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구원의 밤-63화 (64/109)

#63

집안으로 들어서니 삼면이 통유리로 된 넓은 거실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호수 쪽으로 입체적으로 튀어나온 구조로 되어있었기 때문에 통유리 앞에 서면 마치 물 위에 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마실 것 좀 줄까요?”

“괜찮아요.”

커다란 블랭킷으로 몸을 감싼 사희는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호수를 보며 대답했다.

잠시 후 차가운 것이 볼에 닿는 느낌에 사희는 이크, 하고 놀라며 고개를 돌린다.

“눈이 부었어. 차가운 것 좀 올려둬요.”

동하는 팬케이크처럼 도톰하게 부푼 사희의 눈두덩을 턱 끝으로 가리키며 그녀 앞으로 얼음이 단긴 잔을 내밀었다. 사희는 머쓱하게 눈두덩을 문지르며 물 잔을 받는다.

동하는 등을 유리창에 붙여 삐딱하게 기대선 채로 팔짱을 꼈다. 그리곤 의심스럽다는 듯 눈빛을 빛낸다. 그 시선 덕에 최소한의 무드 등만을 켜 둔 방 안이 희극 무대처럼 진중해졌다.

“이제 이유를 물어도 되나?”

사희가 물끄러미 남자를 돌아본다.

“누가 당신을 울렸지?”

동하의 질문을 받은 사희의 마음이 급격하게 어두워진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소상하게 말하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지만, 사희는 곧 마음을 다스렸다.

아직 확인된 바 없는 일이고, 설령 확인된 일이라 해도 이동하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 그와의 관계에 이런 일들을 끼워 넣어 불편한 감정을 일으키고 싶지 않았다. 되도록 그와의 관계에서 혜석그룹이라는 배경을 제외하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저 이동하와 이사희로. 사람과 사람으로. 남자와 여자로 그를 마주 하고 싶다.

“누구인 게 중요해요?”

사희는 샐쭉하니 입술을 모으며 뾰로통하게 대꾸했다.

“아니, 그 누가 남자인지 아닌지가 중요해. 남잔가?”

“남자면요?”

“유쾌하지는 않겠네.”

“질투예요?”

“아니.”

“그럼?”

“경계.”

“…….”

“함부로 당신을 맘에 품게 하지 말아요. 내가 보기에 당신은, 좀 위험한 구석이 있어.”

동하가 사희의 콧날을 손끝으로 톡 건드리며 웃었다.

사희는 남자가 건드린 콧날을 쓸어내리며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마음에 품을 거라면, 위험도 감수해야지. 그만한 배짱도 없는 남자는 나도 매력 없네요.”

각이 진 눈썹 뼈로 인해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웠던 동하의 눈꺼풀이 사르르 열린다. 맑은 눈동자에 고집스러운 표정으로 외면하고 있는 사희가 담겨 있었다.

“하겠다면?”

짧은 반문이 돌아왔다. 먼 곳에 향해있는 사희의 시선이 동하에게로 향했다.

“기꺼이 감수하겠다고 말한다면, 당신은 어떤 대답을 할 겁니까?”

그의 눈빛에는 조금의 농담도 섞여 있지 않았다. 사희는 입술을 모아 마른침을 삼켰다.

“나를 마음에 품었어요?”

“그래.”

“그럼 위험해지겠네요?”

동하는 사희의 머리카락을 뺨을 손끝으로 느리게 쓰다듬으며 느리게 눈을 감았다 떴다.

“어떤 위험은 충분히 감수할만한 가치가 있지.”

사희의 눈동자가 희미하게 떨린다. 동하는 두 손으로 사희의 뺨을 감싼다. 커다란 손에 여자의 작은 얼굴이 감싸듯 들어왔다.

“이제 대답해 봐요.”

“…….”

“기꺼이 감수하겠다고 약속한다면. 내게, 기회 줄래요?”

동하의 손은 긴장으로 조금 떨리고 있었지만, 눈빛만큼은 무겁고 진지했다. 어떤 말보다 신뢰가 가는 그의 눈빛을 오래도록 바라보던 사희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동하의 얼굴에 봄바람처럼 부드러운 웃음이 번진다.

고개가 기울더니 곧 사희의 입술에 동하의 입술이 닿는다. 사희는 약속처럼 사르르 눈을 감았다. 벨벳거품처럼 부드러운 남자의 입술이 사희의 윗입술을 한번, 그리고 아랫입술을 두 번쯤 노크하듯 더듬는다. 그리곤 매끈하게 젖은 혀끝으로 여자의 입술 안쪽을 느리게 핥는다. 황홀할 정도로 정다운 키스였다.

서로의 따듯한 숨을 욕심껏 들이마신 두 사람은 가팔라진 호흡을 가다듬기 위해 살짝 입술을 뗐다. 잠깐의 공백도 아쉽다는 듯, 동하는 또 한 번, 그리고 다시 또 한 번 사희의 입술을 빤다.

