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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님, 그 입 좀 다물어 주세요-29화 (30/151)

#29화

레스토랑 안은 기름지고 고소한 냄새로 가득했다.

다행히 깡패가 아니라 악녀로 남은 라모나가 우아하게 양고기를 썰었다.

달그락.

바싹하게 잘 구워진 고기를 한 점 입에 넣은 그녀의 눈이 동그래졌다.

‘……맛있다.’

기름에 잘 튀긴 향신료의 향과 같이 나온 민트 젤리와의 조화가 환상적이었다.

메인 요리뿐만이 아니었다.

애피타이저로 나왔던 상큼한 소스를 뿌린 부라타 치즈도, 튜토네스 산 모시조개를 잘 볶아 낸 파스타도.

음식은 그야말로 모든 것이 완벽했다.

회귀 전,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은 찻잔을 모으는 것과 더불어 그녀의 소소한 취미였다.

사실 그것 말고는 할 게 없었다.

평판이 안 좋은 그녀를 파티에 초대하는 사람도 없었고, 괜히 사람들을 만나 봤자 요하네스 때문에 피곤해지기만 했으니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외식은 할 수 없었다. 요하네스가 그녀를 거의 가둬 놓다시피 한 까닭이었다.

만족스러운 기분으로 기름기가 묻은 입가를 닦으며 라모나는 생각했다.

‘……행복해.’

좋다. 물론 저 남자가 아니라 고기가.

라모나는 만족스러운 기분으로 다시 양고기를 썰었다.

어쩐지 흐뭇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던 로베르트는 나긋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나의 사랑.”

‘정정하자. 혼자 먹는 게 더 좋았다. 고독한 식사 최고.’

라모나는 못 들은 척 와인을 홀짝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것은 잘못된 선택이었다.

“나의 천사. 미의 현신, 제국의 보물. 라모나.”

자신의 말이 무시당했다는 걸 눈치챈 로베르트가 보란 듯이 어마어마한 말을 뱉어 내기 시작했으니까.

“커흡, 흡.”

어쩐지 사방에서 당혹스러워하는 사람들의 기침 소리가 들리는 기분이었다.

결국, 라모나는 체념하듯 대답했다.

“……예, 로베르트.”

“음식은 마음에 듭니까?”

“예, 맛이 괜찮네요.”

그녀의 대답에 로베르트는 의뭉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물었다.

“저보다 더?”

이 변태가 진짜! 순간 라모나는 방금 먹은 양고기가 목에서 곧장 위로 점프하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미간을 찌푸린 그녀가 저도 모르게 큰 소리로 되물었다.

“미쳤어요!”

그녀의 외침에 레스토랑 안이 얼어붙은 듯 고요해졌다.

‘아차.’

나 얘랑 깊이 사랑하는 사이였지. 맞다. 실수를 깨달은 그녀의 눈이 흔들렸다.

‘……수, 수습해야 해.’

어쩔 수 없이 라모나는 이를 악물고 억지웃음을 지었다.

그러고는 말했다.

“르브르트…… 알잖아요. 내게 당신의 입술보다 맛있는 것은 없답니다.”

젠장, 빌어먹을 로베르트 메닝엔. 결국 내가 이런 끔찍한 말을 하게 만드는구나.

차마 그가 맛있다고 말할 수는 없어서 입술로 순화하긴 했는데, 순화하니까 더 말이 이상해지고 말았다.

그녀의 대답에 로베르트의 눈이 커졌다. 마치 상상조차 못 했다는 것처럼.

‘자기가 물어봐 놓고 왜 저래?’

진짜 한 대만, 딱 한 대만 때려 보고 싶다.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깡패도 악녀 아닌가?’

그래, 맞는 것 같다. 라모나는 묘한 눈길로 자신의 주먹을 바라보았다.

그사이 표정을 갈무리한 로베르트가 와인 잔을 들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아주 예쁜, 그리고 재수 없는 미소였다.

“이런, 저보다 이곳의 음식이 더 마음에 드냐는 뜻이었는데.”

이런 미친. 저도 모르게 욕설을 중얼거린 라모나가 황급히 입을 가렸다.

로베르트는 즐겁다는 듯 말했다.

“내 사랑은 역시 화끈하기도 하지.”

그러고는 아주 고상하고 우아하게 와인을 홀짝였다.

“하긴 그래서 제가 당신에게 반했으니까요.”

유리잔 사이로 그의 입 모양이 언뜻 비쳤다.

‘변태.’

지금! 누가! 누구를 보고 대체 변태라는 걸까.

라모나는 이를 꽉 깨물고 그를 노려보았다. 안타깝게도 그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날 밤, 새로운 소문이 퍼져 나갔다.

레이디 아이젠부르크가 당장이라도 잡아먹고 싶다는 듯 불타는 눈빛으로 메닝엔 공작을 바라보았다는, 어마어마하게 낯 뜨거운 소문이었다.

* * *

다그닥, 다그닥.

메닝엔 공작저로 돌아가는 마차 안, 라모나는 턱을 괸 채 창밖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남색에 가까운 푸른 눈동자가 바깥의 빛을 따라 반짝이며 색을 달리했다.

