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구원의 밤-98화 (99/109)

#98

삼우제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진눈깨비가 조금 날렸다. 우중충한 날씨 탓인지 대궐처럼 큰집이 영 을씨년스럽다.

경민은 아버지의 서재, 책상 위에 아버지의 영정사진을 내려놓았다. 영정 속 아버지의 얼굴은 병약했던 마지막 모습이 생각나지 않을 만큼 멀끔한 모습이다.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띠고 정면을 주시한 얼굴은 고전영화 속 배우처럼 근사했다. 경민은 당장이라도 사진 밖으로 걸어 나올 것처럼 생생한 아버지의 모습을 오래도록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버지와의 마지막 시간이 떠오른다. 그가 사람들의 눈을 피해, 늦은 밤 병실을 찾았을 때 그는 만취한 상태였다. 술을 먹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시간들이었다.

아버지는 눈을 뜨고 있었다. 명징하게 뜬 눈동자가 경민을 보자 반짝 빛났다. 마치 그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거나, 혹은 그가 올 것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던 것처럼.

촛불이 꺼지기 전에 가장 환하게 타오르듯, 인간의 혼불도 죽음을 목전에 두었을 때 가장 명료해진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경민은 아버지의 또렷한 눈동자에서 그의 죽음을 예감했다.

술이 깨는 기분이 든다. 아버지가 곧 죽을 것이란 생각을 하자 갑자기 마음이 다급해졌다. 뭐라도, 무슨 말이라도 해야만 할 것 같은데 자신이 하게 될 말이 아버지의 마음에 들지가 걱정이 되어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한참을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낑낑거리던 경민은 마침내 이제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멍청하게 입을 벌렸다.

“……제가 또 망쳤어요.”

울컥한 기운이 목구멍을 막아서 답답한 소리가 났다.

“네. 또요. 또 망쳤어요, 제가. 제가 하는 일이 다 그렇죠 뭐.”

울컥 화가 치밀었다가, 또 불쑥 겁이 났다가, 또 분노가 치민다. 그렇게 한참 감정의 널뛰기를 하다 보니 결국엔 서러워졌다.

아버지에게 하고 싶었던 말은 그런 게 아니었다. 이번에는 다르다고, 보란 듯 해냈다고, 내가……, 내가 동하보다 더, 그리고 아버지보다 더 잘했다고. 그런 말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끝내 자신이 할 수 있는 말은 고작, 이번에도 역시 망쳤다고. 나는 영원히 동하를, 아버지를 넘어설 수 없다는 비탄뿐이라는 게 서글프다.

“나는 아버지를 닮지 않았으니까요……. 아버지를 닮은 건 동하뿐이에요.”

눈물이 차오르더니 이내 뺨을 타고 흘러내린다. 사람의 눈에서 그렇게 많은 물이 흐를 수 있다는 게 놀라울 만큼, 눈물은 펑펑 솟아나 후드득후드득 떨어졌다.

이종학은 마디가 곱아든 손을 들어 경민에게 손짓했다. 가까이 다가오라는 뜻이었다.

경민은 죄인처럼 주춤주춤 그 앞으로 다가갔다. 그가 마지막 한 발을 떼지 못해 머뭇거리고 있을 때, 아버지의 손이 경민의 팔목을 잡았다. 가시처럼 마른 손은 따듯했다. 아버지의 피는 얼음보다 차가울 것 같았는데, 그의 몸에도 저와 똑같이 더운 피가 흐르고 있다는 사실이 조금은 생소하게 다가왔다.

제 팔목을 붙든 아버지의 손을 한참 동안 멍청하게 바라보다가 경민은 피식, 얼간이처럼 웃었다. 눈물과 섞여 질척하게 흘러내린 콧물을 손등으로 닦아내면서 얼이 빠진 사람처럼 중얼거린다.

“따듯하네요, 아버지. 몰랐어요. 아버지 손이 이렇게 따듯했는지…….”

손목을 쥐고 있던 손이 스르르 움직이더니 곧 경민의 손을 잡는다. 그러자 손바닥의 온기가 더욱 여실하게 느껴졌다. 그의 손가락 사이로 아버지의 손가락이 파고들더니, 곧 틈 없이 완벽하게 손이 겹쳤다. 다른 손가락과 달리 유난히 뭉툭한 엄지손가락이 찍어낸 듯 닮아있었다.

경민은 가만히 손바닥을 내밀어 본다. 그날의 온기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지만, 아버지가 남긴 마지막 말은 여전히 그의 가슴 안에 남아 있다.

문을 박차고 밖으로 뛰어나온 경민이 다급하게 관리인을 부른다.

“오 씨! 오 씨.”

