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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님, 그 입 좀 다물어 주세요-65화 (66/151)

#65화

Chapter 9. 레몬 축제

잔뜩 긴장한 벤은 어깨를 움츠린 채로 라모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 오셨어요.”

라모나를 발견하자마자 벌떡 일어난 벤이 헤헤 웃으며 허리를 굽신거렸다.

‘……동생들이 내게 붙잡혀 있기 때문이겠지.’

마음이 불편했던 라모나가 손을 내저으며 자리에 앉았다.

“네 동생들을 데려온 건 너희 집이 위험해 보여서야. 다른 의도는 없으니 오해 마.”

벤이 꾸벅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네게 하나 봐 줬으면 하는 게 있어.”

“네, 넵!”

라모나는 상인이 티아의 주머니에 찔러 넣었던 종이 뭉치를 꺼냈다.

툭.

종이 뭉치를 테이블 위에 던지듯 내려놓은 라모나가 말했다.

“네 동생은 이게 기분 좋아지는 가루라 하더구나.”

“……!”

“이야기를 들어서는 각성제로 보이는데. 이게 바로 네가 내게 말했던 그 약초가 맞니?”

벤은 조심스레 종이 뭉치를 펼쳤다. 그리고 킁킁거리며 냄새를 한번 맡고는.

“예, 틀림없습니다.”

비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라모나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사람들이 그 가루를 만든 지는 얼마나 되었지?”

“제가 그 가루를 본 지는 한 여섯 달 정도 된 것 같습니다.”

여섯 달이라.

‘그렇다면 내 회귀와 관계없는 별개의 사건이라는 건데……. 요하네스의 손이 그전에도 레헨트에 닿아 있던 건가?’

순간 짐작되는 일의 전말에 라모나의 눈이 커졌다.

먼저 요하네스가 정치범들과 접촉해 각성제를 만들게 하고, 미카엘라를 시켜 레헨트에서 일을 벌이게 한 다음.

‘일이 터지고 나서 황제에게 레헨트의 빈민가를 불태우라고 조언한 건가.’

그렇다는 건 결국…….

지난 생, 그녀는 처음부터 끝까지 요하네스에게 놀아난 것이라는 뜻이었다.

모든 게 그의 덫이었다는 생각에 숨이 막힌 라모나가 가슴을 움켜쥐었다.

당황한 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가씨? 아가씨! 괜찮으세요?”

“……나는 괜찮아. 소란 떨지 말렴.”

라모나가 벤에게 앉으라며 손짓했다.

“그래, 이 일은 공작님께 전달 드릴 거야. 오느라 고생했다. 집은…… 보상하도록 할게.”

그녀의 말에 벤은 손가락을 만지작거렸다.

“저 아가씨…… 이건 확실한 건 아닙니다만.”

“응?”

“저도 드릴 말씀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말해 보렴.”

“그 각성제를 만드는 패거리 중 한 명이 어제 저를 찾아왔는데요. 제게 아가씨와 아가씨의 하녀의 얼굴을 아는지 묻더라고요. 사례는 두둑이 쳐 주겠다면서요.”

심상찮은 이야기에 라모나의 얼굴이 굳었다.

그 순간, 바이스카스텔을 찾아온 불청객의 얼굴이 그녀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 * *

다음 날, 레헨트의 중앙 광장.

왼쪽에는 알폰조, 그리고 오른쪽에는 로베르트를 낀 라모나가 한숨을 삼켰다.

“날씨가 참 좋네요.”

그녀가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그렇군.”

“그러게 말입니다.”

사람들이 그들을 힐끔거리는 시선이 너무나 적나라하게 느껴졌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저기 구석에 빨간 머리는……. 레이디 클라이스트 아닌가?’

세상에 저렇게 대놓고 미행하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저렇게 로베르트 메닝엔이 좋으면 그냥 같이 다니는 게 나을 텐데.

