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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님, 그 입 좀 다물어 주세요-0화 (1/151)

@Dime 공금 갠소

공작님, 그 입 좀 다물어 주세요

#프롤로그

로베르트 메닝엔.

젊고 유능한 메닝엔 공작. 자칭 타칭 제국 최고의 신랑감.

그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라모나.”

나긋하게 올라간 입술, 오른쪽 눈 아래에 콕 찍힌 눈물점까지. 정말 예쁘다는 말이 딱 어울리는 얼굴이었다.

아버지의 원수라도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은 파괴력 넘치는 미모를 가진 그는 가련하게 말했다.

“미안합니다.”

그러나 그의 사과에 라모나는 코웃음 쳤다.

그녀는 더 이상 저 미소에 속지 않았다. 저 또라이는 못된 말을 하기 전이면 꼭 저렇게 예쁘게 웃었으니까.

라모나는 삐딱하게 로베르트를 바라보았다.

솔직히 잘나긴 했다. 잘생긴 얼굴, 탄탄한 허벅지, 만져 보고 싶은 가슴.

……아니, 이게 중요한 게 아니라.

아무튼, 권력과 명예. 차고 넘치는 재산까지. 로베르트 메닝엔은 그야말로 완벽한 남자였다.

다만 완벽한 그에게는 치명적인 문제가 하나 있었는데…….

“제국 최고의 신랑감인 저를 손에 넣으셨으니, 충분히 기뻐할 만한 일 아닙니까.”

“비웃는다, 라……. 감히? 메닝엔 공작인 저를?”

“솔직히 제가 어디 가서 빠지는 얼굴은 아닌지라…….”

바로 자신이 잘났다는 사실을 너무, 너무나 잘 안다는 점이었다.

라모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저 남자에게 자기 잘난 점을 말해 보라면 2박 3일간 밤새도록 말하고도 부족해 ‘실은 그때 말씀 못 드린 게 있는데.’라는 장문의 서신을 보낼 것이라고.

열받는 사실은 비웃기에는 그가 정말 머리부터 발끝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잘났다는 점이었다.

저 글러 먹은 인성만 빼고.

‘지금도 봐. 자기 잘생긴 거 알고 미인계 쓰는 거지.’

그녀는 속으로 괘씸죄를 추가했다. 이건 잘생김에 대한 기만이었으니까.

아무튼, 저 얄밉게도 잘나긴 한 또라이가 뭔 짓을 했는지 들어 볼 시간이었다.

털썩.

소파에 주저앉으며 그녀가 물었다.

‘무슨 일이신데요?’

“저 또라이가 제대로 사고 쳤나 본데?”

“저…… 라모나? 방금 생각을 입 밖으로 내뱉은 것 같습니다만.”

“어머, 죄송해요. 그렇게 생각은 했지만 절대 고의는 아니었어요.”

“이해합니다. 저도 고의는 아니었으니까요. 레이디께서도 저처럼 마음 넓게 이해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로베르트가 틈새를 놓치지 않고 잘생긴 얼굴을 들이밀었다.

역시 미안해하지 않는 게 틀림없다니까. 라모나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건 들어 봐야 알지 않을까요? 무슨 일이신데요?”

“제가 그만 말실수를 했는데 말입니다. 아, 하늘에 맹세코 정말, 정말로 아무 사심은 없었습니다. 오해는 말아 주시죠.”

“예에에, 어련하시겠…….”

‘잠깐만, 말실수?’

설마, 제발, 맙소사, 신이시여. 라모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서, 서, 설마 푸른빛이 나타났나요?

로베르트가 은근슬쩍 시선을 피하자 라모나가 그의 턱을 덥석 붙잡았다.

“네? 푸른빛이 나타났냐니까요?”

로베르트는 괘씸하게도 또 다시 가련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하지만 가련은 무슨, 자신은 정말 어쩔 수 없었다는 듯한 태도가 가증스럽기 짝이 없다.

이를 악문 라모나가 그를 불렀다.

“르브르트 므능은?”

또르륵, 옆으로 눈을 굴린 그가 결국 대답했다.

“……맞습니다.”

로베르트의 대답에 라모나는 좌절했다.

이 더러운 세상, 나한테만 야박한 세상. 이 거지 같은 세상!

‘저 입을 꿰매 버리고 싶다.’

그녀는 주먹을 꽉 쥐고는 그를 노려보았다.

그 와중에도 로베르트의 잘난 주둥이는 멈추지 않았다.

