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르쳐 주세요 선배-50화 (50/81)

제50화

신호에 걸릴 때마다, 윤기는 짧지만 뜨거운 키스를 선사했다.

산청이 가까워질수록 도로는 한산해졌고 운천고등학교가 눈에 보일 즈음에는 시골길 위에 있는 차라곤 그들이 탄 것뿐이어서 그의 스킨십의 농도는 점점 더 짙어져 갔다.

체육관 근처에 차를 세우자마자, 윤기는 안전벨트를 풀고 시호의 목을 감싸며 입술을 겹쳐 왔다.

살짝 벌어진 틈으로 젖은 신음이 미약하게 흐르자, 그의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강한 자극에, 시호가 바늘 하나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딱딱하게 굳어 버린 팔을 꼭 붙잡았다.

말리는 건지 부추기는 것인지 모를 몸짓에 미간을 좁힌 윤기는 부드럽게 머금던 그녀의 입술을 보다 세게 물며 핥았다.

“윤기야, 그만…….”

그러나 그는 시호의 턱을 들어 올려 다시 입술을 삼켰다. 그녀가 대답을 하지 않은 탓이다.

신혼여행을 가고 싶다는 그의 말에 시호는 한 번도 긍정적으로 답하지 않았다.

조급하고 애가 타는 마음은 그녀와 한시도 떨어질 수 없게 만들었다.

아직 시호에게는 이르다고, 자신도 지금 당장 가자는 것이 아니라 함께하고 싶은 마음을 나타낸 표현이라고 머리로는 생각했으나 몸은 이성을 따라가지 못했다.

시호가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사실에만 꽂혀서, 자꾸만 그녀를 갈구하게 되었다.

“윤기야, 그만, 이러다 누가 나오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제 가슴을 밀어내며 가쁜 숨을 내쉬는 시호는 지독히도 매혹적이라 도리어 원망스러웠다.

난 당신과 단 한 순간도 떨어지고 싶지 않은데, 당신은 아니라는 사실에 숨이 막힌다.

달뜬 얼굴로 뜨거운 숨결을 내쉬는 시호를 바라보던 윤기는 그녀를 품에 안고 하얀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조금만 이렇게 있어요.”

“하아…….”

“우리 둘 다 진정해야 하니까.”

시호 특유의 싱그러운 향기를 맡고 있으니 서서히 기분이 나아졌다. 자신의 등을 부드럽게 도닥거리는 손길 때문인지도 모른다.

몰아붙여진 건 그녀인데 달래 주는 것도 그녀였다.

자신이 연하라는 사실이 뼈저리게 느껴졌다. 그리고 시호 역시 그럴 것이다.

윤기는 얼굴을 굳히며 그녀를 안았던 팔에서 힘을 조금 풀고 얼굴을 마주 보았다.

“강요하려던 건 아니었습니다. 그저 선배와 뭐든 함께하고 싶은 마음을 표현한 거였어요.”

아니, 사실 대답을 강요하고 싶었다. 그녀도 나와 같은 마음이라는 확신을 얻고 싶었다.

그러나 참아야 했다. 시호가 자신을 철없다고 생각하는 것만은 사양이었다.

“나와 같이 가 줘요. 하와이든 어디든. 밴쿠버를 다시 가도 좋고.”

자신의 손에 입술을 묻으며 눈을 내리까는 윤기의 모습에선 간절함이 묻어 있었다.

“그래, 가자. 상황이 좀 정리되고 나면 둘이서 어디든 떠나자.”

그녀의 말에 기분이 조금 나아진 윤기는 예상치 못한 공격을 받고 눈을 깜빡였다.

쪽, 소리가 나도록 그의 입술에 뽀뽀한 시호가 목을 가다듬었다.

“얼른 내리자. 감독님이랑 애들 기다리겠어. 약속 시간에 늦는 거 싫단 말이야.”

시호가 얼른 문을 열고 내렸다. 아니면 또 윤기에게 붙잡혀 시간이 흘러가는 것도 모른 채 열락에 빠질 것 같았다.

탁월한 선택이었다. 부끄러운 듯 볼을 연하게 물들이고 아이들과 임 감독에게 주기 위해 산 물건들이 있는 트렁크로 향하는 시호는 숨이 막히도록 사랑스러웠다.

자신의 곁에 연인으로 있는데도 매일 시호가 부족해서 큰일이었다.

“……애들 앞에선 좀 덜 예쁘게 보였으면 좋겠는데. 서시호.”

***

그들은 양손 가득 간식과 음료수, 도시락을 들고 체육관 안으로 들어섰다.

문을 열자마자 뜨거운 열기가 훅 끼쳐 오며 우렁찬 기합 소리가 공간을 울렸다.

