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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님, 그 입 좀 다물어 주세요-123화 (124/151)

#123화

* * *

클레멘스는 공작저의 사병을 동원해 라모나의 침실을 샅샅이 뒤지라고 명령했다.

그는 그 모든 과정에서 라모나의 의사를 묻지 않았다. 마치 라모나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확정 지은 듯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엉망이 된 라모나의 침실.

툭.

“이건 또 뭔지.”

클레멘스가 테이블 위에 멜리사가 전해 주었던 약병을 던졌다. 소위 남녀 사이에 도움을 준다는 미약이었다.

약병의 정체를 확인한 클레멘스가 미간을 찌푸렸다.

멜리사에게 몰래 편지를 보낸 일이 행여나 발각될 것을 대비해 라모나와 멜리사가 짠 트릭이건만, 클레멘스에게 그 사실을 이야기 할 수는 없었다.

라모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고 입술을 깨물었다.

“레이디 아이젠부르크.”

“…….”

“내 생각보다 훨씬 질이 나쁜 사람이었군.”

클레멘스는 덤덤한 얼굴로 라모나를 모욕했다.

“로베르트도 없는 와중에 이런 약은 왜 필요했지?”

“할아……. 죄송합니다. 선대 공작 각하를 속인 것에는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하지만 로베르트가 자리를 비운 것을 숨길 필요가 있었어요.”

“어째서?”

“……그건 말씀드리기 곤란합니다.”

수상해 보이리라는 것은 알지만 푸른빛이니, 회귀니 하는 것들을 그에게 말할 수는 없었다. 곤경에 처한 라모나는 최대한 침착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차라리 로베르트가 돌아오면 그때 직접 물어보시는 게 나을 거예요.”

라모나의 대답에 클레멘스가 기가 찬다는 듯 헛웃음을 쳤다.

“로베르트가 돌아오면?”

이윽고 그의 얼굴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클레멘스가 싸늘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내 기가 막혀서. 딱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군.”

“각하?”

“그 뻔뻔한 입 다물도록!”

클레멘스가 분을 이기지 못하고 소리쳤다. 모욕적인 대우를 견딜 수 없었던 라모나가 발끈하고 나섰다.

“도대체 왜……!”

그러나 클레멘스는 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다시 호통쳤다.

“내 자네의 속셈을 모를 줄 알아? 레헨트를 손에 넣었으니 이제 쓸모가 다했다 싶었나!”

“……예?”

쓸모가 다했다니? 이게 무슨 말이란 말인가.

‘설마……?’

쿵.

라모나의 심장이 내려앉았다. 그녀가 클레멘스를 붙들고 다급히 물었다.

“로베르트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나요?”

짝!

라모나의 질문이 끝나기 무섭게 클레멘스는 그녀의 뺨을 내려쳤다.

“뻔뻔한 것.”

그는 더러운 것이 닿았다는 듯 라모나의 뺨을 친 손을 손수건으로 닦았다.

“제가 그런 말을 들을 만한 일을 저지른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만.”

뺨을 감싸 쥔 라모나가 클레멘스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그러나 클레멘스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가 한 음절, 한 음절을 라모나의 귓가에 새기듯 또박또박 말했다.

“자네가 로베르트를 어떻게 구워삶았는지는 모르겠군. 어쩌면 빌어먹을 벤트하임의 작전이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이 이상은 내 눈 뜨고 보지 않겠네. 당장 내 저택에서 나가도록.”

아드득, 클레멘스가 이를 악물었다.

“아이젠부르크는 감히, 그 더러운 손으로 메닝엔 공작을 죽이려 든 대가를 혹독히 치러야 할 것이야.”

“……!”

로베르트의 신상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알아챈 라모나가 클레멘스에게 되물으려던 찰나였다.

벌컥.

“여보! 이게 무슨 말이에요. 산사태라뇨?”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창백한 얼굴로 라모나의 침실에 뛰어 들어온 유디트의 목소리에서 라모나는 모든 전말을 파악했다.

1년 후에야 벌어졌어야 하는 산사태가 바로 오늘 일어났다는 사실을.

* * *

클라이스트 백작저.

“뭐?”

레헨트에 심어 둔 수하의 보고를 받은 로지나가 미간을 찌푸렸다.

“무슨 소리야, 알아듣게 말해 봐.”

“어, 음, 아가씨, 그러니까……. 그 납치당한 꼬맹이 있잖아요.”

“어.”

“그 꼬맹이랑 같이 다니던 마부가 죽은 채로 발견됐습니다.”

그건 놀랍지 않은 일이다. 로지나가 심드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암살이 아니라 병사예요.”

“병사?”

“예.”

수하는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배탈을 크게 앓다가 죽었다는데, 세상에 사람이 배탈로도 죽나 싶어서 말입니다. 혹시 병이라도 도는 건 아닐까요?”

“이런, 젠장.”

그건 이야기가 다르지. 로지나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당장 공작저에 다녀와야겠네.”

그녀가 외출용 장갑을 집어 들던 때였다.

쾅!

“로지나!”

에드윈이 로지나의 방문을 부서질 듯 거세게 열고 들어왔다. 로지나가 짜증스레 그를 타박했다.

“또 왜 난리야.”

“각하가 실종됐어.”

“……뭐?”

