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어린이집 근처부터 시작해 이웃 동네까지 수아를 찾아 뛰어다녔다. 땀으로 흠뻑 젖은 옷이 몸에 넝마처럼 들러붙었다. 수아를 부르느라 얼마나 소리를 질렀던지, 이제는 목소리도 잘 나오지 않는다. 목구멍 안쪽이 사포에 긁힌 것처럼 따끔거렸다. 발바닥이 부서질 것처럼 아프고 허리가 땅겼다. 당장이라도 어디에든 쓰러지면 그대로 잠들 수 있을 만큼 고단했다.
어그적 어그적 몇 걸음을 더 걷다가 사희는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주저앉았다. 오리걸음으로 겨우 자리를 옮겨 상가 뒷문으로 올라가는 낡은 계단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는다.
해가 길어지기 시작한 봄날의 저녁은 6시가 가까운데도 아직 완전히 어둡지 않았다. 낙조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도시는 온통 부드러운 주홍빛이다. 절망스러운 마음과 달리 황혼은 야속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이 황혼을 두고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고 한다던가. 해가 완전히 사라지기 전, 저 멀리 보이는 것이 내가 사랑하는 개인지, 나를 물어뜯을 늑대인지 알 수 없는 그 혼돈의 시간. 그래서일까 눈에 띄는 고만고만한 아이들이 모두 수아 같아서 사희는 몇 번이고 움찔움찔 자리에서 엉덩이를 뗐다.
피로 때문인지 눈앞이 흐리다. 하나둘 불을 밝히기 시작하는 가게들의 간판 빛이 번져 보였다. 학원 수업이 끝났는지 맞은편 건물에서 고만고만한 아이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참새처럼 재잘거리는 아이들이 1층에 있는 핫도그 가게로 곧장 뛰어 들어갔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사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합기도복을 입은 사내아이들 틈에 수아가 끼어 있을 리 만무했지만 사희는 기어이 가게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리곤 아이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확인해 보았다. 갑자기 달려와 뚫어지게 얼굴을 보는 사희가 이상했는지, 아이들이 주춤주춤 뒷걸음친다.
“누구세요?”
주인 여자가 다가와 수상한 행동을 하는 낯선 여자를 경계하는 눈빛을 보낸다.
“아이를 찾고 있는데요. 여기 사진……. 혹시 이 근처 지나는 거 못 보셨나요? 여기 앞에 있는 맥도널드에 전에 몇 번 온 적이 있어서 이 길을 지나갔을 것 같은데.”
사희가 주인 여자를 향해 휴대전화를 내밀었다. 액정화면에는 수줍은 웃음을 짓고 있는 수아의 사진이 있었다. 올해로 7살이 되었지만 또래보다 체격이 작고 말라서, 고작 5살 정도로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쌍꺼풀 짙은 까만 눈은 겁을 먹은 것처럼 크다.
“난 못 본 것 같은데.”
주인 여자는 그제야 사희에 대한 경계를 풀고 고개를 가로젓는다.
힘이 빠진 사희는 터덜터덜 밖으로 걸어 나왔다. 갑자기 맥이 탁 풀려 한 걸음도 더 걸어 나갈 수가 없어 사희는 그대로 상가 앞 난간에 앉았다. 고치처럼 쪼그려 앉아, 무릎에 얼굴을 묻은 채로 한참을 앉아있었다.
그만 일어나야지, 라는 생각을 서른 번이 넘게 하면서도 쉽게 궁둥이가 떨어지지 않았다. 한번 맥이 빠지니 걷잡을 수 없는 피로가 몰려왔다. 이제는 정말 일어나야겠다고 생각하며 겨우 허리를 폈을 때, 사희의 가방 속 휴대전화의 진동이 울렸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금선구 송정 파출소 김은섭 순경입니다. 혹시 조수아 양 이모님 되십니까?
사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네, 제가 수아 이모예요.”
