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2화 (152/161)

152화

나도 모르게 손이 뻗어 나갔다.

손끝이 톡, 이안의 손등을 건드렸다.

이안의 시선이 부드럽게 나를 향했다. 무슨 일이 있냐는 듯.

나는 말없이 그의 손등을 감싸 안았다.

잠시 굳은 듯 움직이지 않던 이안이, 몇 초 뒤 손바닥 전체로 내 손을 쥐어 왔다. 크고 따스한 손으로부터 전해지는 체온에 조금은 쌀쌀하던 추위가 금세 가셨다.

“좋은 곳으로 가셨을 거예요.”

나도 모르게 입을 연 나는 위로의 말을 했다.

“그토록 평생 신도들을 위해 살아오신 분이시니까요.”

“……예. 압니다.”

이안이 옅게 미소를 띠었다.

“편안해지셨으리라는 것을.”

나는 이안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오늘 처음 마주하는 그 미소를.

그리고 나는 그의 손을 더 꼭 쥐었다.

상실감으로 허할 마음을 내 체온이 조금이라도 메워 주기를 바라면서.

“흐흡…… 흑.”

여기저기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여기저기서 슬픔과 초조한 기운이 넘실거렸다.

나는 사람들의 시선에 불안이 떠다니는 것을 읽을 수 있었다.

추기경의 죽음으로 인해 한 시대가 저물었으니 당연한 일이리라.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는 시점이면 어느 세계든 겪는 현상이었다.

눈물을 훔치며 운구되는 추기경의 관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이따금 위를 올려다보았다. 이안이 서 있는 이 층 난간의 중심을.

우뚝 선 채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는 이안을 바라본 사람들은 멍하니 그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나는 그들의 눈동자에 서서히 희망이라는 이름의 빛이 배는 것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이안을 향하는 사람들의 시선에는 맹목이 깃들어 있었다.

젊고 아름다운 성기사단장. 최강의 기사. 더불어 장차 황제가 될 인물.

사람들이 그에게 기대게 되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할 것이다.

나는 엷은 미소와 함께 시선을 내리깔았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모두의 희망을 한 몸에 받고 있는 것을 바라보는 것은, 묘한 기분이었다. 이안을 알아보는 사람들의 안목이 흐뭇하기도 했지만, 더불어 그의 어깨가 너무 무거워지지는 않을지 걱정스럽기도 했다.

‘괜찮겠지.’

나는 이안의 옆얼굴을 바라보았다. 그 긴 인고의 세월을 버텨 온 사람이니, 앞으로도 잘해 나갈 터였다.

추기경의 관이 우리가 있는 이 층까지 운구되었다. 경건히 꾸며져 있는 관에 손을 내려놓으며 이안이 눈을 감았다. 그의 입에서 조용히 기도문이 흘러나왔다.

“……그리하여, 마침내 신의 품속에서 편히 눈 감으시기를.”

나지막한 목소리가 귓가에 스며들었다.

기도문이 끝나도 한동안 모두 숙인 고개를 들지 않고 묵념을 이었다.

잠시 뒤, 홀을 든 채 내내 관과 함께 움직여 온 케넨 주교가 걸음을 옮겼다.

이안 앞에 선 케넨 주교가 홀을 그에게로 넘겼다. 이안은 말없이 그것을 받아들었다. 그가 차기 추기경의 직위를 이어받게 되는 순간이었다.

‘물론 이안은 순결하지 못하니, 중요 권한들만 임시로 이어받는 정도에 불과하지만.’

그러고 보니, 다음 추기경은 누가 될까. 문득 그런 의문이 들었다.

이안 다음으로 강해질 가능성이 있는 것은 단연코 엘리엇이었다. 하지만 그 역시 머지않아 셀레나와 사랑에 빠질 예정이므로 조건 탈락이다.

‘사랑에…… 빠지겠지?’

어째서인지 아직도 엘리엇과 셀레나는 서로 소 닭 보듯 하는 관계였다.

좀처럼 피어나지 않는 애정 전선이 당황스러웠지만, 운명의 수레바퀴가 인도하는 대로 둘은 언젠가 인연이 닿을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렇다면 엘리엇 다음으로 강한 차기 추기경 후보는 누가 될까?

나는 나도 모르게 내 호위 기사를 바라보았다.

루시안 씨는 분명, 조안 경이 다음 소드 마스터를 내다볼 정도로 대단한 인재라고 했었다.

