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화 (14/44)

14화

쿵. 쿵. 쿵.

주기적으로 울리는 소리가 귓구멍까지 파고들어 와 고막을 건드렸다.

조금만 더 잘래. 제발.

이불을 뒤집어쓰고 귀까지 막아보았지만 미세하게 울리는 느낌이 잠을 방해했다. 어떻게든 잠을 이어가려고 몸을 웅크리며 애를 써보았지만 이미 달아난 잠을 다시 데려오기는 역부족이었다.

송이는 이불을 박차고 벌떡 일어나 두 손으로 머리를 마구 헝클어뜨렸다. 차오르는 분노를 풀 곳이 없으니 자학이라도 하는 수밖에.

“뭔 놈의 인테리어를 일주일 내내 하냐!”

이 소음의 주범은 윗집이었다. 무슨 사정인지는 몰라도 6개월이나 비어 있던 윗집에 누군가 들어온 듯했다.

[1502호 인테리어 공사로 소음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기간도 명시를 해두지 않고 엘리베이터에 딸랑 그 종이 하나만 붙여둔 싸가지 하고는. 투룸이지만 평수가 좁게 나와서 이 코딱지만 한 집에서 인테리어를 해봤자 얼마나 할까 싶었다. 하루면 끝나겠지. 그러고 말았는데 하루 이틀로 끝나지 않았다. 그것도 인부들이 어찌나 부지런한지 아침부터 쿵쾅거리고 있었다.

층간소음으로 칼부림까지 나는 세상인데 이 정도면 정말 많이 참았다. 웬만하면 이웃끼리 얼굴 붉히지 않으려고 했는데 더 참다가는 호구 될 판이었다.

“목말라.”

윗집하고 결단을 내기 전에 우선 목부터 축이고 싶었다. 손을 뻗어 바닥에 굴러다니는 페트병을 들어 뚜껑을 열고 목구멍에 털어 넣었다.

“좀 살겠네.”

입에서 흘러내린 물이 티셔츠를 적셨다. 티셔츠로 대강 훔쳐내고는 한 모금 더 마셨다.

이 죽일 놈의 술.

어제는 진짜 안 마시려고 했는데 결국은 술에 손을 대고 말았다. 모든 것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 날이었다. 술을 마시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하루였다. 첫 잔이 달달한 것이 낌새가 불안했는데 역시나 집에 거의 기어서 들어왔다. 간헐적으로 끊긴 기억은 선명하지 않았다. 누가 날 데려다줬나. 질질 끌려온 것 같기도 하고. 꿈이었나.

꿈과 현실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다가 마지막으로 목을 축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밖은 왜 이리 밝은 건지. 배가 더럽게 고픈 걸 보니 점심 먹을 때쯤 된 것 같기도 하고. 몇 시간을 퍼질러 잤는지 계산도 안 되었다.

어제 그녀를 폭주에 이르게 한 것은 그 싸가지였다. 편의점에서 다 보고 있었으면서. 사람 놀리듯 툭툭 내뱉더니 카드를 쥐여주면서 속을 긁었다. 어디 사냐고 물었을 때도 서울에 산다고 거짓말이나 해대고. 그것도 분명 의도적일 것이다. 남의 카드를 받았으면 출근하자마자 건네줬으면 되었을걸.

‘어제 카드 놓고 가신 것 같던데. 제가 대신 받아왔어요. 괜찮으세요?’

이렇게 나긋나긋하게 말하면서 카드를 건네줬다면 백 번이고 고맙다고 말을 했을 것을, 이건 사람 살살 약 올리는 것도 아니고, 곱게 봐주려 해도 봐줄 수가 없었다.

진태호에 박경수만 해도 머리가 터지기 직전이었는데 김지훈이 방아쇠를 당긴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쪽은 팔릴 대로 팔리고. 정말 왜 이리 꼬이는지. 서른을 앞에 두고 아홉수라도 되는 건지. 사는 게 더럽게 힘들었다.

“쪽팔려, 쪽팔려!”

몇 번이고 이불킥을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올해는 쥐 죽은 듯이 살면서 시간이 흐르기만을 바라야 하는 건가.

쿵. 쿵. 쿵.

“아오! 썅!”

그런데 이 세상이 송이를 가만 놔두질 않았다. 회사의 그 싸가지나, 윗집이나 가지가지였다. 고무줄을 찾아 기름기가 낀 머리를 질끈 묶고 대충 추리닝을 입고 호기롭게 문을 나섰다.

한 손에 망치를 들고, 다른 한 손에는 목장갑을 낀 채 인상을 구긴 남자가 문을 열고 나왔다.

“아랫집인데요.”

“이제 다 끝났어요.”

인부로 보이는 남자는 송이가 아랫집이라는 말을 하자마자 다 끝났다며 미리 선수를 쳤다.

“집주인이세요?”

“주인 지금 없어요. 오늘 다 끝나요.”

남자는 신경질적인 말투로 문을 닫으려고 했지만 송이의 손길이 더 빨랐다. 문을 닫으려던 남자는 바빠 죽겠는데, 라고 투덜거리며 송이를 째려보았다.

“주인 어디 갔는데요?”

“어디 갔는지 낸들 알아요? 밥 먹으러 갔나 보지. 누구는 밥도 못 먹고 이러고 있는데, 니미럴.”

남자가 거친 음성을 내뱉었다. 그 소리는 안 그래도 심기가 어지러운 송이를 건드렸다.

“왜 저한테 화를 내고 그러세요? 화를 낼 사람이 누군데?”