‘아, 축제고 뭐고 그냥 집에 가고 싶다.’

괜히 내려왔어, 레헨트.

라모나는 영혼이 빠져나간 표정으로 터덜터덜 걸었다.

축제를 총괄한 영주 대리, 몰튼 남작은 상기된 얼굴로 그들을 안내했다.

그는 때때로 벅찬 숨을 내쉬었다.

영주인 공작도 모자라 황자까지 레헨트를 방문했다는 사실에 감격한 모양이었다.

“여기를 보시죠. 아까 보았던 레몬과는 달리 색상이 더 밝고 모양이 길쭉하지 않습니까?”

라모나는 웃으며 몰튼 남작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뭐가 다른지는 솔직히 모르겠지만.

“그렇군.”

“이 품종이 바로 레헨트의 명물인 레몬주를 담그는 레몬입니다.”

“오, 다른 품종으로는 술을 담그지 못하는 건가?”

관심이 생긴 로베르트가 묻자 남작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닙니다. 물론 다른 품종으로도 술을 담글 수 있지만, 이 맛이 나지 않지요. 맛이며 풍미! 당도까지 차원이 다릅니다.”

남작은 비교해 보라며 두 가지 품종으로 만든 레몬주를 따라 주었지만.

“……?”

“……?”

라모나와 로베르트는 그 차이점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어떻습니까! 오른쪽이 훨씬 풍미가 좋지 않습니까?”

“정말 그런 것 같군. 풍미가 확실히 달라.”

화사하게 웃으며 라모나가 고개를 끄덕이자 로베르트도 덩달아 레몬주를 칭찬했다.

“산뜻한 게 취향에 맞는군. 식전주로 괜찮겠어.”

그 사이 알폰조가 힐끔, 술병을 살폈다.

“왼쪽이 그대가 말한 품종 아닌가?”

그의 말에 황급히 술병을 살핀 남작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내 망연자실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맞습니다, 그렇다면…… 각하와 레이디께서는…….”

몰튼 남작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라모나가 먼저 선수를 쳤다.

“어쩐지 왼쪽의 레몬주가 끝에 감도는 향이 좋더라니!”

“하하하. 맞습니다, 내 사랑.”

로베르트도 잽싸게 그녀의 말을 받았다.

그제야 뿌듯한 얼굴이 된 남작이 어깨를 쭉 폈다.

“역시 귀한 분들이 귀한 음식을 알아봐 주시는군요.”

그 사이, 홀짝.

술을 한 모금 맛본 알폰조가 고개를 갸웃했다.

“사실 오른쪽이…….”

“하하하! 우리 이제 거대 레몬을 구경하는 건 어떨까요, 황자 전하?”

또 알폰조가 찬물을 끼얹으려는 기색이 보이자 라모나가 황급히 화제를 돌렸다.

그녀가 저도 모르게 알폰조의 어깨를 짚으려 하자 알폰조가 자연스레 어깨를 틀며 라모나의 손길을 피했다.

그 사이 로베르트가 질세라 입을 열었다.

“나의 천사, 거대 레몬을 그렇게 기대했을 줄이야. 가시죠.”

알폰조에게만 가자고 해서 토라진 기색이 역력했다.

피곤하다 정말. 라모나가 한숨을 삼키던 그때 저 멀리서 빨간 무언가가 후다닥 달려가는 게 보였다.

라모나는 식은 눈으로 빨간 무언가를 바라보았다.

‘레이디 클라이스트……. 저럴 거면 그냥 와서 인사하지.’

그녀는 다시 한 번 생각했다.

역시 축제고 뭐고 그냥 집에 가고 싶다고.

다행히 라모나의 마음과 달리 날씨는 화창했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얼마 걷지 않아 도착한 거대 레몬은 로베르트의 장담대로 정말 거대했다.

“와!”

라모나의 진심 어린 감탄에 남작의 어깨가 또 으쓱해졌다.

