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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화 (78/161)

78화

‘마탑주도 저 물건의 위험성은 알 텐데!’

돈을 좀 밝히긴 해도 마법에 있어서는 세기의 천재라는 그 사람이 성마석의 위험성을 모를 리가 없었다.

성마석은 굉장한 마력이 응축되어 있는 광석이다. 일반인이 섣불리 가까이했다간 마력 과다 현상으로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그것도 모르는 사람들은 성마석의 아름다움에 홀려 너 나 할 것 없이 손을 들었다.

“천 골드!”

“네, 천 골드 나왔습니다!”

“삼천 골드요!”

“오천 골드!”

순식간에 경매가가 치솟았다. 서로 놀라울 정도의 양보심을 보여 주던 여태까지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곰 인형도 경쟁에 불이 붙자 눈에 띄게 싱글벙글했다.

“만 골드! 만 골드 나왔습니다!”

마침내 경매가가 목표했던 만 골드까지 올라섰다.

만 골드에 도달하자 앞다투어 손들던 사람들도 기세가 조금 수그러들었다.

하기야. 아무 기능도 없는, 단지 예쁘기만 한 물건을 위해 만 골드보다 많은 돈을 선뜻 지불하기는 힘들 것이다.

심지어 저 성마석은 명성 있는 다른 보석들과 달리 이렇다 할 이름조차 없었으니까.

‘슬슬 나설 차례인가.’

가볍게 헛기침한 나는, 슬며시 팻말을 들어 올렸다.

“만오천 골드! 만오천 골드 나왔습니다!”

앞서 만 골드를 불렀던 사람이 나를 홱 돌아보았다. 무심코 눈이 마주친 나는 곧 그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아덴이잖아?’

아덴이 나를 표독스러운 눈길로 노려보고 있었다.

그래도 나는 명색이 성녀인데, 저렇게 대놓고 노려봐도 되는 건가.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팻말을 까딱까딱 흔들었다. 그걸 도발로 알아들었는지 아덴의 눈에 독기가 어렸다.

“오오, 이만 골드 나왔습니다!”

아덴이 또 팻말을 들어 올렸다.

유명하지도 않은 보석 하나에 이만 골드라. 웬만한 귀족으로서도 선뜻 지불하기 힘든 액수였다.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계좌에 든든하다 못해 배가 터질 것같이 많은 돈이 들어 있다고 한들, 타고난 소시민 감성은 어쩔 수 없었다.

‘무슨 돌멩이 하나에 그만한 돈을 줘야 해. 포기할까?’

다른 물건을 노려봐도 나쁠 건 없었다. 굳이 저 위험천만한 성마석을 가져야 할 이유는 없었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팻말을 내리려던 때였다.

“삼만 골드! 삼만 골드까지 나왔습니다!”

곰돌이가 신난 목소리로 외쳤다.

돌멩이 하나에 삼만 골드라니. 돈이 쓸데없이 넘쳐 나서 주체를 못 하는 사람임이 틀림없었다.

삼만 골드의 주인공을 찾아 두리번거리려던 나는 일 초 뒤 우뚝 멎었다.

바로 내 왼편에 계신 분이 무심한 얼굴로 팻말을 내리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저건 왜 갖고 싶은 겁니까?”

당황한 내게 이안이 심드렁히 물었다. 나는 입술을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그, 그냥. 예뻐서요?”

“단지 예뻐서? 까마귀도 아니고.”

“삼만 오천 골드 나왔습니…… 헉, 사만 골드! 사만 골드입니다!”

날 까마귀라 매도하면서도 이안은 다시금 팻말을 들었다.

슬쩍 돌아본 아덴의 옆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보석엔 별 관심도 없었잖습니까?”

“보석에 관심 없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흐음. 그렇습니까?”

이안이 툭 내게 시선을 던졌다.

“백화점을 다니게 할 게 아니라 보석상이나 들여올 걸 그랬군요.”

“……아니, 뭐 쌓아 놓을 만큼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요. 그런데 그 팻말, 계속 드실 건가요?”

