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화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안이 하는 말은 분명 제국어가 맞는데,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전기 충격을 주다니요?”
“저기 그렇게 써 있지 않습니까?”
현수막에 눈짓한 이안이 눈살을 찌푸렸다. 다시 봐도 이해가 안 된다는 듯한 반응이었다.
‘무슨 소리지? 아, 혹시. 사람 마음을 가지고 장난치는 마법이라 탐탁지 않은 건가?’
엄격하기로 유명한 성기사단장의 표정이 굳자 마법사가 안달복달해 하는 것이 보였다.
나는 불쌍한 마법사를 위해 부러 활짝 웃으며 말했다.
“에이, 심각하게 받아들이시는 건 아니죠? 원래 사랑에 빠진 사람들이 다 그렇잖아요. 상대의 마음을 얻을 수만 있다면 무슨 수단이든 쓰고 싶어 하는 법이죠.”
어차피 저 마법약이 진짜 사랑을 만들어 낼 리는 없었다. 기껏해야 원래 있던 호감이나 약간 더 증폭시키는 마법이겠지.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 그쯤은 잘 알 터였다. 하지만 사랑이란 게 원래 그런 것 아닌가. 장삿속이란 걸 알면서도 사랑이 담보로 잡히면 괜히 솔깃해지는 법이다.
“도통 이해가 안 가는데.”
이안의 표정은 여전히 굳어 있었다. 그가 미간을 좁힌 채 내게 물었다.
“왜 좋아하는 사람의 심장 건강을 해치려는 겁니까?”
“……?”
이쯤 되니 물음표가 머릿속에 백만 개쯤 들어찬 기분이었다.
심장 건강? 도대체 그게 무슨 소리지?
이안이 하는 말이 이렇게까지 이해되지 않기는 처음이었다. 멍하던 찰나 내 머릿속에 설마, 하는 생각이 스며들었다.
‘설마, 이 사람.’
짜릿짜릿 전기 충격 운운하는 캐치프레이즈를 글자 그대로 받아들인 건가?
에이. 아무리 그래도, 설마.
나는 고개를 휘휘 저었다. 아무리 이안이 저 얼굴에 저 나이 먹도록 동정을 지킨 희대의 정절남이라고 해도, 사랑에 대해 그렇게까지 무지하진 않을 터였다.
“그…… 이안 님. 아시죠? ‘짜릿짜릿’이나 ‘전기 충격’은 누군가를 좋아하게 된 마음 상태를 표현하는 말로 많이 쓰여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생전 처음 듣는 소리라는 듯 이안이 눈썹을 찌푸렸다.
맙소사. 나는 이마를 탁 짚었다.
여태 도대체 얼마나 메마른 삶을 살아왔으면 사람이 이 지경이 됐을까. 때아닌 연민이 흘러넘칠 지경이었다.
“누군가를 좋아하면 심장이 막 두근거리잖아요. 꼭 전기를 맞은 것처럼!”
거기까지 말한 나는 이안에게만 들리도록 그에게 살짝 달라붙어 속닥거렸다.
“정말 모르세요? 직접 겪어 본 적은 없으셔도, 풍문으로라도 들어 본 적은 있으실 텐데요!”
진짜 모른다고? 정말? 이렇게 흔한 비유를?
내가 가까워지자, 이안이 흠칫 뒤로 물러났다. 나는 황당해서 조그만 목소리로 속닥였다.
“뭐 하세요? 부인이 다가갔다고 물러나는 남편이 어디 있죠? 얼른 가까이 오세요!”
타이르자 이안이 굳은 눈으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마지못한 듯 그의 손이 내 어깨를 가볍게 감쌌다. 미리 연습해 놓았던 포즈였다. 요즘 연인들은 다 이러고 길거리를 걸으니까.
그런데 내 어깨를 감싼 이안의 손가락이 묘하게 굳어 있었다. 의아한 눈으로 올려다본 이안은, 내가 본 중 제일 이상한 얼굴이었다.