-시민분께서 길을 잃고 울고 있는 아이를 서로 데려다주셨습니다. 와서 데려가시겠어요?
***
“아이가 많이 놀랐는지 보호자 전화번호도 기억하지 못해서요. 마침 수아가 하고 있는 목걸이 뒤쪽에 어머님 전화번호가 있더라고요. 전화해보니, 간호사가 받으시던데……. 이 번호를 알려주셔서 전화 드렸습니다.”
앳된 티가 나는 순경의 설명을 들으며 사희는 소파 한쪽에 잠이 들어있는 수아를 보았다. 수아는 어이없게도 조금 전까지 사희가 목이 터져라 이름 부르며 찾아다녔던 동네의 한 상가에서 발견되었다고 했다. 내내 울다가, 순경들이 사 준 아이스크림을 먹고 나서야 조금 진정이 되었다는 아이는 깊게 잠이 들어있었다. 까무잡잡한 얼굴 가득 소금기 섞인 눈물 얼룩이 허옇게 말라붙어 있었다.
“얼마나 서럽게 울던지 달래느라 고생 좀 했습니다.”
“미아 방지 지문 등록을 하시면 이런 때에 더 빨리 아이를 찾을 수 있어요.”
사희를 둘러선 순경들이 한 마디씩을 덧붙였다.
“죄송합니다. 고맙습니다.”
사희는 허리를 깊게 숙여 몇 번이나 인사를 한 뒤, 수아를 안았다. 수수깡처럼 마른 아이는 힘들일 것 없이 번쩍 들렸다. 얼마나 헤매다녔는지, 아이의 옷에서는 땀 냄새가 났다. 마지막으로 봤을 때만 해도 긴 머리였는데, 그새 멋없이 깡총하게 깎은 단발 머리카락이 새 둥지처럼 헝클어져 있다.
손재주가 좋은 언니가 수아를 돌볼 때에는 꼼꼼하게 땋은 긴 머리가 한 번도 흐트러진 적이 없었는데. 마음속에서 안쓰러움과 동시에 화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사희가 막 파출소를 나서는데 중형차 한 대가 그들 앞에서 멈췄다. 그리고 곧 그 안에서 멀끔하게 생긴 남자가 내렸다. 형부였다.
“수아야!”
한달음에 사희가 있는 쪽으로 달려온 형부가 아이를 받으려 했지만, 사희는 몸을 조금 돌려 그 손을 저지했다.
차의 운전석에서 새침하게 생긴 여자가 내린다. 입술을 힘주어 한껏 오므린 쀼루퉁한 표정이었다. 여자는 곁눈으로 사희를 한번 힐끗 흘기듯 보더니 고개를 까딱 움직여 하는 둥 마는 둥 인사를 한다.
사희와는 구면인 여자다. 언젠가 사희에게 뺨을 억세게 얻어맞은 적이 있는, 형부의 내연녀. 아니, 지금은 형부와 재혼한 여자였다.
사희는 활활 타오르는 눈빛으로 여자를 쏘아보다가, 이내 형부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떻게 된 거예요? 왜 제때 애를 찾으러 안 갔어요? 어린이집에 물어보니 수아가 제시간에 하원 못한 지 일주일이 넘었다던데.”
“별일 아니야. 그냥 그럴 일이 좀 있었어.”
“똑바로 말 안 해?”
사희가, 다시 수아를 향해 팔을 뻗는 형부의 손을 쳐내며 앙칼지게 소리쳤다.
사희의 서슬에 살짝 기가 죽은 남자는 우물쭈물하더니 뒷머리를 벅벅 긁는다.
“그게……. 어머니가 몸이 안 좋으셔서 수아가 몇 주 우리 집에 있게 됐어. 알다시피 이 집에도 애가 있잖아. 그 애 어린이집 시간이랑 수아 하원 시간이 좀 겹치게 되어서…….”
