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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님, 그 입 좀 다물어 주세요-136화 (137/151)

#136화

늦은 밤, 라모나는 바이스카스텔로 귀환했다. 마차에는 로베르트와 알폰조를 숨긴 채였다.

툭.

마부에게 금화 자루를 건네며 라모나는 경고했다.

“단지 길이 안 좋아서 돌아온 것뿐이야, 알겠나?”

“예, 예. 아가씨.”

“자네가 본 것을 모두 잊는 게 좋을 거야. 그렇지 않다면 자네의 가족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말만 해 두지.”

살벌한 협박에 마부는 딸꾹질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갑작스러운 라모나의 귀환에 바이스카스텔의 하녀장 이본느는 황급히 옷을 갈아입고 마중 나왔다.

“레이디? 어쩐 일로 벌…… 각하?”

로베르트를 발견한 그녀의 입이 쩍 벌어졌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 뒤로 따라 들어오는 알폰조를 발견한 순간 이본느는 거의 기절할 지경에 이르렀다.

“……황자 전하? 꿈인가?”

“쉿. 이본느. 내가 이 곳에 있는 것은 기밀로 하도록.”

로베르트의 말에 얼른 정신을 차린 이본느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본느는 빠르게 그들을 라모나의 침실로 안내했다. 다행히 늦은 밤이었기에 그들을 목격한 사람은 없었다.

라모나의 침실 앞에서 당황한 알폰조가 주춤거렸으나.

“응접실을 쓰면 우리가 이곳에 왔다는 사실을 누군가에게 들킬 거예요.”

라모나의 말에 곧 납득했다. 티아는 머리를 질끈 묶으며 말했다.

“제가 문 앞을 지키고 있을게요, 아가씨.”

“부탁할게.”

잠시 숨을 돌릴 새도 없이 그들은 각자 알아낸 것을 빠르게 공유했다.

레헨트에 돌고 있는 전염병이라든가, 로베르트가 납치된 것으로 조작하기 위해 던져 둔 총이라든가.

제각기 아는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알폰조는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하나 있어.”

로베르트와 라모나가 그를 쳐다보자 알폰조가 어색하게 머리를 긁었다.

“공작의 실종 소식이 전해진 시점이 조금 빠른 느낌이야.”

“그건 무슨 말이지.”

로베르트의 날카로운 되물음에 알폰조가 한숨을 내쉬었다. 가슴팍은 여전히 한 손으로 여민 채였다.

“아무리 큰 사고가 났다 한들, 산에서 난 사고를 발견하기까지는 며칠 걸리는 게 보통 아닌가.”

“……!”

“그런데 공작저에 소식이 도착한 시점이 너무 빠르단 말일세.”

잠잠히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라모나가 입을 열었다.

“또 그 사람이 연관되어 있다면 이상한 일도 아니죠.”

에이드런을 뜻하는 말이었다. 알폰조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가 공작의 사고 소식을 일찍 알려 줄 이유가 있나? 그로서는 공작이 최대한 늦게, 기왕이면 죽은 채로 발견되는 것이 더 유리할 텐데.”

“지난 생과 지금은 상황이 다르니까요.”

라모나가 침착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각성제가 레헨트에 쌓여 있잖아요. 레헨트의 주인은 저고요.”

“그렇다면…….”

알폰조가 말끝을 흐리자 로베르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각성제를 빨리 되찾으려 한 것 같군요. 현재로서는 가장 가능성이 높은 일입니다.”

“각성제라, 그럴 듯하군.”

지난 생, 자멸한 서부군을 떠올린 알폰조는 이를 악물었다.

로베르트가 상황을 정리했다.

“일단 제가 실종된 것으로 해 두는 것이 놈들의 동태를 파악하기 수월하겠군요. 당분간 이곳에 숨어서 상황을 지켜보도록 하죠.”

이야기가 잘 마무리되었지만 라모나는 굳은 얼굴을 펼 수 없었다.

‘이게 정말 전부일까.’

분명 회귀 전과 비슷한 흐름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뭔가 더 있다는 생각을 놓을 수가 없었다.