“……아니. 그럴 리가.”
이안이 무어라 중얼거렸다. 그 목소리는 너무 낮아 바로 곁에 있는 나조차 들리지 않았다. 뭐라고 하는 거지?
곧 그는 헛웃음을 터뜨리기까지 했다.
“잠을 못 자니 좀 돌아 버렸나 보군.”
“네? 잠을 못 주무셨다고요? 얼마나요?”
어쩐지 요즘 침실에 너무 안 들어온다 싶기는 했다. 그래도 다른 곳에서나마 잠을 청하고 있을 줄 알았는데. 설마 정말 전혀 자지 않고 있었던 걸까?
내 물음에 간단한 대답이 떨어졌다.
“이틀.”
“네?! 이틀이나요? 그러다 병나세요. 제정신이 아니게 된다고요!”
이틀이나 안 자다니. 저러다간 나인이 수를 쓰지 않아도 이안 혼자 고꾸라질 터였다.
“안 그래도 걱정 중입니다.”
이안이 무섭도록 굳은 얼굴로 말했다. 그 얼굴에 나도 덩달아 심각해졌다.
‘용의 발톱이니 뭐니, 그 보양식들 전부 내가 아니라 이 사람이 먹어야 했던 거 아니야?’
그런 걱정이 들 정도로, 지금 넋 놓고 있는 이안의 상태는 어딘가 심각해 보였다.
그때였다.
뎅, 뎅, 뎅, 뎅, 뎅.
시계탑의 종이 정확히 다섯 번 울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
긴장이 스멀스멀 피부를 타고 올라왔다.
시계탑이 알려 준 현재 시각은 오후 다섯 시.
‘그 행사’가 열릴 시간이었다.
그렇게 생각하기가 무섭게, 쩌렁쩌렁한 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인위적으로 증폭된 목소리가 거리를 메웠다.
바글거리던 사람들이 깜짝 놀라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뭐, 뭐야. 뭐야?”
“아, 다섯 시구나. 경매 시작 시간!”
“경매? 웬 경매?”
“아니, 몰랐어? 오늘 축제의 꽃이잖아.”
주변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저 말대로, 오늘 축제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이 대형 경매였다.
어째서 연인들을 위한 사랑 축제의 하이라이트가 뜬금없이 경매냐, 하면…….
‘사랑을 표현하기 가장 적합한 수단은 뭐니 뭐니 해도 돈이라나. 뭐라나.’
마탑주의 그런 철학이 듬뿍 배인 결과물이었다.
“광장에서 곧 경매가 시작됩니다. 올해도 다양하고 환상적인 물건들이 준비되어 있으니 부디 즐겨 주시길!”
스피커로 증폭한 듯한 저 목소리의 주인공은 리젤로였다.
목소리가 상기된 걸 보니 꽤 신이 난 듯한 모양이었다. 하기야 연인에게 잘 보이기 위해 돈을 아끼지 않을 호구…… 아니, 손님들을 생각하면 아주 신명 나겠지.
‘하여간 돈 귀신.’
혀를 내두르면서도 나는 이안에게 재촉했다.
“저희도 얼른 가 봐요!”
“경매에 말입니까?”
“네. 못 들으셨어요? 다양하고 환상적인 물건들을 준비했다잖아요. 뭐가 있을지 너무 궁금한데요!”
정말 그게 이유의 전부라는 듯 나는 한껏 해맑은 표정을 지었다.
이안의 소매를 끌어당기며 은밀히 속삭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사람들 앞에서 저에 대한 당신의 사랑을 또 한 번 각인시킬 기회예요. 절 위해서 비싼 보석 하나 딱 낙찰받으시면 다들 얼마나 감동하겠어요. 이거 한 방이면 발 부르트도록 백화점 돌아다니는 거랑 같은 효과가 날걸요?”
