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화
* * *
셀리나의 성녀 검증식은 약식으로 진행되었다.
참석자는 셀리나 본인과 나, 이안, 그리고 검증을 담당할 케넨 주교뿐.
나중에 정식으로 이루어질 임명식은 화려하게 치러지겠으나, 일단은 성녀 검증이 먼저였으므로 급박히 모든 일이 진행되었다.
이렇게까지 급하게 이루어지는 검증식은 처음인지 케넨 주교는 꽤 당황한 기색이었다.
“아, 아이린 님.”
성수반을 앞에 둔 셀리나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말했다.
“정말 이래도 되는 걸까요? 불경한 일을 저질렀다고 엘룬 신께서 천둥 같은 걸 내리시진 않을까요?”
내가 성녀 검증식 때 했던 것과 똑같은 고민을 하네.
나는 속으로 웃음을 흘렸다. 하지만 나와 달리 셀리나는 진짜 성녀였다.
“걱정하지 마요, 셀리나 양.”
“그리고, 보통 성녀님들은 신비한 힘에 의해 대성당으로 특별하게 등장한다던데…….”
“셀리나 양은 내 시녀로 일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미 대성당에 있었잖아요. 그래서 따로 부름받는 듯한 현상이 없었던 것일 거예요. 그러니, 이제 날 믿고. 거기 손을 넣어 봐요.”
눈을 질끈 감고 셀리나가 성수 안에 손을 넣었다.
잠시 후.
“오오……!”
투명하던 눈이 눈부신 황금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보글보글 피어오르는 금색 기포에 케넨 주교가 황홀한 얼굴을 했다.
“정말 성녀가 맞으셨군요! 아아, 엘룬 신께서 제국을 굽어살펴 주시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올해만 벌써 두 분의 성녀가 나오시다니요! 기적과도 같군요!”
눈물까지 흘리며 기뻐하는 케넨 주교를 보며 나는 애매한 미소를 지었다.
정확히 말하면 한 명이었지만, 뭐. 그 한 명이 여러 명분을 할 정도로 대단한 성녀니까.
셀리나는 아직 제게 닥친 일이 믿기지 않는 듯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는 말없이 그녀의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앞으로 그녀에게 어떤 풍랑들이 쏟아질지 알고 있으니까.
* * *
다음 날, 수도 전체가 뒤집어졌다.
「올해 두 번째의 성녀, 모습을 드러내다!」
「주인공은 시골 출신의 소녀!」
셀리나는 그야말로 화제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기본적으로 성녀란 존재는 관심을 몰고 다닌다. 게다가 셀리나는 출신도 독특했다. 막 수도로 상경한 시골 소녀였다는 셀리나의 과거가 사람들의 관심을 더 자극했다.
‘어디서나 신데렐라 스토리는 통하는 법이지.’
수많은 초대장과 카드가 셀리나 앞으로 쏟아졌다.
대성당은 올해 두 번째로 나타난 성녀를 대우하기 위해 아주 바빠졌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셀리나 역시 성녀에 걸맞은 교양을 갖추기 위해 갑작스러운 공부거리가 쏟아져 밤낮으로 정신이 없었다.
그런 소란 속에서 황궁 무도회가 개최되었다.
* * *
“어머. 저분들이…….”
“그래요. 맞는 것 같아요. 아이린 님이 옆에 계시잖아요.”
수군거리는 목소리들.
보지 않아도 모두 우릴 두고 하는 이야기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셀리나 양, 고개 들어요.”
나는 웃으며 셀리나를 돌아보았다.
셀리나는 황궁에 입장하는 순간부터 새빨개진 얼굴로 드레스 자락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옷이 몹시 어색한 모양이었다.
“고개 들어 봐요. 처음으로 오는 황궁이잖아요. 구경하고 싶지 않아요?”
내 말에 그제야 셀리나가 쭈뼛거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셀리나의 입술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와아…….”
번쩍거리는 샹들리에와 대리석 바닥. 화려한 옷을 입은 채 춤추는 사람들. 눈 편히 둘 곳 없이 어딜 봐도 호화로운 광경뿐이었다.
나 역시 황궁 안을 제대로 보는 건 처음이었기에, 그 광경에 잠시 눈이 홀렸다.