이야기하면서도 이안은 리드미컬하게 팻말을 잘도 들었다. 그럴 때마다 경매가는 계속해서 치솟고 또 치솟았다.

“칠만 골드까지 나왔습니다!”

곰 인형은 어찌나 신이 났는지 거의 방방 뛸 기세였다.

놀랍게도 아덴은 아직까지 따라붙고 있는 모양이었다. 얼굴색은 이제 붉다 못해 희게 질려 있었지만.

내 말에 이안이 아, 하고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그렇군요.”

그렇게 말한 이안이 팻말을 거꾸로 들어 올렸다. 좌중이 일순 술렁거렸다.

“두 배! 두 배 나왔습니다! 십사만 골드입니다!”

팻말을 거꾸로 드는 건 경매가를 두 배로 올리겠단 뜻이다.

처음 나온 더블에 광장 내 모든 시선이 우리에게로 쏠렸다. 수많은 눈빛에 뺨이 따끔거릴 지경이었다.

“이안 님? 저 그렇게까지 저게 갖고 싶은 건 아닌데요?”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해 웃는 낯을 하면서도, 나는 그에게만 들릴 목소리로 속닥거렸다.

애초에 내 목표는 그냥 만 골드였다. 만 골드가 넘는 물건만 낙찰받으면 되었다.

그런데 십사만 골드라니. 과잉 지출도 이런 과잉 지출이 없었다.

“그렇습니까?”

이안이 살짝 고개를 기울였다.

“하지만 이미 손에 넣으신 것 같은데.”

“십사만 골드! 더 없으십니까! 십사만 골드!”

곰 인형이 발랄히 외쳤지만, 더 이상 올라오는 팻말은 없었다.

아덴은 태연한 척 표정을 유지하려는 것 같았지만, 희게 질린 낯빛까지 숨길 순 없었다.

곰 인형이 카운트다운을 세기 시작했다.

“셋! 둘! 하나! ……낙찰입니다!”

낙찰을 알리는 망치 소리와 함께 사람들이 손뼉을 쳐 댔다.

이안의 때아닌 돈 자랑이 무척 감명 깊었던 모양이었다.

“74번 손님께서는 경매 이후, 좌탑 최상층으로 올라와 주십시오!”

좌탑 최상층!

곰 인형의 말에 나는 눈을 빛냈다.

‘잠깐. 그런데 74번은 내가 아니잖아?’

당연한 말이지만, 낙찰받은 건 내가 아닌 이안이었다. 따라서 좌탑에 올라가는 것 역시 이안일 터였다.

안 되는데.

내 목적은 성마석이 아니라 낙찰된 물건을 받기 위해 탑에 오르는 것이었다.

“저어, 이안 님.”

나는 착한 목소리로 이안을 불렀다.

“절 위해 그런 거금을 써 주셔서 감사해요. 정말 감동했답니다.”

나의 다정한 인사에 주변 사람들이 우리를 구경하며 저들끼리 소곤거렸다.

“한눈에 저 보석에 반해 버렸거든요. 얼른 손에 넣고 싶네요. 제게 선물해 주시는 거니까, 이따 좌탑에도 제가 받으러 다녀올게요. 그래도 되죠?”

애교스레 눈을 깜빡거리자, 이안이 미간을 좁히더니 움찔 뒤로 물러섰다.

‘왜 저러지?’

설마 내게 꿍꿍이속이 있다는 걸 간파한 걸까?

요즘 이안에게 평소보다도 더 많이 거짓말을 남발하고 있는 나는 가슴에 대바늘이 박힌 듯 찔렸지만, 애써 의연한 체했다. 오히려 이런 마음을 들킬까 봐 더 과장된 행동을 취했다.

“안 될까요? 여보……?”

일부러 말끝을 애처롭게 떨자, 이안이 이상한 반응을 보였다. 이를 굳게 악문 것이다.

예상치 못한 반응에 나는 당황했다. 화가 났나? 내가 기어코 선을 넘고 만 걸까? 최근 이안에게 지나치게 까불어 대고 있음은 자각하고 있었다.

