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구원의 밤-64화 (65/109)

#64

부드럽고 애틋한 애무는 점점 거칠어졌다. 잘록한 허리, 털끝만 닿아도 민감하게 간지럼을 타는 사희의 늑골 고랑을 동하의 뜨거운 혀가 패어낼 듯 훑어 내린다. 움푹 들어간 곡선의 옆구리를 깨물고, 아찔하게 솟은 골반과 엉덩이에는 연약한 잇자국을 남긴 남자가 마침내 사희의 허벅지를 손으로 단단히 쥐었다. 동하는 사희의 다리를 잡아 자기 앞으로 바짝 잡아당겼다.

“……안돼요.”

하나 다리를 오므리려는 사희의 시도는 이내 수포로 돌아갔다. 동하의 팔이 완강하게 사희의 허벅지를 눌렀다. 젖어있는 사희의 골짜기 사이에 입술을 묻는다. 얇은 팬티 위에서 느리게 움직이는 입술 때문에 사희는 거의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인지하지 못한 사이에 비늘처럼 벗겨진 팬티가 바닥으로 떨어진다. 은밀한 곳을 굴리는 입술과 혀의 온도가 더욱 뜨거워진 것은 당연한 일이다.

“아……”

몸이 뒤틀리고 머릿속에서 송골송골 땀방울이 솟는다.

예리하고 단단하게 힘이 들어간 혀끝이 비밀스러운 입구를 파고들 듯하다가, 이내 뜨겁게 핥았다. 어미가 새끼의 털을 얼러주듯 온정어린 애무였다.

“아앗!”

발가락 끝에 힘이 바짝 들어가고, 입술에서 인지하지 못한 야릇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소리 내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다. 불에 따는 낙엽처럼 온몸이 사정없이 뒤틀리고 허리 아래가 사라져 버리는 것 같은 엄청난 쾌감이 몰려들었다.

환각제라도 먹은 양 귀에서 멍한 이명을 느꼈을 때, 뜨거운 것이 살 속으로 조금 파고들었다.

“아아, 어떡해…….”

사희의 입에서 외마디 짧은 탄성이 튀어나온다. 동하는 그 단말마의 감탄사가 지금껏 들었던 그 어떤 반응보다 자극이라는 생각을 하며 씩 웃었다.

“그러게……, 이제 어떡하지?”

느리게 되물으며 동하가 몸을 움직인다. 이미 그의 눈은 흥분으로 흐려져 있었다.

손가락 절반 정도의 깊이만큼 파고든 것이 느리게 전진과 후진을 시도한다. 감당하기에 벅찬 압박이 느껴졌다. 사희의 눈동자에 두려움만큼이나 강한 욕망의 빛이 스쳤다.

배려하듯 느리게 움직이던 동하가 그녀를 짓누르며 조금씩 더 안으로 침범한다.

“아아…….”

“으음……!”

두 사람의 입에서 동시에 같은 신음이 터진다.

사희의 내부는 그가 파고들면 깊고 아늑하게 안아주고, 떠나가면 애틋하고, 강렬하게 붙들었다. 마치 처음부터 그렇게 하기로 약속이 된 것처럼 자연스러운 움직이었다. 그들은 태초의 가르침과 본능대로 자연스럽게 몸을 섞었다.

아련하게 드나들던 얕은 파도가, 점점 가쁘게 높아지더니, 어느덧 해일처럼 밀려들기 시작한다. 찰싹거리던 수줍은 소리는 어느새, 방 안을 가득 채우고도 남을 큰 파고(波高)가 되어 사희를 덮쳐왔다.

“그만…… 그만!”

사희가 동하의 가슴팍을 밀어냈다. 내내 충성스럽던 그가 이번만큼은 그녀의 명령에 불복했다. 동하가 더욱더 빠르고 강하게 몸을 움직이니, 사희는 더는 그를 막지 못하고 부르르 떨었다.

동하가 힘을 잃고 주르륵 흘러내리는 사희의 손을 세게 잡는다.

“……그만할까? 응? 그만……해?”

헐떡임이 섞인 뜨거운 목소리가 묻는다.

가까스로 눈을 뜬 사희가 동하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이내 세차게 고개를 가로젓는다.

“해줘. 계속해줘. 더…… 제발 더…….”

지배하고, 지배당하는 역할의 분담은 이제 두 사람에게 더는 의미가 없었다. 서로가 서로를 지배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굴복하는 사이, 두 사람은 어느덧 절정으로 치닫고 있었다.

절정 끝을 먼저 맞이한 것은 사희였다. 동하의 손아귀를 부서트리기라도 할 것처럼 움켜쥔 사희가 튕겨져 나갈 듯 몸을 강하게 비틀었다.

“아아앗!”

사희가 비명보다 더 날카로운 교성을 내뱉었을 때, 그녀의 몸속에서 동하도 크게 꿈틀거렸다. 여자의 목덜미에 이를 박아 넣은 동하가 전기에 오른 것처럼 몸을 부르르 떨었다. 부서질 듯 강하게 깨문 그의 어금니 사이에서 쾌락의 신음이 어기적어기적 기어 나온다.

“이사희……, 사희야…….”

그녀의 이름이 동하의 입에서 모래처럼 쏟아져 나왔다. 헐떡이는 숨에 섞여 이지러진 발음이었지만 분명 그녀의 이름이었다.

그 순간, 그가 사랑한다는 거짓말을 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그가 사랑이라는 말을 함부로 흘려버렸다면 되레 그를 믿을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사희는 동하의 목을 세게 끌어안았다. 그의 쿵쾅거리는 심장박동을 느끼며 눈을 감는다.

