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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님, 그 입 좀 다물어 주세요-142화 (143/151)

#142화

내 사랑이라는 말을 들은 순간 라모나는 구역질을 할 뻔했다.

<내 사랑, 나의 천사?>

감히 그가 로베르트를 따라 할 줄이야.

‘끔찍해.’

역겨움이 몰려와 참을 수 없다. 라모나는 요하네스의 얼굴에 침을 뱉었다.

“퉤.”

그리고 싱긋 웃으며 말했다.

“전하께서 그러실 줄은 몰랐는데…… 로베르트가 부러우셨나 봐요?”

요하네스의 얼굴이 무섭게 굳어졌다. 이윽고 그의 매서운 손길이 그녀의 뺨을 내려쳤다.

짝!

뺨이 찢어질 것 같은 강렬한 통증과 함께 입 안에 비릿한 피 맛이 감돌았다.

요하네스는 살벌한 기세로 라모나의 턱을 움켜쥐었다.

“헛소리를 하는 걸 보니 약이 덜 깬 모양이구나.”

“재밌네요.”

“……뭐?”

라모나는 비아냥을 숨기지 않았다.

“전하께서 이렇게 감정의 동요를 숨기지 못하시는 건 처음 보는 일이라.”

“벌벌 떨기만 하던 네가 이리 말하는 것도 처음 보는구나.”

“정말 전하께서 로베르트에게 자격지심을 느끼시기라도 하는 모양이에요.”

신경을 긁는 라모나의 말에 요하네스의 이마가 꿈틀했다.

라모나는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저런, 불쌍해라.”

요하네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하지만 곧 그는 평정을 되찾았다.

“그래, 네가 서운한 것도 이해는 되는구나. 나를 원망했겠지. 하지만 모두 없던 일이 아니냐. 내가 저지르지도 않은 일로 네가 날 미워할 이유는 없지.”

울컥한 라모나가 외쳤다.

“어떻게 그런 식으로……!”

“그럼 너는?”

요하네스가 고개를 갸웃했다.

“너도 없던 일이라 생각하여 메닝엔 공작을 찾아간 것이 아니냐? 아니면 설마.”

요하네스는 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이번 생으로 속죄하면 될 거라 여긴 건가?”

정곡을 찔린 라모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요하네스는 라모나의 턱을 놓아주었다. 그리고 그녀의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라모나, 나는 너를 이해한단다. 너는 그럴 수밖에 없었잖느냐. 가련하게도.”

퍽 달콤한 목소리였다.

“미카엘라가 울며 매달렸겠지. 너는 너무 착하니 거절하지 못했을 거고.”

그의 목소리가 은근하게 낮아졌다.

“한데……. 라모나. 메닝엔 공작도 과연 그럴까?”

“……!”

“네가 한 짓을 알고도 그가 너를 사랑해 줄 것 같아?”

라모나는 고개를 푹 숙였다. 그제야 요하네스의 얼굴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번졌다.

바들바들 떨리는 손과 새하얗게 질린 목덜미. 이게 바로 그가 알던 라모나였다.

“라모나, 오직 짐뿐이야.”

요하네스는 다정하게 속삭였다.

“너를 이해해 주고, 있는 그대로 너를 받아들여 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나뿐이란 말이다.”

“…….”

“그러니 이제 이런 소모는 그만하자꾸나. 네가 너무 안쓰러워지지 않느냐.”

“……제게 뭘 약속하실 수 있나요.”

넘어왔군. 라모나의 질문에 요하네스는 한결 배부른 기분으로 입을 열었다.

“네가 원하는 것은 뭐든지.”

“티아를 살려 주세요.”

“물론이지.”

“벤도 놓아 주세요.”

“여부가 있을까.”

벤의 이야기에 요하네스가 겨우 웃음을 삼켰다.

라모나가 고작 평민 하나에 마음 쓰고 있다는 것이 의심쩍던 찰나였다. 마침 바네사가 보낸 편지의 내용과도 일치하여 납치해 두었는데 이렇게까지 마음에 담고 있었을 줄이야.

‘지난 생의 속죄, 뭐 이런 건가.’

너 다운 일이구나. 그가 비웃음을 참던 찰나였다.

“레이디 슈타이덴은요?”

“그걸 네가 어떻…….”

훅 들어온 라모나의 질문에 저도 모르게 대답하던 요하네스가 순간 입을 다물었다.

피식.

고개를 숙이고 있던 라모나가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이내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여전하시군요.”

“라모나.”

“그 증거가 전하의 손에 들어오면 로베르트가 저를 쓸모없다고 여길 줄 아셨나 보네요. 그런데 어쩌죠.”

라모나는 단단한 눈빛으로 요하네스를 바라보았다.

“그 남자는 전하보다 좀 더 잘난 사람이라서요. 그렇게 쉽게 전하의 뜻대로 움직이지는 않을 텐데요.”

로베르트와 그를 비교하는 말에 요하네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네가 감히 지금…….”

“만에 하나 그가 저를 버리더라도 비겁하게 전하에게 버릴 일은 없다는 뜻…… 윽!”

솟구치는 분을 이기지 못한 요하네스가 라모나를 묶은 의자를 발로 걷어찼다.

쾅!

그의 발길질을 이기지 못한 의자가 바닥에 넘어졌다.

요하네스는 머리를 쓸어 넘기며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후.”

그의 눈에 감춰 둔 광기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 정도로 어울려 줬으면 적당히 눈치껏 해야 하지 않나?”

