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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님, 그 입 좀 다물어 주세요-68화 (69/151)

#68화

* * *

“라모나.”

그녀를 부르는 차가운 목소리에 라모나는 저도 모르게 어깨를 움츠렸다.

요하네스는 대답하지 않는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

“저, 전하?”

겁먹은 라모나가 그를 바라보자 요하네스는 싱긋 웃었다. 하지만 그의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얼굴이 많이 좋아졌어.”

그의 시선이 라모나의 온몸 구석구석을 훑었다.

잘 빗은 부드러운 머리카락이며, 흉터 하나 없이 깨끗한 손목에 그의 시선이 유독 길게 머물렀다.

“머리도 단정한 걸 보니, 이번에는 네 하녀를 신뢰하는 모양이지?”

“전하…….”

“내가 붙여 준 하녀는 네 머리에 손도 못 대게 하지 않았느냐. 응?”

요하네스는 돌연 배를 붙잡고 폭소하기 시작했다.

소름 끼치는 웃음소리에 라모나는 어쩔 줄 모르고 옷자락을 꽉 그러쥐었다.

이내 웃음을 그친 그가 라모나에게 다가왔다.

“참 재미있지.”

꽉.

요하네스의 차가운 손이 라모나의 턱을 움켜쥐었다.

“두 번의 삶이라…….”

그의 말에 라모나의 눈이 커졌다.

“그, 그걸 어떻게……!”

“라모나.”

하늘을 담은 듯 맑고 푸른 눈동자가 서서히 번들거리기 시작했다.

“이 제국에 내가 모르는 일이 있을 것 같으냐?”

라모나의 턱을 쥔 그의 손에 점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오히려 이 상황이 즐겁구나.”

순간 숨이 턱, 하고 막힌 라모나가 본능적으로 그의 가슴을 밀어냈다.

그러나 요하네스는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다.

그는 나긋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버린 사냥개가 다시 내 관심을 끌 줄이야.”

“흐윽.”

간신히 숨을 들이마신 라모나가 그를 노려보았지만, 요하네스는 오히려 그녀의 시선이 즐겁다는 듯 활짝 웃었다.

이내 그가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이번에는 네 팔을 꺾고, 다리를 꺾고, 발목을 꺾어 넣어 둘 테다. 그리고,”

귓가에 닿는 그의 숨결은 마치 뱀이 기어가는 듯 소름 돋았다.

“로베르트 메닝엔을 네 눈앞에서 죽여 주지.”

겁에 질린 라모나가 저도 모르게 뒷걸음을 쳤다.

그러나 요하네스는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다.

“그 아비처럼 눈도 못 감게 해 주마. 아니면 이것도 괜찮겠군. 시신을 다 조각내 장례도 치르지 못하게 하는 거야. 어때?”

“허억, 헉.”

숨이 더 가빠진 라모나가 요하네스의 손을 붙들고 애원하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 안 돼요. 전하, 그건 안 돼요.”

어느새 그녀의 뺨을 타고 뜨거운 눈물이 줄줄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눈물에 요하네스의 얼굴에 흥미가 떠올랐다.

“어째서?”

“제발…… 그 사람은 안 돼요.”

“라모나, 너는 정말 멍청하구나.”

그는 또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네가 이렇게 나오면 내가 꼭 그 남자를 죽이고 싶잖아. 응?”

요하네스의 말에 라모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이내 이를 악문 그녀가 대답했다.

“지킬 거예요.”

이번 생에는 그 남자가 그렇게 허망하게 죽지 않도록. 내가 지킬 거야.

라모나는 결연하게 주먹을 꽉 쥐었다.

그녀의 대답에 요하네스의 얼굴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탁.

그는 라모나의 턱을 놓아주었다.

그리고 벌겋게 짓눌린 턱을 붙잡은 라모나를 내려다보았다. 마치 아주 하찮은 벌레라도 보는 시선으로.

“라모나.”

“…….”

“대답.”

“……네.”

“네 가족도 지키지 못한 네가, 그 남자는 지킬 수 있을 것 같으냐?”

“…….”

“응? 정말 그렇게 생각해? 네 동생이 어찌 죽었는지 다시 알려 줄까?”

라모나를 담은 그의 푸른 눈이 비웃듯 일그러졌다.

그와 눈이 마주친 순간 라모나는 어찌할 수 없는 커다란 무력감에 휩싸였다.

그래, 어쩌면 저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자신은 무력하고, 실수투성이에, 지금까지 제대로 해낸 것 하나 없으니까.

라모나는 멍하니 자신의 손목을 내려다보았다.

상처 하나 없이 깨끗했던 손목에 어느새 지난 생의 상흔이 스멀스멀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응?’

상처 위로 가느다란 푸른빛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 * *

바이스카스텔의 침실, 로베르트는 정신을 잃은 채 연신 신음을 흘려 대는 라모나를 바라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대체 무슨 이야기를 했기에.’

알폰조와 대화하며 차갑게 식어 가던 그녀의 표정이 아직도 눈앞에 아른거렸다.

이럴 줄 알았으면 무슨 일이 있더라도 2황자가 라모나와 함께 있지 못하게 했을 텐데.

“쯧.”

답답함에 로베르트가 혀를 찼다.

“으, 으…….”

라모나는 계속해서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로 신음을 흘렸다.

안 좋은 꿈이라도 꾸는 모양이었다.

그 모습이 안쓰러웠던 로베르트가 저도 모르게 그녀의 이마를 쓸어 주었다.

‘깨워야 하나.’

