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화
문을 열고 들어온 이는 숨을 헐떡헐떡 거렸다. 당장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처럼 거칠게 숨을 내쉬고 있었지만 그러든 말든 소파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던 이는 심기가 불편한 표정으로 노려볼 뿐이었다.
“너는 언제 불렀는데 이제 기어와?”
담배를 재떨이에 지져 끈 명준의 손이 재떨이를 움켜쥐려고 하자 진호가 움찔거렸다. 저것은 필시 재떨이를 던지기 위한 준비단계였다.
“죄송합니다. 차가 많이 막혀서.”
“너는 하루라도 핑계를 안 대면 입에 가시가 막 돋아나지? 너는 막히는 길로만 찾아다녀? 차는 맨날 막히지 아주.”
“아까 조사하는 중에 갑자기 부르시는 바람에… 지금은 차가 많이 막히는 시간이어서….”
“한마디만 더 해라.”
명준은 재떨이를 잡고 있던 손에 더 꽉 힘을 주었다. 저기에서 조금만 더 건드리면 저게 바로 머리를 향해 날아올지도 몰랐다. 진호는 입을 꽉 다물고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명준의 손가락이 이리 다가오라는 식으로 손짓을 하더니 소파를 가리켰다. 얼른 보고나 하라는 뜻이었다. 진호는 잽싸게 소파로 가서 앉았다.
“상무님, 제가 알아본 바로는….”
“상무고 나발이고, 그냥 빨리 보고나 해.”
“어… 형. 인사팀에 계속 알아봤는데 아무도 지훈이가 누군지 모르더라고….”
“아무도 모른다고?”
“어. 이건 진짜 입사 지원을 해서 붙었다는 얘기밖에 안 되거든. 회장님이 꽂아서 넣으셨으면 분명 이야기가 돌았을 텐데 그런 소리가 전혀 없어.”
“확실해? 씨발. 나 지금 얼마나 예민한지 알지? 나중에 내가 확인했는데 딴소리 나오면 넌 진짜 뒈진다.”
“아무도 모르는 걸 보면 윗선에서 누가 지시한 건 절대 아니야. 이건 내가 보증해.”
“너 여기저기 다 들쑤시고 다닌 거 아니야? 김지훈 캐고 다닌다고 동네방네 소문 다 내고?”
“무슨 소리야. 내가 뒷조사만 몇 년째인데. 그 정도는 기본이지.”
진호는 정말 자신을 믿어달라는 듯이 굳건한 표정으로 말을 했다. 저렇게 말할 정도면 지훈을 누가 꽂아준 건 아니라는 게 맞는 것 같기는 했다.
그러면 여기를 스스로 들어왔다고? 지 발로 한국이 싫어서 미국으로 가겠다고 했던 그 꼴통 새끼가? 분명 아버지하고 지훈 사이에 뭔가가 있는데 그 실체가 무엇인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지훈이 뒤도 밟아봤는데 별게 없더라고.”
“진호야.”
“응?”
“너는 그냥 판단하지 말랬지? 그게 별건지 아닌지는 내가 판단할게. 너는 그냥 씨불이기나 해. 이 새끼야. 안 그래도 스팀 도는데 이걸 확 그냥.”
명준은 손을 들더니 진호를 한 대 치려는 시늉을 하다가 손을 거뒀다. 지금은 지훈만 생각해도 머리가 아파 죽겠는데 쓸데없는 곳에 힘을 쓰고 싶지 않았다.
진호는 본능적으로 위기감을 느끼고 두 손으로 머리를 가렸다가 명준이 잠잠해지자 다시 고개를 들었다.
“첫날에는 사무실에 들어가지도 않고 옥상에서 담배만 피우더라고. 업무 시간에 수면실에서 잘 때도 있고, 한번 밖에 나오면 30분 넘게 밖에서 담배나 피우다가 들어가고. 일을 하는 것 같지가 않아.”
들어보니 업무 태도는 개판이었다. 신입으로 들어온 직원이 하지 말아야 할 것들만 골라서 하고 있었다. 그럴 거면 이 회사에 입사 시험까지 쳐가며 들어올 필요가 있는 건가.
“또 없어?”