“라모나, 당신이 이럴 때마다 나는 짜릿해서 견딜…….”

“닥쳐요.”

“미안합니다.”

정말 미안하기는 하니? 라모나는 또 다시 코웃음을 쳤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고작 저 정도로 사과할 리가 없었다. 제 잘난 맛에 사는 메닝엔 공작께서 저렇게 쉽게 사과하는 사람일 리가 없다는 말이었다.

‘수상한데.’

라모나의 눈이 가느다래졌다.

깜빡. 로베르트는 어울리지 않게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눈을 크게 떴다.

“내 사랑? 대체 왜 그런 눈으로 나를…….”

“하아, 그 말도 안 되는 사랑 타령 그만 좀 하시고요. 그래서 이번엔 뭐라고 하셨는데요?”

단호한 그녀의 태도에 로베르트는 입을 다물었다. 한참 만에야 그가 우물쭈물하며 말했다.

“당신이 ……될 거라고 했습니다.”

어쩐지 그의 목덜미가 붉게 달아오른 것도 같았다.

“네? 각하, 잘 안 들려요?”

“당신이…… 나를…… 될 거라고…….”

로베르트가 또다시 그녀의 시선을 슬금슬금 피했다. 목소리는 점점 기어들어 갔다.

왜 저래? 애도 아니고? 속에서 열이 뻗친 라모나가 짜증스럽게 찻잔을 들었다.

그러나 그때.

“당신이 나를 좋아하게 될 거라고……!”

미모의 20대 남성이 큰 소리로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말았다.

“……했습니다.”

이런 미친.

주르륵.

라모나의 입에서 홍차가 흘러내렸다.

부끄러움을 알기는 아는지 로베르트가 고개를 푹 숙였다. 이제는 귀까지 빨갛게 달아오른 채였다.

라모나는 황급히 입가를 닦았다. 그리고 자신이 방금 들은, 세상에서 가장 믿을 수 없는 말을 되뇌어 보았다.

당신이 나를 좋아하게 될 거라고. 당신이 나를…….

저 미친놈이?

급격히 어두워진 얼굴의 라모나가 입을 열었다.

“각하.”

어쩐지 그녀의 뒤에서 스산한 기운이 풍겼다.

“……예.”

“혹시 정신을 놓으셨나요?”

“미안합니다.”

미안하면 다야? 라모나는 그를 향해 눈빛으로 욕을 날렸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로베르트가 자신의 미모를 한껏 활용해 아름답게 웃어 보였지만.

“……웃어?”

이미 이성을 잃은 라모나의 화만 부추길 뿐이었다. 그가 황급히 다시 한번 사과했다.

“미안합니다.”

야, 미안하면 다냐고. 뚫린 입이면 다야? 라모나의 눈빛이 다시 험한 욕을 하기 시작했다.

‘누가 누구를 좋아하게 된다고? 내가? 저 자존감 덩어리를?’

그녀의 입에서 맥없는 웃음이 새어 나왔다.

“하, 하하……. 하, 하…….”

“하하, 보십시오. 라모나. 어차피 결혼할 사이에 잘된…….”

“꺄아아아악! 진짜 미쳤어요, 각하?”

“저는 언제나처럼 지극히 정상입니다만…….”

그는 능구렁이처럼 넘어가려 했지만, 라모나의 분노 대폭발을 이기기엔 역부족이었다.

“각흐아아! 제가 지금 정말 궁금해서 물어본 거 같아요?”

분노에 찬 그녀의 외침이 공작저를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푸른빛은 바로 로베르트 메닝엔의 말이 이루어진다는 신호였으니까.

그것도 오직 한 사람, 라모나 아이젠부르크 한정으로만.

뭣 같은 내 인생. 이를 악문 그녀가 주먹을 꽉 쥐었다.

“르브르트 므능은…….”

재앙의 주둥이.

사람들을 분노하게 만들어 기어코 원하는 대답을 듣고야 마는, 그 기가 막힌 말재주 탓에 붙은 별명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라모나에게 로베르트는 정말 문자 그대로 ‘재앙’ 그 자체였다.

그가 ‘당신 오늘 넘어질지도 모릅니다.’라고 말하면.

그녀는 발을 헛디뎠고.

‘흐음, 오늘 비가 올 텐데 일정을 취소하는 게 어떠실지.’라고 하면.

쏴아아.

놀랍게도 비가 왔다.

그런데 뭐? 내가 누구를 좋아해? 그녀는 드디어 깨달았다.

