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5화 (65/161)

65화

그러나 아무리 둘러봐도 주문을 외고 있는 사람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아마 몸을 숨기고는 있겠지만, 마법진 근처에서 멀리 떨어질 순 없을 테니 분명 이 건물 안에 있을 터.

‘딱히 숨어 있을 만한 곳이 없는데.’

지하 무도회장인 탓에 테라스도 없었고, 따로 방이 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이안에게 시간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 알 수 없다는 초조함에 집중이 되지 않았다.

그때 문득 잠에 취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흐으음…… 이 케이크 진짜 살 안 쪄요? 더, 더 주세요. 오백 개 주세요. 맨날 먹을래. 계속 주세요.”

광대에게 당해 강제로 잠에 빠져든 귀족 한 명이, 잔뜩 풀어진 얼굴로 헤실거리며 잠꼬대했다. 이까지 가는 바람에 더 잘 들렸다.

그 귀족의 잠꼬대가 유난히 요란하긴 했지만, 잘 살펴보니 쓰러져 있는 피해자들 대부분이 크고 작은 잠투정을 부리고 있었다.

행복해 보이는 얼굴, 무언가에 쫓기고 있는 듯 공포에 질린 얼굴, 혹은 침을 질질 흘리는 얼굴.

피해자들의 모습은 다양했지만, 어쨌든 꿈에 푹 잠겨 든 얼굴이라는 점에서는 모두 같았다.

하지만 쓰러져 있는 피해자 중에는 엎드려 있거나 내게서 등을 돌린 상태라 얼굴을 확인할 수 없는 사람들도 있었다.

‘혹시?’

나는 무도회장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수많은 귀족을 바라보았다. 미처 도망치지 못하고 광대에게 당한 이들의 수가 꽤 많았다.

‘마법사는 사술을 끝마치기 위해 이 자릴 벗어날 수 없을 테고, 딱히 몸을 숨길 만한 곳도 없어. 그렇다면…….’

역시 이 안에 있을 수밖에 없단 이야긴데.

나는 찝찝한 눈으로 널브러진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혹시, 저 안에?

“이안 님. 혹시…….”

거기까지 말한 나는, 문득 내 손에 아직도 이안의 팔이 잡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직도 안 뺐어?’

잡은 사람이 하기엔 웃긴 말이지만, 조금 당황스러웠다.

내가 아는 이안은 이성과의 접촉을 극도로 꺼리는 인간이었으니까.

‘설마 진짜 심신 안정 효과를 누리고 있는 건가.’

내 체온이 그렇게 따스했던가, 하는 때아닌 물음에 나는 잠시 골몰했다.

아니면, 혹시―

‘그새 사술에 완전히 침식된 걸까?’

나는 살피는 눈으로 이안을 올려다보았다.

“뭐죠. 왜 말을 하다 맙니까?”

말투는 내가 아는 이안 그대로였다. 다정함이라고는 조금도 없이 까칠하고 차가운.

이안의 성격이 저렇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만약 지금의 이안이 진짜 그가 아닌 나인이 조종하는 꼭두각시라면, 그놈들이라 해도 이 정도는 쉽게 꾸며 낼 수 있을 터였다.

‘게다가 그 녀석들은 나와 이안이 철저한 비즈니스 관계란 것도 모를 테지.’

일단 그놈들은 내가 이안을 무슨 수를 써서든 꾀어낸 걸로 알고 있을 테니, 우리가 스킨십이라곤 일절 없는 쇼윈도 부부라는 사실까진 모른다.

‘설마, 그래서 이렇게 접촉에 관대한 건가?’

나는 아직도 이안의 팔에 닿아 있는 내 손을 의심스레 쳐다보았다.

아니. 곧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정말 이안이 사술에 먹힌 거라면 그건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경우다. 일단은 그 경우는 배제하고 행동하는 게 옳았다.

마음을 다잡은 나는 이안에게 다시금 말을 건넸다.

“저기 쓰러져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마법사가 몸을 숨기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말로 뱉고 보니 상당히 신빙성 있는 의심이란 생각이 들었다.

잠든 사람들이 몰려 있는 곳으로 한 발자국 걸음을 떼자, 잠깐 잠잠했던 광대들이 허우적거리며 몰려왔다.

“죽어!”

“나쁜 인간, 죽어.”

아이들이 옹알이하듯 어설픈 말을 내뱉으며 광대들이 내게 나팔을 휘둘렀다.

그러나 아까처럼 아예 달려들려 하진 않았다. 마치 뭔가가 두려운 듯이. 아마 내 뒤에 있는 이안 때문일 테지.