“점심시간에는 사우나도 가던데? 회사 근처도 아니고, 조금 멀리 있는 데로. 대놓고 가면 좀 그래서 멀리 간 것 같기도 하고… 외근 나갔을 때도 마트나 조금 둘러보더니 업체 직원들하고 노가리나 까고, 사무실에 올 때는 뭘 받아왔는지 검은 봉다리 하나 덜렁덜렁 들고 오고. 일을 하고자 하는 의지 같은 게 전혀 보이지… 아, 이건 판단하려는 게 아니라 그냥 의견이야, 의견.”
이 새끼가 무슨 꿍꿍이지. 낙하산도 아니라는 게 낙하산 같은 짓거리만 해대고 있었다. 입사 지원을 해서 들어왔다면 아버지도 몰랐던 일인가. 그래, 알았으면 미리 귀띔이라도 해줬겠지.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지훈의 행동에서 특별한 이유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게 더 열이 받았다. 예나 지금이나 어떤 짓을 벌이려고 하는지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게.
“이게 제일 이상한 점이기는 한데….”
“한 번에 말 안 할래? 너 나랑 스무고개 하냐?”
“아니, 미안….”
평소에도 거지 같은 성격에 예민함까지 더해지니 화가 더욱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진호는 당장이라도 깨질 것 같은 살얼음판 위를 걷는 기분이었다.
“집을 연자동 쪽으로 얻었더라고.”
“연자동? 그게 뭔데.”
생전 처음 들어보는 곳이었다.
“경기도 쪽에 있는 동넨데. 경기도에서도 구석진 곳에 있어서 집값도 싸고, 동네도 오피스텔촌이고. 집도 그렇게 크지도 않아. 10평 조금 넘으려나.”
“한국 들어올 때마다 강남 집에 있었잖아.”
“맞아. 그런데 갑자기 그쪽으로 집을 얻었더라고. 전입신고 한 것도 다 확인했어.”
뭐야, 이 새끼가 미쳤나. 왜 강남에 100평대 되는 멀쩡한 집을 놔두고 경기도 구석에 처박혀 있는 좁아터진 데 집을 구한 거지.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 것들투성이였다.
“넌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나도 좀 이상하기는 해.”
“미국에서 잘 살고 있던 새끼가 왜 갑자기 한국으로 들어와서는 회사에 처기어들어오질 않나, 그것도 입사 시험을 보고. 무슨 생각이 있으니 들어왔을 텐데 이건 내일이 없는 새끼처럼 일도 건성건성 하는 것 같고. 집은 왜 연자동인지 뭔지 그딴 데로 얻은 건데?”
그게 진호도 미스터리였다. 보통 어떤 사람을 마음먹고 뒷조사하게 되면 특정한 방향이나, 공통점 같은 것들이 보여서 이 사람이 무슨 목적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행동을 하게 될지 예측이 되곤 했다.
그런데 김지훈은 도무지 예측이 어려웠다. 지금까지 해온 행동에 어떤 패턴이 보이지 않았다. 명준의 말에 따르면 미국에 간 지 거의 10년이 되었고, 그동안 한국에 가끔 들어올 때 빼고는 왕래도 없었고, 사고도 치지 않고 잘 살고 있었다고 하던데 무슨 바람이 불어서 한국으로 들어온 것인지 특별한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생활반경도 회사와 집이 전부였다. 다른 곳으로 빠지지도 않았다.
“그래도 지훈이가 뭘 하려는 액션 같은 건 없으니까 마음 놔도 괜찮지 않을까?”
“진호야 좀 닥치고 있어, X도 모르면. 너 김지훈이 얼마나 영악한 새끼인지 알아?”
지훈은 어렸을 때부터 아주 똑똑했다. 명준이 두 살이 많아 학년은 달랐지만 두 형제는 항상 비교 대상이 되었다. 어린 시절부터 모친에게 아버지의 회사를 물려받으려면 지훈을 이겨야 한다고 세뇌를 당하다시피 했던 명준은 어떻게든 지훈을 이기려고 죽을 둥 살 둥 공부를 했다.
지훈은 과외 하나 하지 않았지만, 명준은 돈이 얼마가 들더라도 강남 바닥에 있는 유명한 과외 선생이란 선생을 과목별로 다 고용하여 공부를 하였다. 명준도 그렇게 머리가 없는 편은 아니었기에 과외 선생들의 도움을 받아 성적을 쑥쑥 올렸다. 문제는 명준은 욕심이 아주 많은 편이었는데, 그 욕심을 능력이 받쳐주질 못한다는 것이었다.