나는 재차 입을 열었다. 이번엔 일부러가 아니라 저절로 목소리가 떨렸다.

“이안 님?”

“마음대로 하십시오.”

이안이 고개 돌리며 내뱉듯 말했다.

뭐지?

행동은 서릿발 날리듯 차가웠으나, 어쨌든 원하던 대답을 얻어 냈다. 나는 남몰래 가슴을 쓸어내렸다. 우여곡절 끝에 탑을 오를 수 있게 된 것이다.

* * *

로제나 거리에 우뚝 서 있는 쌍둥이 탑.

통칭 마탑이라 불리는 두 개의 탑은, 좌탑과 우탑으로 나뉘어 있다.

그중 연구실과 실험실로 이루어져 있는 곳이 우탑, 상업화되어 장사판이 펼쳐진 곳이 좌탑이었다.

나는 그중 좌탑을 오르고 있었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공간 이동 장치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친절한 마법사가 나를 안내해 주었다.

공간 이동 장치가 있구나. 최상층까지 두 다리로 오르는 것을 각오했던 나는 깊이 안도했다.

공간 이동 장치로 향하며 나는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원작 속에서 마탑에 대해 자세한 묘사가 나온 적은 없었다. 그 때문에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새로웠다.

일 층은 일전에 다른 재료들을 구매할 때 들른 적이 있어 눈에 익었지만, 내가 지금 서 있는 이 층부터는 완전히 생소한 풍경이었다.

‘여기부터가 VIP 구역인가.’

눈에 띄게 번쩍거리는 것들로만 꾸며진 공간을, 눈에 띄게 화려히 차려입은 사람들이 거닐고 있었다. 내가 그들을 구경하는 동안 그들 역시 나와 이안을 흘끔거리기 바빴다.

최상층으로 향하는 공간 이동 장치 앞에 서자, 우리를 향한 시선이 조금 더 따가워졌다.

최상층에 갈 수 있는 건 VIP 중의 VIP, 마탑의 최고 대우를 받는 손님뿐이라는 사실을 다들 아는 모양이었다.

‘이런 곳까지 오게 될 줄이야.’

공간 이동 장치 앞에 선 나는 가볍게 심호흡했다.

최상층은 난다 긴다 하는 귀빈에게도 쉽게 개방되는 공간이 아니었다.

하지만, 일 년에 딱 한 번. 비교적 적은 노력을 들여 최상층에 오를 수 있는 기회가 있다.

그게 바로 경매에 참여해 만 골드 이상의 물건을 낙찰받는 것이었다.

나는 이안과 함께 원반처럼 생긴 장치 위에 올라섰다.

잠시 뒤, 몸이 붕 뜨는 기분과 함께 시야가 빠르게 바뀌었다.

“도착하셨습니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벌써 도착이라고?

나는 어리둥절한 기분으로 장치에서 내려섰다. 이 정도면 지구의 엘리베이터보다도 빨랐다.

최상층은 아주 깔끔하고 정적인 공간이었다. 아래층과는 달리 오가는 사람 역시 아무도 없었다.

“저 방으로 들어가시면, 물건을 인도받으실 수 있으실 겁니다.”

마법사가 친절히 웃으며 설명했다. 나는 이안을 돌아보았다.

“다녀올게요, 이안 님.”

마탑의 보안 정책에 따라 저 방엔 한 사람만 들어갈 수 있었다.

아무리 이안이라 해도 타 집단의 룰을 대놓고 무시할 순 없을 터. 내게는 아주 잘된 일이었다.

나는 마법사의 안내에 따라 벨벳으로 장식된 커다란 문 안으로 입장했다.

안은 굉장히 넓었다.

곳곳에 놓인 수정 구슬이 신비로운 분위기를 불러일으켰다. 넓게 난 창은 보라색 커튼으로 가려진 덕에 온 방에 묘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마치 ‘마법사의 사무실’을 상상한 그대로 형상화한 것 같은 공간이었다.

내 등 뒤로 살포시 문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누군가 나를 불렀다.

“안녕하세요? 고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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