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화
시호가 입었던 후드 티는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이윽고 그 위로 청바지와 브래지어가 툭, 툭, 떨어졌다.
“윤기야…….”
윤기는 시호의 젖은 신음까지 강하게 집어삼켰다. 혀로 그녀의 입안을 마구 헤집으며 격렬하게 키스했다.
지금껏 어떻게 참아 왔는지 모를 정도로 다급했고 거친 몸짓이었다.
살결과 살결이 맞닿았다가 떨어지는 소리가 야릇하게 울렸다. 그녀의 허리를 감싸던 손이 올라갔다.
시호가 그의 목을 끌어안고 요야한 소리를 흘렸다. 그 모습이 퍽 아름다워 윤기는 눈을 떼지 못했다.
그러다 입술을 내려 시호의 몸 곳곳에 붉은 자국을 내기 시작했다.
그럴 때마다 시호의 몸이 크게 흔들렸다.
“선배를 외롭게 두지 않을 겁니다.”
그 멍청한 전남편과 나는 다를 겁니다.
“아……!”
시호가 매달리듯 그를 안았다.
관계는 무척 오랜만이었다.
어쩌다 시간이 맞아 함께 잠드는 날이면 남편은 거의 보채며 요구했고, 그럴 때마다 시호는 대부분 거절했다.
그러다 이따금 ‘부부의 의무’를 앞세워 다소 강하게 제 몸을 원하는 날이면 어쩔 수 없이 허락했다.
재혁과의 사이는 나쁘지 않았지만 마음이 식어 버린 시호는 점점 아무것도 느낄 수 없게 됐다.
그저 의무적으로 관계를 끝내고 나면 밀려드는 공허함과 허무함에 곧바로 등을 돌렸고, 재혁 역시 자존심이 상했는지 어느 순간부터 요구하지 않았다.
그렇게 이혼 전부터 약 1년이 넘도록 관계를 갖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서 버겁다고 느껴지는 것이 아닌 듯하다. 이토록 몸이 터질 듯 가득 채워지는 감각은 신혼 때도 느끼지 못했다.
더불어, 서로가 서로를 원하고 있다는 충만함이 허전했던 마음을 가득 채웠다.
시호는 그에게 더욱 매달렸다.
무참히 구겨진 이불 위에 계속해서 깊은 주름이 생겨났다 펴졌다. 파도처럼 간헐적으로 밀려오는 쾌미가 시호의 몸 안 가득 퍼졌다.
윤기는 시호와 눈을 맞추었다.
“다시는 보내지 않을 겁니다. 언제까지나 함께 있을 거예요. 절대로 떨어지지 않을 거니까.”
그는 그녀의 눈가에 고인 생리적인 눈물을 입술로 머금으며 그녀의 안에 깊이 몸을 묻었다.
정점에 다다른 감각이 불꽃처럼 펑펑 터졌다.
두 사람은 좀처럼 열락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서로를 껴안고 있었다.
그러다 시호가 제게 눌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윤기가 옆으로 누워 그녀를 끌어안고 등을 쓸어내렸다.
쪽. 이마에 닿는 온기에 시호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그의 품을 파고들었다.
쪽쪽, 목덜미를 따라 내려온 입술이 어깨선을 따라 그렸다. 시호가 간지럽다며 웃었다.
그 모습이 또 예뻐서 윤기가 그녀의 입술을 깊이 머금었다.
“음…….”
사랑을 나눈 후에 즐기는 여운은 무척이나 달콤하고 행복했다.
이 또한 얼마나 오랜만인지 모른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후, 늘 피곤에 절어 집으로 돌아온 재혁은 제 몸을 탐한 뒤 자신만 건사하고 곧바로 잠들어 버렸다.
혼자서 뒤처리를 할 때마다 시호는 자신이 재혁이 욕정을 토해 내는 도구가 된 듯하여, 밀려오는 자괴감에 이를 악물었다.
