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구원의 밤-13화 (14/109)

#13

사희는 남자의 얼굴을 해부하듯 이리저리 꼬집어보았다. 검게 빛나는 눈, 말수가 적어 보이는 굳은 입술, 다부진 체격이 하나하나 사희의 눈동자에 들어온다. 사희의 노골적인 시선에도 그는 당황하거나, 난처해하는 기색이 없었다. 예상보다 더 담대한 성격인 듯했다.

가감 없이 쏟아지는 눈빛을 받으며 동하는 얌전한 애완동물처럼 잠자코 그녀의 대답을 기다렸다. 저를 파헤치듯 뜯어보는 여자의 시선에 의심보다는 호기심이 어려 있는 게 재미있었다. 그녀의 시선을 따라 동하의 시선도 함께 움직인다. 마치 거울 앞에 선 것처럼 기분이 묘했다.

한참 동안 동하를 관찰하던 사희가 무언가 짐작했다는 듯 눈을 반짝 빛낸다.

“혹시…….”

“혹시?”

“노바 직원이에요?”

사희의 말에 굳어있던 남자의 입술이 묘하게 비틀렸다. 웃음이 나오는 걸 참는 듯했다.

“왜 그렇게 생각하죠?”

“회원도 아니라면서 센터에 자주 나타나는 것도 그렇고, 컴플레인을 걸겠다고 해놓고 감감무소식인 것도 그렇고. 무엇보다 이 시간에 스포츠센터에 마음대로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이라면 여기에서 일을 하는 사람이겠지.”

“계속해 봐요.”

“센터 사무실 직원들 얼굴이라면 내가 다 아는데, 그쪽은 그것도 아니니까. 여러 가지 정황상…….”

“정황상?”

“보안실 직원인 것 같거든. 그것도 여기 온 지 얼마 안 된. 그랬으니 센터 규정도 잘 몰랐을 테고. 맞죠?”

동하는 단전 깊숙한 곳에서부터 치밀어 오르는 웃음을 꾹 눌러 참으며 눈을 크게 떴다.

“대단한 추리네요.”

“정말 맞아요?”

사희는 마치 감탄한 듯 놀라며 어깨를 으쓱 올리는 동하의 몸짓을 놓치지 않고 살폈다. 그의 표정과 말투가 딱히 부정의 뜻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역시 그랬구나. 어쩐지. 딱 그런 것 같더라니.”

사희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노바의 직원이라고 생각하자 사희는 비로소 안심이 되는 기분이었다. 더는 컴플레인 걱정을 할 필요도 없고, 그러니 행여나 그가 정리되는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며, 무엇보다 다시 마주칠 수도 있다는 어떤 기대 때문이었다. 대체 왜 그걸 기대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아무리 직원이라도 여기 이 꼴로 있는 걸 누가 보기라도 하면 당신한테 좋을 건 없을 거예요. 그러니까 얼른 나가죠.”

“이거 또 걱정 같은데. 또 아니라고 할 겁니까?”

“네, 아니에요.”

“거짓말을 잘하시네요, 이사희 강사님.”

“착각을 잘하시는 거겠죠. 이동하 씨가.”

“말도 잘하고.”

싱긋 웃는 동하의 뺨에 옅은 보조개가 팬다. 사람을 깔아보는 것 같던 이전의 웃음과는 다른 색깔의 미소였다. 사희는 홀린 듯 그 미소를 바라보다가 이내 정신을 차렸다.

“어쨌든 고맙습니다, 오늘.”

“내가 강사님 목숨을 구해줘서?”

“내일 아침 쪽팔릴 일을 막아줘서요.”

“하하하.”

동하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텅 빈 풀장에 유쾌하게 퍼져나간다. 기분 좋은 웃음소리다. 언제까지고 듣고 싶다는 욕망이 들 만큼.

그 웃음소리를 한참 듣고 있다가 비로소 정신을 차린 사희가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그럼 전 이만 갈게요.”

“그래요. 늦었네요.”

“그런데 내일도 이 시간에 근무하시나요?”

사희의 입술에서 계획에 없던 질문이 불쑥 튀어나왔다. 무엇이 그녀로 하여금 그런 적극성을 유도했는지 모르겠다.

“그건 왜요? 나 근무 안 하는 날 맞춰서 죽으려고?”

“아, 정말 그런 거 아니라니까요!”

“강사님 살리기 위해서라도 당분간은 매일 근무해야겠네요.”

농담인지, 진담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대답이다. 마치 그가 자신을 향해, 믿고 싶은 대로 믿어도 좋다고 선택지를 주는 것 같았다. 사희는 몇 초간 남자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그럼 내일 여기에 오면 그쪽을 다시 만날 수 있는 건가요?”

“다시 만나서 무얼 하게요?”

“세탁비 드리려고요. 제가 지금은 현금이 없어서. 시간 괜찮으실까요?”

말을 꺼내 놓고, 돌아올 대답을 기다리는 1초가 10년처럼 느껴졌다. 사희는 목 언저리가 함부로 들까부는 것을 느꼈다.

뜻밖의 제안을 받은 동하는, 잠시 여자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맹랑한 제안과는 달리 조금 긴장한 얼굴이었다. 마른침을 삼키는 것인지 목 밑이 울근불근했다. 그 간극이 흥미롭게 느껴졌다.

