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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님, 그 입 좀 다물어 주세요-41화 (42/151)

#41화

1주일 내로 반지를 찾아오겠다고 호언장담하는 치안대장에게, 라모나는 반지를 못 찾더라도 소매치기 소년만큼은 제게 꼭 데려와 달라 당부하고 자리를 떴다.

중간부터 뭔가 이상함을 눈치챈 티아가 치안대를 벗어나자마자 라모나의 귓가에 소곤거렸다.

“아가씨, 혹시 그 사파이어 반지 말씀하시는 거예요? 페브룩 영식 얼굴에 닿았다 떨어진 그 반지요.”

반지 끼고 뺨 때렸다는 말을 참 고상하게 표현할 줄 아는 티아였다.

“응.”

“그거…… 보석함에 있지 않아요?”

“맞아.”

감탄한 티아가 외쳤다.

“세상에…… 역시 우리 아가씨!”

“……그렇게 역시라는 단어를 막 쓰지 말아 줄래? 되게 나쁜 사람이 된 기분이야.”

“네!”

정말 ‘네!’인가 싶어 라모나가 의심스러워하는 눈길로 티아를 바라보았지만 티아는 너무나 해맑게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라모나도 피식 웃어 버리고 말았다.

“티아, 우리 나온 김에 저번에 마신 석류 주스나…….”

그때였다.

“어머 어머 어머! 이런 곳에서 다 뵙게 될 줄이야.”

병아리처럼 재잘대는 목소리가 라모나의 귀에 콕, 하고 박혔다.

‘응? 이 목소리는?’

라모나가 저도 모르게 뒤를 돌아봤다.

하얀 레이스가 잔뜩 달린 레몬색 보닛과 보닛에 색을 맞춘 원피스. 그리고 햇빛을 받아 쨍하게 빛나는 샛노란 구두.

“레이디 아이젠부르크! 여긴 어쩐 일이에요? 잘 지내고 있는 거죠?”

제국 어디에 던져 놔도 알아볼 수 있는 노란 여자, 레이디 오셀튼이었다.

여기서 그녀를 만날 줄이야. 벌써 피곤한 기분에 라모나가 떨떠름해하는 얼굴로 인사했다.

“아아, 네. 오랜만이에요. 레이디 오셀튼께서도 잘 지내고 계셨죠?”

“제가 어떻게 잘 지냈겠어요!”

서운하다는 듯 입술을 삐죽인 레이디 오셀튼이 투덜투덜 불만을 털어놓았다.

“분명 레이디 아이젠부르크께 티파티 초대장을 보냈는데! 아직 답변이 오지 않아서 눈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었단 말이에요.”

“하, 하. 그게 제가 요즘 이런저런 일이 조금 많다 보니…….”

라모나는 애써 말을 돌리려 했으나, 잔뜩 신이 난 레이디 오셀튼은 그녀의 말을 귓등으로 흘려버리고는 수다를 계속했다.

“요즘 날씨가 워낙 좋잖아요?”

“아아, 네네. 그렇죠.”

“덕분에 저희 저택의 정원에 튤립이 얼마나 예쁘게 폈는지 몰라요! 그 콧대 높은 레이디 바텐베르크도 저희 정원이 궁금했는지 바로 참석하겠다고 하더라고요. 꺄하하하, 참 재밌죠?”

은근슬쩍 정보를 흘린 레이디 오셀튼이 특유의 독특한 웃음을 터뜨렸다.

라모나는 그녀가 흘린 정보를 놓치지 않았다.

공공연한 미카엘라의 라이벌 레이디 바텐베르크, 멜리사.

그녀가 회귀 전과는 달리 지금은 어떤 삶을 걷고 있는지 확인해 볼 좋은 기회였다.

‘한 번쯤 만나 볼 필요는 있지.’

레이디 오셀튼의 티파티를 정중히 거절하려던 라모나는 생각을 바꿨다.

그녀는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정말 예쁘겠네요. 오셀튼 백작가의 튤립은 유명하잖아요.”

“어머, 레이디께서도 알고 계셨군요? 영광이에요.”

“저야말로 그런 좋은 자리에 초대를 받다니 영광이죠. 저택에 돌아가는 대로 답장을 보내도록 할게요.”

너무 좋다며 호들갑스레 발을 구르는 레이디 오셀튼을 향해 라모나가 빙긋 웃어 보였다.

* * *

황궁의 봄 정원, 은은한 향기를 풍기는 재스민 꽃 사이로 햇빛을 받은 요하네스의 금빛 머리카락이 일렁였다.

