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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님, 그 입 좀 다물어 주세요-67화 (68/151)

#67화

* * *

바이스카스텔의 감옥, 곰팡이 냄새가 가득한 지하에 이가 누런 남자가 갇혀 있었다.

“아! 난 진짜 아무 짓도 안 했다니까!”

철컹철컹.

남자는 거세게 항의하며 철창을 마구 흔들었다.

남자가 벌인 소란에 간수들이 귀찮아 죽겠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간수 중 한 명이 툭툭 철창을 발로 치며 이가 누런 남자를 나무랐다.

“아니, 공작 각하의 약혼녀를 건드려 놓고 목숨 부지할 기대를 한 거야? 멍청하기 짝이 없기는. 쯧쯧.”

간수의 말에 남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 그 계집애가 약혼녀?”

“입조심해! 너 같은 놈이 함부로 입에 담을 분이 아니야!”

“제기랄. 그걸 알았으면 당장 그 여자를 내가…….”

하소연하던 이가 누런 남자가 갑자기 화들짝 놀란 듯 입을 꾹 다물었다.

“이게 진짜 미쳤나!”

남자의 발언에 기겁한 간수들이 철창을 향해 발길질했다.

도르륵.

발길질하는 간수들 사이로 작은 알약이 철창 안으로 흘러들어 갔지만,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알약을 발견한 남자는 얌전히 엉덩이로 뒷걸음질을 치더니 침묵을 이어갔다.

돌변한 남자의 태도에 간수들은 미심쩍어했지만 이내 금방 잊고 자신들끼리 수다를 이어갔다.

“근데 그 약혼녀분도 참 대단하지 않아?”

“뭐가?”

“아니, 생각해 봐. 자기 가문의 영지가 몰수당하게 생겼는데 보란 듯이 신나게 휴가 다니는 것 보라고.”

“아 메닝엔 공작가가 뒤에 있는데 뭐가 무섭겠어.”

“그렇긴 한데! 그렇긴 한데, 그래도 내 자식이 그러면 난 가슴이 아주 문드러질 것 같은데.”

“자네가 그런 생각밖에 못 하니까 메닝엔 공작의 장인이 못 되는 거야.”

“이야, 그거 말 되네.”

뼈 있는 말에 주변의 간수들이 킬킬대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때였다.

쿵.

육중한 무언가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감옥을 울렸다.

깜짝 놀란 간수들이 뒤를 돌아보았다.

이내.

“으억!”

입에 거품을 물고 쓰러진 이가 누런 남자를 발견한 간수가 기겁하며 외쳤다.

“의원! 의원을 데려와! 어서!”

“제가 다녀올게요!”

간수 중 한 명이 황급히 밖으로 뛰어나갔다.

다른 한 명은 열쇠를 찾아 감옥 문을 열었다.

“아익! 이게 왜 이렇게 안 열려.”

쩔그럭거리는 열쇠 뭉치를 들고 자물쇠와 씨름하기를 한참, 드디어 남자가 갇힌 감옥의 문이 열렸다.

하지만.

“힉!”

남자의 코에 손을 대 본 간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수, 숨을 안 쉬는데?”

이가 누런 남자는 이미 세상을 떠난 후였다.

* * *

그 시각, 한 남자가 벤의 집 문을 두드렸다.

“네가 그 꼬마냐?”

턱이 툭 튀어나온 남자를 발견한 벤이 경계하듯 문을 반만 열고 대답했다.

“누구세요.”

그사이 남자는 벤의 집을 힐끔 둘러보았다. 벤의 동생들이 없는 것을 발견한 남자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애들을 다 잡아갔다더니 진짜인가 보네.”

그 말에 벤은 남자의 정체를 짐작했다.

메닝엔 공작의 약혼녀의 지시대로 동네방네 울면서 그녀가 동생들을 가뒀다며 소문내고 다닌 보람이 있었다.

계속해서 벤이 경계를 풀지 않자 남자는 짜증스레 미간을 찌푸렸다.

“얀슨 알지?”

그게 누구더라? 기억을 더듬어 보던 벤은 그게 이가 누런 남자의 이름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에…….”

벤이 말끝을 흐리자 남자가 피식하고 웃었다.

“허튼 생각하지 말고 똑바로 말해. 얀슨 알잖아.”

“그렇긴…… 한데요.”

“할 거냐, 안 할 거냐.”

툭, 던지는 남자의 질문에 벤의 눈이 커졌다.

도르르.

눈을 굴린 벤이 슬며시 문을 더 닫았다.

“위험한 일 아니에요?”

이제 문 사이로 눈만 내민 벤을 보며 남자가 짜증스레 말했다.

“너, 메닝엔 공작의 약혼녀가 네 동생들을 다 잡아갔다며.”

“……그걸 어떻게!”

벤의 눈이 휘둥그레지자 남자가 웃음을 터뜨렸다.

“호구처럼 앉아서 당할 거냐? 겁쟁이 새끼.”

그의 말에 벤은 욱한 척 소리쳤다.

“나 같은 평민이 함부로 덤비면 죽기나 더해요?”

“복수를 해, 복수를.”

“말이 쉽죠!”

툭툭.

남자가 문을 발로 찼다. 마저 열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벤은 완강한 얼굴로 문을 닫아 버렸다.

쾅!

“하, 이게 진짜…….”

턱이 툭 튀어나온 남자는 짜증스레 침을 뱉었다.

