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2화 (42/161)

42화

「허리 마사지사를 불러 놨습니다. 일어나면 줄을 당겨 사용인에게 기별하십시오.」

허리 마사지?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안이 나를 위해 허리 마사지사를 불렀다고?’

도대체 왜?

난데없는 배려에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쪽지를 슬그머니 옆으로 밀어내려던 순간이었다.

“윽.”

나는 허리춤에 손을 대고 신음했다.

욱신거리는 고통이 허리를 싸하게 울렸다.

뭐야. 내 허리가 왜 이러지?

꼭 누군가에게 얻어맞은 것처럼 허리가 아팠다.

나는 허리를 부여잡고 아네트에게 말했다.

“아네트 양. 마, 마사지사를.”

“네?”

“이안 님이 허리 마사지사를 불러 놨다고 했어요. 들어오라고 해 줄래요?”

“허, 허리 마사지…… 네, 넵!”

아네트가 또 얼굴이 새빨개져선 황급히 방을 나섰다.

사상은 불순해도 행동은 빠릿빠릿한 친구였다.

이윽고 마사지사가 들어와 내 허리를 손봐 주었다.

숙련된 손길에 한결 나아지긴 했지만, 그래도 뻐근한 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으…… 아직 안 풀리네.”

마사지사가 돌아가고 난 뒤, 허리를 부여잡으며 말하자, 옷을 갈아입게 도와주던 아네트의 손길이 눈에 띄게 허둥거렸다.

이안을 마주한 건 점심시간이 다 되어서였다.

“제 몸이 대체 왜 이러죠?”

점심 식사가 풍성히 차려진 식탁은 보지도 않고, 나는 이안에게로 성큼성큼 걸어가 속닥거렸다.

이안이 내게 툭 시선을 던졌다.

“무슨 소립니까. 몸?”

“아침에 일어나니까 허리가 아파서 죽을 것 같던데요!”

“마사지사가 안 갔습니까?”

“만져 주고 가셨어요. 그래도 완전히 나아지지 않았다고요.”

이안이 잠시 날 빤히 바라보았다.

“왜, 왜 그렇게 쳐다보세요?”

“부인께서는 전날 밤이 전혀 기억이 안 납니까?”

“전날 밤……?”

나는 멍하니 되물었다.

간밤에 대한 기억은, 잔 것뿐이다.

이안과 밤 인사도 나누지 않은 채 곯아떨어진 뒤, 한 번도 뒤척이지 않고 아침까지 내리 잤다.

“기억 못 하는군요.”

이안이 혀를 찼다.

“대단한 능력인데.”

“무슨, 무슨 소리예요.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데요?”

나는 약간 공포에 질려 되물었다.

맹세컨대 간밤엔 아무런 일도 없었다.

우린 광활한 침대 양 끝에 누운 채 서로에게 털끝 하나 닿지 않았다.

불필요해 보일 정도로 넓던 그 침대의 크나큰 장점이었다.

이안이 나를 다시금 바라보았다. 이제는 하다못해 마치 신기한 생물을 보는 듯한 눈빛이었다.

“혹시 간밤 꿈에 마수라도 등장했습니까?”

“네?”

“이불이 원수라도 된 것처럼 차고, 구르던데.”

“예?”

나는 황당함에 눈을 끔뻑였다.

“바닥에도 세 번 정도 떨어졌을 겁니다. 사실 허리가 안 부러진 게 용하군요.”

골칫거리를 보듯 나를 바라보는 이안의 눈빛이 매우 차디찼다.

그럴 리 없었다. 나는 입을 딱 벌렸다. 내 잠버릇은 결코 고약한 편이 아니었다.

“그럴 리가 없어요. 제 잠버릇은 얌전한 편인걸요.”

“아…… 예.”

그런 걸로 하자는 듯 이안이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 내가 세 번이나 바닥에 떨어졌다는 건…….

‘이안이 나를 세 번 안아서 침대에 올려놨다는 뜻?’