자신이 낳은 걸작을 바라보는 황후의 입가에 은은한 미소가 번졌다.

“오랜만에 정원에 나왔구나.”

그녀의 목소리에 요하네스의 미간이 꿈틀거렸지만, 그는 언제 그랬냐는 듯 미소 지었다.

“예, 벌써 꽃이 만개했군요.”

“봄인 게지.”

거기서 끝났으면 좋았을 텐데. 황후는 또다시 입을 열었다.

“이런 날 꽃 같은 레이디와 함께 정원을 거닐면 더 좋았을 텐데 말이다.”

그녀는 다정히 요하네스의 얼굴을 쓸어내렸다.

그런 황후를 유심히 관찰한 요하네스의 얼굴에 비웃음이 스쳤다. 그가 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다음번에는 레이디 바텐베르크를 초대해 볼까 합니다.”

아들의 도발에 황후의 손이 멈췄다. 이내 그녀는 태연하게 입을 열었다.

“벤트하임 공작은 네게 큰 힘이 될 거다. 그 여식도 욕심은 많지만 처세에 능하지. 네게 가장 훌륭한 짝이야.”

요하네스는 하마터면 실소를 터뜨릴 뻔했다.

황후가 바텐베르크 후작의 딸과 요하네스를 엮어 주려던 것이 불과 두 달 전의 이야기였다.

제 딸을 황태자비로 만들려는 후작의 계획은 거의 성공할 뻔했다.

라모나 아이젠부르크. 그 발칙한 여자가 2황자를 이용한 소문을 내기 전까지는.

황후는 황제의 정부 중 하나인 레이디 슈타이덴에게 큰 자격지심을 가지고 있었다.

라모나 아이젠부르크는 바로 그 사실을 파고들었다.

그녀는 레이디 슈타이덴의 아들 2황자 알폰조와 미카엘라가 약혼할지도 모른다는 소문을 퍼뜨려 황후를 자극했다.

벤트하임을 버리려 했을지언정 레이디 슈타이덴에게 빼앗길 수는 없었던 황후는 태세를 전환했고, 덕분에 바텐베르크만 길 잃은 오리알 신세가 되고 말았다.

‘정말이지 멍청하기 짝이 없군.’

두 가문을 놓고 줄타기를 하며 가장 유리한 위치를 점해야 하는 시점에 이런 감정적인 선택이라니.

황후를 바라보는 푸른 눈동자에 업신여김이 어렸다.

요하네스는 태연한 얼굴과는 달리 바싹 마른 황후의 입술을 바라보았다. 무의식중에 움켜쥔 한쪽 팔도 놓치지 않았다.

그를 향한 두려움을 잘 숨기지도 못 하면서 그를 제어하려 들다니.

요하네스는 비웃음을 삼켰다.

그는 이런 멍청한 사람에게는 흥미가 없었다. 속이 빤히 보이고, 말 한마디로 쉽게 조종할 수 있는 사람은 널리고 널렸다.

이런 사람들을 굴복시키는 것은 이제 그다지 즐겁지도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라모나 아이젠부르크는 달랐다.

‘벤트하임을 위해 이런 짓까지 벌여 놓고 메닝엔 공작과 약혼이라……. 재밌군.’

예측할 수 없는 그녀의 속내에 요하네스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그는 얼마 전 제게 도착한 편지를 떠올려 보았다.

온통 허무맹랑한 내용으로 가득한 그 편지에서 발견한 것은 바로 그녀의 이름이었다.

‘그 편지에 쓰인 것이 정말이라면……’

그렇다면 더더욱 라모나 아이젠부르크를 손에 넣어야지.

요하네스의 눈에 서늘한 광기가 어렸다. 이내 그가 황후를 향해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급한 일이 있어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요하네스!”

미련을 버리지 못한 황후가 다시 그의 뺨을 잡으려던 찰나 요하네스의 입에서 서늘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쯧, 귀찮게.”

아들의 중얼거림을 들은 황후의 눈이 커졌다.

하지만 그녀는 곧 아무것도 듣지 못한 양 표정을 간수했다.

자신의 인생을 다 쏟아부어 키운 걸작의 허점을 황궁의 사냥개들에게 보이고 싶지는 않은 탓이었다.

아니, 그녀는 그게 아들의 허점이 아니라고 스스로를 세뇌했다.

제국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이 되어야 하니까.

그게 설령 자신을 낳은 어미를 향한 적대라 할지라도 당연한 일이라고.

“많이 바쁠 텐데 이 어미가 너무 붙잡아 두었구나.”