그러나 계획을 위해서라면 벤을 데려가야 하는 상황, 남자는 애써 다정한 목소리로 문에 대고 속삭였다.

“그냥 평민이 아냐, 우리는. 뒤에서 높으신 분이 다 봐주고 계신다니까. 네 동생들 다시 데려오는 건 일도 아냐.”

“거짓말하지 마요! 귀족들을 어떻게 믿고.”

“이게 진짜 귀찮게 구네.”

쾅!

이번에는 남자가 벤의 집 문을 세게 걷어찼다.

“히익!”

겁에 질린 벤의 목소리에 턱이 툭 튀어나온 남자는 웃음을 터뜨렸다.

이내 남자는 됐다는 듯 시니컬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됐다, 그럼. 나중에 네 동생들 시신 끌어안고 질질 짜지나 말던가.”

뒤돌아선 남자가 한 세 걸음쯤 옮겼을까.

끼이익.

낡은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멍청한 놈.’

남자는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참고 뒤를 돌아보았다.

“왜, 관심이 생겼냐?”

우물쭈물하던 벤은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돈은 얼마나 줄 건데요.”

하여간 저 영악한 새끼. 끌끌 혀를 찬 남자가 다시 벤에게로 다가갔다.

“많이. 네 동생 놈들 약값이고 뭐고 다 대고 수도로 유학 보낼 수 있을 만큼 많이.”

“거짓말. 그만한 돈도 없잖아요.”

“이게 속고만 살았나.”

의심을 늦추지 않는 벤의 태도가 번거로웠던 남자는 힐끔 주변을 둘러보더니 목소리를 낮췄다.

“메닝엔 공작 약혼녀 몸값이 그 정도도 안 나오겠냐, 멍청한 놈아?”

몸값이라는 말에 벤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다래졌다.

* * *

힐끔.

로지나는 마치 결혼을 약속한 연인이 사실 자신은 다른 남자와 결혼한 사이라며 너는 내 장난감에 불과했다고 말하고 떠난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로베르트를 훔쳐봤다.

‘아, 저런 표정을 짓고 있으면 뭔 말을 못 하겠잖아.’

행여나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르니 레이디 아이젠부르크가 있는 쪽도 살펴봐야 했다.

‘이런 일인 줄 알았으면 레헨트로 안 내려왔을 텐데.’

에드윈 진짜 용서 못 한다.

오늘도 속으로 에드윈을 향한 욕을 울부짖은 로지나의 눈이 바쁘게 두 사람 사이를 왔다 갔다 했다.

살벌한 표정으로 알폰조의 뒤통수를 노려보던 로베르트가 입을 열었다.

“로지나.”

“예, 각하.”

“네가 어쩐 일로 라모나와 함께 있었지?”

꿀꺽.

로지나는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오늘 오후, 그녀는 수하들을 데리고 데미안을 몰래 뒤쫓았다.

하지만 중간에 자신을 쫓는 이가 있음을 눈치챈 데미안이 빈민가 사이로 몸을 숨기는 바람에 결국 그를 놓쳤고, 결국 로지나는 레이디 아이젠부르크 쪽으로 복귀했다.

마침 그녀가 도착했을 때는 레이디 아이젠부르크와 2황자 알폰조가 단둘이 남겨져 있었다.

그 광경을 목격하자마자 그녀는 앞뒤 가릴 것 없이 그 사이로 끼어들었다.

‘뭔 헛소리를 했는지 기억도 안 나.’

아무튼 그녀의 사연은 이랬다.

하지만 여기서 알폰조가 요하네스의 수하인 데미안과 눈빛을 주고받았다는 이야기를 하면, 로베르트가 알폰조를 진짜로 쓱싹해 버릴 것 같았다.

‘그건 안 되지.’

로지나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데이트 잘 하던 주인을 황족 시해 사건의 주인공으로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고민 끝에 그녀는 알폰조의 이야기를 슬며시 뺐다.

“수상한 사람이 레이디의 뒤를 쫓고 있어서요.”

로지나의 말에 로베르트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요하네스의 사람인가.”

어떻게 알았지? 깜짝 놀란 로지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쯧.”

“그런데 각하.”

“말해.”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레이디께서는 2황자 전하께 관심이 없으신 것 같거든요.”

“당연하지.”

당연하다 말하는 로베르트의 뿌듯한 표정을 보며 로지나는 겨우 웃음을 삼켰다.

“그런데 2황자 전하는 어떠신지 모르겠습니다.”

“……왜.”

“제가 들으려고 들은 건 아니지만…….”

말끝을 흐린 로지나가 조심스레 덧붙였다.

“2황자 전하께서 분명 ‘요하네스를 견제하기 위해서라면 나를 택할 수도 있었을 텐데.’라고 하시는 걸 들었거든요.”

로베르트가 분노하리라 예측한 로지나가 잔뜩 긴장한 채 그의 기색을 살폈다.

그러나 로베르트는 그녀의 말이 들리지 않는 듯했다. 그는 라모나 쪽을 바라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안색이 너무 안 좋은데.”

“네?”

로지나가 그의 말을 이해할 새도 없이, 로베르트는 라모나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가, 각하?”

당황한 로지나가 그를 불러 세웠지만, 로베르트는 멈추지 않았다.

이내 라모나를 향해 걸어가던 그의 발걸음이 뜀박질에 가까워졌다.

이를 악문 그가 외쳤다.

“라모나!”

힘껏 달려간 로베르트의 손이 닿기 무섭게 라모나가 휘청거리며 그의 품에 허물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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