새된 목소리로 부르는 소리를 듣고 오 씨가 뛰어나왔다.

“예, 사장님. 저 여기 있습니다. 무슨 일이십니까?”

“집에 톱, 전기톱 있지?”

“전기톱이요? 예, 있기는 한데…….”

“가져와요, 그거.”

오 씨는 갑자기 전기톱을 찾는 경민을 의아해 하면서도 분부대로 전기톱을 찾아다 주었다. 경민이 그것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몰라 우물쭈물하자, 손수 시동까지 걸어주었다.

“조심하세요. 위험합니다. 그런데 뭘 하시려고…….”

오 씨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경민은 시동이 걸린 전기톱을 들고 화단으로 걸어갔다. 그리곤 저택 화단의 정 가운데에 심어진, 줄기가 어린아이 허리만큼이나 굵어진 목련 나무 아래에 섰다.

“내가 죽으면 화단에 심은 목련 나무를 베어라. 이듬해에 꽃을 피우기 전에.”

아버지의 유언이었다. 아버지가 사랑했던 여인, 그 여인과 닮은 목련. 집 마당에 손수 목련 나무를 심어놓고 일평생 꽃을 기다리며 그녀를 그리워했던 아버지가, 자신이 떠나고 나면 그것을 베어내라고 한 말의 의미를, 경민은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것은 자신과 어머니에 대한 사죄였고, 사랑했던 여인에 대한 배려이기도 했으며, 이제는 자신과 동하에게 더 이상 자신이 만든 과거에 묶여있지 말라는 뜻도 될 것이다.

위이이이잉. 요란한 소리를 내며 톱날이 나무 밑동에 박혀 든다. 서툰 톱질에 꿈쩍도 하지 않던 나무는, 장정 몇이 거들자 서서히 기울기 시작하더니 곧 우지끈 소리를 내며 바닥에 완전히 누웠다.

“아이구야, 이 나무 이거 속이 다 썩었네요. 겉으론 멀쩡해 보였는데. 거, 이상하다, 지난 봄만 해도 꽃이 만발했었는데 왜 이렇게 됐지. 사장님은 어떻게 아셨어요?”

속의 일부가 시커멓게 썩은 나무 단면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리던 오 씨가 경민을 돌아보며 묻는다.

경민은 픽 쓰게 웃는다. 어쩐지 이 나무도 아버지와 함께 죽음을 준비하고 있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나무 역시 오래도록 많이 아팠을 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

“가십니까?”

경민이 한참 썩은 나무 밑동을 바라보고 섰는데, 오 씨가 어딘가를 향해 꾸벅 인사를 한다. 돌아보니 그 자리에 동하가 서 있었다. 바닥에 쓰러진 나무를 오래도록 바라보던 동하는 이윽고 경민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두 사람은 말없이 한참 서로를 바라보았다. 형언할 수 없는 많은 말들이 서로의 시선을 타고 어지럽게 흘러간다. 분명한 것은, 그 안에는 더 이상 죄책감도, 열등감도, 원망도 미움도 담겨있지 않다는 점이었다.

동하가 먼저 시선을 돌리자, 경민도 고개를 돌렸다. 두 사람은 서로를 등지고 각자의 방향을 향해 걸어 나간다.

문에 다다랐을 때, 동하는 인부들에게 지시하는 경민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잘 패서, 잔가지 하나도 남김없이 다 태워요. 함부로 막 다루지 말고, 조심해서.”

동하의 얼굴 위로 눈송이가 떨어진다. 남자는 고개를 들어 느린 화면처럼 사박사박 떨어지는 눈발을 올려다본다. 하늘을 보는 남자의 눈이 물에 씻은 수정처럼 맑았다.

눈은 동하의 이마와, 볼, 입술에 이어 곧 그의 속눈썹에도 달라붙었다가 순식간에 녹아 버린다. 속눈썹이 젖는다. 가닥가닥 엉겨 붙은 긴 속눈썹 끝에 작은 물방울이 맺혔다가, 다시 서서히 눈 속으로 스며들었다.

***

동하는 따듯한 물에 몸을 담그고 누웠다. 아지랑이처럼 피어나는 수증기에 욕실은 이내 부옇게 흐려졌다. 동하는 젖은 손을 뻗어 휴대전화를 들었다. 장례식 내내 제대로 연락을 주고받지 못했으니, 지금쯤이면 사희가 그를 몹시 걱정하고 있을 터였다. 그에게 지난 며칠이 슬픔을 넘어선 복잡한 감정의 시간이었음을 아는 그녀는, 아무것도 묻지도, 쉽사리 말을 덧붙이지도 않았다. 그저 참을성 있게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 블루투스 이어폰을 타고 반가운 목소리가 흘러들었다.