사희의 눈에 번쩍 불똥이 튄다.
“그러니까 피도 안 섞인 남의 새끼 때문에, 자기 새끼는 어떻게 되든 말든 방치해 뒀다는 거야?”
“무슨 말이 그래요? 남의 새끼라뇨. 우리 애, 엄연히 이 사람 아들이에요.”
듣고 있던 형부의 여자가 발끈하며 반박했다. 사희가 휙, 고개를 돌려 여자를 노려보자 기세 좋게 다가오던 여자가 조금 주춤한다.
“네가 수아 머리 이렇게 잘라놨어?”
여자를 꿰뚫을 것처럼 노려본 사희가 잇새로 씹어뱉듯 물었다. 여자는 입안으로 우물우물 말을 삼키며 시선을 피했다.
“아니, 애 머리가 하도 엉켜서 어쩔 수 없이…….”
“너, 똑똑히 들어. 나는 착해빠진 우리 언니랑은 달라. 수아한테 또 한 번 이런 일 생기면, 그때는 너 내 손에 죽어. 니들 다, 내 손에 죽을 줄 알아.”
“어머, 진짜…….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을 치며 어이없어하면서도, 여자는 강하게 반박하지 못하고 쭈뼛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두 여자 사이에서 난처한 표정을 짓고 있던 형부가 입맛을 쩝, 다시며 슬글슬금 눈치를 살피더니 사희 쪽으로 몸을 돌렸다.
“어머니 내일이면 퇴원하실 거야. 그러니까 앞으론 이런 일 없어. 걱정하지 마. 처제.”
“당신이 키우지도 않을 거면서, 수아를 왜 데려간 거야. 늙은 엄마한테 애 맡겨놓고 어쩌다 한번 코빼기 한번 비추면 다야?”
“누가 어떻게 키우든 내가 알아서 해. 그러니까 빨리 수아 줘.”
형부가 수아를 데려가려고 다시 손을 뻗었다. 사희는 수아를 안은 채 강하게 몸을 돌려 거부했다.
“수아, 내가 데려갈 거야.”
“그 집은 안 된다고 했지. 이강희 손에 절대 애 못 맡겨. 그러니까 빨리 수아 내놔.”
“내가 데려간다고! 내가 키워.”
“처제가 언제까지 이 애를 키울 수 있는데? 넌 네 인생 안 살 거야?”
사희가 멈칫하는 사이, 형부는 그녀에게서 수아를 데려갔다. 그리곤 여차하는 사이 수아를 차에 태워버렸다.
“나만 나쁜 놈이라고 욕하지 마. 어차피 사람 이기적인 거 다 똑같아. 너도 지금이야 펄펄 뛰지만 결국 수아나 네 언니가 부담스러워지는 순간이 온다고. 넌 안 그럴 것 같아?”
잡아먹을 듯 사희를 몰아세운 형부는, 반박할 의지를 잃은 그녀 앞에서 차 문을 세게 닫았다.
순간 숨구멍이 꽉 막히기라도 한 것처럼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무언가, 감정의 응어리 같은 것이 명치에 얹힌 듯했다. 어쩌면 정곡을 찔린 건지도 모르겠다.
아닌 척했지만, 언니와 수아의 존재가 부담스러웠던 것이 사실이다. 너무 버겁고, 고단해서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도 있었다. 그 사실을 타인의 입으로 확인받고 나니, 이렇게 파르르 떨고 있는 자신이 위선자처럼 여겨졌다. 더는 한 발자국도 수아를 향해 다가설 수가 없었다.
수아를 태운 차가 멀어진다. 차 꽁무니, 후미등의 붉은 빛이 물에 젖은 것처럼 번졌다. 도로의 차들에 섞여 들어가 이내 어느 것이 수아가 탄 차인지 구분할 수 없게 되었다. 개와 늑대의 시간은 저물고, 도시는 어느새 검은 밤이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