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2
하아, 숨이 차오르고 살짝 벌어진 그녀의 입술 틈으로 남자의 혀가 박혀 든다. 혀는 엉키고 더듬고 빨면서 조금씩, 조금씩 더 거칠어졌다. 잠시 후, 남자의 손이 그녀의 쇼츠와 속옷을 한꺼번에 끌어 내렸다.
딱딱하게 달아오른 것이, 다리를 오므려 한결 더 좁아진 그녀의 틈 안으로 서서히 밀고 들어오는 것이 느껴진다. 한층 더 강한 압박감과, 밀착감이 느껴진다.
들어오던 것이 숨을 고르듯 중간쯤, 잠시 멈추자 사희의 입술에서 으응, 하고 안달 난 신음이 흘렀다. 그리곤 참을 수 없다는 듯 엉덩이를 들어서 망설이는 이를 향해 유혹하듯 조금 흔들었다.
그러자 천천히 더 안쪽으로, 더할 수 없을 만큼 아주 깊은 곳까지 남자가 들어왔다. 묵직한 느낌과 함께 사희의 엉덩이가 남자의 아랫배에 찰싹 붙었다. 너무도 생생하고 따듯한 촉감이었다. 사희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서서히 눈을 떴다. 그리곤 허리를 조금 비틀어 등 뒤에서 그녀를 안고 있는 남자를 보았다. 그리고 새된 목소리로 재확인했다.
“자기……, 정말 자기야?”
그러자 사희의 어깨를 아프지 않게 잘근잘근 물고 있던 동하가 조금 웃었다.
“그래, 나야.”
“어떻게……, 언제 왔어요?”
“조금 전에.”
“내일 오는 거 아니었어? 어떻게 된 거야, 갑자기?”
다급히 묻는 사희의 얼굴을 바라보며 동하가 그녀를 부른다.
“이사희.”
“응?”
“쉿. 이런 자세에서 어울리는 질문들은 아닌 것 같아.”
동하가 그녀를 향해 몸을 조금 더 붙이자, 사희는 몸 안에 들어온 두툼한 것의 존재감을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러자 야한 꿈을 꾸고 있다고 생각했을 때보다 더 강한 쾌감이 치밀어 올랐다.
“보고 싶었어.”
사희는 어리광을 부리듯 이야기하며 발등으로 남자의 종아리를 유혹적으로 쓸어내린다.
“응, 그럴 것 같아서 일찍 왔어.”
동하는 사희의 무릎을 밀어 올려 그녀가 조금 더 다리를 벌릴 수 있게 한 뒤,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그가 앞뒤로 매끄럽게 움직일 때마다, 사희의 붉은 입술에서 아찔한 탄성이 터져 나온다.
원초적인 움직임이 주는 쾌감은 단물이 줄줄 흐르는 여름 복숭아의 맛처럼 황홀했다. 움직임 더욱 격렬하게 치달아 오르고, 절정은 금시에 코앞으로 다가왔다. 동하의 손이 사희의 손등을 덮는다. 그녀의 손가락 사이사이에 제 손가락을 끼워서 결박하듯 꽉 옭아맸다.
피가 통하지 않을 만큼 새하얗게 서로의 손을 잡은 두 사람은 동시에 절정을 통과했다. 꿈이 아니어서 더 꿈같은,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
밤이 어둡다. 오늘도 경민은 늦은 시간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조금 힘들더라도 처방받은 약은 정량에 맞춰 복용하기로 약속을 했기에 경민은 예전처럼 마구잡이로 약을 털어 넣는 짓은 하지 않았다.
잠드는 데 도움이 될까 싶어서 읽기 시작한 고전만 벌써 열권이 넘어간다. 불면증 덕분에 어울리지 않는 고상한 취미가 다 생겼다. 내일은 보육원 사회봉사활동 일정이 잡혀있으니 더 늦기 전에 자야 할 텐데,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는 사이 책은 어느새 절반을 넘어섰다. 눈이 피로하고 목이 조금 아프다. 책을 접은 경민이 미간을 짚고 시린 눈을 달래고 있는데 밖에서 작은 인기척이 들렸다.
문을 긁는 것 같은 작은 소리였다. 그가 서재에서 책을 읽기 시작한 즈음부터 들리던 소리였는데, 얼마쯤 그러다가 그치기 일쑤였기에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다. 워낙 큰집이라 밤이면 이런저런 소리가 잦기도 했고.
