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르쳐 주세요 선배-64화 (64/81)

제64화

동해의 선베이 리조트는 무척 깨끗하고 아름다웠다. 전체적으로 흰색과 짙은 파란색으로 꾸며진 건물들은 그리스 해안가의 평화로운 마을을 연상시켰다.

정문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리조트 관계자가 그들을 맞이했다.

“안녕하십니까, 선베이 리조트를 방문해 주신 무영단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제이슨만큼이나 인상이 좋고 푸근한 매니저가 그들을 반겼다.

“제이크래프트 제이슨 대표님께서 이곳 리조트로 직접 전화를 걸어서 신신당부하셨습니다. 귀하게 대접해 드리라고요. 출장만 아니었더라면 지사장님께서 직접 나와 환영해 주셨을 겁니다.”

“민망하네요.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이쪽으로 오시겠어요?”

매니저의 양옆에 서 있던 직원들이 리무진 트렁크에서 호구 가방을 내려 어디론가 향했다.

“이 건물을 쓰시면 됩니다.”

“네? 방이 아니라 건물요?”

“제이슨 대표님께서 이 건물을 통째로 예약하셨습니다. 1인 1실도 가능하니 편하게 방을 선택해 주시면 됩니다. 이곳 오션빌리지 1동은 취사가 가능하며, 바비큐 도구가 구비되어 있는 옥상정원 역시 자유롭게 사용하시면 됩니다.”

뭐라고? 1인 1실……!

“그리고.”

이어지는 매니저의 말에 선수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전실 오션뷰입니다.”

“와아아아아!”

“단장님 대박!”

“스케일 진짜! 너무 멋져요!”

“이게 바로 플렉스지!”

선수들이 큰 소리로 외치며 반짝반짝 눈을 빛냈다.

무영단의 코치진도 난리였다.

“어머, 세상에! 너무 고급스럽고 예쁘다. 여보, 우리 나중에 여기 또 올 수 있을까? 아휴, 도윤이 데려오고 싶다.”

“그러게. 나중에 장모님 모시고 같이 오자. 오늘 도윤이 봐 주시는 거 감사 표시로.”

미연과 용진은 아들을 생각하며 감탄하는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한편, 시호는 제이슨의 배포에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세상에.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30층 건물 한 동을 통째로 빌릴 줄이야!

제이슨은 리조트의 위치만 보내 주었고 예약한 동호수는 알려 주지 않았다.

[가 보면 수석 매니저가 다 알아서 해 줄 겁니다.]

그게 이런 의미였다니.

무영단 식구들이 기뻐하는 모습에 중년 매니저의 얼굴에도 미소가 떠올랐다.

“이곳 오션빌리지 지하 1층에는 커다란 강당이 두 개가 있습니다. 왼쪽에 있는, 마룻바닥으로 된 강당을 수련장으로 쓰시면 됩니다. 문의 사항이 있으시면 언제든지 인터폰을 눌러 주십시오.”

매니저와 직원들이 정중히 인사하며 떠났다. 시호는 손뼉을 두 번 쳐서 주의를 집중시켰다.

“우리를 후원해 주실 제이크래프트사의 제이슨 대표님께서 제공해 주신 워크숍 장소입니다. 즐겁고 건강하게 진행되었으면 좋겠다고 전해 달라셨어요. 우리 무영단이 출범하기 전 처음이자 마지막 워크숍이니, 그 말 그대로 마무리 잘해 봅시다.”

“제이크래프트 최고!”

“제이슨 님 감사합니다!”

“무영단 파이팅!”

매니저의 지시 아래 직원들이 호구 가방을 실내로 날랐다.

전체적으로 화이트 톤의 환하고 깔끔한 바탕에 컬러감이 있는 가구로 포인트를 주었다.

곳곳에 놓인 디퓨저는 세계적인 조향사에게 의뢰하여 만든, 오직 선베이 리조트 한국 지사에서만 구입할 수 있는 제품으로 숲속에 있는 듯 산뜻하고 은은한 정취가 느껴졌다.

“우와, 대박! 완전 5성급 럭셔리 호텔 같은데요?”

“향기 너무 좋다. 나중에 갈 때 사 가야겠어.”

“오션뷰에다 이런 럭셔리한 리조트라니. 해외여행 부럽지 않네, 이 정도면!”

선수들은 건물 위아래 층을 오가며 신나게 구경을 했다. 코치진을 비롯한 시호 역시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혹여 불편한 곳은 없는지 점검했다.