믿을 수 없는 소식에 로지나의 눈이 커졌다. 에드윈은 다급히 말을 이었다.

“일단 난 그쪽으로 가 봐야 하니까 여기 일은 네가 좀 맡아 줘. 아 그리고.”

에드윈이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레이디 아이젠부르크 좀 감시하고 있어.”

라모나의 이야기에 로지나의 표정이 묘해졌다.

“왜?”

“지금 정황이 너무 수상해서. 여차하면…….”

에드윈이 목에 손을 긋는 제스처를 취했다.

“여기까지 각오하고 있어.”

예상치 못한 일의 흐름에 로지나의 눈이 커졌다.

“그게 무슨 소리야? 레이디 아이젠부르크가 공작 각하에게 뭔 짓이라도 했다는 거야?”

“지금까지 드러난 정황으로써는.”

“그게 무슨 말도 안……!”

“그럼 난 간다.”

로지나가 반발하자 에드윈은 빠르게 자리를 떴다.

젠장. 홀로 남은 로지나가 입술을 짓이겼다. 이내 잠시 망설이던 그녀가 빠르게 방문을 박차고 나섰다.

* * *

클레멘스에게 쫓겨나듯 침실을 나서고, 그녀를 외면하는 유디트를 바라보고, 마침내 마차를 타고 메닝엔 공작저를 벗어날 때까지.

마치 꿈이라도 꾸는 것처럼 라모나에게는 모든 것이 무디게만 느껴졌다.

그녀는 생각했다.

사실 로베르트를 만난 이후의 삶이 모두 망상에 불과하고, 자신은 요하네스의 정부로 최후를 맞이한 게 아닐까.

발이 땅에서 한 뼘 정도 떨어진 듯 멍하니 부유하고 있던 그녀의 정신을 다시 현실로 끄집어낸 것은 티아의 뺨에 든 피멍이었다.

라모나는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가 메마른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괜찮아?”

“그럼요. 별일 없었는 걸요.”

티아의 씩씩한 대답에 라모나가 입술을 깨물었다.

“티아, 내가 미안해. 다 나 때…….”

“아가씨 무슨 말씀하시려는지 알아요, 그래도 하지 마세요.”

티아는 단호하게 라모나의 말을 제지했다. 그러고는 오히려 라모나의 상태를 살폈다.

“많이 놀라셨죠. 괜찮으세요, 아가씨?”

“티아…….”

눈물이 터져 나올 것만 같아 라모나가 이를 악물었다.

‘안일했어. 다 내 탓이야.’

요하네스가 어떤 사람인 줄 알면서. 고작 푸른빛의 비밀이, 회귀의 비밀이 뭐가 중요하다고 로베르트를 보냈단 말인가.

‘그가 죽으면 다 무슨 소용이라고.’

라모나는 로베르트를 붙잡지 못했던 것을 뼈저리게 후회했다.

얼음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날카로운 깨달음이 라모나를 덮쳤다.

자신이 요하네스를 두려워하는 사이 많은 것을 놓쳐 버리고 말았다는 사실을.

‘다 나 때문이야. 내가 요하네스를 자극해서 1년 후에 생길 일이 더 먼저 벌어진 거야.’

그를 피하기만 하면 괜찮을 줄 알았다. 메닝엔의 이름 아래 숨어서 요하네스의 정부가 되는 것을 피하기만 한다면, 그러면 지난 생과 다르게 살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그건 크나큰 오판이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요하네스를 죽여 버렸어야 했다.

그가 살아 있는 한, 라모나의 이번 생은 지난 생의 연속일 뿐이었다.

까드득. 라모나가 이를 악물었다.

일단 침착해야 한다. 그녀에게는 로베르트의 생사 확인이 무엇보다 우선이었다.

그리고 그 일을 도울 만한 사람은 역시 한 사람뿐이었다.

‘하필.’

한숨을 삼킨 그녀는 이내 마음을 정하고 마차의 벽을 두들겼다.

똑똑.

“마차를 돌려.”

“예?”

공작가에서 쫓겨나는 주제에 당당한 요구를 하는 라모나를 향해, 마부가 무시하는 듯한 어조로 되물었다.

그러나 라모나는 굴하지 않았다.

“슈타이덴 백작저로 마차를 돌리도록.”

“예에? 슈타이덴 백작저 말씀이십니까?”

“어서.”

마부는 떨떠름한 얼굴로 방향을 틀었다.

라모나도 잘 알고 있었다. 이 일이 알려진다면 또 다시 그녀를 향한 비난이 폭주할 것이다.

‘그리고 분명, 요하네스는 그 사람들을 이용하겠지. 내가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그에게 고개를 숙일 때까지.’

솔직히 말하자면 그녀는 아직도 요하네스가 두려웠다. 하지만.

‘로베르트를 잃는 것보다 두렵지는 않아.’

이 이야기를 로베르트에게 해 줄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마차는 라모나의 후회를 싣고 달렸다.

이윽고 도착한 슈타이덴 백작저 앞, 마부는 더러운 꼴을 더 보기는 싫다는 듯 서둘러 마차를 돌렸다.

히이잉.

바삐 떠나는 마차의 뒤모습을 바라보던 라모나가 발걸음을 돌릴 때였다.

“레이디 아이젠부르크.”

누군가가 그녀의 어깨를 붙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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