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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님, 그 입 좀 다물어 주세요-103화 (104/151)

#103화

달칵.

후, 문을 닫는 것과 동시에 로베르트는 한숨을 토해 냈다.

목덜미가 뜨겁다. 그럴 수밖에.

마차에서 내린 라모나가 그의 팔에 부드러운 몸을 바짝 붙일 때부터 로베르트의 몸은 뜨거웠으니까.

로베르트는 저도 모르게 입을 틀어막았다.

<당신은 어떤 하루였나요, 로베르트.>

그렇게 말하며 환히 웃는 그녀의 모습은 정말이지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러니 라모나가 작은 손가락을 그의 손가락 사이사이로 끼워 넣고, 눈을 곱게 접던 순간.

<당신도 즐거운 하루를 보냈으면 좋았을 텐데……. 그렇죠?>

그가 숨 쉬는 법을 잊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온 신경이 손에 쏠렸다.

그의 손보다 약간 서늘한 온도와 부드러운 살결, 가느다란 부피감. 보지 않고도 라모나의 손을 생생하게 그려 낼 수 있을 정도였다.

손가락 사이에서 그가 사준 것이 분명한 반지가 느껴지자 측정할 수 없는 만족감이 밀려왔다.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온 세상이 검은 물감이라도 칠한 듯 흐려지고 오직 그녀만이 로베르트의 시야에 들어왔다.

꿀꺽.

그는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던 말을 겨우 삼켜 냈다.

‘지금 이 순간 덕분에 충분히 즐거운 하루가 된 것 같군요.’

이렇게 말하면 라모나는 필히 얼굴을 찡그릴 테니까.

“후.”

이 정도면 중증이다. 로베르트는 가벼운 한숨을 토해 냈다.

요 며칠 사이 그는 정말이지 라모나가 싫어하는 것을 하지 않기 위해서 애썼다.

솔직히 말하자면 라모나에게 이 이상 미움받지 않기 위해 노력한 것이었다.

천하의 로베르트 메닝엔이.

그뿐만이 아니었다.

분명 조금 전 라모나와 그는 선을 넘을 수 있었다.

라모나의 바다 같은 눈동자에 감돌던 혼란스러움과 침실에 감돌던 야릇한 분위기. 그는 당장이라도 그녀의 탐스러운 입술을 집어삼키고, 이불 위에서 바스락거리던 카디건을 바닥에 던져 버릴 수도 있었다.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다시 피가 몰렸다.

로베르트는 확신했다. 그 순간 그가 입을 맞췄다면 그녀는 거부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방법은 뭐랄까, 로베르트의 성미에 맞지 않았다.

눈을 꼭 감은 라모나가 몸을 움찔 떠는 걸 보는 순간 그는 상상했다.

그에게 달콤한 사랑을 속삭이는 그녀의 목소리와 목을 안아 드는 손길. 그리고 마침내 그의 입술에 닿는 보드라운 살결.

상상만으로도 짜릿하다. 로베르트는 저도 모르게 혀로 입술을 축였다.

그래, 역시 아까 같은 방법은 그의 성미에 맞지 않았다.

눈을 감은 그녀에게 입술을 맞추는 일은 너무나 손쉽다.

이것도 미움받지 않기 위한 노력일까? 아니면 자기만족을 위한 기다림?

‘나도 참, 모순적인 사람이군.’

아니면 정말 끔찍한 변태던가. 헛웃음을 친 로베르트가 발걸음을 뗐다.

아무래도 좋다. 오늘 밤만 같다면 아무래도 좋다.

그는 자신의 손목을 향해 속삭이듯 말했다.

“라모나 아이젠부르크는 행복한 꿈을 꾼다.”

얄궂은 푸른빛은 꼭 이럴 때는 떠오르지 않았다. 피식 웃은 로베르트가 자신의 손목에 대고 입을 맞췄다.

쪽.

사실 라모나에게 닿고 싶었던 입맞춤이었다.

* * *      다l임l공l유l금l지

며칠 후, 드디어 황궁 무도회 아침이 밝았다.

티아는 비장한 얼굴로 면포에 화장수를 적셨다. 라모나의 얼굴을 조심스레 닦아 주며 티아가 입을 열었다.

“아가씨.”

“……티아, 나 지금 네 표정 때문에 조금 무서워지려고 해.”

라모나의 너스레에도 티아의 비장한 표정은 풀리지 않았다. 오히려 티아는 더 결연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제국의 보물이 누구인지 오늘 똑똑히 보여 주고 오셔야 해요.”

티아 뿐만이 아니었다. 저도 모르게 로베르트화 되어 버린 공작저의 하녀들은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단어로 라모나를 칭찬하기 바빴다.

“세상에, 레이디. 오늘 정말 아름다우세요. 아름다움의 여신이 현신했다면 이런 모습일까요?”

“맞아요, 맞아요. 레이디에게서 나오는 빛에 눈이 멀어 버리는 줄 알았다니까요. 완전 천사 같으세요.”

이거 정말 칭찬 맞니. 한숨을 내쉰 라모나가 손을 내저었다.

“그냥 적당히 어울리게만 해 줘.”

그런 그녀의 머릿속에 로지나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엄청난 드레스 디자인도 함께였다.

이상한 일이었다.

회귀 후 다시 맞이하는 데뷔탕트다.