“이대로…… 조금만 더 있어요.”

동하는 강하게 끌어당기는 사희의 힘을 거스르지 않고 그녀 쪽으로 몸을 조금 기대곤, 사희의 땀 젖은 이마에 다정하게 제 이마를 붙였다. 아직 열기가 식지 않은 사희의 몸을 부드럽게 품으며 그는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따듯해.”

두 사람이 땀으로 범벅이 된 서로의 몸을 부둥켜안아 한 치의 틈도 없이 맞붙어 있는 사이, 창밖에는 부슬부슬 이슬비가 내렸다.

***

고진영 실장이 갑작스러운 전화를 받고, 모처의 위스키 바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자정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이경민 부사장이 취해있다는 연락이었다. 집에 들어갈 때만 해도 기분이 좋아 보였던 부사장이, 이 시간에 집 밖에서 의식을 잃을 때까지 술을 마셨다니 의아한 일이었다.

“안쪽에 계십니다.”

매니저의 안내를 받은 고 비서는 내실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경민이 고주망태가 된 채 정신을 잃고 잠들어 있었다. 몇 시간 새 다른 사람이 된 양, 들떠있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고 비서의 눈이 빠르게 주변을 살폈으나 술 외에 다르게 문제가 될 것은 없어 보인다.

“혼자 계셨습니까?”

고 비서의 물음에 매니저는 고개를 끄덕였다.

“직원들 입단속 시키세요.”

고 비서는 즉시 직원을 물렸다. 그리곤 엉망으로 구겨진 경민의 어깨를 부축해 일으켰다.

“부사장님, 저 고진영입니다.”

으음, 단발의 신음을 내며 조금 의식을 차리는 경민의 이마가 강하게 일그러졌다. 경민은 희미하게 눈을 뜨고, 쉰 목소리로 고 비서를 부른다.

“고 실장?”

“네.”

“아……. 언제 왔어? 잘 왔다. 우리 같이 술 한잔하자.”

경민이 고 비서의 어깨에 손을 걸치며 히죽 웃었다. 그에게서 위스키 향기가 짙게 풍겨왔다.

“많이 취하셨습니다. 오늘은 이만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새끼가 앉으라면 앉을 것이지 어디서 말대답이야.”

희미하게 웃고 있던 경민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더니, 잇새로 날카로운 욕설이 튀어나왔다.

“죄송합니다.”

고 비서는 바짝 긴장한 표정으로 경민의 곁에 앉았다.

경민은 위스키병을 들어 잔에 넘치게 술을 따르곤, 술잔을 손등으로 툭 쳐 고 비서 쪽으로 밀었다. 넘친 술이 테이블을 흥건하게 적신다.

술잔을 받아든 고 비서가 고개를 모로 돌려 술을 비우는 모습을 풀린 눈으로 바라보던 경민은, 그가 잔을 내려놓기 무섭게 다시 술을 채웠다. 고 비서가 거푸 몇 잔을 반항 없이 들이키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조금 마음이 풀렸는지 술병을 내려놓고 소파에 몸을 기대며 몸을 늘어트린다.

“애들은? 좋아하던가?”

느린 동작으로 담배를 문 경민이 앞뒤를 자른 질문을 던진다. 고 비서를 통해 들려 보냈던 선물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담배에 불을 붙여주며 고 비서는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주 좋아합니다. 부사장님 덕분에 오랜만에 좋은 아빠 됐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래? 좋아해?”

“네. 안사람도 부사장님께 감사 인사 전해드리라고 했습니다.”

“그래. 좋아했다니 좋네.”

깊게 담배 연기를 빨아들이던 경민이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피실 웃는다. 부옇게 흩어진 연기가 남자의 구겨진 얼굴을 가린다.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그 뒤로도 한참을 낄낄거리며 웃던 경민은, 고 비서가 내려놓은 잔에 다 타지 않은 담배를 떨어트렸다. 치직, 하는 소리를 내며 담뱃불이 꺼진다.

“그거 존나 쉬운 건데, 그치? 그 쉬운 소리를 한 번도 해주지를 않아. 단 한 번도.”

모를 소리를 중얼거린 경민이 조금 전, 담배를 떨어트렸던 잔에 다시 술을 부었다.

고 비서는 굳게 입술을 다문 채 고개를 숙인다. 이런 때에는 침묵만이 최선의 답이었다. 어떤 말도 지금의 경민에게는 만족스럽지 못할 테니까.

“나는 절대로 못 가진다더라. 죽어도.”

“…….”

“어떤 마음은 돈으로 못 산다나?”

잔에서 넘쳐흐른 술이 테이블을 적시고 바닥으로 쏟아진다. 고가의 위스키가 대리석 바닥을 타고 고 비서의 구두 앞코까지 흘러왔다.

안에 든 것을 완전히 흘리고 나서야 술병을 내려놓은 경민이 다시금 고 비서 앞으로 술잔을 툭 쳐서 민다. 고 비서는 일말의 싫은 내색 없이 그 잔을 들어 한 방울도 남김없이 술을 비워냈다. 입 안으로 역한 담뱃재 냄새가 흘러 들어갔을 테지만, 그의 표정엔 조금의 변화도 없었다.

술을 비우는 고 비서를 응시하는 경민의 뺨이 기이하게 실룩인다. 그는 취한 눈을 느리게 깜박이며 중얼거렸다.

“이 봐……. 쉽잖아…….”

씁쓸하게 읊조린 경민이 난데없이 크하핫, 웃음을 터트린다. 웃는 듯했으나, 눈빛은 텅 빈 듯 허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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