그런데 오늘은 왠지 그 소리가 평소보다 조금 더 선명하게 들려온다. 경민은 이번에도 역시 신경을 끌까 하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거의 문 앞까지 걸어갔을 때, 소리가 갑자기 멈춘다. 경민은 재빨리 손잡이를 비틀어 열었다.
어둠 속에서 무언가 후다닥 도망치는 것이 보였다. 삐죽, 머리카락이 솟을 만큼 놀란 경민이 긴장된 목소리로 외친다.
“거기 뭐야, 누구야!”
그러자 종종걸음으로 도망치던 그림자가 자리에 우뚝 멈춰 선다. 경민이 서재 문을 활짝 젖혀 열자 쏟아져 나온 빛이 우두커니 선 그림자를 비춘다. 찌푸려있던 경민의 시선이 조금 풀리고 빳빳하게 굳었던 몸에서도 서서히 힘이 빠져나간다.
그곳에는 재민이가 서 있었다.
“너였어?”
“…….”
“왜 안 자고 돌아다녀? 지금 시간이 몇 시인데.”
경민이 의아한 목소리로 묻자 재민이 어깨를 바짝 움츠린다. 재민이 아빠가 저를 혼을 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기에, 경민은 재빨리 목소리 톤을 조금 낮춘다.
“자야지. 늦었는데. 착한 어린이는 일찍 자는 거야.”
경민은 보육원에서 봉사활동을 할 때마다 보았던 선생님들의 말투를 기억해내 최대한 부드럽게 재민을 타일렀다. 그러자 재민이 움츠렸던 어깨를 펴고 한결 편안해진 시선으로 경민을 마주 보았다. 한참 아이의 눈을 바라보던 경민이 조심스럽게 묻는다.
“어제도 너였어?”
“…….”
“며칠 전에도, 그전에도. 네가 소리 냈던 거야? 밤마다?”
그러자 재민이 보일 듯 말 듯 조금 고개를 끄덕인다. 밤마다 경민이 들었던 문 긁는 소리가 재민이 찾아와 냈던 소리라고 생각하니, 어쩐지 조금 반가운 마음이 든다.
“왜?”
“…….”
“잠이 안 와?”
“…….”
“무서워? 혼자…… 자는 게?”
내내 멀뚱하게 저를 바라보던 재민의 눈이 마지막 질문에 조금 시무룩해졌다. 경민은 울먹울먹하는 아이의 눈에서 어린 시절의 저를 보았다. 밤마다 큰 방에서 홀로 잠드는 게 무서워 동하의 방문을 두드렸던 자신처럼, 재민도 그랬던 모양이다.
“사내자식이 무섭기는……, 아빠는 너보다 더 어릴 때부터 혼자 잤어, 인마.”
새빨간 거짓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던지곤, 경민은 재민의 곁으로 걸어갔다.
“가, 네 방으로.”
“…….”
“얼른. 내가 같이 가줄게.”
그러자 재민이 놀란 표정으로 경민을 올려다본다.
“뭘 봐. 빨리 가라니까. 너 지금 시간이 몇 시인 줄 알아? 이렇게 늦게 자면 키 안 커. 자식아.”
경민은 머쓱한 기분을 감추려고 괜한 잔소리를 퍼부으며 재민의 등을 조금 밀었다. 그의 손이 닿자, 재민이는 본능처럼 살짝 몸을 움츠렸다. 하지만 동행하겠다는 경민의 제안이 싫지는 않았는지 곧 발짝을 뗐다.
방으로 돌아온 아이는 얌전히 침대에 눕더니 착실하게 이불을 끌어다 덮었다. 그리곤 긴한 부탁이라도 하는 사람처럼 경민을 올려다본다. 강아지 같은 그 눈빛은 마치 자기가 완전히 잠들 때까지 절대 곁을 떠나지 말아 달라고 청하는 것 같다.
“안 가. 걱정하지 마. 빨리 눈이나 감아.”
“…….”
“진짜 안 간다니까.”
재민은 거듭된 다짐을 듣고서야 눈을 감는다. 그래놓고도 영 미심쩍은지 몇 초 간격으로 살짝 실눈을 뜨고 경민이 혹여 가지는 않는지를 확인한다.
책상 의자를 빼서 걸터앉은 경민의 표정이 왠지 흐뭇하다. 아이가 이토록 저를 필요로 하는 순간이 있다는 것이 왠지 조금은 생소하면서도 뿌듯한 듯 보였다.
“이재민, 자꾸 실눈 뜰 거야. 너? 다 보여.”