“머리!”

“더 길게 나가! 호흡 놓치지 마!”

“손목, 머리!”

“허리가 비었잖아! 집중 안 해? 눈동자 옆으로 굴리는 0.1초도 상대방의 눈에는 다 보인다고 했잖아, 이놈들아!”

여전히 정정한 임 감독을 보니 시호는 웃음이 나왔다.

“감독님.”

“어어? 이게 누구야!”

임 감독과 시호가 반가움의 포옹을 나누었다. 어쩐지 임 감독과 제이슨이 겹쳐 보여서 미소가 진해졌다.

“언제 왔어? 왔으면 말을 하지!”

“훈련에 방해될까 봐요.”

“방해는 무슨. 그건 그렇고, 코찔찔이가 어느새 이렇게 컸냐. 응?”

“저 코 찔찔 흘린 적 없는데.”

“하긴. 다른 애들 죄다 내복 바람에 콧물 흘리고 다닐 때 서시호는 혼자서 도복 정갈하게 갖춰 입고 죽도 휘둘렀지. 어? 기윤기 선수?”

윤기가 다가와 임 감독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정렬하여 호구를 벗고 있던 검도부 학생들은 윤기와 시호를 보며 웅성거렸다.

“헐, 기윤기 아냐?”

“야, 기윤기가 뭐냐! 선배님이라고 해야지.”

“와. 연예인인 줄 알았어. 눈빛 봐. 대련하면 압박감 장난 아니겠다. 이따가 사인받아야지.”

윤기를 보던 아이들이 옆에 서 있던 시호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어! 저 사람 그 사람이지. 재벌가에 시집간 감독님 제자.”

“맞네. 실물이 훨 나은데?”

임 감독은 선수로서의 시호를 무척이나 자랑스럽게 여겨서, 늘 제자들에게 시호의 대련 영상과 메달을 목에 건 사진을 보여 주었다. 때문에 임 감독의 제자들은 마치 시호와 함께 훈련을 받은 것처럼 그녀가 익숙했다.

“어떻게 둘이 같이 와? 전화로는 그런 말 없었으면서.”

“깜짝 선물로 놀래 드리려고요. 참, 감독님. 윤기도 무영단으로 오기로 했어요.”

“그래?”

임 감독은 윤기를 찬찬히 훑었다.

신체 조건이 기가 막히다.

팔다리가 길어서 손을 조금만 뻗어도 유효타격을 가할 수 있고, 긴 다리로 성큼 물러나면 어떤 칼도 손쉽게 방어할 수 있었다.

보기만 해도 얼마나 딱딱한지 알 수 있는 넓은 어깨와 단단한 가슴팍은 물론, 허리와 허벅지도 거의 갑옷 수준이었다. 그와 몸을 맞부딪치면 웬만한 사람은 나가떨어질 것이다. 실제로 그와 칼등을 맞대다가 뒤로 나자빠진 선수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키가 크고 몸에 근육이 붙으면 대개 민첩성은 떨어지는 편인데, 윤기는 그조차도 완벽했다.

저 신장과 체격으로 어찌나 날래게 움직이는지, 웬만큼 발이 빠르다고 알려진 선수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검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세이다.

눈동자 바로 앞에 칼날을 겨눠도 전혀 흔들리지 않을 듯 강인한 윤기의 눈빛에서는 숨 막히는 압박감이 느껴졌다.

‘이야. 머릿속에 날카롭고 거친 공격만 가득 들어 있을 것 같구먼.’

그러나 임 감독의 예상은 빗나갔다.

차갑고 강인한 눈빛의 윤기가 생각하고 있는 것은.

‘10월 전국체전이 다가오기 전에 여행을 다녀오면 좋은데. 하와이를 가서 그 사람과의 기억을 지워 버려야 하나, 아니면 다른 장소에서 둘만의 추억을 쌓아야 할까. 정 안 되면 국내라도 꼭 다녀와야겠어.’

그의 머릿속은 온통 시호와의 여행뿐이었다. 사진도 많이 찍고 기념품도 잔뜩 사 올 거다. 시호가 그 사람과 함께했던 시간을 따라잡으려면 부족하고, 또 부족하다.

“현재 연교시청 소속이던가?”

“예. 재계약이 끝나는 두 달 뒤면 무영단 소속입니다.”

“오호.”

임 감독의 눈이 빛났다. 윤기를 지도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이 대단한 선수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욕심이 일었다.

시호가 미소를 지었다. 윤기를 보는 임 감독의 눈이 꼭 자신을 처음 봤을 때처럼 빛나고 있었다.

‘허락하실 것 같아.’

임 감독은 손뼉을 쳤다.

“집합! 오늘은 기윤기 선수와 서시호 전 선수의 특별 강의가 있다!”

