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화 (9/44)

9화

공간에는 시끄러운 음이 뒤섞여 울려 퍼졌다. 터져버릴 것 같은 머릿속을 달래기 위해서 리모컨으로 음량을 더 높였다.

지금 기분 같아서는 다 때려 부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커다란 음으로 청각이 지배되어 생각을 잠시 멈추었다. 이거라도 듣지 않았다면 아마 사무실 기기 중에 몇 개는 이미 박살이 났을 것이다.

더. 더. 더. 더. 더.

리모컨의 음량 버튼을 누르는 손길이 점점 빨라졌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이 크게 진동하며 사무실을 울리든 말든 상관없었다.

띡.

조금 전까지 사무실을 가득 메운 묵직한 소리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눈을 감고 음악을 귀에 때려 박고 있던 명준은 신경질적으로 눈을 떴다.

“누가 멋대로 끄래? 새끼야!”

“상무님. 회의 들어갈 시간이 얼마 안 남았습니다.”

“빨리 안 켜?”

시끄러운 헤비메탈 소리에 비서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는 것도 몰랐다. 진호는 이런 일을 수없이 겪어봤다는 듯이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소리가 밖까지 너무 크게 들립니다. 볼륨을 계속 높이시면 너무 울려서….”

“누가 뭐라 그래? 누군데? 어떤 새끼야. 당장 데려와!”

“회의도 참석하셔야 하고….”

“그놈의 회의! 회의! 내가 거기 가서 뭐 하는데. 안 가. 안 가!”

진호는 이미 이성을 저 멀리 던져버린 명준을 보며 또 병이 도졌음을 알아챘다. 얼마 전부터 그가 이럴 것은 예견되어 있었다.

“형, 쪼옴!”

진호도 참지 못하고 터져버렸다. 그동안 옆에서 명준을 3년이나 봐왔지만 이럴 때마다 어찌해야 할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자신의 감정조차 제어를 못 하니 일이 잘될 리가 있나.

“내가 형 심정은 알아. 아는데….”

“니가 날 안다고?”

명준은 의자에서 일어나 진호를 향해 저벅저벅 걸어왔다. 그냥 저대로 두면 진호를 산 채로 입에 넣어 아득아득 씹어버릴 것 같은 눈빛을 하고서.

“내 마음이 어떤데? 한번 씨불여봐.”

진호는 코앞까지 다가온 명준의 앞에서 침만 꿀꺽 삼켰다. 여기서 말 한번 잘못 꺼냈다가는 정말 뼈만 남기고 살을 다 발라 먹어버릴지도 몰랐다.

“형 많이 힘들겠지. 힘든 마음 이해한다고. 내가 옆에서 몇 년을 지켜봤는데 나도 이해하지. 그런데….”

“이해? 누가 날 이해해? 아무도 이해 못 해. 이 X같은 심정을 너 같은 새끼가 어떻게 이해하는데!”

으아아악!

명준은 괴성을 지르면서 손에 쥐고 있던 리모컨을 바닥에 내팽개치더니 발로 밟아댔다. 수십 번을 쉬지도 않고 밟힌 리모컨은 형체를 알아보기도 어렵게 세세하게 분해되어 잔해들이 여기저기 널브러졌다.

그 뒤로도 몇 번이나 리모컨을 짓이긴 명준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더니 사무실 가운데 있는 소파로 걸어가 털썩 앉았다.

지금까지 33년을 살면서 하루라도 맘 편하게 발 뻗고 잔 적이 없었다. 그 빌어먹을 김지훈 때문에. 아버지는 사사건건 비교를 하면서 사람 피를 말렸다. 장남이라고 너한테 회사를 쉽게 물려줄 거라는 생각은 말라면서 항상 긴장 속에서 살게 했다.

그렇게 하루하루 피가 말라가는 심정으로 살아가고 있는데 지훈이 폭탄 선언을 하고 집을 나가버렸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지는 법이다. 명준에게는 호재였기에 회사를 물려받을 수 있을 거라 안심을 하고 있었으나 갑자기 돌아온 지훈으로 인하여 대혼란 상태였다. 더구나 요즘에는 손을 대는 것마다 족족 말아먹고 있어서 아버지가 명준을 바라보는 눈초리도 아주 좋지 않았다.

“형, 미안해. 내가 실수했어. 형 마음을 내가 어떻게 이해하겠어. 형이 제일 힘들겠지.”

진호는 소파에 앉아 명준이 잠시 누그러진 틈을 타 그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일단 그의 화를 가라앉히고 보는 게 최선이었다.

“나한테 미안해?”

“그럼. 미안하지.”

“그렇게 미안하면 잘 좀 해, 진호야. 제발.”

“나도 어떻게든 알아보고 있는데….”

툭. 툭.

진호가 말을 하고 있는데 종이 뭉치가 날아와 입가를 툭툭 쳤다. 명준이 테이블 위에 있는 메모지를 한 장, 한 장 뜯어내어 손으로 구기고는 진호를 향해 하나씩 던져대는 중이었다.

“진호야.”

툭.

“돈을 그렇게 처받으면.”

툭.

“돈값을 해야지. 씨발.”

툭.

“너 아니어도 내 발가락이라도 핥겠다며 일하고 싶다는 새끼들 널렸어.”

툭.

