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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님, 그 입 좀 다물어 주세요-135화 (136/151)

#135화

휙.

날카로운 금속성의 소리가 공기를 가르고 날아들었다. 그 순간.

“히이이잉!”

갑자기 말이 앞다리를 들고 날뛰기 시작했다. 놀란 라모나는 안장을 꽉 붙들었다.

푹!

말이 날뛰는 덕에 빗나간 몰튼 남작의 칼은 말의 허벅지를 거침없이 찔렀다.

“히이잉!”

힘줄을 다친 말이 쓰러지듯 바닥에 주저앉았다. 라모나는 황급히 말에서 내렸다.

“남작?”

사태를 파악한 라모나의 눈이 커졌다. 그런 그녀의 손목에서 푸른빛이 빛나고 있었다.

남작은 원통하다는 듯 라모나를 노려보았다.

“목숨 하나는 질긴 모양이군.”

“……!”

그제야 라모나는 그가 클레멘스에게 자신을 처리하라는 명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젠장.’

설마 몰튼 남작을 이런 방식으로 움직일 줄이야.

패닉에 빠진 그녀가 입술을 깨무는 사이, 상황의 심각성을 눈치챈 티아가 라모나의 팔을 낚아채듯 붙들고 달리기 시작했다.

“아가씨! 이쪽이에요!”

정신을 차린 라모나가 고개를 끄덕이고 티아와 함께 있는 힘껏 달리기 시작했다.

몰튼 남작 또한 기를 쓰고 그들을 쫓아왔다.

“거기 서!”

다행히 라모나를 쫓아온 암살자는 남작 한 명뿐이었다.

거대한 숲을 배경으로 잡힐 듯, 말 듯 아슬아슬한 술래잡기가 이어졌다.

“허억, 허억.”

라모나와 티아는 이를 악물고 숲을 향해 달렸다. 거추장스러운 구두까지 벗어 던진 라모나가 티아의 팔을 이끌고 흙길을 내달리던 그때였다.

“꺅!”

갑자기 티아가 소스라치며 비명을 질렀다.

스릉.

그와 동시에 나무 사이에서 튀어나온 단검 하나가 티아를 향해 날아왔다.

“……티아?”

믿을 수 없는 광경에 라모나의 눈이 커졌다.

“윽.”

티아는 그대로 바닥에 허물어졌다. 날카로운 칼날에 베인 티아의 머리카락이 나풀거리며 한발 늦게 바닥에 떨어졌다.

“안 돼, 티아!”

라모나는 절규했다.

그녀가 황급히 바닥에 쓰러진 티아를 끌어안았다.

“티아, 티아! 정신 차려 봐.”

“으윽, 아가씨, 자…….”

말조차 제대로 잇지 못하는 티아를 보며 절망한 라모나가 울부짖었다.

“티아!”

복수심에 사로잡힌 그녀가 핏대가 선 눈으로 몰튼 남작을 노려보았다.

그러나.

‘……응?’

몰튼 남작은 피를 토하며 바닥에 엎드려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사태를 파악하지 못한 라모나가 당황함을 감추지 못하며 주변을 둘러볼 때였다.

“으, 으윽. 아가씨.”

“……!”

라모나의 품에서 티아가 발버둥 쳤다. 깜짝 놀란 라모나가 황급히 티아의 머리를 받쳤다.

“티아! 너 괜찮아?”

“아, 아가씨. 저 좀…….”

숨이 찬 지 티아가 헉헉 거리며 말을 잇지 못하던 때였다.

“라모나!”

이곳에서 들을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목소리가 메아리치듯 숲속에 울렸다.

자신의 귀를 의심한 라모나의 눈이 커졌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로베르트?”

라모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나무 사이로 익숙한 얼굴이 불쑥 튀어나왔다.

그녀가 무사한 것을 확인한 로베르트가 깊은 한숨을 토해 냈다.

눈물이 흐를 것 같아서 라모나는 입을 틀어막았다. 로베르트는 그런 그녀를 꽉 끌어안았다.

그리고 그녀의 귓가에 장난스레 속삭였다.

“내 사랑, 당신의 그이입니다.”

그제야 라모나는 안도했다.

* * *

“그러니까…….”

상황이 어느 정도 정리되고, 진정한 라모나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쓰러진 몰튼 남작의 시신을 바라보며 그녀가 입을 열었다.

“몰튼 남작이 바로 저를 죽이기 위해 보내진 암살자고.”

로베르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단검을 던진 사람은 2황자 전하시고.”

이번에는 알폰조가 고개를 끄덕였다.

“티아는 머리카락에 단검이 스치고 지나가 놀라서 발이 걸려 넘어진 것뿐이라는 말인가요?”

마지막으로 티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맙소사.”

라모나가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었다.

정말 천만다행이었다. 티아가 죽었다고 생각한 순간 머리가 하얗게 비워졌다.

티아는 쪼르르 달려와 라모나에게 변명했다.

“아가씨가 저를 너무 세게 끌어안으셔서…… 숨이 막혀서 말을 못 했어요. 죄송해요.”

“아니야, 티아. 네가 왜 죄송해.”

“힝. 사실 저 너무너무 감동받았어요. 저는 역시 아가씨의 유일한……!”

울컥한 티아가 눈물을 참기 위해 자신의 미간을 꼬집었다.

알폰조는 머쓱한지 머리를 긁었다.

“하녀를 위협하려던 건 아니었는데. 하필 위치가 그렇게 되었군.”