‘대단하네.’
나는 한숨을 내쉬며 인정했다.
‘사치가.’
선대 황제 때의 황궁은, 이렇게까지 화려하지는 않았다고 들었다. 선대 황후 폐하의 취향에 따라 고급스럽지만 절제된 미가 강조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의 황궁은 마치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보석을 온갖 곳에 때려 박은 것 같았다.
호화로워 보인다는 건 두말할 필요가 없었지만, 그만큼 눈이 피로했다.
“정말 예쁘네요…….”
셀리나가 넋 놓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러더니 내게 살짝 고개를 숙이곤 속삭였다.
“다들 아이린 님만 쳐다보고 있어요.”
글쎄. 널 쳐다보고 있는 게 아닐까?
웃으며 나는 셀리나에게 와인을 권했다. 그래도 나름 사교계에서 몇 달은 선배라고, 그녀보단 내가 조금 더 여유로웠다.
이쪽을 주목하고 있는 사람들은 많았지만, 섣불리 말을 걸어오는 자는 아직 없었다.
아마 누가 먼저 셀리나에게 말을 걸지 서로 치열한 눈치 싸움 중이겠지.
내 경험상, 이럴 때 제일 먼저 나서는 건 사교계 서열이 가장 높은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셀리나에게 가장 먼저 말을 걸게 될 사람은, 내 예상으로는 아마-
“드디어 행차하셨군요, 아이린 님.”
‘응?’
코델리아가 아니네.
유려한 미성에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아덴이 장식적인 미소를 지은 채 내게 우아히 인사했다.
“황궁 무도회에 너무 오래 모습을 보이지 않으셔서, 황실에는 관심이 없으신가 생각했었답니다.”
말하는 게 꼭, 제가 황실의 주인이라도 되는 것 같았다.
‘여전히 날 싫어하네. 얘는.’
뭐. 좋아할 이유가 없기는 했다.
나는 대충 대꾸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코델리아에게 셀리나를 소개해 주고 싶었다. 분명 셀리나에게 좋은 인맥이 되어 줄 테니까.
“안녕하세요, 아덴 님. 좋은 오후예요. 그런데 혹시 코델리아 님은 보셨나요?”
“옆에 계신 분이 이번에 새로 부름받으셨다는 그분이신가요?”
내 말을 못 들은 체하고 아덴이 셀리나를 돌아보았다. 셀리나의 어깨가 깜짝 놀라 움찔 떨렸다.
“안, 안녕하세요.”
“흠…….”
아덴의 눈이 셀리나를 위아래로 훑었다.
“안녕하세요. 아덴 오델로라고 합니다. 실례지만,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궁금해할 질문을 대표로 여쭤도 될까요?”
“아, 네. 물론이죠.”
셀리나가 긴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덴이 화사하게 웃으며 말했다.
“셀리나 님께서는 어떤 권능을 지니고 계신가요?”
“아.”
셀리나가 드디어 올 게 왔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성녀님들께서는 다들 대단한 힘을 지니고 계시잖아요. 여기 계신 아이린 님도 그렇고, 지고하신 황후 폐하의 놀라운 힘은 말할 것도 없고요.”
“아…….”
“그분의 능력은 정말 대단하시죠. 그런 치유 능력이라니. 엘룬 신께서 우리 제국을 위해 내려 주신 귀인이세요.”
셀리나의 능력을 물어 놓고, 아덴은 황후 칭찬을 한참 동안 늘어놓았다.
슬슬 지루해진 내가 아덴의 말을 끊으려던 참이었다.
좌중이 술렁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황후 폐하.”
아덴이 조잘거리던 입을 다물고 정중히 인사했다. 내 등 뒤를 향해서.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아.’
황후, 로렐라이가 이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매혹적인 붉은 머리를 폭포수처럼 늘어뜨리고, 우아한 황금색 드레스를 입은 채.
그녀의 모습은 순간 눈이 부실 만큼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성녀 아이린.”
내 앞까지 다가온 황후가, 붉은 입술을 움직여 말했다.
나는 정중히 예를 차렸다.
“황후 폐하를 뵙습니다.”
“오랜만이로군. 그리고, 옆에는…… 어제 부름받았다는 그 성녀인가.”