경민의 말에 재민은 움찔 놀라며 질끈 눈을 감는다. 잔뜩 찡그린 아들의 얼굴이 귀여워 경민은 절로 웃음이 났다. 남자는 바퀴 달린 의자를 죽, 밀어 아들의 침대 맡으로 다가갔다.
“여기 이렇게 가까이 있을 테니까. 안심하고 자. 얼른.”
바로 옆에서 들리는 아빠의 목소리에 재민은 비로소 완벽하게 안심을 한 눈치다. 아이는 몇 번 움찔거리긴 했지만 머잖아 쌕쌕 소리를 내며 잠들었다.
아이가 태어나 이만큼 클 때까지,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잠든 모습을 바라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천사처럼 잠든 아들의 얼굴을 바라보는데 가슴 속에서 여러 가지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이 느껴졌다. 면목이 없는 마음과, 미안함, 이토록 형편없는 아빠를 믿고 곁에 있게 해주는 아들에 대한 고마움, 그리고 저를 꼭 닮은 얼굴을 한 생명체에 대한 신비로움 같은 것들이었다.
콧날이 시큰하더니 불쑥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목이 메는 기분이 들어 흐음, 헛기침을 하자 그 소리에 아이가 움찔하며 놀랐다. 경민은 재빨리 손을 뻗어 재민의 가슴에 얹었다. 그러자 아이는 금세 안정을 찾고 다시 낮은 숨소리를 냈다.
손바닥에서 콩콩 뛰는 아들의 심장 박동이 느껴진다. 규칙적인 박동이 주는 안정감 때문일까. 어지럽던 마음이 가라앉고, 나른한 졸음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소스라치게 놀라 잠에서 깨어난 세령이 벌떡 몸을 일으킨다. 가족들의 기일이 가까워지면 그녀는 이렇듯 깊은 잠에 들지 못하고, 쉽게 잠에서 깨곤 한다. 그렇게 한번 깨어나면, 다시 잠들지 못하고 한참 어둠 속에 앉아 있곤 했다.
오늘도 침대 끝에 우두커니 앉아 한참을 멍하니 앉아있던 세령은 다시 자리에 누우려다가 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차피 다시 불편한 꿈에 시달릴 거라면 차라리 잠들지 않는 편이 나을 것 같아서였다.
시간은 5분이 모자라 새벽 네 시. 창밖은 여전히 어둑어둑했다.
샤워를 마친 세령이 아침 준비를 위해 1층으로 내려가려다, 재민의 방에 불이 밝은 것을 보았다. 어젯밤 아이를 재우고 분명히 불을 끄고 나왔던 것 같은데 왜일까. 아이의 방문을 열어본 세령은 그 안에서 뜻밖의 풍경을 목격하고, 잠깐 얼빠진 듯 멍하니 섰다.
재민의 방 안에 경민이 있었다. 재민의 침대 옆, 의자에 앉아 다리를 꼬고 고개를 푹 숙인 채로 불편하게 잠든 경민과, 침대 맡에 대롱대롱 매달린 채로 잠든 재민의 모습이 보인다. 재민은 아빠의 검지를 강하게 움켜쥐고 있었다. 잠든 재민의 모습이 여느 때보다 편안해 보였다.
언제부터 이러고 있었던 걸까. 몹시 이질적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또 굉장히 자연스러워 보이는 부자의 모습을 바라보며 세령은 기분이 조금 이상해지는 것을 느꼈다. 남보다 더 데면데면해진 자신과 경민의 사이야 어떻든, 부모와 자식의 연은 쉽게 끊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조금 복잡해졌다.
며칠 전, 세령은 경민에게 이혼장을 내밀었다.
“나, 이 집에서 나갈래. 이제 그만하고 싶어. 상처받는 것도, 상처 주는 것도.”
경민은 그녀가 내민 종이를 물끄러미 보며 이렇다 저렇다 하는 말도 없이 한참을 서 있다가, 끝내 대답을 돌려주지 않고 돌아섰다. 그 뒤로는 쭉, 마치 없는 사람인 양 세령을 외면하고 있었다.
오늘쯤 다시 한번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잔뜩 구겨진 채로 꾸벅꾸벅 졸고 있는 경민을 보자 왠지 그 말을 다시 꺼내는 것이 몹시 어려워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경민의 고개가 기울대로 기울어져, 곧 바닥에 처박힐 것만 같아서 세령은 어쩔 수 없이 그의 어깨를 살짝 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