“나 보고 어쩌라고요? 나는 돈 받고 일하는 건데. 따질 거면 주인한테 따지든가.”

하긴 이 사람이 이 시간에 일부러 공사를 하려는 건 아닐 테고. 이 남자도 피해자일지 몰랐다. 공사하는 사람들을 두고 혼자 밥이나 먹으러 갔다는 소리를 들으니 주인의 인성도 썩 좋을 것 같지 않았다. 이런 인간은 마주치면 바로 싸움각이었다.

“오늘 끝나는 거 맞기는 해요?”

“주인이 변덕만 안 부리면 오늘 끝나요. 나도 죽겠어. 3일이면 끝날 걸 일주일 동안 이러고 있으니. 어찌나 변덕이 심한지.”

느낌이 쎄했다.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남자의 모습을 보니 꽤나 시달렸나 보다. 주인도 없는데 여기에서 이러고 있어 봤자 답도 안 나왔다. 그래, 오늘까지만 참아준다.

“주인한테 아랫집에서 찾아왔다고 전해주세요. 오늘까지 꼭 끝내달라고도 해주시고요.”

거기서 뭐 해! 오늘 안 끝낼 거야?

안에서 고함 소리가 흘러나왔다. 같이 일하는 인부가 재촉을 하는 소리였다.

“할 말 끝났죠?”

남자는 그대로 문을 쾅 닫았다. 그동안 벼르고 벼르다가 올라왔는데 정작 주인은 만나지도 못하고 별 소득도 없었다. 오늘 담판을 지으려고 했건만. 그렇다고 여기에서 죽치고 기다릴 수도 없고.

괜히 1502호 문을 노려보다가 계단을 내려가려고 하는데 1501호 문이 스르륵 열렸다.

“안녕하세요.”

1501호 사는 여자 고시생이었다. 송이가 1502호에 항의하는 소리를 듣고 문을 열어보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누구보다 소리에 예민한 게 이 사람인데. 이전에 티비 소리가 자기 집까지까지 들린다고 항의를 하러 온 적이 있었다. 명문대를 졸업하고 집에서 나와 몇 년 동안 고시 공부를 하는 여자였다. 나이도 비슷하고, 혼자 사는 처지도 비슷하니 친분이 있었다.

“앞집 안 시끄러워요?”

송이가 1502호를 가리키며 묻자 은희가 묘한 표정을 지었다.

“시끄럽기는 한데….”

왜 이래? 조금만 시끄러워도 예민하게 구는 사람이. 뒤에 뭐라고 사족을 붙이려는 것인지 말끝을 애매하게 늘리고 있었다.

“그 정도야 이웃사촌이면 감안해 줄 수도 있으니까.”

헐.

고시 공부했던 히스토리를 쫙 읊으면서 그 티비 소리 때문에 올해도 떨어지면 책임질 거냐고 소리를 치던 그 여자가 맞나. 앞집을 언제 봤다고 이웃사촌이래.

“은희 씨 왜 이래요?”

“제가 뭘요?”

“조금만 소리 나도 기겁하잖아요.”

“기겁은 무슨.”

은희는 여전히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면서 앞집을 계속 흘금거리더니 고개를 쑥 빼고 주변에 누가 없는지 둘러보았다. 그러고는 이리 와보라고 손짓을 하였다. 송이는 영문을 알 수 없는 행동에 가만히 보고만 있다가 은희가 팔목을 잡아당겨 끌려갔다. 은희는 송이의 귀에 입을 가까이 가져다 대고 속삭이듯 말했다.

“계속 뭐라고 하니까 돈 주더라고요.”

비밀이야기라도 되는 것처럼 속닥거린 은희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송이 씨도 뭐라고 몇 마디 더 하면 줄지도 몰라요.”

그제야 저 예민보스가 왜 순순히 입을 다물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집에서 고시 공부를 하는 몇 년 동안 계속 용돈을 받고 있다고 들었다. 그런 생활을 반복하게 되면 조금이라도 돈이 되는 건 무조건 하게 되어 있다. 설령 그게 영혼을 팔아먹을지라도. 장사를 한다고 나댔다가 대차게 말아먹고 용돈을 받던 시절에는 정말 단돈 몇천 원에도 벌벌 떨었으니까.

“그럼.”

은희는 할 말을 다 했는지 빼꼼 내밀었던 고개를 들이밀고 문을 닫으려다가 다시 슬쩍 문을 열었다.

“잘생겼더라고요.”

“네?”

은희는 손가락으로 1502호를 가리켰다. 그러더니 혼자 얼굴이 빨개져 가지고는 민망한 표정을 지으며 집으로 쏙 들어갔다. 그 모습을 보니 송이는 그 남자를 마주치지 않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돈으로 사람을 매수한 것도 그렇고, 왠지 모르게 생긴 거 믿고 까부는 양아치 같은 인간이 머릿속에서 그려지는 이유는 뭘까. 한숨을 푹 내쉬며 계단을 내려가려고 하는데 전화가 걸려 왔다.

‘엄니’

액정에 뜨는 것으로도 불길한 기운이 엄습하는 두 글자. 뭐 잘못한 거 있나? 송이는 본능적으로 엄마에게 잘못한 게 있는지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딱히 없어 보였다.

“엄마. 왜?”

-왜? 니가 지금 그따위 소리가 나오지?

“이번 달에도 대출금 보냈는데 왜?”

송이는 잘못한 것도 없는데 제 발이 저렸다. 엄마의 목소리가 하이톤이라는 건 그녀의 심기가 상당히 불편하다는 뜻이었다.

-당장 가게로 안 튀어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