“올해는 특히 더 크게 만들어 보았습니다. 축제의 하이라이트니까요.”

알폰조도 고개를 끄덕였다.

“장관이군.”

“예, 특별히 여기에는 또 다른 품종의 레몬을 사용…….”

몰튼 남작의 레몬 설명이 또 길어질 기미가 보이자 라모나가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저건 뭐지?”

“예?”

“저 사람같이 생긴 것 말이야.”

“아!”

남작은 결연한 얼굴로 로베르트를 바라보았다.

벅차오르는 감동을 애써 꾹 누르는 기색이 역력했다.

“미흡하지만 저희의 존경심을 담아 레헨트의 영주이자 제국의 훌륭한 기둥, 메닝엔 공작 각하의 형상을 만들어 보았습니다.”

“풉.”

순간 썩어 들어가는 로베르트의 표정에 라모나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 * *

몰래 그들을 미행 중이던 로지나는 혀를 찼다.

“아니, 각하는 저기서 왜 저러고 있는 거야?”

애초에 2황자와 레이디 아이젠부르크를 같이 붙여 두지 않는 게 최선, 그게 안 된다면 그냥 깔끔하게 둘을 보내는 게 차선.

‘그리고 저렇게 구질구질하게 셋이 같이 다니는 건 최악.’

아찔하다, 정말. 로지나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저 사이에 끼어 있는 레이디 아이젠부르크가 다 불쌍할 지경이었다.

그나저나 고민이었다.

‘난 대체 뭘 해야 해……?’

서로 마음 있는지도 모르는 바보 같은 두 사람만 있다면 가서 아련한 첫사랑 연기로 레이디 아이젠부르크의 속을 긁어 놓으면 되는데.

‘저기에 내가 끼면 그림이 너무 웃기잖아.’

더블데이트야 뭐야. 예상치 못한 곤란에 로지나가 눈살을 찌푸렸다.

아무튼 그렇다고 나 몰라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로지나는 일단 열심히 그들을 따라다녔다.

그런 그녀의 귀에 사람들의 수군거림이 들려왔다.

“와, 진짜 대단하네. 메닝엔 공작 하나로는 모자라서 황자까지 남자 둘을 데리고 다니는 것 봐.”

‘……응?’

레이디 아이젠부르크의 평판이 안 좋은 건 알았지만, 이 정도였나? 당황한 로지나가 뒤를 돌아보려 할 때였다.

“낯짝 뻔뻔한 것 봐. 어제는 애들을 모조리 가둬 놨다며?”

“엥? 애는 왜?”

“뭐 훔쳐갔다고 덮어씌웠대! 얘기 들어 보니까 툭하면 힘없는 평민들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라던데.”

“세상에…… 하긴 그 정도나 되니까 약혼자 뺨도 후려치지. 쯧쯧.”

‘이건 또 무슨 소리야?’

로지나가 들어 본 적 있냐는 듯 에드윈이 붙여 준 호위들을 바라보았다.

호위들은 힘차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무튼 지금 이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로지나가 다시 난입 타이밍을 잡기 위해 로베르트 일행을 눈으로 좇았다.

“……잠깐만.”

순간 수상한 움직임을 발견한 로지나의 눈이 가늘어졌다.

툭.

그녀가 옆에 선 호위를 팔꿈치로 쳤다.

“저기 봐, 저거 데미안 스펜서 아냐?”

“예?”

“왜 있잖아. 그 황태자 끄나풀.”

“아!”

눈을 가늘게 뜨고 그쪽을 살핀 호위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맞는 것 같습니다. 아가씨.”

“저 자식이 왜 여기 있지?”

심상치 않은 예감에 로지나가 미간을 찡그리던 때였다.

‘응?’

거대 레몬을 구경하던 알폰조가 갑자기 고개를 돌렸다.

그런 그의 시선이 향한 곳은 분명 데미안 스펜서, 황태자의 끄나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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