한국에 온 이래, 스트레스와 악몽에 쫓겨 잠을 이룰 수 없는 나날들이 계속되고 있다. 어차피 뜬눈으로 보내야 하는 밤이라면, 그녀를 만나도 좋을 것이다. 적어도 누군가와 함께 있는 동안은 나쁜 생각이 들지는 않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이사희. 이 여자와 함께 하는 시간, 정말 재미있고.

“괜찮을 것 같네요. 마침 내일도 근무라.”

잠시 뜸을 들이던 동하에게서 원하던 대답이 돌아왔을 때, 사희는 졸아붙었던 마음이 주름 없이 펴지는 기분을 느꼈다.

사희는 LED 전광판에 표시된 시간을 확인했다. 2분이 모자란 11시였다. 시간을 확인한 사희가 다시 동하를 돌아본다.

“그럼 내일 여기에서 다시 만나요.”

목소리 끝이 조금 떨렸다. 그러자 곁눈으로 살짝 시간을 본 동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10시 58분, 여기에서 기다릴게요.”

조심스러운 음성에 묘한 기대가 묻어 있었다.

***

집안으로 들어온 수찬이 창에 드리운 암막 커튼을 걷어냈다. 커튼에 막혀있던 햇살이 망설임 없이 집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동시에 어둠 속에 묻혀있던 집안의 실루엣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사 들고 온 커피와 샌드위치를 내려놓으려 식탁으로 걸어가던 수찬은, 바닥의 물기를 밟고 미끄러질 뻔했다.

“어이쿠, 바닥에 웬 물이.”

대리석 바닥에 물이 흥건했다. 물은 욕실까지 죽 한 줄로 이어져 있다. 모양새가 물을 엎지른 것 같지는 않았다. 물이 흐른 흔적을 따라가니, 욕실로 들어가는 입구 한편에 놓인 세탁물 바구니에 물에 젖은 옷가지가 쌓여있는 것이 보였다. 어제 동하가 입고 있던 옷이 확실했다.

“뭐지? 옷이 왜 이렇게…….”

동하는 워낙 천성이 꼼꼼하고 깔끔한 사람이다. 물빨래가 되지 않는 옷을 무방비하게 물에 담가 놓을 사람이 아니었다.

비를 맞았나? 어젯밤에 비가 왔던가?

수찬이 젖어있는 옷가지를 들어 보았다. 옷에서는 소독약 냄새가 났다. 실내수영장 같은 데에서나 맡을 수 있는 특유의 냄새였다.

“도대체 어딜 다녀오신 거지?”

수찬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때, 침실 문이 열리고 동하가 밖으로 나왔다. 피로한지 눈이 조금 충혈되어 있었다.

“왔어?”

“네. 그런데, 선배. 어제 무슨 일 있었어요?”

“무슨 소리야?”

“아니, 옷이 물에 다 젖어 있어서요.”

동하는 수찬이 들고 있는 옷가지를 보더니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피식, 싱겁게 한번 웃을 뿐 어떤 대답도 하지 않았다.

“수영장 갔었어요?”

“어떻게 알았어?”

동하가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놀란 눈으로 수찬을 본다.

“옷에서 그런 냄새가 나서요. 그런데 진짜 수영장에 가셨어요?”

“그냥 뭐.”

“그런데 옷은 왜 다 젖었어요? 옷을 입고 수영을 한 것도 아닐 텐데.”

동하는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지 조금 고민하다가 그냥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어제의 일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잘 모르겠는 탓도 있지만, 왠지 그런 말을 다른 사람에게 하는 것이 그 여자에게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사희는 스스로 자맥질을 멈추었다. 그녀가 모든 것을 포기한 듯 돌연 발버둥을 멈추고 물속으로 빠지는 그 모습을 동하는 분명히 목격했다. 앞의 어느 정도까지는 사고라고 할 수 있었겠으나, 결정적인 순간부터는 결코 사고가 아니었다. 그녀는 분명 죽으려고 했다.

고작 한두 번 마주친 사이이긴 했지만, 차돌멩이같이 단단해 보였는데 무엇이 그녀로 하여금 스스로 자신을 포기하게 만들었는지 의아했다. 대체 무슨 사정이 있기에.

문득 운 것처럼 붉게 젖어있는 여자의 눈꺼풀과, 동아줄을 붙들 듯 저에게 매달려있던 하얀 팔이 떠올랐다. 그저 한번 떠올렸을 뿐인데, 가슴 속에서 어떤 가련함 같은 것이 느껴졌다.

“…….선배?”

수찬의 목소리가 동하를 다시금 현실로 데려온다.

“응?”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 몇 번을 불러도 못 듣고.”

“아무것도 아니야. 왜? 무슨 이야기 했어?”

“그 칼럼 기고한 기자에 대해서 알아보라고 하셨잖아요. 윤재화 관련해서 글 썼다는.”

동하를 한국으로 불러들인 결정적 계기가 되었던 그 칼럼에 대한 이야기였다.

“응. 뭐 좀 있어?”

“그 잡지사 자체가 워낙 영세한 곳이더라고요. 작년부터는 종이 잡지 발행도 하지 않는대요. 그냥 자체 사이트에 기사 올리고, 기업 후원받아서 근근이 운영하는 방식. 소속 기자들 기사로 움직이는 게 아니고 기고를 받아서 운영하는지라 칼럼도 사실 거의 기업 홍보들에 가까웠고요. 기업에서 홍보기사를 작성해서 주면 실어주는 정도인 거죠. 그런데…….”

수찬은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 미심쩍다는 듯, 살짝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곧 눈살을 가늘게 좁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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