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구원의 밤-11화 (12/109)

#11

그 통증에 놀라 사희는 자기도 모르게 흐흡, 숨을 들이마셨다, 입안으로 찬물이 밀려들어온다. 기도로 들어간 물 때문에 기침이 일었다. 사희는 팔을 허우적거리며 나아가던 것을 멈춘다.

토할 것처럼 기침을 한 사희가 물가로 헤엄쳐 가려고 몸을 뉘었을 때, 장딴지 근육이 뻣뻣하게 굳기 시작했다. 쥐가 나고 있었다. 술을 마시고 물에 들어오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후회한 순간 이미 늦었다.

사희는 물속으로 손을 뻗어 엄지발가락을 세게 잡아당긴다. 이렇게 하면 웬만해선 풀리기 마련인데, 왜인지 감감무소식이었다. 장딴지를 타고 올라온 마비가 대퇴근까지 뻣뻣하게 굳히니 몸이 자꾸만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사희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물속으로 잠수해 들어갔다 그리곤 있는 힘을 다해 대퇴근을 주먹으로 치기 시작했다. 하나 물속에서의 힘이 물 밖과 같을 수는 없다. 다시 물 밖으로 나와 숨을 크게 쉰 사희는 앞으로도 그렇게 몇 번이나 잠수를 시도해 쥐를 풀어보려 했지만 차도는 없다. 움직일 때마다 수술을 했던 어깻죽지에서도 찢어질 듯한 통증이 밀려오고 있다.

그 다급한 순간에 문득 우스운 생각이 들었다. 한 시절 국가대표였던 수영선수가 수영장에서 이렇게 허무하게 죽어버린다면 세상 사람들은 자신을 어떻게 기억할까. 아니, 과연 누가 기억이나 해줄까.

내가 여기에서 죽으면 회원들이 단체로 클레임을 걸겠지? 세상 둘도 없는 민폐를 끼친 강사로 기억되겠군. 그렇게라도 기억되면 그것도 행운인가. 만약에 그렇다면…….

‘그 남자도 날 기억할까?’

그 순간, 왜 그 남자 생각이 났는지 모르겠다. 컴플레인을 걸겠다고 해놓고 마치 없었던 사람처럼 사라져버린, 이동하라는 이름을 가진 그 남자. 죽을 때면 그동안 살아온 인생이 필름 감듯 스쳐 간다는데, 그것도 다 아닌 말인가 보다. 죽는 마당에 아무런 연관도 없고 알지도 못하는 낯선 남자나 떠올리다니.

술 때문이야. 술을 마셔서 그래.

그래도 왜인지 그 사람을 떠올리자 더 이상의 두려움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냥 이대로 죽어도 될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맥이 풀리듯 몸에서 힘이 빠져나간다.

사희는 더 이상 발버둥 치지 않기로 했다. 이대로 끝낼 수 있다면, 이것이 끝이라면 차라리 그러고 싶었다. 이대로 모래처럼 바닥으로 가라앉자. 이제 다 포기하자.

수영장 바닥으로 가라앉은 사희의 등이 바닥에 닿는다. 횡격막을 치는 호흡 충동이 가빠졌지만, 되레 그럴수록 마음은 편안해졌다. 깊은 곳으로 끝없이 빨려 들어가는 느낌을 받으며 사희는 천천히 정신을 잃었다.

산 자의 의식인지, 죽은 자의 것인지 가물가물해지던 순간, 부드러운 힘이 사희의 몸에 닿았다. 누군가, 이곳에 그녀와 함께 있었다.

***

사희의 겨드랑이 사이로 팔을 끼워 안은 이는 마치 가벼운 물건을 건져내듯 훌쩍 수면으로 솟구쳤다. 등허리와 팔을 잡는 강렬한 악력을 느낀 사희는 그제야 자신이 죽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꺄악!”

짧게 비명을 지른 사희는 거칠게 수경부터 벗어 던진다. 콜록, 콜록, 콜록. 힘겹게 물을 토해낸 사희는 급한 대로 지탱이 될 만한 것을 잡고 매달렸다. 죽으려고 해놓고, 이제 와선 살겠다고 매달리는 꼴이라니.

콧속이 맵고 아리다. 기침을 할 때마다 코와 입에서 매운 냄새가 나는 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물을 한 번 더 울컥 뱉어낸 사희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자신을 안고 있는 버팀목에 고개를 파묻었다.

“하아, 하아.”

사희의 입술 새로 가파른 숨이 쉴 새 없이 터져 나왔다.

동하는 자신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은 여자를 바라본다. 물에 젖은 어린 짐승처럼 사희가 그의 목에 애처롭게 매달려 있었다. 그녀가 토하는 더운 숨이 물에 젖은 셔츠 자락에 닿을 때마다 묘한 간지럼이 인다. 맞붙은 몸에서 쿵쿵쿵, 빠르게 뛰는 심장박동이 느껴졌다.

질끈 감은 여자의 눈꺼풀이 바들바들 떨리고 있다. 울었던 걸까. 눈자위가 붉다.

‘살고 싶었어, 그게 죄는 아니잖아.’

왜일까. 가슴에 짙게 얼룩진 흔적 같은 그 말이 반사적으로 떠올랐다. 사희의 어깨를 잡은 손에 강하게 힘이 들어간다. 그녀의 몸이 닿은 자리가 불에 덴 것처럼 뜨겁게 타올라 저를 녹여버릴 것만 같았다. 멈칫, 당황한 동하는 위험한 것을 떨쳐버리듯 품에서 사희를 조금 떼어냈다.