‘설마…… 그렇게 되려나?’

문득 소름이 끼쳤다.

조안 경이 만에 하나 차기 추기경이 된다면, 나는 그동안 미래 추기경을 호위 기사로 부려먹은 셈이 되었다.

‘나, 조안 경의 복지…… 잘 챙겨 주었었지?’

절로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되었다.

내가 때아닌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사람들은 묵념하듯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새 추기경이 된 이안을 향해.

그의 곁에 서 있는 바람에 덩달아 함께 묵례를 받게 된 나는 몹시 무안한 기분이 되었다.

저 멀리서부터 사람들이 맞춘 듯 고요히 묵념하고 있는 광경은 이질적이었다. 절로 피부로 소름이 돋을 만큼.

잠시 뒤, 다시 고개를 든 사람들이 일제히 이안을 바라보았다. 그 눈빛 하나하나에 선망과 믿음이 깃들어 있었다.

‘내가 좋아하게 된 사람이 참 잘난 인간이기는 하구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 나도 모르게 살며시 웃음이 흘러나왔다.

암. 내가 어렸을 때부터 눈 하나는 높았지.

그렇게 실없는 자화자찬을 하고 있을 때였다.

“감사해요, 아이린 님.”

자그마한 목소리가 귓가를 스쳤다.

근처에 서 있던 아네트가, 물기로 반짝이는 눈을 하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잘못 들은 걸까?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네?”

“저희의 버팀목이 되어 주셔서요.”

그렇게 말한 아네트가 배시시 눈웃음을 지었다. 미처 훔치지 못한 눈물이 눈꼬리에서 방울졌다.

“아이린 님이 아니었다면 훨씬 버티기 힘들고 불안했을 거예요. 다행이에요. 아이린 님이 있어서. 저희에게도…… 그리고 단장님께도요.”

아네트가 수줍은 목소리로 속닥거렸다.

내가 버팀목이라고?

나는 멍하니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쪽을 향하고 있던 시선들과 하나하나 눈이 마주쳤다.

‘아…….’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이안만을 향하고 있는 줄 알았던 시선의 상당수는, 사실 그의 곁에 있는 내게도 향하고 있었다는 걸.

나는 눈을 몇 번 깜빡거렸다.

의식함과 함께 시선이 닿고 있는 피부가 따끔거렸다.

이상한 기분이었다. 사람들이 내게 보내오는 의지의 눈빛이 무거우면서도 묘한 기운이 차올랐다. 책임감이라는 이름과도 닮은 이 기분은, 저 사람들의 눈빛이 어두워지길 바라지 않는 마음에서부터 기인했다.

‘이게, 이안이 느끼고 있던 기분일까?’

나는 천천히 이안을 올려다보았다.

시선을 느낀 그가 나를 마주 보았다. 눈과 눈이 마주치자 얽힌 듯 시선을 떼어 낼 수 없었다. 마음속 깊숙이서부터 따뜻한 기운이 차올랐다.

나는 아네트의 말을 이해했다. 내가 있어서 불안하지 않다던 그녀의 말을.

왜냐면, 내가 지금 느끼고 있는 기분이 정확히 그것과 같았으니까.

‘버팀목.’

그 단어를 떠올리며 나는 이안을 계속해서 눈에 담았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 없지는 않겠지.

하지만 그와 함께라면 아주 오랜 시간이 흘러도 버텨 낼 힘이 닳지 않으리라는 기묘한 확신이 들었다.

나는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나와 이안을 향한 눈길들을 마주하고 있자, 여러 상념이 머릿속을 적셨다.

내가 원래 세계로 돌아가고 싶은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이것이었다.

‘그곳에 내 자리가 있으니까.’

그곳에서는 이방인이 아니니까.

하지만 오늘에 와서야 나는 늦되게 깨닫고 말았다.

이곳에도 이미 내 자리는 만들어져 있었다는 걸.

‘……이곳이 좋아.’

나는 조용히 그렇게 생각했다.

이곳에서 만난 소중한 순간들과 인연들은, 이미 내버리듯 떠나갈 수 없을 정도로 내 안에서 커다래져 있었다.

* * *

“꺄아악!”

경건한 미사실에 날카로운 비명이 울렸다. 나는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어, 어떡해…….”

셀레나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투입된 후임, 솔리아 양이 은접시를 깨뜨린 채로 울상이 되어 있었다. 반짝반짝 걸레질된 바닥이 조금 미끄럽다 싶긴 했는데, 삐끗해 넘어진 모양이었다.

