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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님, 그 입 좀 다물어 주세요-139화 (140/151)

#139화

라모나는 역시 제대로 된 연애 한 번 못 해 본 게 분명하다며 로베르트를 실컷 놀렸다.

로베르트는 부루퉁한 얼굴로 대답했다.

“내 사랑, 당신이 너무 예쁜 걸 나보고 어쩌란 말입니까.”

내 사랑 저거 진심으로 하는 말이었구나. 라모나는 약간 다른 의미로 그의 귀환을 실감했다.

한바탕 소동이 지나가고, 라모나는 로베르트의 품에 안겨 발가락을 꼼지락거렸다.

꿈같은 일이었다. 전날까지만 해도 혼자 잠을 설치던 침대에 로베르트와 함께 누워 있다니.

‘……좋다.’

세상에 얼굴만 봐도 좋다니! 언제 이렇게 감정이 깊어진 걸까.

‘변태 또라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조차 매력으로 느껴지려 하는 것을 보니 중증이 틀림없었다. 라모나는 저도 모르게 로베르트의 가슴팍에 얼굴을 비볐다.

틈새를 놓치지 않은 로베르트가 슬그머니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역시 확실하군요.”

“아닌데요.”

“아닙니다, 이건 유혹입니다.”

아니라니까. 라모나가 눈으로 욕설을 날렸지만 로베르트는 꿈쩍하지 않았다.

“아니면 제가 그냥 당신을 유혹하죠, 뭐.”

의도가 다분한 뜨거운 숨결이 라모나의 뺨을 간질이자 라모나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당신 입이 당신 가슴처럼 과묵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오, 이건 좀 변태 같았습니다.”

“누가 할 소리.”

툭탁거림과 알콩달콩이 공존하는 다정한 시간도 잠시.

“너무 늦기 전에 출발해야 할 것 같아요.”

바네사를 만나러 갈 시간이 다가왔음을 잊지 않은 라모나가 몸을 일으켰다.

‘아쉬워.’

라모나는 저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었다.

마음 같아서는 그와 함께 이렇게 백날이라도 있고 싶었지만, 돌아가는 상황이 너무나 복잡했다.

로베르트도 라모나의 심경을 이해했기에 어설픈 말로 붙잡는 대신 그녀를 꼭 끌어안았다.

“곧 뒤따라가겠습니다.”

“여기서 몸을 숨기고 있는 게 낫지 않겠어요?”

“어차피 할아버님도 곧 몰튼 남작의 죽음을 알아차릴 겁니다. 그 전에 이동해야죠.”

“……조심해요.”

라모나의 당부에 로베르트가 웃었다.

“당신이야말로.”

쪽.

로베르트는 라모나의 뺨에 입을 맞췄다. 그가 그녀의 목을 다정하게 쓰다듬었다.

“황녀는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라도 할 사람입니다.”

“네, 알고 있어요.”

“혹시 그녀가 저와 파혼하라고 하면 그냥 알겠다고 말하세요. 물론 서운해하지 않겠습니다.”

그는 장난스럽게 한쪽 눈을 찡긋했다.

“당신의 진심이 아닌 것을 아니까.”

하지만 로베르트의 얼굴은 곧 급격히 시무룩해졌다.

“……솔직히 서운하긴 하군요.”

라모나는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저 아직 아무 말도 안 했는데요?”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천 갈래 만 갈래로 찢어집니다. 갑자기 내가 그렇게 모자란가 싶은 생각도 들고, 공작위로는 부족했나 싶기도 하고…….”

자기 자랑하는 맛에 사는 저 남자가 저런 말을 하는 날이 올 줄이야.

‘두 번 살고 볼 일이네.’

라모나가 웃음을 터뜨렸다. 이내 웃음을 그친 그녀가 로베르트의 뺨을 감쌌다.

그녀는 로베르트와 눈을 맞춘 채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하지만 아마 제가 3황자 전하의 편에 서겠다는 것을 확인받으려고 부른 걸 거예요.”

그래, 그게 아니면 바네사 황녀가 원하는 게 또 뭐가 있단 말인가.