“조리장님, 옥상 한번 가 보실래요? 구비된 장비들 좀 보고 싶네요.”

“좋아요. 아주 잘 되어 있을 것 같아요.”

미연과 부산댁의 대화를 들은 용진이 임 감독에게 권했다.

“음, 그럼 저희는 지하 1층 강당 먼저 둘러볼까요, 감독님?”

“그러지. 바닥 체크 좀 하고.”

“전 방을 돌아볼게요.”

시호는 우선 자신이 쓸 방부터 살펴보기로 했다.

들어가자마자 통창 너머로 시원하게 펼쳐진 바다가 그녀를 맞이했다.

“와아…… 정말 예쁘다.”

햇빛에 반짝거리는 바다는 마치 보석이 뿌려진 듯 아름다웠다.

고급스러운 베이지 색깔의 소파와 사르락거리는 포근한 침대, 커다란 우드 테이블까지 마음에 쏙 들었다.

방을 구경하던 시호는 불현듯 휴대폰을 꺼냈다.

“참, 제이슨한테 연락해야지.”

리조트를 살펴보고 연락을 해 달라던 제이슨의 말이 떠오른 시호가 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선베이 리조트에 도착했습니다. 선수들이 무척이나 좋아해요. 저도 너무 마음에 들고요.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전송 버튼을 누르기가 무섭게 제이슨이 영상 통화를 걸어왔다.

- 하이, 캡틴!

- 예끼, 로건! 예의는 어디다가 팔아먹었어?

- 웁스, 쏘리! 캡틴, 재미있눈 주말 보내고 이써씁니까?

화면에 로건과 제이슨의 모습이 떴다. 시호는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둘이 함께 있네요? 수련 중이에요?”

- 하하, 검도장이 아니라 회사입니다. 로건이 우리 회사 상무이사거든요.

“……네?!”

- Yeah, I′m managing director! 우리 아직 미팅 안 끈나서 회사에 이써. 나 머시께 보여요, 캡틴 호? 종나 멋짐? 방전매력? 어라, 윤기!

로건의 외침에 시호가 뒤를 돌았다. 반쯤 열어 놓은 문틈으로 윤기가 슥 들어왔다.

“나 여기에 있는 거 어떻게 알았어?”

“방금 전 놀란 목소리가 크기도 했고.”

윤기가 그녀의 귀에 속삭였다.

“계속 보고 있기도 했고.”

- 헤이, 윤기! 나야, 로건! 모니터도 잘쌩견네!

로건의 목소리가 그들 사이에 피어오르는 로맨틱한 무드를 반으로 뚝 갈랐다.

시호의 휴대폰 화면을 본 윤기가 미간을 찌푸렸다.

“……로건?”

- Yep, It′s me! 두리 오디에 있는 고야? camping? dating?

- 아니, 두 사람은 워크숍 중이야. 서 단장님, 시설은 어떻습니까?

“아주 좋아요. 다들 너무 좋다고 난리예요. 제이슨에게도 감사하다고 했어요.”

- 하하, 그거 영광이군요. 불편한 점은 없으시고요?

“전혀요. 그리고 놀랐어요. 한 동을 통째로 빌리시다니.”

- 편하게 지내시라고 그렇게 했습니다. 지하 강당 마룻바닥을 적삼목으로 깔았는데 제법 쓸 만합니다. 사실, 동해에 리조트를 오픈할 때 제가 간섭을 좀 했습니다. 검도를 할 수 있도록 이곳저곳 은근히 말이죠. 하하. 한국 지사장이랑 잘 아는 사이거든요.

“그러셨어요?”

- ……캐나다로 이민 오기 전에 살았던 곳이거든요. 우리 도영이랑.

아…….

시호가 다문 입가에 힘을 주었다. 윤기는 그런 그녀의 어깨를 손으로 감쌌다.

로건은 장난기를 지운 얼굴로 위로하듯 제이슨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그가 괜찮다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 동해는 아직도 아름답지요? 공기도 좋고요.

“네. 아주 예뻐요. 하늘도 맑고. 도영이와 사장님이 살았던 곳이라서 그런가 봐요.”

시호의 말에 제이슨이 활짝 웃었다. 눈가에 보기 좋은 주름이 졌다.

- 아무쪼록 즐거운 추억 많이 만드셨으면 좋겠네요. 혹시 괜찮으시다면, 사진 몇 장 찍어서 보내 주실 수 있으세요? 도장 사람들한테 보여 주고 싶어서요. 저도…… 많이 보고 싶고요.