황후는 다정한 인사와 함께 그를 보내 주었다.

요하네스가 떠나고, 황후는 우아하게 턱을 치켜든 채 정원을 둘러보았다.

“봄꽃이 참 아름다워, 그렇지 않으냐?”

“폐하께서 이리 칭찬하시니 정원사가 아주 기뻐하겠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정원을 나 홀로 구경하기는 너무 아깝구나. 이러다 꽃이 다 져 버릴 텐데…….”

황후의 의중을 눈치챈 시녀 레베니 남작 부인이 재빨리 말을 올렸다.

“폐하, 레이디 벤트하임을 초대하여 티타임을 가지시는 건 어떠하실지요.”

“그거 괜찮은 생각이지.”

아들을 황태자로 만들기 위해 그녀가 무슨 일까지 하였는가. 이 정도 일쯤이야 수모도 아니었다.

이내 황후의 얼굴에 인자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래, 벤트하임의 여식을 초대하는 게 좋겠어.”

* * *

라모나가 로베르트와의 관계를 재정립하겠다며 굳게 다짐한 지 채 1주일도 되지 않은 어느 날,

“……뭐라고?”

예상치 못한 사건이 메닝엔 공작저를 강타했다.

“티아, 다시 말해 봐.”

경악한 라모나가 입을 쩍 벌렸다. 티아가 애써 그녀를 달랬다.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아가씨. 다 헛소문일 뿐인걸요.”

“아니, 나랑 2황자 전하가 연인 사이라고? 말이 되니?”

“그럴 리가 없죠.”

“세상에, 정말 별일이 다 있네.”

2황자 알폰조와는 정말 잠깐 마주쳤을 뿐인데, 그 찰나를 목격한 누군가가 소문을 퍼뜨린 모양이었다.

소문은 오븐 속 빵처럼 점점 부풀어 급기야 알폰조가 수도에 돌아온 것도 다 라모나를 만나기 위해서라는 이야기로 변질되기 시작했다.

하여간 한가한 사람 정말 많아. 이마를 짚은 라모나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누가 일부러 낸 것 같지?”

“흐음, 그렇긴 해요.”

“하아아…….”

라모나의 어깨를 토닥이던 티아가 이내 주먹을 불끈 쥐었다.

“까짓것 뭐 어때요.”

“응? 뭐가?”

“메닝엔 공작 각하와 2황자 전하를 다 손에 넣은 멋진 여성으로 사시는 거잖아요. 따지고 보면 제법 괜찮은 삶이죠.”

“…….”

“2황자 전하라면 저도 찬성이에요. 저희 어머니가 그러셨거든요. 남자는 역시 몸이라고.”

라모나를 향해 한쪽 눈을 찡긋한 티아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아시죠?”

너희 어머니는 도대체 어떻게 너를 이렇게 키우셨니. 라모나는 흐린 눈으로 티아를 바라보았다.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재잘대던 티아는 곧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 손바닥을 쳤다.

“아! 맞다 아가씨. 제가 제법 쓸모 있는 소식을 하나 들었는데요.”

“응?”

“레이디 오셀튼의 티파티 말이에요. 아가씨께서 얼마 전에 참석하시기로 하셨잖아요.”

“아아, 응.”

레이디 바텐베르크, 멜리사가 온다면 참석할 만한 가치가 있으니까. 라모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에 레이디 클라이스트도 참석할 예정이라 하더라고요?”

티아의 이야기에 라모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두 사람을 같이 초대했다고? 세상에!”

그녀의 반응에 놀란 티아가 우물쭈물 말끝을 흐렸다.

“앗, 네에……. 혹시 두 분이 무슨 일이 있었나요?”

“그럼! 왜, 저번에 그 두 사람이 공작 각하를 놓고 서로 머리채 잡고 싸웠잖아.”

“꺅! 머리채를요? 어머나! 언제요, 언제요?”

기겁한 티아가 발을 동동 굴렀다.

그제야 아차 싶었던 라모나는 입을 틀어막았다.

‘아, 맞다. 그거 회귀 전이지.’

하마터면 또 말실수할 뻔했다. 라모나가 얼른 손을 내저었다.

“아냐, 그냥 꿈 얘기야. 흐으음, 그 두 사람이 온다니 보통 자리는 아니겠네. 혹시 그러면…….”

라모나가 황급히 화제를 돌리려던 그때, 귀에 익은 목소리가 침실에 울렸다.

“……내 사랑?”

언제 온 건지 로베르트가 문 앞에 서 있었다. 그가 굳은 얼굴로 물었다.

“그건 무슨 이야기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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