라모나는 지난 생에서 베르나딘을 황위에 올리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뛰어들던 바네사의 모습을 떠올렸다.

‘분명 나를 떠보려고 부른 거겠지.’

로베르트를 적으로 돌리려고 작정한 게 아니라면 자신에게 손을 댈 리 없다.

불길한 예감은 단순한 기분 탓이리라. 불안을 털어 버린 라모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또 클레멘스가 손을 뻗을까 걱정된 로베르트는 이본느를 통해 급하게 라모나의 호위를 구해 주었다.

“곧 뒤따라갈 것이긴 하지만……. 당신의 신변에 문제가 생긴 것 같다면 제게 곧장 연락이 오도록 해 두었습니다.”

“좋네요.”

“더 좋은 호위를 구할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아쉽군요.”

아쉬움에 혀를 찬 로베르트는 일단 급한 대로 손목을 향해 중얼거렸다.

“라모나는 무사하다, 무사히 레헨트로 귀환한다.”

이럴 때는 꼭 못 들은 척 나타나지 않는 푸른빛이었다. 욱한 마음에 로베르트는 말했다.

“그럼 할아버님이 설사병이라도 나던가.”

이럴 때면 기가 막히게 푸른빛이 나타났다. 빛을 발견한 라모나가 난처한 얼굴로 말했다.

“지금 하필 전염병이 도는 중인데…….”

클레멘스에 의해 죽을 뻔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말을 하는 라모나를 보며 로베르트는 복잡한 심경이 되었다.

아무튼 라모나를 태운 마차는 출발했다.

레헨트에 머무르고 있음을 숨겨야 하는 로베르트는 아쉬운 대로 창밖에서 떠나가는 마차를 바라보았다.

‘별일 없겠지.’

그래야 할 텐데. 로베르트가 한숨을 삼켰다.

로베르트는 요하네스의 퇴위를 지금으로부터 2, 3년 후로 길게 잡고 있었다.

하지만 모든 상황이 그의 예측보다 빠르게 흘러갔다. 마치 가파른 내리막길을 내달리듯 가속도가 붙은 것 같았다.

아마도 그것은 네 사람의 회귀 때문이리라.

회귀라. 라모나에게 꺼내지 않은 질문을 떠올린 로베르트의 얼굴에 씁쓸한 미소가 번졌다.

‘이대로라면 곧 손 쓸 수 없을 지경에 이르겠군.’

빠른 시일 내에 요하네스, 알폰조, 베르나딘. 세 사람 중 한 명은 분명 목숨을 잃을 것이다.

로베르트가 미간을 찡그렸다.

‘그렇다면 나도 슬슬 결론을 내려야 하겠군.’

살려 둘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그가 몇몇의 얼굴을 떠올리던 찰나였다.

똑똑.

누군가가 라모나의 침실 문을 두드렸다.

“공작.”

2황자, 알폰조였다. 퍽 다급한 목소리에 로베르트가 문을 열었다.

“무슨 일이지.”

알폰조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입을 열었다.

“누군가가 어머니를 납치했네.”

“……!”

“황실의 심부름꾼이 저택을 찾아왔다 하더군.”

황실이라는 말에 레이디 슈타이덴을 납치한 배후를 짐작한 로베르트가 이를 악물었다.

“그 개자식이 결국……. 당장 수도로 가야겠군.”

알폰조는 의외로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아마 그가 당장 어머니를 해치지는 못할 거야. 원하는 게 있으니까.”

“무슨 소리지?”

“증거 말일세. 선대 메닝엔 공작의 죽음에 얽힌 증거.”

그의 말에서 라모나와의 첫 만남을 떠올린 로베르트의 눈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게.”

로베르트가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레이디 슈타이덴에게 있었나?”

“과거에는 그랬고, 지금은 아니지.”

알폰조는 모호한 답을 남겼다. 로베르트가 눈썹을 찌푸리자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어쩌면 요하네스가 원하는 것은 그뿐만이 아닐 수도 있네.”

알폰조는 입술을 깨물었다.

“내게 어머니를 놓아줄 테니 대신 라모나를 내놓으라 말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일세.”