‘신이시여, 저를 회귀시킨 깊은 뜻이 바로 이거였습니까.’

저 새X를 제 손으로 죽이라고 그러신 거죠? 맞죠?

그렇지 않고서야 단두대에서 댕강 목을 썰린 자신이 10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왔을 리 없었다.

‘용서 못 해…….’

분노가 극에 달하니 오히려 사람이 침착해졌다. 라모나는 물끄러미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힐끔, 그녀의 눈치를 본 로베르트가 얌전히 두 손을 모았다.

이 와중에도 잘생긴 얼굴이 어이없다.

저 잘난 얼굴이 고작 저딴 인간에게 붙어 있다니. 역사에 길이 남을 낭비가 아닐까?

주먹을 꽉 쥔 라모나는 의미심장하게 중얼거렸다.

“이게 바로 신께 받은 내 소명인가.”

“저…… 라모나……?”

그녀가 굳건한 눈빛으로 로베르트를 바라보았다.

“……죽인다.”

“라모나? 자, 잠시, 잠시만. 무슨 그런 끔찍한 말…….”

당황한 로베르트의 만류에도 그녀의 눈빛은 흔들리지 않았다.

“내 손으로 죽인다.”

불길한 예감이 든 로베르트가 라모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내 사랑, 나의 천사 그게 대체 무슨…….”

“으아아! 나의 천사 그거 하지 말라 했어요, 안 했어요?”

“이, 일단 진정하고…….”

“제가 지금 진정하게 생겼어요! 누가 누구를 좋아해? 이거 안 놔요!”

그녀는 아까까지만 해도 만져 보고 싶었던 로베르트의 탄탄한 가슴을 거칠게 밀어냈다.

“이 거지 같은 세상. 왜 나만! 왜 하필 저 재앙의 주둥이가!”라고 욕설을 외쳐 대면서.

로베르트는 한참을 버둥대다 지친 그녀의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뭐, 어차피 당신도 금방 내게 빠졌을 테니까…… 그냥 시기를 좀 당긴 거로 하죠.”

“진짜 미쳤어요?”

버럭 외치는 라모나에게 로베르트가 웃으며 속삭였다.

“나, 별로입니까?”

그때였다. 갑자기 빌어먹을 햇살이 로베르트의 얼굴을 비췄다.

그의 검은 눈이 곱게 휘었다.

시원하게 뻗은 콧대, 뭘 바른 것 같지도 않은데 촉촉한 입술, 입가에 자리 잡은 보조개.

그리고 셔츠 사이로 언뜻 보이는 깊은 굴곡까지.

정말이지 사람 하나 홀리기 딱 좋은 미모였다.

‘……잠깐만, 나 뭐 하는 거야? 지금 저 남자 가슴을 훔쳐 본 거야?’

스스로에게 기겁한 라모나가 말을 더듬었다.

“다, 다, 당연한 거 아니에요? 입만 열면 헛소리인데?”

“아닐 텐데.”

잘생기긴 정말 잘생긴 얼굴에 야살스러운 미소가 번졌다.

꿀꺽, 라모나는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그 사실을 눈치챈 로베르트가 자신만만한 얼굴로 말했다.

“이거 봐. 솔직히 내 얼굴, 당신 취향이잖아.”

“아, 아니거든요.”

“방금도 제 얼굴 훔쳐보는 거 다 봤습니다.”

훔쳐본 건 얼굴이 아니었지만 라모나는 자신의 존엄성을 위해 입을 다물었다.

“…….”

“이렇게.”

그가 보조개가 푹 파이게 미소 지었다.

“내가 이렇게 웃는 거 당신 좋아하잖아.”

로베르트는 여전히 그녀를 끌어안은 채 작게 속삭였다.

“아닌가?”

차마 거짓말은 할 수 없었다.

나쁜 놈. 왠지 억울한 마음에 라모나는 로베르트의 팔을 앙, 하고 깨물었다.

“윽!”

그는 신음을 흘리면서도 그녀를 끌어안은 손을 놓아 주지 않았다.

라모나는 한숨을 삼켰다.

‘인생, 진짜 알 수 없다…….’

정말 누가 알았겠는가.

회귀 전, 사형을 선고받고 단두대에서 목이 댕강 썰린 그때.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이라 예상했다면 솔직히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1년 후에 죽을 남자랑 어쩌다 약혼했는데, 그 남자가 나에 대해서 뭔가 말만 하면 그대로 이루어진다니…….’

말이 되나.

“하아아아…….”

미치겠네.

그녀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그날의 일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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