빈틈없는 논리에 이안은 반박할 말을 찾지 못한 듯했다. 다행히 나는 수월히 이안을 광장까지 데려갈 수 있었다.
“허, 헉. 이안 님이다.”
“성녀님도 계셔.”
여기서도 우리를 발견한 사람들이 마치 모세의 기적처럼 길을 터 주었다.
조금 민망한 기분을 느끼면서도 나는 사양 않고 광장의 중심을 향해 나아갔다.
“모두 어서 오십시오!”
“히익. 저게 뭐야?”
“곰 인형이 말을 한다……!”
사람들이 기겁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광장 중심에 위치한 단상 위에서, 성인 남성 키의 반만 한 곰돌이 인형이 손을 흔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럼 첫 번째 물건을 공개하겠습니다. 주인공은 바로, 하트 다이아몬드 원석! 가공이 전혀 들어가지 않은 천연 다이아몬드입니다! 채굴될 때부터 완벽한 하트 모양이었다는군요!”
마탑에서 이루어지는 경매라는 이름이 무색하게도, 경매 물건은 마법과 전혀 상관이 없었다. 그냥 비싸 보이는 물건을 아무거나 가져와 파는 것이 분명했다. 연인들을 위한 축제라는 콘셉트는 사실상 이 경매를 위해 희생되고 만 것이다.
그런데도, 행사가 주는 열기 때문일까. 물건들은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갔다. 사람이 워낙 많기도 했고, 경매에 나온 물건들이 연인들의 감수성을 자극할 만큼 낭만적인 것들이 많기도 했다.
열띤 호응 속에 수많은 물건이 단상 위에 올랐다 팔려 나갔다.
나는 신중히 때를 노렸다.
특별히 원하는 물건이 있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적당히 가치 있어 보이는 물건이어야만 했다.
예쁘고 신기한 물건, 유용해 보이는 물건이 잔뜩 올라왔다.
하지만 최종 낙찰가가 만 골드를 넘어가지는 못했다. 손님들이 어찌나 서로 양보를 잘하는지, 짜고 온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사회를 보는 곰 인형의 목소리에도 기운이 시무룩히 빠졌다.
‘으음, 확 불붙을 정도로 괜찮은 물건 없나.’
하긴, 원래 진짜 가치 있는 건 막바지에 나온다고들 했다.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
‘그 물건’이 나온 건 그렇게 생각한 순간이었다.
“다음 물품은, 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황홀해질 만큼 아름다운 보물입니다! 무려 마탑주가 직접 세공한 보석을 소개합니다!”
마탑주가 직접 세공했다는 이야기에 좌중이 술렁거렸다.
곰 인형이 과장된 몸짓으로 천막을 거둬들였다.
그 안에서 모습을 드러낸 건, 거의 주먹만 한 크기의 둥그런 보석이었다.
“와아.”
“어머나…….”
좌중이 또 한 차례 술렁거렸다.
보석은 완전히 둥그렇다기보다는 수백 개의 면과 각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그 각각의 면마다 조금씩 다른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무지개를 한데 뭉친다면 저런 모습이 될까? 오색 빛이 조화롭게 빛나는 모습은 보석에 문외한인 나에게도 황홀하게 보였다.
그렇게 생각한 건 나뿐만이 아닌 듯, 여기저기서 감탄 어린 한숨이 터져 나왔다.
‘아니, 잠깐. 그런데 저거…….’
보석의 남다른 빛이 어딘가 눈에 익었다.
잠깐 머리를 뒤적거린 나는 곧 눈을 커다랗게 떴다.
저 심상치 않은 오색 빛. 저건…….
‘성마석이잖아!’
나는 믿기 힘든 눈으로 단상 위 성마석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동굴에서 발견했을 때와는 그 모습이 많이 달랐지만, 원작을 본 나는 저게 정제된 상태의 성마석임을 알 수 있었다.
저 위험한 물건이 이렇게 떡하니 팔리고 있어도 되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