‘그나저나 이 녀석들 반응이 이상한데.’

나는 시험 삼아 쓰러진 사람들에게로 한 발자국을 더 내디뎠다.

그러자 광대들이 와글와글 떠들며 뿌우우 나팔을 불어 댔다.

“저리 가! 저리 가!”

“죽어! 꺼져!”

나는 눈을 빛냈다.

역시, 이 녀석들. 내가 쓰러진 사람들에게로 가까워질 때마다 예민해진다. 마치 저 사이에 있는 누군가를 지키라는 지령을 받은 것처럼.

“죽어! 죽어!”

짧게 생각하는 와중에도 광대들의 수는 빠르게 불어났다. 도대체 어디에서 자꾸 솟아나는 건지, 몇 초가 지날 때마다 두 배씩 불어나고 있었다.

‘이래서야 곤란한데.’

흑마법사가 쓰러진 사람들 사이에 숨어 주문을 시전 중이리라는 것은 이미 확신이 들었다.

그러나 답을 알아냈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우릴 가로막는 두터운 광대 벽을 뚫어야 했고, 뚫고 나서도 저 많은 사람을 일일이 확인해야 했다.

‘골치 아프네. 물량 공세.’

나는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몇 번이고 되새기는 사실이지만, 지금 이안에게는 시간이 별로 남아 있지 않았다.

초조했지만 수가 없었다. 나는 다급히 이안을 돌아보았다. 이안의 명령으로 성기사들이 총출동한다면 그래도 승산이 있을지 몰랐다.

그때 어린아이가 징징거리는 듯한 목소리가 귓전을 찔렀다.

“비켜! 비키라고오!”

“다 죽일 거야! 흔적도 안 남게 다져 버릴 거야!”

내 근처까지 다가와 나팔을 불어 대는 놈들 탓에 마침내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랐다.

더는 못 참겠다. 저놈의 나팔로 광대들의 이마를 두더지 잡기 하듯 후려치고 싶었다. 입을 벌린 나는 온갖 저주와 짜증을 담아 광대들을 향해 외쳤다.

“너희나 입 닥치고 내 앞에서 썩 꺼져 버― 으으읍?!”

지나치게 화가 치밀어 오른 탓일까, 소리치는 성대에 울컥 열이 오른다고 느낀 순간이었다.

커다란 손바닥이 내 입을 틀어막았다.

갑작스러운 습격에 나는 눈을 크게 뜨고 읍읍거렸다. 그러나 손바닥은 내 입을 놔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나는 황당함과 원망을 가득 담은 눈으로 이안을 돌아보려 했다. 내게 이런 짓을 할 사람은 이 인간뿐이었다.

그런데 뒤를 돌아보려던 그때, 이안이 내 입을 틀어막은 걸로도 모자라 나를 번쩍 안아 들었다.

“흐으읍! 흐읍?”

‘왜 이래요. 미친 거 아냐?’

나는 경악하며 땅을 내려다보았다. 키가 훌쩍 큰 성인 남성에게 들린 탓에 발이 허공에 붕 떠 있었다.

“우으으읍!”

‘왜 이런 짓을 하는 거죠!’

이루 말할 수 없는 당혹감에 나는 팔만 허우적댔다. 그래 봤자 물론 나를 단단히 안은 팔엔 미동도 없었다.

이안은 나를 안은 그 상태로 광대들로부터 멀어졌다. 전투에 매진하고 있던 성기사들이 그런 우리를 놀란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 느껴졌다.

황당함에 머리가 어지러웠다.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아 들다니. 그 이안 에스테반이?

무슨 연유로 이런 짓을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역시 사술이 완전히 진행되어 버린 걸지도 몰랐다.

“진정하시죠. 부인. 여기부턴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패닉에 빠진 나와 달리 등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지독히 태연했다. 사술에 걸린 사람의 목소리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알아서 한다는 사람이 전장 한복판에서 과년한 레이디를 안아 들어?

기가 막힌 나는 고개 돌려 이안을 잔뜩 노려보았다. 그러나 물론 내 눈빛 공격 따위에 기가 죽을 이안이 아니었다.

“전군, 대열을 잡아라.”

이안은 나를 안아 든 채로도 위풍당당히 명령할 줄 알았다.

무도회장에 모인 온 성기사들이 이안의 명령을 새겨들었다.

“오 분 안에 저것들의 수급을 모두 가져와라.”

기사들이 일제히 광대들에게로 달려들기 시작했다.

* * *

일은 순식간에 마무리되었다.

약간의 마찰이 있었지만, 성기사들은 성공적으로 광대들을 제압했다.