“윽!”

요하네스가 라모나의 머리카락을 잡고 흔들었다.

“감히, 건방지게 어디까지 기어오르려 드는 거지?”

라모나가 고통에 찬 신음을 흘리자 그는 만족스러운 듯 눈썹을 치켜올렸다.

“라모나. 너는 두려울수록 가시를 바짝 세우곤 했지. 지금도 마찬가지야.”

라모나의 머리카락을 더 바짝 잡아당기며 요하네스가 말을 이었다.

“두려운 게지. 메닝엔 공작이 너를 버릴까 봐.”

“윽.”

“현실을 직시하려무나. 넌 여기서 죽을 거야. 아이젠부르크는 멸문을 당할 게다. 레헨트에 각성제를 숨겨 서부군을 어지럽히고, 전염병을 일부러 퍼뜨린 죄로.”

“그게 무슨……!”

“당연한 수순 아니겠느냐.”

그의 입가에 비열한 미소가 떠올랐다.

“너도 바네사도, 하다못해 알폰조도 아는 것을 내가 설마 또 이용할까 봐?”

각성제는 이제 버려야 하는 패였다.

어차피 버리는 패를 라모나를 손에 넣는 것에 이용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 아니겠는가.

“어리석기도 하지. 제국을 지배하던 짐이 고작 그 한수에 미련을 가질 줄 알았느냐?”

요하네스의 얼굴에 오만한 빛이 깃들었다.

“어때? 이래도 로베르트 메닝엔이 너를 구하러 올까?”

라모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요하네스는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그러니 이제 골라 보려무나.”

그가 문 쪽을 향해 고개를 까딱하자 병사들이 두 사람을 끌고 들어왔다.

밧줄로 꽁꽁 묶인 채 끌려오는 두 사람을 바라보던 라모나의 눈이 커졌다.

“……티아? 벤?”

“으으읍!”

라모나와 눈이 마주친 티아가 저도 모르게 왈칵 눈물을 터뜨렸다.

그럴 줄 알았지. 요하네스는 폭소했다.

이내 그가 다시 다정한 목소리로 라모나의 귓가에 속삭였다.

“둘 중 누구에게 네 시신 노릇을 시킬지.”

이를 악문 라모나가 핏대선 눈으로 요하네스를 노려보았다.

“당신은 답 없는 쓰레기야.”

“역시 같은 여자인 하녀가 나으려나? 아, 체구를 보면 저 평민 소년이 나을 것 같기도 하구나.”

“로베르트를 찾아갈 게 아니라 당신부터 죽였어야 했는데.”

저주에 가까운 말을 퍼붓는 라모나를 요하네스가 즐거운 얼굴로 바라보았다.

“하긴 어차피 시신은 불태울 테니 둘 중 누구라도 상관없겠구나.”

그가 천사 같은 미소를 지으며 속삭였다.

“널 그렇게 떠나보내고 나서야 깨달았단다. 내가 실수했다는 사실을 말이야.”

하늘과 같이 맑은 푸른 눈에 광기가 번들거렸다.

“라모나, 내게는 네가 필요해. 내가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너뿐이야.”

요하네스의 속삭임에 라모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라모나.”

패닉에 빠진 라모나에게 요하네스는 다정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얼른 선택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둘 다 죽일 수밖에 없지 않으냐.”

“으읍! 읍!”

요하네스의 목소리에 사태를 파악한 벤이 겁을 먹고 몸부림쳤다.

젠장할. 라모나는 이를 악물었다.

요하네스는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저런, 불쌍하기도 해라.”

라모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이건 둘 중에 누구를 고른다고 끝날 일이 아니었다. 그냥 라모나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 요하네스가 던져 준 선택지였다.

지금 둘 중 하나를 살려 둔다 한들 남은 하나도 곧 죽일 것이다.

‘불에 탄 시신을 남길 작정이라면 내가 무슨 선택을 하든 티아를 죽일 게 뻔해.’

벤이나 티아의 죽음은 라모나에게 죄책감이 될 테니까. 요하네스는 그 점을 너무나 잘 아는 사람이었다.

‘휘말리면 안 돼. 휘말리면 정말 다 끝이야.’

그녀는 힐끗 자신의 손목을 살폈지만 야속한 푸른빛은 떠오르지 않았다.

‘설마 로베르트는…….’

라모나가 조용히 입술을 깨물던 때였다.

쾅!

폭발음과 함께 바닥에서 강렬한 진동이 느껴졌다.

폭발을 견디지 못한 유리창이 사방에서 요란한 소리를 내며 터지듯 깨져 나갔다.

“읍!”

겁을 먹은 티아가 눈을 질끈 감고 몸을 파르르 떨었다. 곧 매캐한 탄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설마.’

두근.

불길한 예감이 라모나를 덮쳐 왔다. 그녀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요하네스는 말했다.

“어쩌지, 라모나. 네가 선택을 못 한 탓에.”

그가 안타깝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전부 죽게 생겼구나.”

그때였다.

쾅!

조금 전보다 더 격렬한 폭발음과 함께 유리가 깨져 나갔다. 당황한 요하네스가 황급히 주변을 둘러보던 때였다.

의자와 함께 바닥에 쓰러진 라모나의 손에서 무언가가 반짝이더니.

“폭발은 분명 한번, 윽.”

요하네스가 고통스러운 얼굴로 바닥에 풀썩 주저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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