사희는 연거푸 쏟아지는 남자의 입술을 혀끝으로 살짝 핥았다. 그리곤 미소가 번진 입술을 열어 작게 속삭였다.

“숨차요…….”

그러자 비소로 동하가 못 이긴 척 고개를 들었다. 사희를 바라보는 눈이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다정하고 또 다정했다.

“고마워요.”

“고맙긴요. 그저 같이 일하자는 제안을 받아들인 것뿐인데.”

사희는 태연한 표정으로 시치미를 뗀다.

“희망 연봉은 이력서에 적어 제출할게요.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제가 몸값이 좀 높아요. 너무 놀라지는 마세요.”

장난을 걸어오는 사희를 괘씸하다는 듯 보며 동하가 짐짓 무서운 표정을 짓는다. 그리곤 뾰족한 송곳니로 입술을 질끈 물었다.

“예뻐 죽겠네, 진짜.”

그가 사희 앞으로 한 걸음 크게 다가온다. 사희의 종아리 사이로 교차해 선, 동하의 단단한 허벅지가 느껴졌다. 동하는 사희의 등허리에 손을 얹어 자기 몸에 가깝게 밀착시켰다.

동하의 입술이 사희의 입술을 거침없이 덮쳐온다. 조금 전과는 다르게, 마치 집어 삼키기라도 할 것처럼, 거세게 몰아붙이는 거친 키스였다. 망설임 없이 허리를 타고 올라온 커다란 손이 사희의 가슴을 움켜쥔다. 부드러운 악력으로 말랑말랑한 젖가슴을 주무르다가 예민해진 끝을 느리게 문지른다. 그가 그 연약한 돌기를 자극할 때마다 정수리부터 짜릿하게 전기가 올랐다. 가랑이 사이에서 끈끈하고 뜨거운 기운이 느껴졌다.

“잠깐만…….”

무의식적으로 몸을 움츠린 사희가 무겁게 기대오는 동하의 가슴팍을 밀었다.

“하자. 하고 싶어.”

몽롱한 동하의 음성이 귓바퀴 위로 쏟아진다. 그의 뜨거운 혀가 귓불을 핥고 이내 귓바퀴까지 점령하니, 이내 물속에 있는 것처럼 둔탁한 고요가 느껴졌다.

동하의 셔츠 자락을 잡은 사희의 손가락에 바짝 힘이 들어갔다.

“이사희, 날 봐.”

그가 비밀 이야기를 하듯 속삭이는 목소리로 사희를 부른다. 질끈 감고 있던 눈을 뜨고, 사희가 천천히 동하의 눈을 마주 본다. 나른하게 취해 풀려있는 동하의 눈동자가 어떤 애무보다 부드럽게 여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솔직하게 이야기해.”

“…….”

“그만두라고 하면 그만둘게.”

사희는 아랫입술을 깨문다.

“네가 원하는 대로 해. 날 조종하는 건 너야.”

동하의 말에는 마약보다 강렬한 힘이 있었다.

사희의 가슴 속에서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대담함이 치밀어 올랐다. 사희는 동하의 목을 강하게 끌어안는다.

동하는 등허리를 받치고 있던 손을 셔츠 안으로 느릿하게 집어넣었다. 그의 긴 손가락이 브래지어 와이어를 자극적으로 문지른다. 살갗에 채 닿지도 않았는데, 화르륵, 몸이 달아오르고 아랫배에서 찌르르한 진동이 느껴졌다.

맹수처럼 으르렁거리는 숨결에 비해 손길은 신중하다. 얄밉고도, 야속한 애무였다. 애걸복걸하고 싶을 만큼.

“아아…….”

사희는 새된 신음이 절로 흘러나오는 입술을 손등으로 막으며 몸을 뒤틀었다. 입을 틀어막은 손을 잡아, 여자의 가느다란 손가락을 입술로 더듬으며 동하가 묻는다.

“어떻게 해줄까?”

“으응…….”

“말해, 이사희. 내가 어떻게 해야 하지?”

말할 수 없다는 듯, 입술을 깨무는 사희의 얼굴이 홍옥처럼 붉어졌다.

동하의 손길에 사희의 가슴을 옥죄고 있던 브래지어 버클이 순식간에 풀리고, 풍만한 유방이 적당한 탄력으로 흐트러진다. 봉긋하게 솟은 유두가 젖은 셔츠 위에 짜릿하게 도드라졌다. 그의 손가락이 민감한 끝을 살금살금 자극한다.

“이렇게 해줘?”

동하는 옷 위로 불거진 돌기에 코끝을 문지르더니, 곧 입술로 살짝살짝 건드리기 시작했다. 모든 간접적인 것에는, 직접적인 자극보다 야릇한 마력이 있다. 그리고 이 남자는 그것을 아주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아흣…….”