놈들의 수장인 나이트메어를 이미 이안이 처치한 뒤였기에 전투는 우리 쪽에 많이 유리해 보였다.

광대들을 처리한 뒤는 일사천리였다.

쓰러진 귀족들 사이에는 과연 흑마법사가 숨어들어 있었다.

잠에 든 척 숨어 있던 마법사는, 기사들에게 발각된 순간까지도 입술을 움직여 주문을 외웠지만 거기까지였다.

뒤통수를 호되게 얻어맞은 마법사는 그대로 진짜 잠에 빠져들었다.

시전자가 정신을 잃자 마법진도 자동으로 힘을 잃었다.

잘린 염소 머리를 확인한 이안은 거기 담겨 있던 마력의 맥이 완전히 끊겼음을 확신했다.

그것으로 모든 일이 일단락되었다. 부상병은 꽤 있었지만 사망에 이른 성기사는 없었고, 흑마법에 의해 제물로 바쳐진 성기사는 더더욱 없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안의 눈동자 색 역시 원래대로 돌아왔다는 거다.

대성당으로 돌아가는 마차 안에서, 나는 맞은편에 앉은 이안을 면밀히 관찰했다.

‘일단 겉보기에는 이상이 없어.’

새까맣게 물들었던 그의 눈동자는 언제 그랬냐는 듯 투명한 바닷빛을 되찾은 채였다.

하지만 그게 이안이 사술로부터 안전하다는 증거가 되진 못했다.

흑마법사가 시전을 끝맺지 못한 건 확실했지만, 그래도 이안은 이미 사술에 걸린 상태였다. 아직 그 잔재가 그의 정신에 남아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뭘 그렇게 뚫어져라 바라봅니까.”

이안이 삐딱하게 고개를 기울인 채 내게 툭 말을 던졌다.

저 불량한 어투는 분명 이안이 맞았다. 하지만 아까도 말했듯, 이 정도는 꼭두각시도 충분히 흉내 낼 수 있었다.

‘가짜 이안이라면 모를 만한 정보를 묻기엔 위험 부담이 큰데.’

가령 나와 이안이 맺은 계약을 들먹여 눈앞에 있는 이안의 진위 여부를 확인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만에 하나 가짜라면 내 비밀만 적에게 고스란히 까발리는 꼴이 된다.

‘내가 떠본다는 걸 들키지 않으면서 떠보는 게 필요해.’

“왜 말이 없죠. 그대 잘못을 알긴 아는 모양입니다?”

“…….”

“대체 왜, 당신은 내 당부를 듣는 시늉도 안 하는 겁니까.”

이안이 차게 굳은 얼굴로 나를 추궁했다.

평소라면 오금이 저릴 정도로 긴장했겠지만, 다른 생각에 골몰해 있는 지금의 내겐 크게 와닿지 않았다.

‘자연스레 진짜인지 가짜인지 떠볼 수 있는 방법이라…….’

문득 머릿속을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있었다.

아까 전, 스킨십을 싫어하는 이안이 날 번쩍 안아 들었던 것이 떠오른 것이다.

‘이거다. 진짜를 구분할 방법.’

다시 생각해도 괜찮은 아이디어였다.

행동은 빠를수록 좋다. 나는 자세를 고쳐 앉아 이안을 불렀다.

“이안 님.”

갑작스러운 내 태도 변화를 눈치챘는지 이안이 한쪽 눈썹을 찡그렸다.

“뭡니까? 변명을 하려는 거라면……”

“저도 알아요. 오늘 제가 많이 경솔했죠.”

나는 얼른 사과의 말을 입에 담았다.

말허리가 잘린 이안이 당황한 듯 나를 바라보았다.

“죄송해요. 제가 잘못했어요. 그러니…… 용서해 주세요.”

용서를 구하는 내 목소리는 점점 작아지고, 비밀을 속삭이듯 은밀해졌다.

이상을 감지한 듯 이안의 벽안이 옅게 흔들렸다.

“용서해…… 주실 거죠?”

그렇게 말하며 나는 슬그머니 몸을 일으켜, 맞은편으로 걸어갔다.

달라붙을 정도로 가까운 곳에 앉자, 이안의 몸이 긴장으로 굳는 것이 느껴졌다.

“그쵸, 여보?”

나지막이 속삭이며 나는 이안을 빤히 올려다보았다. 마차가 잘못 덜컹거리기라도 했다간 피부가 부딪힐 거리에서. 속눈썹을 의도적으로 팔랑거리며.

여기서 진짜 이안이 보일 반응은, 물론 하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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