‘빨리 바네사 황녀를 만나 봐야겠어. 요하네스가 무슨 짓을 할지 몰라.’

힐끔.

그런 라모나의 기색을 살피던 로베르트가 슬그머니 그녀의 곁에 앉았다.

“내 사랑?”

심상치 않은 예감에 알폰조와 라모나 두 사람 모두 바짝 긴장했다.

로베르트는 굴하지 않고 그녀의 뺨에 입을 맞췄다.

“떠나기 전에 약속한 게 있지 않습니까, 응?”

로베르트의 말을 이해한 라모나의 얼굴이 화악 달아올랐다.

“뭐, 뭐, 뭐예요!”

“개수작?”

로베르트의 입가에 특유의 예쁜 미소가 떠올랐다.

순식간에 투명 인간 취급을 당한 알폰조는 씁쓸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더럽고 치사해서 살겠나…….”

* * *

한편, 이본느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대체 황자 전하를 어디에 모셔야 한단 말인가.’

공작 각하야 분명 그녀가 뜯어 말려도 레이디의 침실에 머무르겠다고 우길 것이다.

하지만 황자 전하까지 그 방에 밀어 넣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렇다고 손님방에 모시면 바이스카스텔에서 수상한 일이 일어나는 중이라고 광고하는 꼴이다.

‘이를 어쩐다.’

그녀는 바이스카스텔에서 일하게 된 이래로 가장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차라리 마구간에 재워 버리면…… 아, 안 돼.’

너무 갑자기 들이닥친 너무 귀한 손님에 이본느가 머리를 싸매던 때였다.

“저, 하녀장님…….”

티아가 곤란한 얼굴로 그녀를 찾아왔다.

“무슨 일이냐, 티아.”

“손님께서 밖에서 머무르겠다고 하시는데요.”

“그럴 순 없지!”

“그, 여기에서 머무르기 더럽고 치사하다고…….”

뭐? 이본느는 큰 충격에 빠졌다.

그녀의 평생을 바친 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저택이 더럽다니. 평생 상상조차 해 보지 못한 평가였다.

그녀는 참담한 마음으로 반성했다.

‘역시 황족의 안목은 차원이 다른 것인가. 나는 우물 안 개구리였나.’

이본느는 당장 계절이 지나는 대로 저택의 보수 공사를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자신의 발언이 무슨 후폭풍을 일으켰는지 알 리가 없는 알폰조는 그 사이 슬그머니 로브를 뒤집어쓰고 뒷문을 통해 빠져나갔다.

* * *

알폰조가 빠져나가고, 두 사람만이 남은 라모나의 침실에는 묘한 기류가 흘렀다.

로베르트가 경직된 분위기를 장난스레 풀어 보았지만.

“먼저 씻고 오겠습니다.”

안타깝게도 라모나의 얼굴은 더 달아오를 뿐이었다.

아무튼 잠시 후, 비누 향을 풍기며 로베르트가 돌아왔다. 살짝 남은 뜨거운 물의 열기가 그에게서 고스란히 느껴졌다.

“후.”

고개를 뒤로 젖힌 로베르트가 수건으로 머리에 남은 물기를 털어 냈다.

라모나는 저도 모르게 로베르트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시선을 느낀 로베르트가 라모나를 향해 한쪽 눈을 찡긋해 보였다.

“이게 얼마만의 샤워인지.”

어두운 밤인데도 그의 눈물점이 선명하게 보였다.

꿀꺽.

라모나가 저도 모르게 입에 고인 침을 삼키자, 로베르트의 눈썹이 꿈틀했다.

그의 눈에 깃든 야릇한 변화를 눈치챈 라모나가 허둥지둥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도 좀 씻고 올, 읍.”

그러나 로베르트는 그녀를 놔주지 않았다.

낮과 비슷한, 그러나 조금 더 농밀한 입맞춤이 라모나를 붙들었다.

로베르트는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만큼 강렬하게 그녀의 입 안을 휘저었다.

숨이 찬 라모나의 눈에 눈물이 고이자, 그는 언제 그랬냐는 듯 부드럽게 혀로 그녀의 입술을 핥기 시작했다.