안타까움이 섞인 더운 숨이 사희의 입술 새로 튀어나온다.

한참 옷 위를 희롱하던 그의 손이 사희의 셔츠 단추를 풀기 시작한다. 젖은 옷가지와 속옷이 낙화하는 꽃잎처럼 바닥으로 툭툭 떨어진다. 동하가 풍만하게 출렁이는 사희의 가슴을 쥐자 부드러운 살갗에 남자의 엄지가 부드럽게 박혔다. 그의 입술이 붉게 솟아오른 것을 입 안에 머금고 매끄럽게 빨아들이자 사희의 몸이 반사적으로 뒤틀렸다.

남자의 혀끝과 입술이 음란하게 돌기를 굴리니 팥알만 하던 분홍색 양감이 새순처럼 도톰하게 부풀어 올랐다. 짐승 같은 소리를 내며 사희의 연약한 살갗을 잘근잘근 씹는 남자에게서 낮게 으르렁거리는 짐승의 소리가 났다.

그의 손이 능숙하게 사희의 팬츠 버클을 푼다. 커다란 손은 거침없이 속옷 속으로 파고들었다. 불가침 영역, 은밀하게 덮여있는 덤불을 다정하게 쓰다듬은 긴 손가락이 뜨거워진 틈새로 침범했다. 흥건하게 젖은 여린 살갗은 어떤 저항도 없이 당연한 듯 남자의 손가락을 맞이했다.

“젖었어.”

동하는 즐거운 농담을 하듯 여자의 귓가에 속삭인다. 그의 야릇한 말에 사희의 온몸이 훅하고 달아오른다. 그는 손가락 끝으로 도드라진 양감 주변을 힘주어 눌렀다. 매끄러운 살갗을 문지르자 피부가 그의 손가락에 물풀처럼 달라붙었다 떨어지며 색스러운 소리가 나기 시작한다.

템포가 점차 빨라질수록 사희의 허리가 강하게 뒤틀린다. 아랫도리에서 강한 요의가 느껴졌다.

“아아!”

힘이 풀려 스르르 미끄러지는 사희의 다리 사이로 동하가 단단한 허벅지를 밀어 넣었다. 틈 없이 밀착한 몸에서 불꽃처럼 뜨거운 체온이 느껴졌다.

미끄러지듯 자연스럽게 남자의 손가락이 안으로 들어온다. 하나, 그의 손가락은 돌기를 자극할 때처럼 거칠지 않았다. 애가 탈 정도로 천천히. 입구부터, 그 안쪽 깊은 곳까지 손가락을 가볍고 느리게 움직이자, 깊은 곳에 뻐근할 정도로 피가 몰렸다.

“뜨거워.”

동하가 사희의 귓가에 속삭인다. 옅은 웃음이 섞인 더운 음성이었다. 약에 취한 것처럼 풀린 눈으로 사희도 따라 웃었다.

그의 손가락이 불현듯 몸 안의 어느 부분을 강하게 자극하자 사희는 손으로 입을 꽉 틀어막으며 오한 들린 듯 부르르 떤다.

“으읏.”

더는 참을 수 없을 지경에 이르자 사희는 본능적으로 남자의 귓불을 세게 물었다. 그의 귓가에서는 버본 위스키를 쏟은 듯, 짙은 편백나무 향기가 났다. 새벽 습기를 먹은 듯한 무거운 나무 향기가 사희의 폐 속으로 파고들었다.

“……못 참겠어요.”

사희는 희미해진 눈을 꽉 감으며 동하의 귓가에 속삭인다. 그 말이 자극이 되었는지 키스를 퍼붓는 그의 입술이 더욱 뜨거워진다.

사희의 허벅지에 단단해진 남자의 것이 느껴졌다. 당장이라도 여린 살 속을 파고들 수 있을 만큼 거대하게 부푼 딱딱한 살덩이였다.

“침실로 갈까?”

동하가 낮게 떨리는 목소리로 묻는다.

“여기서 해요.”

사희가 젖은 목소리로 저지한다.

지금 바로 이곳에서. 물 위에 떠 있는 것처럼 아늑한 이곳에서 나를 핥아줘. 나를 짓누르고, 깨물고, 뜨겁게 밀어붙이고, 그리고…….

“안아줘.”

사희가 애원하듯 외친다.

“안아줘요.”

안아줘, 나를. 너의 심장과, 나의 심장이 맞닿게 해줘. 네 뜨거운 심장 소리로, 차가운 내 심장을 덥혀줘.

그는 명령에 충실했다. 잘 훈련된 명견처럼 사희의 말 한마디에 완벽히 조종당하는 것 같았다.

이성을 갖춘 언어는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단어로 만들어내는 말은 그들 사이에 더 이상 의미가 없었다. 피가 빠르게 몰려들고 있는 은밀한 신체의 폭발적인 두근거림과 서로를 집어삼킬 준비가 되어있는 본능만이 남았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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