“괜찮습니까?”

사희는 가까운 곳에서 들려오는 낮은 음성에 흠칫 놀라 고개를 들었다.

“어?!”

자신의 안고 있는 사람을 본 순간, 사희의 입술에서 바보 같은 외마디 음성이 흘러나왔다. 죽기 직전, 이유도 없이 떠올렸던 그 남자가 눈앞에 있었다.

‘내가 지금 환상을 보는 건가?’

사희는 큰 눈을 느리게 몇 번 깜빡였다. 눈꺼풀을 따라 흘러내린 물이 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남자의 얼굴이 뿌옇게 흐려졌다. 그의 모습을 놓치고 싶지 않아 사희는 얼굴 두 손으로 눈을 비볐다. 그러자 다시 남자의 얼굴이 선명하게 보였다.

“…이동하…….”

사희의 입술에서 작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동시에 동하가 살포시 눈꺼풀을 찌푸렸다.

“그런 걸 다 기억하네…….”

물에 젖은 사희의 뺨 위로 커다란 손바닥이 닿았다. 마디가 굵고, 긴 손가락이 사희 얼굴의 물기를 닦아낸다.

“죽으려면 아무도 모르는데 가서 혼자 죽지. 여기에서 이게 무슨 짓입니까?”

다정한 손길과는 다르게 차가운 목소리였다.

“당신이 왜 여기에…….”

“그러는 강사님은요? 이 시간에도 특별 강습이 있으신가?”

동하가 붉은 입술을 비틀어 짓궂게 조소했다.

“아…….”

저를 비웃는듯한 목소리를 듣자 비로소 정신이 돌아왔다. 사희는 재빨리 남자를 밀어내고 물 밖으로 헤엄쳐 나왔다. 죽었다 살아난 탓인가. 심장이 어지럽게 뛰었다.

***

동하가 멍하니 앉아 있는 사희에게 생수병을 건넨다. 사희는 생수병을 한번, 그리고 그것을 들고 있는 남자의 얼굴을 한번 올려 보았다. 무심한 듯 내려다보고 있지만, 짧은 순간 그의 눈이 빠르게 자신의 안색을 살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사람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눈으로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하는지 사희는 분명히 알고 있다. 아빠의 기분을 거슬리지 않기 위해서, 배척하고 싶어 하는 동네 사람들과, 영악하게 괴롭히던 아이들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사람들의 시선을 살피고 또 살폈던 버릇 때문이다.

그녀가 이해한 것이 맞는다면 지금 그는 자신을 걱정하고 있다. 과하지 않게, 그렇다고 모자라지도 않게.

“팔 떨어지겠네.”

동하는 병을 한번 까딱하고 흔들어 받으라는 제스처를 해 보였다.

그와 너무 오래 눈을 마주치고 있었던 것 같아 사희는 얼른 시선을 피했다.

사희가 끝내 생수를 받지 않자 동하는 손수 그녀의 곁에 물병을 내려놓았다. 그리곤 그녀가 앉은 벤치에서 서너 자리 떨어진 자리에 털썩 엉덩이를 붙여 앉는다. 그리곤 제 몫의 생수를 마시기 시작했다. 울대를 치고 넘어가는 물소리가 들린다.

순식간에 물 반병을 쉬지 않고 다 마시고 나서야 동하는 하아, 하고 깊은 숨을 내쉬었다. 동하의 머리카락과 몸에서 흐른 물이 바닥을 흥건하게 적시고 있다. 물에 젖은 셔츠와 팬츠가 그의 건장한 몸에 해초처럼 들러붙어 있다. 그가 얼마나 다급하게 물에 뛰어들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왜 컴플레인을 걸지 않으셨어요?”

오랜 정적을 깨고 사희가 물었다. 동하는 피실, 코웃음을 쳤다.

“고맙다는 인사를 기다렸는데. 전혀 생각지도 못한 질문을 먼저 받네?”

“사무실에 컴플레인을 걸겠다고 하셨잖아요. 그런데 어떤 액션도 없으셔서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궁금했어요.”

“별 액션이 없으면 그런가 보다 하고 잊으면 그만 아닙니까.”

“그런가 보다 할 수가 없어서요. 최악의 상황에 대비를 해야 하거든요.”

“최악의 상황?”

“을에게 최악의 상황이야 뻔하죠. 짤리는 거지. 회원들 한 마디에 밥줄이 왔다 갔다 그러더라고요, 여기가. VIP 회원의 말이라면 더욱 더.”

사희는 부루퉁하게 대답하곤 물기가 마르기 시작한 얼굴을 젖은 손바닥으로 쓸어내렸다.

“안쓰럽게 들어야 하는 건가? 마치 앞으로도 컴플레인을 걸지 말아줬으면 한다는 말을 굉장히 돌려서 하는 것처럼 들리는데.”

“그렇게 들리셨다면 성공이네요. 네, 맞아요. 부탁드리는 거예요. 지금까지 참은 일이라면, 앞으로도 참으실 수 있지 않을까요?”

사희가 동하 쪽을 돌아보며 말했다. 줄곧 그녀를 보고 있었는지 고개를 돌리자마자 그와 눈이 마주쳤다. 그가 저를 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사희는 조금 당황했다.

“내 컴플레인 하나에 강사 자리가 날아간다거나 하지는 않을 겁니다. 다행히, 내가 VIP 회원은 아니라서.”

심드렁한 동하의 말에 굳어있던 사희의 얼굴에 반짝 반색이 돌았다.

동하는 속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는 웃음을 참으려 입술에 조금 힘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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