‘저런.’

은접시가 크게 세 동강 났다.

나는 허리 숙여 내 앞까지 굴러떨어진 은접시 조각을 줍기 시작했다. 미사용 장갑을 끼고 와서 다행이었다.

“서, 성녀님! 제가 하겠습니다!”

“솔리아 양은 장갑을 안 꼈잖아요. 손댔다간 다칠 수 있으니 가만히 있어요.”

금세 조각들을 주운 나는 허리를 펴며 살짝 웃어 보였다.

안 그래도 울먹거리던 솔리아의 눈에 더 물기가 배었다.

“감사합니다, 성녀님. 흑…….”

“울지 말고요. 또 붓겠다.”

타박하듯 장난스레 말하자 솔리아가 눈물을 삼키려 애쓰며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눈이 발개진 탓인지 토끼처럼 귀여웠다.

“성녀님, 멋있으셔…….”

“언제나 상냥하시네. 정말 반할 것 같아.”

미사실이 워낙 고요한 탓에 한껏 소리 죽인 속닥거림이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민망함에 얼굴이 좀 빨개졌다.

여기 사람들은 내가 무슨 일만 하면 추켜세우는 경향이 있었다. 아무래도 성녀라는 이름 때문이겠지.

이래서 브랜드가 그렇게 중요하다는 건가. 교양 시간에 배웠던 마케팅 이론을 떠올리며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람들이 성녀라며 높이 불러 주는 것과 달리, 나는 더 이상 예지하지 않았다.

‘당연하지. 이젠 더 아는 게 없는걸.’

내가 예지랍시고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할 수 있었던 건, 미리 읽어 놨던 원작 지식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미 이 세계는 내가 읽었던 원작과 아득히 멀어져 있었다. 더는 예지할 수 있는 내용이 있을 리 없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여전히 나를 성녀라고 부르며 선망의 눈길을 보냈다. 딱히 사기를 치고 있다는 죄책감은 들지 않았다.

‘아그네스도 그랬다는걸!’

기록에 의하면, 아그네스 역시 대마물 전쟁 이후 단 한 번의 예지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아그네스를 성녀라 떠받들며 사랑했다. 그녀의 알맹이가 지구로 돌아가 버린 이후에도 말이다.

물론 아무리 그래도 예지하지 않는데 예지의 성녀라고 불리는 게 양심에 찔리지 않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역시 나는, 구태여 그들의 착각을 정정하지는 않기로 했다. 내 성녀 노릇이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면 그건 그것 나름대로 괜찮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미사가 끝난 뒤, 나는 기도실로 향할 채비를 했다.

오늘은 두 번째로 엘룬 신을 만나기로 한 날이었다.

“그럼, 부탁드릴게요. 아무도 방해하지 않게 해 주세요.”

나는 기도실을 지키고 있는 기사들에게 웃으며 부탁했다.

저번 기도는 장장 다섯 시간에 걸쳐 이루어졌다. 아무래도 신과 대화하면 시간이 훨씬 빨리 가는 모양이었다. 이번 역시 그러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었기에 기도실 사용 시간을 아주 넉넉히 예약해 둔 상태였다.

“예, 성녀님. 저희만 믿으십시오.”

몇 시간이나 혈혈단신으로 기도하겠다는 성녀를 마주하며 성기사들이 경건한 표정을 지었다.

기도실로 들어선 나는, 이전에 그랬듯 무릎 꿇고 눈을 감았다.

곧 음성이 들려왔다.

‘결정을 내렸니?’

이전과 다름없이, 여전히 인자하고 부드러운 목소리.

한 번도 가져 본 적 없는 할머니가 있다면 이런 목소리였을까.

실없는 생각을 하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결정했어요.’

‘망설임 없어 보이는구나. 좋은 일이야.’

‘제가 어떤 요구를 하든, 들어주시는 것 맞으시죠?’

‘물론이지. 이 세계에 남든, 저쪽으로 돌아가겠다고 하든, 널 도울 것이다.’

‘정말 감사해요. ……그렇다면, 엘룬 님.’

나는 흠, 헛기침을 하곤 본론을 꺼냈다.

‘사실은, 요구 사항이 하나 더 있는데요. 혹시 그것도 함께 들어주실 수 있을까요?’

잠깐 머릿속 목소리가 정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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