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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님, 그 입 좀 다물어 주세요-137화 (138/151)

#137화

“으음.”

이른 새벽. 까무러치듯 잠이 들었던 라모나가 잠에서 깨어났다.

몽롱한 기분으로 그녀가 눈꺼풀을 깜빡였다.

‘몇 시지.’

다리 사이가 불편한 느낌에 라모나가 몸을 바르작거리자, 덩달아 잠에서 깬 로베르트가 그녀의 등을 토닥였다.

“쉬이, 다 괜찮습니다.”

그의 목소리에 라모나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살며시 뒤를 돈 그녀가 로베르트를 바라보았다.

잠결에 눈도 못 뜨고 등을 토닥이는 그의 모습이 웃기다 못해 귀여웠다.

쪽.

장난기가 발동한 라모나가 그의 목덜미에 입을 맞추자, 로베르트의 입가에도 미소가 번졌다.

와락.

그가 라모나를 있는 힘껏 끌어안았다. 그리고 슬그머니 눈을 떴다.

“원하신다면야.”

“네?”

뭘 원해? 고개를 갸웃하던 라모나는 금세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차렸다.

“맙소사.”

찰싹.

그녀가 로베르트의 어깨를 내리쳤다.

“얼른 잠이나 자요.”

피식.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은 로베르트가 그녀의 등에 얼굴을 비볐다.

“음.”

그가 맛있는 음식을 음미하듯 중얼거렸다.

“부드러워.”

로베르트가 장난스레 그녀의 등을 할짝거렸다. 맨살에 닿은 간지러운 감촉에 라모나가 부르르 몸을 떨었다.

“하지 마세요.”

하지만 하지 말라고 안 한다면, 그건 로베르트 메닝엔이 아니었다.

쪽.

그녀의 등을 가볍게 빨아들인 로베르트가 잘근 여린 살을 씹었다.

“여긴 달고.”

새하얀 등에 금세 붉은 꽃이 피어났다.

“아.”

통증에 라모나가 미간을 찌푸리자 로베르트가 그녀의 뺨에 입을 맞췄다.

“여긴 짭쪼름하고.”

찰싹.

이번에는 라모나가 로베르트의 허벅지를 때렸다. 로베르트는 그녀의 손을 붙든 채 라모나의 귓가에 속삭였다.

“여긴 짜릿하지.”

“……진짜 미쳤나 봐.”

“당신에게?”

“저기요!”

한참 동안이나 그렇게 아웅다웅하던 두 사람은 결국 잠이 다 깨 버리고 말았다.

로베르트에게 안긴 채, 그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은 라모나가 입을 열었다.

“원래 어제 바네사 황녀를 만나러 가던 길이었어요.”

“황녀를?”

의외의 만남에 로베르트의 눈이 커졌다.

“예.”

고개를 끄덕인 라모나가 말을 이었다.

“그녀가 당신을 찾는 것을 돕겠다고 하더군요.”

“……황녀도 기억을 되찾은 자라고 했습니까?”

“예. 그런 모양이었어요.”

“흠.”

생각에 잠긴 로베르트가 라모나의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렸다.

“저와 같이 가는 건 어떻습니까.”

“아뇨, 저 혼자 가 볼게요.”

“황녀는 좀…… 의뭉스러운 구석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저 혼자 가려고요.”

굳게 결심한 라모나의 눈동자가 빛났다.

“당신을 보면 또 속내를 숨길지 몰라요. 내일 직접 만나 무슨 속셈인지 알아봐야겠어요.”

“위험하지는 않겠습니까?”

“어차피 레헨트에만 있어도 위험한 걸요. 게다가 로지나도 함께 가요.”

“로지나가?”

의외의 이름에 로베르트가 눈썹을 까딱했다.

순간 무언가가 떠오른 라모나의 눈이 가늘어졌다.

“예. 로지나가…… 제게 당신과 무슨 일을 꾸몄는지 불었거든요.”

“신이시여.”

제 잘못을 알아차린 로베르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는 순순히 자신의 과오를 사과했다. 무척이나 가련한 얼굴이었다.

“정말, 정말 미안합니다.”

“알면 됐어요.”

라모나는 생각보다 대수롭지 않게 그의 사과를 받아 주었다.

로베르트는 그런 라모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쉽군요.”

“네? 뭐가요?”

라모나의 되물음에 그가 어깨를 으쓱했다.

“뭐, 질투 이런 감정은 아닌 듯해서.”

부루퉁한 표정의 그가 라모나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그게 당신답다는 걸 알면서도 조금 욕심이 난달까요.”

“세상에. 왜 그런 욕심을 내고 그래요.”

“그야 저는 얼굴, 몸, 권력 그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는 제국 최고의 신랑감인데. 당신은 위기의식이 없는 편 아닙니까.”

“음, 뭐 잘못 드셨어요?”

“거봐. 내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듣는다니까.”

“말다운 말을 하시면 듣겠죠.”

“오, 제 말이 말 같지도 않다는 소리?”

“……들켰나요.”

라모나의 대답에 로베르트가 웃음을 터뜨렸다. 두 사람 사이에 따스한 공기가 흘렀다.