“하아.”

겨우 단 숨을 삼킨 라모나가 움찔 몸을 떨자 로베르트가 미간을 찌푸렸다.

“……정말 미치겠네.”

그의 목울대가 크게 움직였다.

이내 로베르트는 장난스레 라모나의 입술을 다시 한번 핥았다. 달콤한 사탕을 굴리듯 입 안으로 빨아들여 천천히 굴리고, 그러다가도 예고 없이 깨물었다.

“아.”

미약한 통증에 라모나가 미간을 찌푸리자 로베르트의 팔에 힘이 들어갔다.

곧 그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라모나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은 그가 웅얼거렸다.

“이제 다음으로 기약하는 건 그만하고 싶은데, 당신은 어떻습니까?”

“…….”

라모나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자 로베르트가 작게 웃었다.

“싫다면 이 이상은 하지 않겠습니다만.”

어느새 고개를 든 로베르트가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그는 손으로 라모나의 반대쪽 귀를 천천히 쓰다듬으며 덧붙였다.

“좋다면 후회하지 않게 해 드리죠.”

무슨 용기가 난 것일까.

그 순간 라모나는 로베르트의 입술을 집어삼켰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두 사람은 서로에게 몸을 밀착했다.

“으음.”

말캉한 감촉에 로베르트가 감미로운 신음을 흘렸다. 라모나의 뒷덜미를 잡은 로베르트의 손에 굵게 핏줄이 섰다.

곧 그는 급하게 셔츠를 벗어던졌다.

투둑.

마치 알폰조의 셔츠가 그랬듯 로베르트의 셔츠 단추가 바닥을 나뒹굴자, 조각 같은 몸이 어둠속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후.”

흥분감을 감추지 못하는 로베르트가 거친 숨을 내쉬자 탄탄한 가슴이 크게 오르내렸다.

이내 라모나를 번쩍 안아 올린 그가 그녀를 침대에 눕혔다.

그리고 그녀의 다리 사이에 자리한 채 새하얀 목덜미를 입으로 훑기 시작했다.

아찔한 기분에 눈을 감은 라모나가 목을 뒤로 젖혔다.

“달아.”

로베르트는 낮은 목소리로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당신은 입술도 달고, 살결도 달고.”

피식.

그가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어쩌면 이렇게 하나같이 달콤하지.”

침실 안의 공기가 팽팽해졌다.

머리가 띵할 만큼 달아오른 열기에 라모나는 침대 시트를 꽉 움켜쥐었다.

로베르트는 그런 라모나의 귓가에 속삭였다.

“눈 떠. 라모나.”

낮은 목소리에 라모나의 감각이 쭈뼛 곤두섰다. 로베르트는 손가락 끝으로 라모나의 배 위에 뱅글뱅글 원을 그리며 그녀를 재촉했다.

“응?”

안달 난 목소리에 정념이 가득했다. 다시 라모나의 목덜미에 뜨거운 키스를 퍼부으며 로베르트가 말했다.

“1분, 1초라도 더 당신을 보고 싶습니다, 라모나.”

얇은 옷자락 위를 지분거리는 로베르트의 손놀림에 라모나의 뱃속에 뭉근한 무언가가 피어나기 시작했다.

‘간지러워.’

저도 모르게 숨을 참은 그녀가 또다시 고개를 뒤로 젖혔다.

미간을 찡그린 채로 살짝 웃은 로베르트가 그녀의 손을 끌어다 자신의 가슴에 얹었다.

“그리고 당신도.”

꿀꺽.

그의 목울대가 크게 움직였다.

“당신도 1분, 1초라도 더 나를 바라봤으면 좋겠습니다. 아니.”

그가 거친 숨을 골랐다.

“나만 바라봤으면 좋겠습니다.”

라모나는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지난 생 그렇게 그녀를 괴롭게 했던 말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말이건만, 왜 로베르트의 입에서 나오니 다르게 느껴지는 건지.

“하아.”

깊은 숨을 내쉬며 그녀가 눈을 떴고, 로베르트는 그에 화답하듯 다시 진득한 입맞춤을 이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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