“화, 황. 황후 폐하를 뵙습니다.”
셀리나가 허둥거리며 예를 차렸다.
심장이 팔딱거리는 게 밖으로도 다 보일 지경이라 가엾기 그지없었다.
“흐음.”
황후가 고개를 기울인 채 셀리나를 훑어보았다.
“제국에 올해만 벌써 두 명의 성녀가 강림하다니, 엘룬 신께서 큰 은혜를 내려 주시는군. 폐하께서 선정을 펼치고 계시는 덕분이겠지.”
황후가 뜬금없이 라시드를 칭찬했다.
“셀리나라고 했던가. 그대는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지? 어떤 힘으로 제국의 번영을 돕겠는가?”
“저, 저는.”
셀리나의 입술이 잘게 떨렸다.
그녀가 도움을 청하는 눈으로 나를 돌아보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겨우 실낱같은 용기를 낸 듯 셀리나가 입을 열었다.
“저는…… 날씨를 조절할 수 있습니다, 폐하.”
“날씨를?”
황후가 한쪽 눈썹을 들어 올렸다.
좌중 역시 가볍게 술렁거렸다.
당연했다. 날씨를 조절하는 건 역대 어느 성녀도 해내지 못한, 기적 같은 능력이었으니까.
“날씨를 조절한다고……?”
“맙소사. 그런 권능이 여태 존재했나요?”
“믿기 힘들군……!”
여기저기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인상적이군. 흥미롭기도 하고.”
흥미롭다고 말하는 황후의 얼굴은, 희미하게 굳어 있었다. 바로 앞에 있는 나 정도만 느낄 수 있을 만큼 미묘하게.
‘달갑지 않은 모양이지.’
날씨를 조절한다는 건 그야말로 엄청난 권능이다. 당연히 권능의 주인공인 셀리나의 존재감도 거대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걸 견제하는 건가.’
황후와 이렇게까지 직접적으로 이야기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아름다운 외양 때문에 나도 모르게 좋은 인상을 갖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황제와 황후는 꽤 끼리끼리인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지금 바로 우리에게 그 능력을 보여줄 수 있겠소?”
“아…….”
셀리나가 당황해서 머뭇거렸다.
아직 그녀는 제 능력을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없었다. 무지개를 띄웠던 건 남을 돕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었다.
“외람되오나, 황후 폐하.”
나는 정중한 미소를 지은 채 황후에게 말했다.
“아직 셀리나 양은 능력을 완전히 개화하지 못했습니다. 이목이 많이 집중되어 긴장도 되었을 테니, 지금 능력을 입증해 보이는 것은 무리일 것 같습니다.”
“그래? 하지만.”
황후가 매끄럽게 웃으며 말했다.
“성녀란 곳 엘룬 신의 대리자를 말하는 것. 그를 자처하려면 마땅한 능력을 지니고 있어야 함은 당연하지 않은가?”
그때 시종 한 명이 황후에게 다가와 속닥거렸다.
“아, 마침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했다는군.”
테라스를 가리키며 황후가 말했다.
“즐거워야 할 무도회가 때아닌 비로 가라앉으면 곤란하지. 그대가 힘을 발휘해 주면 참으로 고마울 것 같소.”
모두 황후의 손가락을 따라 테라스 쪽을 바라보았다.
과연 갑작스러운 소낙비로 바깥이 어두워져 있는 것이 보였다.
“셀리나 양.”
나는 작게 셀리나를 부르며 고개 저었다.
“무리한 요구에 응할 필요 없어요. 셀리나 양은 성녀라는 걸 알게 된 지 고작 하루밖에 안 됐는걸요.”
“……아니에요, 아이린 님.”
셀리나가 결심한 듯 고개를 내저었다.
“여기서 제가 못하겠다고 하면, 아이린 님이 곤란해지실 것 같아요.”
“나? 난 괜찮아요. 아무렇지도 않을 테니 걱정 말아요.”
어차피, 조금 뒤면 이런 해프닝은 모두의 기억에 남아 있지도 않을 것이다.
나는 시계를 돌아보았다.
약속된 시간까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내 시선이 문을 향했다.
당장이라도 이안이 저곳을 박차고 들어올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