그렇게 생각하자 문득 뺨에 열이 올랐다.

나는 괜한 기분을 없애기 위해 일부러 과장되게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던졌다.

“혹시…… 저랑 닿기 싫어서 거의 끄트머리에 걸쳐 놓은 건 아닌가요? 그래서 자꾸 떨어진 거죠?”

“하.”

같잖은 오해를 들었다는 듯 이안이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저어, 아이린 님.”

아네트가 다가오더니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괜찮으세요? 식사를 물리고, 나중에 다시 차리도록 할까요?”

“아, 괜찮아요. 잠깐 이안 님께 제 허리가 아픈 이유를 따지고 있었어요.”

“그, 그. 그러셨군요!”

아네트의 뺨이 또 화륵 타올랐다.

대체 저 아이는 오늘 하루 종일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 거지.

점심 식사를 마친 나는 또다시 외출할 채비를 했다.

레하트 제국의 결혼식은 이박 삼일. 즉, 아직 손님들은 떠나지 않은 상태였다.

‘다행히 오늘은 하객들 상대를 하지 않아도 되지만.’

오늘 나와 이안에겐 다른 스케줄이 준비되어 있었다.

바로 신혼여행.

기간은 고작 사흘로, 무척 짧았다. 기사단 업무에 추기경 성하의 업무까지 이어받은 이안의 스케줄 때문에 그 이상 기간을 늘릴 순 없다고 했다.

뭐, 나야 좋았다. 어차피 가짜 남편님과 그 이상 알콩달콩 허니문을 즐길 자신도 없었으니까.

“와아.”

나와 이안이 올라탈 마차를 바라보며 나는 입을 떡 벌렸다.

이전에 이안이 내게 빌려주었던 바로 그 마차였다. 마차라기보다 작은 성 같았던 그것.

안 그래도 화려한 마차를 수많은 생화가 장식하고 있었다.

누가 봐도 갓 결혼한 신혼부부가 허니문을 떠나는 마차였다.

마차 안으로 들어선 나는 또 한 번 감탄했다.

작은 방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안은 아늑하고 편안해 보였다.

‘이런 마차라면 며칠 동안 갇혀서 여행하는 것도 괜찮겠다.’

물론, 동행인이 어제 결혼한 남편만 아니었더라면 훨씬 좋았겠지만.

마차 안에 자리 잡은 나는 신기한 눈으로 이곳저곳을 구경했다.

“저희, 어디로 가는 거라고 했죠?”

“툴렌입니다.”

나와 달리 이안은 성큼 안으로 들어서더니 안방처럼 자리를 잡았다.

새삼 저 사람의 마차라는 게 느껴질 정도의 자연스러움이었다.

‘툴렌…… 여기서 많이 떨어져 있는 곳이었지.’

나는 루시안이 가져다주었던 ‘제국 전도’를 떠올려 보았다.

마차로 다녀오려면 이박 삼일을 꼬박 도로에서만 보내야 할 정도로 멀리 떨어진 곳이었다.

‘그게 웬 낭비인가 싶지만, 어차피 진짜 신혼여행도 아닌데. 뭐.’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등받이 깊숙이 몸을 기댔다.

적어도 하루는 지낼 곳이니 얼른 익숙해져야 할 터였다.

어제의 피로가 그렇게 자고도 아직 덜 풀린 것일까?

기대 있자니, 맞은편에 앉아 있는 이안의 존재감이 나를 짓누르고 있는데도 조금씩 눈꺼풀이 무거워졌다.

나른한 기분으로 멍하니 창밖을 내다보고 있을 때였다.

끼익, 마차가 멈췄다.

‘응?’

마부가 문을 열고, 이안이 훌쩍 마차 밖으로 내려섰다.

멍한 표정으로 그 모습을 쳐다보자, 이안이 날 돌아보곤 한쪽 눈썹을 들어 올렸다.

“이리 오시죠. 아까부터 뭘 그렇게 넋을 놓고 있습니까?”

이리 오라고?