어느 정도 성적은 올랐지만 지훈과 달리 최상위권까지는 가지 못했다. 그러니 더 오기가 생겼다. 그러던 어느 날 학년에 관계없이 수학경시대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이번 시험으로 꼭 지훈을 꺾어야겠다고 다짐에 다짐을 거듭한 명준은 학교 시험이고 뭐고 내팽개치고 경시대회만 올인했다. 경시대회용 과외 선생들도 대거 붙여 예상 문제를 달달 외우다시피 하였다.
그에 반하여 지훈은 집에 돌아오면 게임기를 붙잡고 계속 게임만 했다. 경시대회 날이 다가오는데도 아주 여유가 넘쳐 보였다. 그런 모습이 명준의 승부욕에 더욱 불을 붙였다. 이번에 아버지의 눈도장을 제대로 찍고 싶었다.
‘나 이것 좀 알려줘,’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났다. 지훈이 문제집을 들고 오더니 명준에게 알려달라고 부탁을 했다. 생전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동안 여유를 부리다가 경시대회 날이 다가오니 똥줄이 타는 모양이었다. 명준은 속으로는 쾌재를 부르면서도 짐짓 여유롭게 답을 했다.
‘이거 쉽잖아.’
‘나는 어렵더라고. 좀 알려줄 수 있어?’
명준은 아주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문제를 풀었다. 얼마 전에 과외 선생들하고 집중적으로 풀었던 문제였다. 다 가르쳐주기는 싫어서 중간에 일부러 틀린 답을 도출하도록 풀이를 했다.
‘아, 이렇게 푸는 거구나.’
멍청한 새끼. 명준은 속으로 비웃어주면서 이번 시험에서는 무조건 자신의 승리라고 벌써부터 승리감에 도취 되어 있었다. 그런데 결과가 아주 이상했다.
명준은 9등을 하였다. 전국에서 날고 긴다는 아이들이 다 모인 대회이기에 그것만 해도 상당히 좋은 성적이었다. 문제는 1등의 이름에 ‘김지훈’이라는 세 글자가 박혀 있다는 것이었다.
‘씨발!! 이 개새끼가!’
집으로 돌아와 이성을 잃고 문제집을 마구 던지다가 낌새가 이상하여 지훈의 방에 들어가 보았다. 널브러져 있던 게임기에서 시선을 옮기니 구석에 있는 문제집들이 보였다. 문제집은 틈이 안 보일 정도로 빽빽하게 풀이가 되어 있었다. 그동안 게임을 하는 척하면서 경시대회를 꾸준하게 준비해오고 있었던 것이다.
‘멍청한 새끼. 그렇게 과외를 해도 이따위로 푸네.’
명준이 풀이를 해주었던 부분에 지훈이 적어놓은 듯한 글자가 보였다. 명준은 그 문제집을 갈기갈기 다 찢어버렸다.
그날 이후로 김지훈이라면 트라우마가 생길 지경이었다. 얼굴만 봐도 경기를 일으킬 만큼.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문제 풀이를 도와달라는 그 개 같은 얼굴이 자꾸만 떠올라 밤에 잠을 설쳤다.
이번에도 무슨 꿍꿍이를 벌이고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으아아악! 씨발!”
명준은 기어이 손에 쥔 재떨이를 세게 던져버렸다. 묵직한 파열음과 함께 재떨이의 재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약 가져와, 약!!”
옛날 일이 떠오르자 불안감이 극도로 치솟아 손끝이 덜덜 떨렸다. 명준의 발악에 진호는 다급히 명준의 책상으로 가서 서랍을 열고 약을 꺼내 알약을 몇 개 손에 털었다. 물과 함께 알약을 건네주자 명준은 꿀떡 삼키고는 넥타이를 풀었다. 이마에는 식은땀이 흥건했다.
“형, 진정해. 아무 일도 없을 거야.”
“제발 그 새끼 좀 내 눈앞에서 없애 줘. 진호야 내가 부탁 좀 할게. 제발!”
명준은 거의 짐승처럼 울부짖었다. 진호의 예상대로 역시 폭풍이 몰아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