그래 놓고 푹 자고 일어나 쌩쌩해진 아침이면 재혁은 시호를 지분거렸고, 밤새 우울감에 뒤척이던 그녀는 그를 뿌리쳤었다.
그러고는 1분이라도 늦으면 온갖 눈치를 주는 시모와 도우미가 기다리는 다이닝룸으로 부리나케 향했다.
“부드러워요, 선배.”
윤기가 근사한 미소를 머금은 채 시호를 다정히 바라보았다.
이 행위를 ‘사랑을 나눈다’고 표현하는 이유를 시호는 이제야 확실히 깨달았다.
단순히 욕구를 해소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서로에게 더 가까이 가고 싶은 마음이 넘쳐흘러 깊이 끌어안고, 온기를 나누고, 언제까지고 예쁘다고 말해 주고 싶기 때문이었다.
시호가 손가락으로 윤기의 입술을 톡톡 치자, 그가 픽 웃으며 아프지 않게 살짝 물었다가 촉, 가볍게 입 맞췄다.
“이런 게 사랑을 나누는 거구나.”
충만하고, 행복하고, 간지러운 설렘이 아지랑이처럼 온몸에 피어나는 이런 기분이었구나. 피곤하고 귀찮고 도구가 된 황량한 기분이 아니라.
그간 재혁과 나누었던 수많은 밤들이 무의미하게 느껴짐과 동시에 윤기와 보내는 이 순간이 무척이나 소중하게 느껴졌다.
“안심이 돼서 몸이 나른할 정도야.”
예전엔 다음 날 아침 식사 준비에 늦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에 긴장된 마음을 안고 억지로 잠을 청해야 했었는데.
지금은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는다. 그저 윤기의 손길에 몸을 내맡긴 채 평온한 시간에 잠겨 있을 뿐.
“잠이 올 것 같아.”
“잠드셔도 됩니다.”
순간 불안이 깃들었다. 깨어나면 모든 것이 꿈일 것 같았다.
“너는?”
“당연히 선배 안고 같이 잘 겁니다.”
윤기는 안심시키듯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괜찮아요. 깨어나도 옆에 있을 거예요.”
시호를 품에 안은 그는 그녀의 정수리에 턱을 얹고, 아이를 재우듯 등을 부드럽게 토닥이기 시작했다.
그의 향기를 맡으며 정말로 오랜만에 시호는 포근한 낮잠에 빠져들었다.
***
눈을 뜨니 여전히 따뜻한 품속이었다.
“깨셨습니까?”
부드러운 목소리에 시호가 몇 번 눈을 깜빡이다 눈꺼풀을 느리게 밀어 올렸다.
다정한 눈동자와 마주치자 그녀는 부끄러워서 배시시 웃었다.
“응. 깜빡 잠들었네.”
붉어진 얼굴이 사랑스러워서 윤기는 그녀에게 쪽쪽 입맞춤을 퍼부었다.
“기윤기! 간지러워.”
시호가 깔깔거리며 그를 피하기 위해 몸을 이리저리 굴렸다. 윤기는 그녀가 도망가지 못하게 뒤에서 강하게 끌어안고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읏, 나 간지럼 잘 탄단 말야.”
“그 말을 들으니 더 괴롭히고 싶어집니다.”
낮게 가라앉은 허스키한 음성에 시호는 또다시 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말 잘 듣는 후배인 줄 알았더니 못된 후배였네.”
“그래서 싫으십니까?”
맹수에서 단숨에 끼잉거리는 강아지로 변한 애처로운 눈빛에 시호의 마음이 울렁거렸다.
이래서야 원. 장난도 못 치겠다.
“……누가 싫대?”
“다행입니다.”
다시 미소를 되찾고 제 허리를 안은 팔에 힘을 주는 윤기가 귀여워서, 시호는 손을 들어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저녁은 요 앞 도시락 전문점에서 픽업하는 거 어때? 맛있을 것 같은데.”
끼니를 마음대로 해결하는 자유를 누리고 싶다던 시호의 말을 떠올린 윤기는 기꺼이 고개를 끄덕였다.
