로 받아쳤다.

“그 일에 관여한 게 뷔나우 백작뿐이 아닐 텐데요?”

그 말에 클레멘스의 얼굴이 참담하게 일그러졌다.

로베르트는 튀어나오려는 욕설을 겨우 삼키고 입을 열었다.

“메닝엔의 사병을 움직이겠습니다.”

“뭐?”

“메닝엔의 주인인 제가 그러지 못할 이유라도 있는지.”

“지금 레이디 아이젠부르크를 찾으러 가겠다는 거냐? 지금 무슨 소문이 도는지도 모르고?”

“헛소문일 뿐입니다.”

“로베르트! 너도 설마 네 아비처럼 여자 하나에 눈이 멀어서…….”

“저를 말리신다면.”

로베르트는 굳은 얼굴로 품 안에서 낡은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종이의 정체를 알아차린 클레멘스의 눈이 커졌다.

“그건……!”

“지금 당장.”

분노한 로베르트가 이를 악물고 말을 이었다.

“공작가의 사병을 이끌고 아버지의 원수를 갚으러 가도록 하죠.”

자신을 막는다면 이대로 에이드런의 목을 베어 버리겠다는 뜻이었다.

‘……결국.’

이런 날이 오고 말았군.

로베르트가 모든 전말을 알아차렸다는 사실에 클레멘스는 신음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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