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화 (21/161)

21화

‘내 생각이 어떻냐고?’

뭘 물어요. 그대가 오늘의 워스트 드레서입니다.

직원들은 물론, 아덴과 로레나의 시선까지 내게로 쏠렸다.

나는 끄응, 속으로 신음을 흘렸다.

‘솔직히 별로여도 너무 별로지만, 코델리아는 일단 만족하는 것 같고…….’

게다가, 곧이곧대로 직언하면 아덴이랑 로레나가 눈빛으로 날 죽여 버릴 것 같다.

여기서 가장 무난한 대답은 역시, 이거겠지.

내가 막 입을 열려던 찰나였다.

“에이, 굳이 다른 분 의견까지 구할 필요가 있을까요? 거울만 봐도 정답이 보이잖아요, 코델리아 님.”

“맞아요. 이렇게 아름다우신걸요. 지금 이대로 너무나 완벽하세요.”

아덴의 호들갑에 직원들이 얼른 맞장구쳤다.

코델리아가 고개를 갸웃했다.

“음. 보라색 귀걸이는 확실히 마음에 드는데, 목걸이는 좀 고민이 되어서. 이쪽이 더 낫지 않나 싶기도 하고…….”

코델리아가 보석함 속 또 다른 목걸이를 집어 들며 말했다.

주황색 목걸이였는데, 확실히 저 물에 탄 듯 희멀건 하늘색 목걸이보다는 나아 보였다.

그런데 로레나가 깜짝 놀라 손사래 쳤다.

“어머나! 무슨 말씀이세요.”

“누가 봐도 지금 걸치고 계신 목걸이가 훨씬! 잘 어울리십니다. 이대로 완벽하세요.”

아덴과 직원들까지 합세했다.

‘진심이냐.’

나는 점점 더 떫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코델리아가 맘에 들어 한다면, 나 역시 모른 척 잘 어울린다고 엄지를 치켜들어 줄 생각이었다.

그런데 지금 저 사람들은 코델리아의 취향조차 묵살하고 자기들의 말만 밀어붙이고 있었다.

이건 거의 사기 행각이나 마찬가지였다.

“코델리아 님.”

에라, 모르겠다.

나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성큼성큼 보석함 쪽으로 다가가자, 다들 깜짝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개의치 않고 보석함을 뒤졌다.

“코델리아 님께서는, 보라색을 좋아하시는 건가요?”

“네? 아, 네. 그렇기는 해요.”

“이 귀걸이로 바꿔 끼워 보세요.”

나는 보석함 속에서 훨씬 색이 옅고 부드러운 보라색 귀걸이를 꺼냈다.

직원들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

귀걸이를 귀에 대 본 코델리아는 살짝 놀란 눈을 했다.

대 보기만 해도 아까 것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피부색이 살아나고 있었다.

“목걸이는 이걸로요.”

나는 이번엔 가녀린 새싹처럼 옅은 연두색 보석이 박힌 목걸이를 건넸다.

코델리아가 목걸이를 걸치자, 주변에서 가벼운 탄성이 들렸다.

“와아.”

“훨씬 피부가 밝아 보이세요.”

구경하던 사람들의 입에서 처음으로 진심 어린 감탄이 흘러나왔다.

아덴과 로레나가 굳은 시선을 교환하는 게 보였다.

코델리아가 어색한 듯 목걸이를 만지작거렸다.

“예쁘긴 한데…… 조금, 존재감이 부족하지 않나요? 색이 옅어서.”

코델리아가 얼토당토않은 소리를 했다.

쨍한 원색으로 도배하던 평소와 다르니 위화감이 느껴지는 듯했다.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글쎄요. 제가 보기엔 이렇게 옅은 파스텔 톤이 훨씬 더 잘 어울리시는 것 같은데요?”

“그런…… 것 같기도 하고…….”

“확실히 지금이 훨씬 멋져 보이십니다.”

이윽고 누군가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아까 인사 타임 때, 자신을 레이 모나한 남작이라고 소개했던 미청년이었다.

“그렇죠? 역시 눈썰미가 좋으시네요.”

내가 활짝 웃으며 말하자, 레이가 고개를 갸웃했다.

“역시? 저희는 첫 만남 아닌가요?”

“왠지 눈썰미가 좋으실 것 같은 인상이에요. 뭐랄까, 사람들을 많이 관찰하실 것 같은 느낌이랄까요.”

농담인 것처럼 나는 생긋 웃으며 말했다.

그러자, 레이의 눈에서 한순간 표정이 사라졌다. 아주 찰나였지만, 나를 훑는 레이의 눈이 마치 무기질처럼 차가웠다.