진호는 얼굴로 날아오는 종이뭉치를 맞으며 입을 꽉 깨물었다. 명준은 사람의 속을 긁어대는 데는 정말 천부적인 재능이 있었다. 종이여서 전혀 아프지는 않지만, 그 뭉치가 얼굴에 부딪혀 툭툭 소리가 날 때마다 진호의 이성도 한 줌씩 저 멀리 날아가는 기분이었다.

툭. 툭. 툭. 툭. 툭.

그 이후로는 말도 없이 진호의 얼굴이 과녁이라도 되듯 계속 던져댔다. 얼굴에 부딪혀 떨어진 종이뭉치들이 바닥에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진호의 주먹에 절로 힘이 꽉 들어갔다.

“꼴에 자존심은 있어서.”

툭.

“그동안 나한테 받아 간 접대비 다 어디에 썼어? 빼돌린 건 아니지?”

툭.

“그 새끼가 이 회사에 기어들어 오는 것도 며칠 전에나 알고, 누구 통해서 들어왔는지는 파악도 안 되고.”

툭.

“그 새끼는 여기 무혈입성해서 지금 내 모가지에 칼 들이밀 판인데 이제 와서 어떻게든 알아봐?”

툭.

“나 뒈지면 내 관짝 앞에서 보고할래?”

명준은 하나하나 구기던 메모지를 전부 손아귀에 쥐고 진호를 향해 던져버렸다. 종이는 눈이라도 내리는 것처럼 한 장, 한 장 사무실에서 나풀나풀거리며 흩날렸다. 진호가 앉아 있는 주변은 전부 메모지로 도배가 되다시피 흩어져 있었다.

명준이 엉덩이를 떼고 몸을 앞으로 숙여 다가오더니 손으로 진호의 뒷머리를 움켜잡았다. 진호의 고개가 뒤로 꺾이면서 명준의 얼굴과 바로 앞에서 마주하였다.

“진호야, 나도 살자 좀.”

그의 숨결이 느껴질 정도로 가까운 곳에서 내뱉는 음성에 진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명준은 움켜쥐던 손을 풀고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소파에 앉아 고개를 뒤로 한껏 젖히고는 재킷 안주머니를 뒤적여 담배를 꺼냈다. 진호가 재빠르게 라이터를 들고 불을 붙여주었다.

“재떨이는?”

“어… 어디 갔지?”

“뭐 제대로 된 게 없어 씨발.”

명준은 담배를 피우면서 재를 그냥 바닥에 털었다. 재떨이를 찾으려는 노력도 전혀 없이 바닥에 재를 터는 것에 대해서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

명준은 평소에 소파에 앉아서 열변을 토하다가 테이블 위에 있는 물건을 집어던지는 버릇이 있었다. 진호는 며칠 전부터 테이블 위에 있던 재떨이를 아예 치웠다. 거기에 두었다가는 그 묵직한 게 자신에게 날아올 것이 뻔했기에. 갑자기 나타난 지훈 때문에 한껏 신경이 곤두서 있음을 알고 있었다.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무게가 아주 적게 나가고, 가벼운 메모지를 가져다 두었는데 그걸로 사람의 자존심을 이렇게 건드릴 줄은 몰랐다. 차라리 재떨이로 세게 한 대 맞는 게 나을지도 몰랐다.

“지금 인사과 쪽하고 계속 얘기는 해보고 있는데 요즘 분위기가 안 좋아서 그쪽도 몸을 사리고 있나 봐.”

“그래서?”

“응?”

“그래서 어쩔 거냐고.”

“그게 나도 고민인데….”

“요즘 분위기가 안 좋으니까 그쪽 분위기 맞춰드리고 우리 쪽은 나대면 안 되겠네? 우리 진호는 매사에 배려심이 넘치네 아주? 그냥 나 뒤지라고 고사를 지네 진호야. 너도 내 밑에서 일하는 거 X같잖아. 이참에 우리 그냥 같이 뒤질까?”

“아니… 내가 어떻게든 알아볼게. 조금만 시간을 주면 꼭 알아올게.”

명준은 깊게 들이마신 담배 연기를 진호의 얼굴 쪽으로 뿜어냈다. 진호가 인상을 쓰면서 눈을 질끈 감았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재차 연기를 뿜어내더니 테이블 위에 지져 끄고는 꽁초를 바닥에 던졌다.

“진호야, 나 혼자 살자고 이러는 거 아니잖아. 내가 잘되면 너한테도 콩고물 떨어지겠지. 그것뿐이야? 내가 너 임원 쪽으로 자리 하나 만들어주지 않겠냐? 내가 잘되면, 너도 잘되고. 아니야?”

“어, 맞아.”

“그러니까 잘 좀 해. 진호야.”

명준은 자리에서 일어나 진호의 뺨을 두어 번 툭툭 치더니 문가로 향했다.

“나 회의 다녀올 테니까 그때까지 싹 다 치워놔.”

그대로 명준은 사무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조금 전에 명준이 뿜어낸 담배 연기는 아직도 자욱했다.

진호는 바닥에 널브러진 메모지와 담뱃재를 보면서 한숨을 푹 쉬었다. 예상치 못한 지훈의 등장으로 인하여 앞으로 몰아칠 폭풍이 얼마나 거셀지 두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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