와아아아!

감독님이 언제 불러 주나 눈치를 보고 있던 아이들이 환호성을 내지르며 달려왔다.

당황한 시호가 임 감독을 보았다.

“감독님, 전 은퇴한 지 오래인데요.”

“몸에 새겨진 건 어디 안 간다. 네 마음에서 우러나는 대로 한번 해 봐.”

임 감독이 아이들을 체육관 가운데에 정렬시키고 정비하는 것을 보며 시호가 불안감에 입술을 깨물었다.

밴쿠버에서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그땐 짧게나마 연습이라도 했지, 지금은 정말로 즉흥적이었다.

그때 윤기가 시호의 손을 잡으며 그녀 쪽으로 몸을 기울여 귓가에 속삭였다.

“우리 고등학생일 때라고 생각하고 편하게 해요.”

“윤기야…….”

“내가 지켜보고 있으니까 걱정 말아요. 서시호는 잘할 수 있어.”

윤기의 말에 긴장으로 두근거리던 가슴이 서서히 진정되었다.

맞잡은 손에서 번진 온기가 차갑게 식었던 손끝을 다시 따뜻하게 데웠다.

“하고 싶은 말만 하고, 하고 싶지 않은 말은 하지 않으면 돼요. 말을 고를 필요도, 눈치 볼 필요도 없어.”

기윤기는 참 신기하다.

듣고 싶은 말을 듣고 싶을 때 잘도 해 준다.

그의 말에 용기를 얻은 시호가 미소를 지었다.

“고마워. 너 없었으면 아무것도 못했을 거야.”

“정 고마우면 끝나고 키스라도 해 주든가. 뜨겁고 진하게.”

은근한 속삭임에 놀란 시호가 눈을 크게 뜨며 그의 팔을 때렸다.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그래! 애들도 있는데.”

“저렇게 멀리서 호구 착용하기 바쁜데 누가 듣는다고 그래요.”

“그래도 사람이 몇 명인데…….”

“난 들어도 상관없는데. 선배 보면서 눈 빛내는 놈들은 특히나.”

시호가 곱게 흘겨보자, 그가 귀엽다는 듯 눈을 사르르 접으며 웃었다.

“긴장은 좀 풀렸어요?”

아. 그러고 보니 쿵쿵 뛰던 심장이 어느새 진정되었다.

“……조금.”

윤기가 시호의 손등에 촉, 살짝 입술을 맞댔다.

“내가 당신 편이라는 거 잊지 마요. 정 긴장되면 나만 보고 얘기해요. 절대로 눈 안 떼고 있을 테니까.”

그의 말에 용기를 얻은 시호는 작게 미소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눈동자가 짙어진 윤기가 느른히 속삭였다.

“너무 예쁘게 웃지는 말고요. 나도 모르게 선배 안고 확 나가 버릴지도 모르니까.”

“……안 그럴 거면서.”

“확신해요? 난 한다면 하는 사람인데.”

시호는 입술을 안으로 말았다. 정염으로 물든 윤기의 얼굴을 보건대 정말로 중간에 저를 번쩍 안아 들고 나가 버릴지도 모른다.

“나한테만 웃어 준다고 약속하면 안 그럴게.”

윤기의 새끼손가락이 시호의 새끼손가락을 비단뱀처럼 부드럽게 휘감았다.

“약속하는 거죠?”

“……응.”

“예쁘다, 우리 시호.”

윤기가 시호의 콧등을 톡톡 두드렸다. 이대로 마주 보고 있다간 얼굴이 붉게 상기될 것 같았다.

때마침 임 감독이 준비가 다 되었다고 자신을 불러서 시호는 일렬로 정렬한 아이들에게로 향했다.

윤기가 그녀를 지키는 기사처럼 뒤를 따랐다.

“반갑습니다. 비록 부상으로 인해 은퇴했지만 한때 수영대학교 소속 검도선수로 활동했던 서시호라고 합니다.”

우렁찬 박수 소리가 체육관 안을 뒤흔들었다. 아이들의 기대에 찬 시선이 이번엔 윤기에게 향했다.

“기윤기입니다.”

참으로 짧은 말 한마디였지만 임팩트는 엄청났다.

눈으로 보고도 정말 기윤기 선수인지 아닌지 반신반의하던 아이들은 그의 말 한마디에 환호성을 지르며 격하게 반겼다.

늘 그의 경기 영상을 나노 단위로 분석하며 ‘기윤기 같은 선수가 되겠다’고 다짐해 왔던 남학생들은 마치 연예인 또는 위인을 보는 듯 신기함과 존경 어린 눈빛으로 윤기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완전 존경합니다, 선배님!”

“저 면수건에 사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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