몸을 일으키던 시호는 윽, 하고 허리를 짚었다.
좀 뻐근하겠다 예상은 했는데 통증이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허리와 허벅지 안쪽이 홧홧했다.
“괜찮으십니까?”
“아니라고 하고 싶은데. 엄청나게…… 꺄악!”
시호는 거의 태어나 처음으로 높은 비명을 지르며 윤기의 목을 바짝 끌어안았다.
“처음 들어 봅니다. 선배 입에서 그런 비명이 나오다니.”
“누, 누구 때문인데!”
그녀를 공주님처럼 안아 든 윤기가 귀엽다는 듯 눈을 휘며 웃었다.
“제가 입혀 드리겠습니다.”
“뭐……를?”
그가 속삭였다.
“뭐든 다.”
씻고 나온 후.
아무래도 윤기와는 말이 통하지 않을 것 같아서 시호는 휴, 하고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네 눈에 씐 필터가 당분간 벗겨지지 않아야 할 텐데.”
“평생 벗겨지지 않을 겁니다.”
담백한 얼굴로 마음이 간질거리는 말을 참 잘도 하는 윤기가 신기했다.
“너에 대해 정말 많이 몰랐다는 생각이 들어.”
“저도 제게 이런 면이 있는지 몰랐습니다. 선배가 아니었다면 저 스스로도 몰랐을 겁니다.”
윤기가 시호를 당겨 안았다. 제 품에 착 감기는 그녀에게선 저와 같은 보디로션의 향기가 났다.
“꿈만 같습니다.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순간이 정말로 찾아올 줄은.”
빠르게 뛰는 그의 심장 박동이 여실히 느껴졌다. 시호의 볼이 핑크빛으로 물들었다.
“나도 마찬가지야. 이렇게 행복한 시간이 내게 찾아올 줄 몰랐어.”
진한 키스를 나눈 그들은 두 손을 맞잡고 미리 주문해 둔 도시락을 찾으러 밖으로 향했다.
도시락 전문점은 아파트 상가 건물 맞은편에 위치한 곳이라, 일단 걸어갔다가 다시 주차장으로 돌아와 윤기의 차로 이동하기로 했다.
“신기하다. 이렇게 손잡고 같이 걷고 있으니까.”
윤기가 동의한다는 듯 그녀를 다정한 눈길로 바라보다 붙잡은 손을 들어 시호의 손등에 쪽, 입을 맞추었다.
바깥에서는 단 한 번도 애정 표현을 해 본 적도, 받은 적도 없는 시호는 놀란 표정을 지으며 주위를 살폈다.
“누가 보면 어떻게 해.”
“보라고 하는 겁니다. 선배가 내 여자라는 걸 알리고 싶어 미칠 지경이거든.”
사랑을 나누기 직전, 자신을 침대에 눕히고 내려다보는 듯한 윤기의 눈빛에 입술이 바짝바짝 마르고 온몸이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
‘주책이다, 서시호. 거리에서 뭘 느끼는 거야.’
시호가 그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윤기가 맞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왜 그러십니까?”
네 눈빛이 너무 야해서, 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붉게 물든 뺨이 시호가 감추고 싶은 마음을 짓궂게 드러냈다.
“혹시…… 하고 싶으십니까?”
“너!”
눈을 동그랗게 뜬 시호가 발끝을 들어 손으로 그의 입을 막았다.
“미쳤어, 정말!”
눈을 사르르 휜 윤기가 그녀의 손목을 붙잡고 손바닥에 깊게 입을 맞추었다.
“읏…….”
그가 시호의 어깨를 감싸 당겨 귓가에 속삭였다.
“전 그러고 싶어서요. 선배도 저와 같은 마음일까 싶어서.”
빨개진 얼굴로 곱게 눈을 흘기는 시호를 보며 윤기가 낮게 웃었다.
멀리서 그들을 바라보고 있던 소연이 양손에 아이들의 손을 붙잡은 채 입을 벌렸다.
“세상에……. 저거 서시호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