“아니에요, 감사해요. 전하가 아니었다면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 모르는걸요.”

“……그렇긴 하지.”

알폰조는 어쩐지 어색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라모나의 궁금증이 다 해결된 듯하자 로베르트가 슬그머니 그녀에게 다가갔다.

“괜찮습니까?”

“네.”

입술을 굳게 다문 라모나가 고개를 끄덕이자 로베르트는 더 캐묻지 않고 그녀를 끌어안았다. 그가 나지막이 속삭였다.

“혹시라도 당신이 잘못되었을까 봐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 말에 로베르트의 품에 안긴 라모나의 어깨가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이내 그녀가 간신히 울음을 삼킨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저야말로요.”

라모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흡.”

로베르트는 그녀의 양 뺨을 붙잡고는 입을 맞췄다.

뜻밖의 진한 분위기에 눈이 휘둥그레진 티아가 황급히 알폰조에게 눈짓했다.

“눈이 불편한가?”

눈짓을 읽지 못한 알폰조가 고개를 갸웃했으나.

“네에. 아무래도 칼에 스친 것 같아요. 조금만 봐 주시겠어요?”

“그럴 리가 없…….”

“아야, 아야야. 눈이 쓰라리네.”

티아는 능숙하게 그가 자리를 비키도록 유도했다.

티아를 따라 엉거주춤 자리를 옮기는 알폰조의 시선이 로베르트의 손목을 향했다.

‘푸른빛이…….’

사라졌군.

복잡 미묘한 심경으로 서로에게 입을 맞추고 있는 두 사람을 바라보며 알폰조가 티아를 따라나섰다.

* * *

오랜 잠수 끝에 부족한 산소를 들이마시기라도 하듯 라모나의 입술을 집어삼켰던 로베르트는 이내 더운 숨을 토해 냈다.

그가 라모나의 뺨을 놓아 주고, 두 사람 사이에 약간은 어색한 분위기가 흘렀다.

눈치 빠른 티아가 알폰조를 이끌고 사라진 것도 묘한 기류 형성에 한몫했다.

“으음, 이만 돌아갈까요?”

어색하게 시선을 돌리는 라모나에게 로베르트는 말했다.

“칼을 든 몰튼 남작이 당신의 뒤를 쫓는 것을 보는 순간 숨이 멎어 버리는 줄 알았습니다.”

입 밖으로 내고 나니 라모나가 얼마나 위험한 상황이었는지 더 와닿았다.

‘꼭 심장을 토할 것 같은 기분이 드는군.’

한숨을 삼킨 로베르트가 다시 입을 열었다.

“라모나, 아마도 할아버님이…….”

그러나 라모나의 입에서 나온 것은 의외의 말이었다.

“오랜만에 봐도 참 잘생겼네요, 당신.”

그녀가 싱긋 웃었다.

그런 라모나의 태도에서 로베르트는 그녀가 이미 일의 전말을 파악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뭐라 이루 말할 수 없이 비참한 기분이 든 그가 눈을 감았다.

라모나는 그런 로베르트의 얼굴을 조심스레 쓸었다.

“다쳤네요.”

“죄송합니다.”

“저한테 죄송할 일은 아니잖아요.”

“그래도 당신은 제 얼굴을 좋아하니까요.”

“대체 이게 무슨 소리람.”

라모나가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힘없이 웃었다. 이윽고 그녀가 살며시 로베르트를 끌어안았다.

“걱정했어요.”

가녀린 어깨가 그의 품 안에서 파르르 떨렸다. 로베르트는 말없이 그녀의 등을 토닥였다.

떠날 때보다 라모나가 많이 야윈 것이 단번에 느껴졌다. 로베르트는 저도 모르게 그녀의 목덜미에 입을 맞췄다.

“많이 걱정했습니까?”

“당연하죠.”

웅얼거리는 듯한 그녀의 대답에 로베르트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얼마나?”

이윽고 그의 입술이 옷 사이로 드러난 라모나의 목 부근을 지분거리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제 생각만 날 만큼? 눈을 감아도 온통 제 얼굴로 가득할 만큼?”

부끄러움에 귀가 달아오른 라모나가 그를 밀어내려했으나 로베르트는 꿈쩍하지 않았다.

그는 입술로 천천히 라모나의 목에 도장을 찍듯 훑어 올렸다.

“흡.”

긴장한 그녀가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가 유독 크게 들렸다. 그 소리에 자극을 받은 로베르트는 저도 모르게 그녀의 등을 더듬었다.

‘아.’

이건 좀 위험한데. 몸이 단단해지는 것을 느낀 로베르트가 미간을 찌푸릴 때였다.

“왜, 왜 그렇게 남의 등을 더듬고 그래요!”

토마토처럼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라모나의 얼굴을 마주한 그가 간신히 이성을 붙잡았다.

“그야.”

꿀꺽.

입 안에 고인 침을 삼킨 그가 야릇하게 눈을 휘며 말했다.

“나의 천사.”

쪽.

그의 입술이 라모나의 뺨에 닿았다 떨어졌다.

“당신의 얼굴에서 이렇게 영롱한 빛이 나는 것을 보니 당신의 등에 분명 날개가 남아 있을 것 같아서?”

경악을 감추지 못하는 라모나의 얼굴을 바라보며 로베르트는 오랜만에 생각했다.

‘오.’

짜릿해.

역시 그는 이런 라모나가 몸서리칠 정도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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