“뭐?”

예상치 못한 이야기에 로베르트의 눈에 커졌다.

“어째서 라모나를? 황위가 아니라?”

“공작, 자네는 몰라.”

로베르트는 저도 모르게 알폰조의 멱살을 잡았다.

“똑바로 말해. 무슨 뜻이지?”

“황태자가 라모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또 어떻게 대했는지.”

과거의 이야기에 로베르트의 눈이 커졌다.

“그녀를 향한 요하네스의 광기가 어느 정도 수준인지. 자네는 분명 상상도 못 할 거야.”

알폰조는 참담한 얼굴로 말했다.

한숨과 함께 머리를 쓸어 올리던 로베르트가 물었다.

“그래서 내게 이 이야기를 하는 의도가 뭐지. 라모나를 요하네스에게 넘기겠다, 뭐 이런 건가?”

로베르트에게서 살벌한 기세가 풍겼다. 알폰조는 물끄러미 그런 그를 바라보았다.

이내 알폰조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런 방식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일이네.”

“그럼 뭔가.”

창밖을 골똘히 바라보던 알폰조가 그를 불렀다.

“공작.”

“말해.”

“그대는 사랑을 믿나?”

이 같은 타이밍에 하기에는 다소 뜬금없는 이야기였다.

“뭐?”

로베르트가 얼굴을 찌푸리자 알폰조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대는 사랑을 위해, 어디까지 할 수 있지?”

결단을 내릴 시점은 생각보다 빠르게 찾아왔다.

* * *

다행히 마차는 안전하게 수도에 도착했다.

하지만 이상한 일은 수도에서 벌어지기 시작했다.

크레모라 백작저 앞, 로브를 뒤집어쓴 라모나가 마차에서 내리자 사람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저거 설마 레이디 아이젠부르크 아냐?”

어떻게 바로 알았지? 라모나는 깜짝 놀랐지만 애써 태연한 척 크레모라 백작저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 와중에도 사람들은 수군거림을 멈추지 않았다.

“자기만 혼자 살아남겠다, 이건가?”

“썩을 것. 나머지는 다 죽으라는 거지.”

무언가 이상했다.

로베르트의 일을 두고 욕하는 것이라기에는 사람들에게서 날카로운 적의가 잔뜩 느껴졌다.

‘귀족도 아닌 것 같은데, 왜 저렇게까지?’

의아한 기분에 라모나가 슬쩍 그들을 돌아보았다.

사람들은 매서운 눈으로 그녀를 노려보고 있었다.

‘분위기가 영 이상하네.’

라모나는 황급히 크레모라 백작저로 들어서려 했다. 하지만 바네사의 심부름꾼이 그녀를 막아섰다.

“그분께서 수도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며, 다른 곳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뭐?”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뭔가 잘못되어 간다는 것을 느낀 라모나가 항변하려던 때였다.

“그건 약속과…….”

“어디 한번 이년 얼굴 좀 보자! 제 혼자 살겠다고! 이기적인 계집!”

악에 받힌 누군가가 라모나의 로브 자락을 움켜쥐었다.

“꺅!”

하마터면 머리채를 잡힐 뻔했다.

화들짝 놀란 라모나가 비명을 질렀다.

“아가씨!”

티아가 얼른 라모나를 끌어안으며 불청객과 라모나의 거리를 벌렸다.

바네사의 심부름꾼은 라모나를 해코지하려 한 불청객을 거칠게 떼어 냈다.

“어딜 감히! 네까짓 게 함부로 손을 댈 분이 아니시다!”

세게 밀린 불청객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당황한 라모나가 어쩔 줄 몰라 하는 사이 또 다른 심부름꾼이 라모나를 안내했다.

“레이디, 이쪽으로.”

혼란스러운 상황에 휘말린 라모나는 엉겁결에 바네사의 심부름꾼이 안내한 마차에 올랐다.

“아가씨!”

심부름꾼이 재빨리 문을 닫으려 하자 티아가 얼른 문 사이로 팔을 끼워 넣었다.

달칵.

문이 닫히고, 마차는 빠르게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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