왜지?

내리기엔 탑승 시간이 너무 짧았다. 휴게소도 고작 이 정도 달리고는 안 들를 터였다.

하지만 나는 순종적인 계약 파트너였으므로 일단 꾸물꾸물 움직여 마차에서 내렸다.

내린 곳은 물론 여전히 수도 한복판이었다.

단, 앞에 휘황찬란한 건물이 있다는 점이 특이했다.

“여긴 어딘가요?”

특이한 건 건물뿐만이 아니었다.

건물을 오가는 사람들도 하나같이 특이했다.

‘와, 저 사람은 완전히 한겨울 옷을 입고 있네.’

두툼해 보이는 털 코트를 입고 건물을 나선 누군가가, 따스한 수도의 봄 햇살에 얼른 겉옷을 벗는 게 보였다.

그런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누가 봐도 한여름 옷을 입고 건물에 들어서는 사람도 있었다.

‘대체 뭐 하는 곳이지?’

나와 이안도 함께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와아.’

내부는 밖보다 더 독특했다.

금빛으로 호사스럽게 꾸며진 내부는, 조명이 있어야 할 곳에 마법석이 대신 자리에 반짝반짝 발광하고 있었다.

마법석은 굉장한 고가의 물건일 텐데. 나는 감탄으로 입을 벌리고 이안에게 속닥거렸다. 우릴 쳐다보는 사람이 하도 많았기 때문에 대놓고 목소리를 높일 순 없었다.

“조명 대신 마법석으로 꾸미다니. 건물 주인이 굉장한 재력가인가 봐요?”

“장식용이 아니라 실용적인 용도입니다. 이 정도 양의 마법석이 있어야 기구를 작동시킬 수 있으니까.”

내내 촌사람처럼 두리번거리며 감탄 중인 내게 이안이 툭 대답을 던졌다.

‘기구?’

내 의문은 오래가지 않았다.

건물 끝에 다다른 나는 또 한 번 입을 벌렸다.

성인 남성 세 명의 키를 합친 것만큼 거대한 원반 두 개가, 서로 맞물린 채 아주 느리게 회전하고 있었다.

더욱더 놀라운 것은.

‘허, 헉.’

두 개의 원반이 하나로 겹쳐질 때마다, 그 안에서 사람이 한 명씩 튀어나오고 있다는 점이었다.

판타지 세상에 떨어진 지 근 한 달째가 되어 가는 내게도 이 광경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오셨습니까, 이안 님. 그리고 아이린 님.”

이곳의 관리자인 듯한 사람이 깍듯이 인사했다.

“좌표는 완벽하게 설정해 두었습니다. 툴렌까지 순식간에, 편안하고 안전히 도착하실 겁니다.”

음. 그 먼 툴렌까지 순식간에 도달할 수 있다니. 좋군.

……아니. 잠깐. 좋나?

놀라움에 잠겨 있던 내 머리가 그제야 의문을 표했다.

‘그게 어떻게 가능하지?’

나는 다시금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기저기 가득한 마법석. 원반 밖으로 나오는 사람들의 계절감 다양한 의복들.

설마.

나는 원작 속에서 읽은 기억이 있는 단어를 머릿속에서 끄집어냈다.

‘워프 게이트?’

이곳은 판타지 세계.

건물 양식이나 의복은 얼핏 서양 르네상스 시대와 흡사해 보이지만, 실은 발달한 마도 공학으로 간혹 21세기 현대 지구 뺨치는 발명품도 존재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워프 게이트.

마법석과 복잡한 마도 공식의 힘으로, 순식간에 사람을 대륙 한복판에서 저 끝까지 보낼 수 있는 장치라고 알고 있다.

하지만 개념만 한 번 읽어 보았을 뿐, 나는 이 장치에 대해 자세히는 알지 못했다.

원작에 딱 그 정도로만 서술되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아이린?”

수도의 워프 게이트는, 원작 속에서는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원작이 시작되기도 전에 폭발해 버렸거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