금세 표정을 되돌린 레이가 방긋 웃었다.

“그런 소린 처음 듣는데, 하하. 칭찬인지 아닌지 애매하지만, 칭찬으로 들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칭찬이에요! 그만큼 냉철해 보이신다는 의미인걸요.”

살짝 스친 소름을 무시하며 나는 애써 웃었다.

나와 레이가 대화하는 동안, 코델리아는 마침내 각오를 굳힌 듯했다.

“이걸로 결제하겠어요.”

“하지만, 코델리아 님! 이쪽이 훨씬 보석 품질도 좋고…….”

“아니, 지금 걸친 게 마음에 드는군요. 아이린 양의 안목을 믿어 보겠어요.”

직원들은 결국 내가 골라 준 장신구들을 결제해 주었다.

구매해 주는데도 그들의 표정은 썩 좋지 못했다.

계산서를 받아 든 코델리아는 고개를 갸웃했다.

“평소보다 훨씬 절약했네.”

코델리아의 혼잣말을 들은 순간 나는 깨달았다.

‘이래서였구나.’

아덴과 로레나가 그토록 안 어울리는 장신구를 강요했던 이유.

그것들이 오늘 가져온 제품 중 가장 비싼 것들이기 때문이었다.

‘와. 성녀 상대로 강매를 해?’

나는 그들의 뻔뻔함에 혀를 내둘렀다.

파스텔 톤의 보석으로 새롭게 치장한 코델리아는 훨씬 생기가 넘쳐 보였다.

직원들이 물러가고, 우리는 마저 티타임을 즐겼다.

코델리아는 기분이 좋아 보였다. 자꾸 거울을 들여다보며 남몰래 웃는 것을 보니, 스스로의 모습이 꽤나 마음에 든 게 틀림없었다.

‘귀엽네.’

나는 속으로 쿡쿡 웃었다.

아덴과 로레나의 시선에 뺨이 따가웠지만, 코델리아의 귀여운 모습을 보니 그쯤은 무시할 수 있었다.

한창 티타임이 무르익어 갈 무렵이었다.

금발 남자가 혼자 테라스로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레이인가?’

오늘의 내 진짜 목표, 레이 모나한.

그와 단둘이 있을 기회란 생각에 나는 몸을 일으켰다.

“잠깐만 바람을 좀 쐬고 올게요.”

변명과 함께 들어선 테라스에서는, 과연 금발 남성이 홀로 운치를 즐기고 있었다.

금발 남성이 뒤를 돌아보았다.

‘이런.’

나는 혀를 찼다.

남자는 레이가 아닌, 아덴 오델로였다. 제 부모의 상단 직원들과 함께 코델리아를 벗겨 먹으려 했던.

머리 색과 호리호리한 체형이 레이와 거의 흡사한 바람에 착각한 것이다.

아덴 역시 나를 발견하곤 표정이 굳었다.

“아이린 님이시군요.”

그냥 이대로 나갈까, 생각하던 참이었다. 아덴이 굳은 표정 그대로 내게 다가왔다.

내 앞까지 도달한 그가 나지막이 이야기했다.

“외람된 말이오나, 아이린 님. 코델리아 님은 제가 오랫동안 보필해 왔습니다. 그분의 취향이라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죠.”

“그렇군요. 제가 골라 드린 장신구를 더 좋아하시는 것 같긴 했지만.”

만화였다면 아덴의 이마 위로 빠직, 하는 마크가 떠올랐을 것이다.

수려한 미청년은 곧 표정을 갈무리하곤 다시 말했다.

“코델리아 님께 가장 필요한 게 무엇인지는 그분의 친우들인 저희가 가장 잘 알고 있습니다. 자신합니다.”

“음. 그런가요.”

나는 귀찮음을 삼키며 머리를 넘겼다.

장신구 한 번 골라 줬다고 견제받는 건 사양이다.

하지만 코델리아를 마치 자기 손바닥 속 어린애 취급하는 아덴의 태도가 우스운 건 사실이었다.

나는 지나가는 말처럼 툭 이야기했다.

“이건 다른 이야기지만, 예전에 한동안 한 셰프에게 꽂혀 같은 레스토랑만 다닌 적이 있거든요.”

순 거짓말이다. 실제로 제일 많이 간 곳은 학식당 양식 코너다. 소시지가 실해서 좋았지.

하지만 어차피 비유니까 허세 정도는 조금 섞어도 상관없을 터였다.

나는 악의 한 톨 없는 얼굴로 미소 지었다.

“그런데 한 달도 안 가서 질리더라고요. 같은 것만 먹으면 뭐든 금세 질려요. 그렇지 않나요?”