밤을 환히 밝히는 가로등과 그 아래를 바쁘게 쏘다니는 사람들.

회귀 전 내내 갇혀 있던 그녀에게는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흥미진진한 광경이었다.

‘……좋다.’

라모나는 저도 모르게 얼굴을 창가에 바짝 붙였다.

아직 쌀쌀한 밤바람이 술기운에 달아오른 목덜미를 기분 좋게 스쳤다.

긴 다리를 꼬고 앉은 로베르트는 그런 그녀를 바라보다 피식 웃었다.

“그러다 창밖으로 떨어지겠습니다.”

“……설마요.”

“흐음, 풍경보다 더 재미있는 거 보여 드릴까요?”

“뭔데요?”

그제야 라모나의 시선이 로베르트를 향했다.

그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잘생긴 당신의 그이?”

“맙소사, 내가 저럴 줄 알았어.”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라모나가 다시 창밖을 바라보았다.

뭐가 그리 재밌는지 로베르트는 배를 잡고 웃음을 터뜨렸다.

술기운 때문일까. 라모나는 이상하게도 그 웃음소리가 듣기 좋다고 생각했다.

결국 라모나도 그를 따라 피식 웃고 말았다.

이윽고 로베르트가 웃음을 그쳐갈 때쯤, 그녀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은 감사했어요.”

“무엇이 말입니까?”

“각하가 아니었다면 요아힘을 그렇게 깔끔하게 정리하지는 못했을 거예요.”

“제가 한 유능하긴 합니다.”

“그리고 죄송해요. 약혼 같은 중요한 문제는 미리 처리를 해야 했는데.”

무얼 떠올린 건지 그녀의 시선이 저 먼 곳 어딘가를 향했다.

“……바보같이 제가 마음만 앞서서요. 자꾸 실수만 하네요.”

라모나의 얼굴이 설핏 가라앉았다.

“지금도 잘하고 있는 건가 싶고요.”

덧붙이는 말은 로베르트에게 하는 말이라기보다는 스스로에게 하는 말에 가까웠다.

“아. 걱정은 마세요, 증거는 어떻게든 각하의 손에 쥐어 드릴 테니까요. 약속은 지켜요.”

얕은 미소를 지은 라모나가 마차 밖을 바라보았다.

로베르트는 그런 그녀를 유심히 살폈다.

아마도 지금 떠오른 표정의 감정은 자학과 미미한 분노, 그리고 상처.

‘……흐음.’

그는 다시 한번 그녀가 감추고 있는 것에 대하여 추측해 보았다.

요하네스의 미행이 붙고, 약혼자가 미카엘라 벤트하임에게 매수당할 만한. 그 대단한 비밀이 대체 무엇일까.

‘에드윈이 별거 없다고 말하기는 했지.’

그 점이 더 수상했다.

다짜고짜 자신을 찾아오는 어마어마한 일을 저질렀으면서 그 일의 동기가 없다니.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며 움직이는지, 로베르트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푸른빛. 그가 말하는 대로 다 이루어지기라도 하는 듯한 그 빛은 뭐란 말인가.

‘본인은 푸른빛에 대해 알고 있는 건가?’

로베르트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 순간, 또다시 달콤한 향기가 그의 코를 찔렀다.

맡고 있노라면 간질거리고 노곤해서 누워 버리고 싶은, 그러면서도 몸 깊숙한 어딘가를 쿡쿡 찌르는 듯한 향기.

와인 냄새와 어우러진 라모나의 향기가 은근하게 그를 자극했다.

‘오, 이건 곤란하지.’

착실하게 자극에 반응하는 몸을 느낀 그가 황급히 생각을 전환했다.

요아힘 페브룩, 그 자식을 어떻게 해치우는 게 좋을지. 베르나딘과의 연락책은 어떤 식으로 다시 키워야 할지.

그러나 상념에 빠진 라모나의 기다란 속눈썹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모든 노력은 물거품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젠장.’

또다시 반짝이는 작은 입술이 눈에 들어왔다.

솔직히 로베르트 메닝엔은 후회했다.

지난번, 술에 취한 그때. 미친 척하고 입을 맞췄어야 했는데.

로베르트는 자신이 이제 갓 사랑에 눈을 뜬 애송이같이 굴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채 후회에 잠겼다.

괜히 턱을 만지작거리던 그는 홀린 듯 입을 열었다.

“뭐, 예쁘니까 이 정도는 괜찮습니다.”

저도 모르게 툭 튀어나온 진심이었다.

그 순간.

덜컹.

돌부리에 걸린 마차가 크게 뛰었다. 요란한 소리에 로베르트의 말을 듣지 못한 라모나가 되물었다.

“예?”

아차 싶었던 로베르트가 황급히 둘러댔다.

“저는 당신의 그이이니 그 정도는 해야 하지 않겠냐고요.”

“……내가 말을 말아야지.”

질색하는 라모나를 바라보며 로베르트는 또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와인을 과하게 마시기라도 한 걸까. 이상하게 웃음이 헤픈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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