“그럼요. 풍경 제대로 나오게 찍어서 보낼게요.”

- 하하. 감사합니다. 그럼 좋은 시간 되시기를!

- Have a good time, 캡틴! 윤기, 나 한쿡 가묜 빙대떡 먹자!

“…….”

- 응? Didn′t you hear me?(내 말 못 들었어?)

“……The communication network in Korea is weak.(한국 통신망은 약해.)”

윤기는 서둘러 종료 버튼을 눌러 버렸다. 제이슨이 미친 듯이 웃는 소리가 뚝 끊겼다.

“꼭 로건이랑 직접 보면서 대화하는 기분이었어.”

“청각에 손상을 입을 것 같군요.”

윤기가 작게 한숨을 내쉬자, 시호가 고개를 살짝 숙이고 웃었다.

“잘 어울리는 것 같아. 너랑 로건.”

“나랑 잘 어울리는 사람은 따로 있는데.”

윤기가 시호의 허리를 슬쩍 휘감아 당겼다. 놀란 그녀가 출입문을 쳐다보며 그의 가슴을 살짝 밀어냈다.

분명 반쯤 열어 놓고 들어왔는데 어느새 닫혀 있다.

“누가 오면 어떡해.”

“다들 다른 층에 있는 방들 구경하겠다고 몰려갔습니다.”

“그래도…… 사람이 남아 있을 수도 있잖아.”

“그럼 짧고 굵게 하죠.”

윤기가 자신의 가슴을 밀어내는 시호의 손을 붙잡아 제 허리를 감싼 뒤, 그녀의 뺨을 감싸 입술을 겹치고 단번에 벌려 들어갔다.

혀가 파도처럼 밀려와 그녀의 것을 세게 휘감고는 스르르 빠져나갔다.

마지막으로 시호의 아랫입술을 한 번 강하게 문 윤기가 쪽, 입을 맞추었다.

“이러다가 들키면 어떡해.”

“비밀 연애였습니까? 그럼 지금부터 그런 걸로 해요. 스릴 있게.”

그가 눈꼬리를 휘며 나른하게 웃었다.

차가운 남자는 웃으면 말간 소년이 되었다. 그래서 그 어떤 말도 거부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밖에서는 단장과 주장으로만 있기로 했잖아.”

“아직 공식적으로 워크숍 시작 전입니다. 그러니까 여자와 남자로 있어도 돼.”

그가 시호의 얼굴과 목덜미, 어깨 이곳저곳에 살짝살짝 입 맞췄다.

시호의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이런 게 사내 연애인가 싶기도 하고.

갑자기 문이 벌컥 열릴 것만 같은 기분에 시선이 자꾸만 현관으로 향한다.

“10분 정도는 둘러보느라 바쁠 겁니다. 특히 가수원, 윤태홍은 30층까지 낱낱이 살필 놈들이에요.”

윤기는 시호를 끌어안은 채 통창에 펼쳐진 풍경을 보았다.

“밴쿠버 호텔에 다시 온 것 같네요.”

“그러게. 아까 로건이랑 제이슨이랑 통화할 땐 정말 밴쿠버에 있는 것 같았다니까?”

아아. 생각하니 정말 다시 가고 싶다.

아직 못 먹어 본 것도 많은데.

“무영단 식구들하고 다 같이 가면 좋겠다.”

“지난번과 똑같이 2박 3일은 수련을 하고, 나머지 3일은 자유 시간으로 보내죠.”

시호와 윤기가 마주 보며 웃었다.

그와 끌어안은 채 바다를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무척 행복했다.

건물을 살펴보는 시간이 끝났다.

윤기의 말대로 30층까지 죄다 살피고 돌아온 수원과 태홍이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우리가 열네 명에 총 30층이니까…… 우와, 층마다 두 명씩 써도 되겠다!”

수원의 말에 윤기가 호오, 하고 눈을 빛냈다.

가수원이 간만에 쓸 만한 의견을 냈다 싶다.

그럼 자신과 시호가 같은 층을 쓰면 되겠다. 방해하는 사람도 없을 거고, 방은 하나만 쓰면 되니까 효율적이고.

윤기는 시호에게 은근한 눈빛을 보냈다. 눈이 마주치자 그녀가 흠칫했다.

아무래도 자신의 마음을 알아차린 듯하다.

그 귀여운 모습에 입꼬리가 스르르 올라가던 그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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