그는 물끄러미 자신의 손목을 바라보았다.

행여나 자신의 말실수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났나, 하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그러나 아무리 기억을 헤집어 보아도 이런 상황에 대해서 한 이야기는 없었다.

어쩌면 그가 놓쳤을 수도 있고.

‘역시 너무 위험한 힘이야.’

손목을 내려다보는 로베르트의 미간이 좁아졌다.

그러나 이런 상황이 되자 또다시 이 힘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그는 속삭이듯 자신의 손목에 대고 말했다.

“라모나 아이젠부르크는 좋은 꿈을 꾼다.”

야속하게도 푸른빛은 떠오르지 않았다.

‘이럴 때는 꼭 안 나타나지.’

못마땅한 얼굴로 그가 머리를 쓸어 올렸다.

그때였다.

“허억, 허억.”

갑자기 라모나가 숨이 막힌 듯 가쁜 숨을 몰아쉬기 시작했다.

당황한 로베르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라모나?”

“허어억, 안 돼. 안 돼요.”

눈물까지 흘리면서 고통스러워하는 그녀를 본 순간 로베르트의 가슴에 쿵, 하고 무거운 무언가가 떨어졌다.

그는 다급히 라모나를 흔들었다.

“라모나! 라모나! 일어나십시오!”

“안 돼, 그 사람은, 허억, 안 돼요.”

“라모나!”

그 순간 로베르트의 손목에서 드디어 푸른빛이 스멀스멀 피어나기 시작했다.

로베르트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간절히 외쳤다.

“젠장, 라모나! 정신 차려!”

그의 외침이 하늘에 닿기라도 한 걸까.

서서히 라모나가 눈을 떴다.

“……각하?”

이내 그를 발견한 라모나의 얼굴이 편안하게 풀어졌다.

덩달아 그녀의 호흡도 천천히 안정되기 시작했다. 그녀는 멍하니 중얼거렸다.

“꿈이었구나…….”

이내 라모나는 그녀의 손목을 바라보더니 피식 웃고는 중얼거렸다.

“아직 꿈인가 봐. 손에 푸른빛 이거…… 계속 보이네.”

그 순간, 로베르트는 차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 * *

안정을 되찾은 라모나는 금세 다시 잠이 들었다. 꿈조차 꾸지 않는 달콤한 잠이었다.

그리고 그녀가 다시 깨어났을 때.

“건강이 최고지.”

‘……응?’

“라모나 아이젠부르크는 아주 건강해. 절대 쓰러지지 않지.”

쉴 새 없이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로베르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왜 저래.’

떨떠름한 표정으로 라모나는 슬그머니 눈을 감았다. 왠지 지금 눈을 떴다가는 귀찮아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라모나는 제국에서 제일 튼튼하지.”

진짜 왜 저러는 걸까. 로베르트의 주둥이는 확실히 종잡을 수 없는 감이 있었다.

라모나가 고민하는 사이에도 메닝엔의 공주님은 쉬지 않고 입을 놀렸다.

“아주 튼튼해, 절대 다치지 않아. 환수도 이기지.”

더 이상 듣고 있을 수 없었던 라모나가 결국 눈을 떴다.

“……각하?”

“라모나!”

그녀의 목소리에 로베르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왜 저렇게까지 반가워하나 싶다가도, 그 사실에 들끓던 가슴이 좀 편안해졌다.

무슨 말을 하는 게 좋을까.

쓰러지는 자신을 받아 줘서 고맙다고 말할까? 아니면 나는 괜찮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할까?

입술을 달싹이던 그녀는 고민 끝에 결국 조심스레 물었다.

“제가 혹시 쓰러졌었나요?”

“……예.”

“폐를 끼쳤네요, 죄송해요.”

죄송하다는 말에 로베르트의 얼굴이 눈에 띄게 굳었다.

“아닙니다. 몸이 안 좋은 당신을 데리고 무리하게 나간 제 잘못입니다. 그런 말은 하지 마시죠.”

‘내가 뭐 말실수했나?’

어쩐지 평소와는 다른 그의 태도에 라모나는 고개를 갸웃했지만, 이내 대수롭지 않게 그의 말을 수긍했다.

그래도 그가 라모나가 아프다고 생각하는 것이 불행 중 다행이었다.

사실은 그것과는 좀 많이 달랐으니까.

“알겠어요, 각하도 너무 마음의 짐처럼 여기지는 마세요. 2황자 전하와 레이디 클라이스트는요?”

“각자 자신이 머무는 곳으로 돌아갔습니다. 아, 2황자는 수도로 금방 출발했다고 하더군요.”

로베르트가 편지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당신이 깨어나면 전해 달라고 했습니다.”

라모나는 조심스레 알폰조의 서신을 펼쳐보았다.

<어머니가 그대를 만나고 싶어 하신다 들었네. 레이먼에게 전달할 편지가 있다면 가져와도 좋아.>

레이먼을 직접 만난 지가 언젠데.

‘무슨 이런 연막을 친담.’

로베르트가 그를 왜 근육 바보라고 하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던 라모나는 헛웃음을 쳤다.

쓰러지기 전, 자신을 바라보던 알폰조의 시선이 아직도 눈앞에 생생했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는 그대가 가장 잘 알 테고.>

그녀를 안쓰럽게 여기는 듯한 시선.

그건 분명,

‘내 지난 생을…… 알고 있다는 뜻이겠지.’

이건 예상에 없던 일이다.

라모나는 한숨을 삼켰다.

일단 수도에 돌아가는 대로 그를 다시 만나 보아야 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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