라모나의 등을 쓰다듬으며, 로베르트는 알폰조 앞에서 못 다한 이야기를 꺼냈다.

“이번에 한 가지 이상한 사안을 발견했습니다.”

“뭔가요.”

“푸른빛이 한참 동안 제 손목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런데…….”

로베르트가 곤란하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그 빛이 2황자에게도 나타나더군요.”

“……!”

예상치 못한 소식에 라모나의 눈이 커졌다. 그녀가 저도 모르게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그럼 설마……?”

“예. 그에게도 제 말이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세상에.”

라모나가 입을 틀어막았다. 이내 무언가를 깨달은 듯 그녀가 주먹으로 손바닥을 가볍게 내리쳤다.

“그렇다는 것은…… 바네사 황녀나 요하네스에게도 똑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뜻이겠네요.”

“아마도?”

로베르트가 고개를 끄덕이자 라모나의 얼굴이 환해졌다.

“재수 없는 푸른빛이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이야.”

“제게는 항상 고마운 녀석입니다만.”

“아무튼 한결 안심하고 다녀올 수 있겠어요. 다행이네요. 안전장치는 많을수록 좋으니까요.”

다시 졸음이 몰려오기 시작한 라모나가 로베르트의 팔을 베고 누웠다.

“그 개자식이 추방당한다고 하루에 백 번씩 말하면 안 되려나?”

라모나의 중얼거림에 로베르트는 옅게 웃었다. 그가 그녀의 머리카락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라모나.”

“네.”

어느새 반쯤 잠이 든 목소리. 로베르트는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쪽.

그는 망설이던 이야기를 꺼냈다.

“언젠가 제게도 모든 일을 말해 주시죠.”

대답이 없는 라모나를 보며 로베르트는 그녀가 잠이 들었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로베르트도 다시 잠이 들고, 한참 후.

“하아.”

눈을 뜬 라모나는 간신히 옅은 한숨을 토해 냈다.

로베르트에게 안긴 채로 물끄러미 창밖을 바라보던 그녀는 결심했다.

‘그래. 황녀를 만나고 오면…….’

그때는 정말 숨김없이 모든 이야기를 털어놓자고.

* * *

수도. 슈타이덴 백작저.

레이디 슈타이덴은 초조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 채 창가를 서성였다.

똑똑.

집사가 노크하자 레이디 슈타이덴이 집무실 문을 벌컥 열었다. 그녀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물었다.

“알폰조는?”

“죄송합니다, 아가씨. 아직 소식이 없습니다.”

“하아. 무슨 일이야.”

“황궁에서 심부름꾼이 왔습니다.”

황제가 그녀를 부르는 모양이었다. 레이디 슈타이덴은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쓸어 넘겼다.

그녀는 얼마 전, 급하게 어디를 다녀올 일이 있다던 알폰조와의 대화를 떠올렸다.

<선대 메닝엔 공작 말입니다.>

<그 재수 없는 늙은이는 왜?>

<아니요. 지금 메닝엔 공작의 아버지 말입니다.>

알폰조가 마리안느의 이야기를 꺼내려 한다는 것을 눈치챈 그녀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도 마차 사고로 목숨을 잃었지 않습니까.>

<……!>

<폐하께서는 그 일의 진범을 알고 계십니까?>

알폰조의 굳건한 얼굴을 마주한 레이디 슈타이덴은 아들이 황위를 노리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며칠 후, 메닝엔 공작이 산사태로 실종되었다는 소식이 수도에 퍼지기 시작했다.

이게 정말 우연일까. 레이디 슈타이덴이 입술을 깨물었다.

“돌겠네, 정말.”

“심부름꾼을 돌려보낼까요?”

집사의 질문에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아냐, 폐하 얼굴 본 지 꽤 됐네. 식사나 한번 하는 것도 괜찮겠어.”

알폰조가 황위를 노리기 시작했다면 그녀 또한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어중간하게 굴다가는 개죽음을 당할 뿐이지.’

레이디 슈타이덴은 저도 모르게 목 부근을 손으로 더듬었다. 로켓 목걸이가 있던 자리였다.

‘알폰조.’

아들을 떠올린 그녀가 저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었다.

잠시 후.

“다녀오도록 하지.”

한껏 치장한 레이디 슈타이덴이 대문을 나섰다. 무려 100캐럿짜리 커다란 옐로우 다이아몬드가 그녀의 목에서 영롱한 빛을 발했다.

턱을 치켜든 그녀가 당당하게 황궁의 마차에 올랐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너무 오래 걸리는데.’

커튼을 살짝 걷어 창밖을 내다본 레이디 슈타이덴의 얼굴이 굳어졌다.

‘황궁 가는 길이 아니군.’

낯선 풍경에 이상함을 눈치챈 그녀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때였다.

“도착했습니다, 레이디.”

으슥한 산속에 마차가 멈춰 섰다.

‘젠장, 당했네.’

황제가 그녀를 저녁 식사에 초대하는 것은 자주 있는 일이라 아무 의심도 하지 못했다.

‘하아, 기회를 엿보는 수밖에.’

일단 그녀가 아무것도 모르는 척 태연하게 마차에서 내릴 때였다.

퍽!

둔탁한 무언가가 레이디 슈타이덴의 뒤통수를 강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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