분명 미카엘라가 가장 신경 쓰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정작 라모나가 가장 의식하고 있는 건 로지나라니.

동시에 지난번 로베르트의 모습이 떠올랐다.

닿을 듯 말 듯 아슬하게 다가왔던 입술과 솜털을 스치던 숨결. 갑자기 부끄러움이 밀려온 라모나가 눈을 질끈 감았다.

“아가씨 혹시 더우세요?”

“으, 으응?”

“뺨이 달아올랐어요. 창문을 좀 열게요.”

“그래.”

더워서 그런 건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더워지기는 했으니까.

‘하아, 정말 모르겠다.’

로베르트는 대체 무슨 생각일까, 푸른빛은 과연 떠올랐을까?

생각은 오븐 속 파이지처럼 겹겹이 부풀었다. 이러다가는 머리가 펑 하고 터져 버릴 것만 같았다.

될 대로 되라지 뭐. 한숨을 삼킨 라모나는 반쯤은 포기한 심정으로 거울을 바라보았다.

거울을 보고 있노라니 목걸이가 눈에 들어왔다.

아이젠부르크 자작이 위급 상황에서 흔들라고 했던 바로 그 목걸이였다.

멈칫한 라모나가 목걸이를 만지작거렸다.

‘오늘 차림에도 잘 어울리긴 하는데…….’

로베르트가 선물한 목걸이를 하고 가야 할 것 같은 이 기분은 뭘까.

‘흐음.’

고민 끝에 라모나는 티아를 불렀다.

“티아.”

“예, 아가씨.”

“이 목걸이와 어울릴 것 같은 귀걸이를 좀 가져와 볼래?”

괜한 사람을 의식하지 말자,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니까.

굳게 다짐한 라모나는 눈을 감고 하녀들에게 화장을 맡겼다.

* * *

황궁으로 향하는 마차 안, 로베르트는 태연하게 라모나를 향해 칭찬을 건넸다.

“잘 어울립니다.”

“감사해요. 각하도 오늘 잘 어울리시네요.”

“멋지다는 뜻입니까?”

돌아왔구나. 그새를 못 참는 주둥이를 보는 라모나의 눈이 흐려졌다. 그녀는 창밖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대답하고 싶지 않네요.”

“그럴 것 같았습니다.”

기가 막혀. 라모나가 입을 쩍 벌리고 그를 돌아보았다.

“그건 무슨 의미예요?”

로베르트는 뭐가 문제냐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안 멋지면 안 멋지다고 할 테지만, 그럴 리는 없고. 그렇다고 나의 사랑, 제국의 보물이 순순히 멋지다고 해 줄 리도 없지 않습니까.”

“와.”

“그러니 그럴 것 같았습니다. 아, 칭찬에는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로베르트가 한쪽 눈을 찡긋해 보였다.

그래, 차라리 저 주둥이가 나불대니 마음은 편했다.

회귀 후 다시 치르는 데뷔탕트. 이전과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예측할 수 없는 하루에 라모나는 바짝 긴장했지만 로베르트가 평소처럼 헛소리를 늘어놓은 덕분에 맥이 풀리고 말았다.

그녀가 헛웃음을 쳤다.

‘나의 사랑, 저거 또 하네.’

싫어하는 것 같아서 안 한다더니. 또 무슨 심경의 변화일까.

‘내가 안 싫어한다고 생각하나?’

설마 그럴 리가!

하지만 로베르트가 예전의 모습을 되찾으니 안심이 된 것은 사실인지라 라모나는 굳이 그를 나무라지 않았다.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그 일을 떠올리자마자 또다시 그날의 로베르트가 눈앞에 아른거리기 시작했다.

‘……덥다.’

앞으로 로베르트가 저런 망해 버린 주접을 떨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하는 건 너무 끔찍한 일인 것 같다.

라모나는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그런 그녀를 바라보는 로베르트가 눈썹을 까딱했다.

“많이 떨립니까.”

“음, 조금요.”

라모나는 어색하게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변명했다.

“그래도 데뷔탕트잖아요.”

로베르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보통 레오벤 제국의 레이디들은 열여섯 살이면 데뷔탕트를 치렀다. 그러니 열여덟 살이 되어서야 데뷔탕트를 치루는 라모나는 조금 늦은 감이 있었다.

대단한 사유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미카엘라는 자신이 황태자비가 되리라는 사실이 확고해지고 나서 데뷔탕트를 치루고 싶어 했고, 그런 자신을 별처럼 빛내 줄 들러리가 필요했다.

그러니 라모나는 우정이라는 이름으로 데뷔탕트를 미룰 수밖에 없었다.

미카엘라의 바람대로 그녀의 훌륭한 들러리가 된 것은 물론이었다.

아마 이번에도 미카엘라는 다른 들러리들을 잔뜩 달고 올 것이다. 레이디 애커만이라든가, 레이디 블레나 같은 사람들 말이다.

하지만.

‘너무 오래전 일이라 그런가, 별 감흥도 없네.’

오히려 라모나가 걱정하는 것은 다른 쪽 일이었다.

‘별일 없었으면 좋겠는데.’

라모나는 한숨을 삼켰다.

그녀의 푸른 눈이 어둡게 가라앉았고, 그 사이 마차는 황궁에 도착했다.

사교 시즌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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