“…….”

아덴의 표정이 싸하게 굳었다.

사교계에서 굴러먹던 인물이니 내 말의 진의를 못 알아듣진 않았을 것이다.

사슴처럼 수려하던 얼굴이 굳자 제법 무서워졌다.

그래. 성녀를 뜯어먹으려면 저 정도 악독한 표정은 나와 줘야지.

나는 나를 노려보는 아덴을 뒤로하고 그대로 테라스를 나섰다.

‘괜히 사람을 착각해서 시간 낭비만 했네.’

코델리아가 앉은 테이블로 돌아가려던 나는, 문득 눈을 크게 떴다.

‘저 사람은.’

금색 머리칼과 여우상에 날렵하게 빠진 옆태.

이번에야말로 틀림없었다. 저자가 레이 모나한이었다.

마침 그는 슬슬 돌아가려는 듯 자리를 정리하고 있었다.

“오늘은 이만 퇴장해야겠군요.”

“벌써요?”

“늘 금방 돌아가 버리시네요.”

사람들이 아쉬운 듯 레이를 붙잡았지만, 레이는 유들유들 웃으며 다음을 기약했다.

늘 금방 돌아가 버릴 만도 했다.

레이 모나한은 무척이나 바쁜 사람이었으니까.

나는 어쩌다 동선이 겹치는 것처럼 자연스레 그를 따라나섰다. 복도로 나서자, 벌써 저만치 앞서 걷고 있는 레이의 등이 보였다.

나는 빠르게 그를 따라잡았다. 조안 경이 기다리는 저택 밖으로 나가기 전 레이를 붙잡아야 했다.

다행히 내 바쁜 구두 소리를 들었는지 레이가 뒤를 돌아보았다.

“새로운 성녀님이 아니신가요? 제게 무슨 볼일이라도?”

눈꼬리를 접어 웃는, 여우상의 미남.

하지만 나는 이 모습이 가짜임을 알고 있었다.

방긋 웃으며 나는 레이에게 손을 내밀었다.

“안녕하세요.”

“하하. 두 번이나 인사해 주시는 건가요?”

“다르죠. 이번엔 레이 님이 아닌, 마탑주님께 인사드리는 거니까요.”

레이의 여우상 얼굴에서 웃음기가 싹 가셨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아니. 이렇게 정확히 짚으신 이상 발뺌은 의미가 없겠군요.”

레이, 아니.

리젤로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어떻게 아신 겁니까?”

‘책에서 읽었거든요.’

나는 속으로만 정답을 중얼거렸다.

천재 마탑주, 리젤로에겐 여러 취미 생활이 있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레이 모나한’으로 변장해 사교계에 숨어드는 것이었다.

특히 그는 코델리아의 정기 친목회에는 빠짐없이 참여하는 편이었다.

“대답 여하에 따라, 저는 성녀님을 굉장히 적대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리젤로가 눈웃음을 치며 말했다.

그 눈동자에선 이미 싸한 적의가 빛을 발했다.

솔직히 무섭지 않다면 거짓말이었다.

리젤로는 손짓 한 번으로 날 터뜨려 버릴 수도 있는 천재 마법사였다.

하지만 이미 최강의 소드 마스터에게 목숨을 위협받은 전적이 있기 때문일까.

나는 생각보다 담담히 그를 올려다볼 수 있었다.

“제 권능 덕분이에요.”

“……권능이라면?”

“엘룬 신께서는 제게, 미래를 엿볼 수 있는 능력을 주셨답니다.”

“……호오.”

리젤로가 번득 눈을 빛냈다.

“물론, 아직 미진하여 아주 한정적인 범위에 불과하긴 하지만요. 리젤로 님이 이곳에 참석하신다는 걸 알아낸 건 순전히 운이었어요.”

잠시 말이 없던 리젤로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성녀들이란. 과연, 굉장하군요.”

“…….”

“역시. 관찰할 만한 가치가 있어.”

묘한 소름이 등골을 파고들었다.

나는 애써 그 감각을 무시한 채 본론을 꺼냈다.

“리젤로 님. 절 정식 의뢰인으로 받아 주세요.”

리젤로가 흥미롭게 나를 바라보았다.

마탑에는 아무나 자유롭게 의뢰를 넣을 수 있다.

하지만 마탑주는 달랐다. 그는 수많은 불가능을 가능케 할 수 있는 인물.

따라서 평범한 사람은 의뢰는커녕 일대일로 대면할 수조차 없었다.

“나를 고용하겠다, 라.”

리젤로가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통 한번 큰 성녀님이군요. 들어나 봅시다. 무엇을 그렇게도 원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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