“응, 동하 씨. 다 끝났어요?”

사희의 목소리가 남자의 귓바퀴를 산뜻하게 두드리자 조금은 울적했던 기분이 씻은 듯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다.

“응. 집이야.”

대답하는 동하의 목소리가 조금 허스키하게 갈라진다.

“목소리가 피곤한 것 같아.”

“괜찮아. 사희 씨는 지금 어디?”

밖인 듯, 수화기로 주변의 잡음이 끊임없이 들려오고 있었다.

“언니랑 수아랑 같이 마트에 왔어요. 수아 곧 학교 입학이라 이것저것 살 게 많아서.”

“아, 수아가 벌써 초등학생이 되는구나. 그럼 나도 선물 줘야지. 수아에게 물어봐 줘. 뭐가 갖고 싶은지.”

무얼 갖고 싶으냐고 묻는 사희의 목소리와, 고민하는 수아의 목소리, 그리고 신경 써준 것만도 고마우니 괜찮다고 말하라고 하는 강희의 목소리가 섞여 수화기를 타고 들려왔다. 평범한 일상의 행복을 찾은 이들의 소박한 대화를 훔쳐 들으며 동하는 빙그레 웃는다.

“갖고 싶은 거 없대요.”

잠시 후, 웃음기 섞인 사희의 대답이 돌아왔다.

“엄마 앞에서 그런 걸 물으니까 그렇지. 이모가 눈치가 없네. 안 되겠다. 내가 나중에 수아랑 따로 통화해야지.”

동하도 밝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런데 동하 씨. 괜……찮은 거예요?”

잠시 후, 사희가 조금 뜸을 들여 묻는다. 자리를 옮긴 것인지 주변이 한결 조용해졌다.

그 말을 듣기 전에는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왜인지 그 괜찮으냐는 질문이 신호탄이 된 듯 마음이 조금 이상해졌다. 지금껏 한 번도 자신의 삶에서 부모의 존재감을 짙게 느껴본 적이 없음에도, 이제는 정말 혼자가 되었다는 생각이 드니 가슴이 허전해진 것이다.

“눈물이 날 정도는 아니야.”

동하는 담담하게 대답하곤, 씁쓸한 듯 조금 웃었다. 전화 너머 사희가 마땅히 해야 할 말을 찾지 못하고 망설이는 것이 느껴져서 동하는 즉시 말을 덧붙였다.

“괜찮아. 걱정하지 마.”

“동하 씨.”

“정말 괜찮아. 내게는 네가 있으니까.”

“나…… 당신에게 그만큼이에요?”

사희의 담담한 질문을 들은 동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그 모습을 볼 수는 없겠지만, 충분히 느껴졌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보다 더. 충분히 완벽하게.”

“그렇다면 다행이에요.”

“다들 기다리겠다. 난 정말 괜찮으니까 신경 쓰지 말고, 어서 가봐.”

전화를 끊은 동하는 블루투스 이어폰을 빼 옆에 놓아두곤 욕조에 몸을 깊게 뉘었다. 지난 몇 달의 피로가 한꺼번에 밀려드는 기분이 든다.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었지만, 오늘만큼은 아무 생각 없이 조금 쉬고 싶다. 동하는 젖은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손가락 마디마디에 느껴지는 이목구비의 감촉이 피로 때문인지 한결 날카롭다.

눈꺼풀이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날카로운 옆선을 타고 물기 섞인 땀방울이 흘러내린다. 더운 공기가 콧속으로 축축하게 밀려드는 감촉을 느끼며 동하는 느슨하게 풀려있던 눈을 감았다. 조금씩 잠이 오고 있었다.

그렇게 깜빡 잠이 들었다. 많은 꿈을 꾼 것 같았는데 막상 설핏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이 되니 무엇을 꿈꾸었는지 전혀 생각이 나지 않는다. 머리가 깨질 듯 아팠다. 뻑뻑한 눈꺼풀을 한쪽씩 차례로 희미하게 뜨던 동하의 시선에 그림처럼 고운 실루엣이 잡힌다.

살포시 미간을 찡그린 동하가 눈에 힘을 주어 그 실루엣을 본다. 조금 터서 한층 더 붉어진 남자의 도톰한 입술이 살짝 벌어지더니 흐느낌 같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엄마…….”

한 번도 실제로 본 적도 없으면서, 아주 오래된 잡지 속에 나오는 흐릿한 모습을 사진으로 본 것이 전부이면서도 ‘엄마’라는 그 부름이 태초부터 기억에 새겨진 것처럼 쉽다는 게 이상했다. 어쩌면 자신이 아주 오래전부터 마음속으로 그 이름을 수천 번 수만 번 불러보았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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