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화 (4/44)

4화

“오늘 첫 출근한 김지훈입니다.”

아까 옥상에서는 시종일관 불량스러운 기운을 풍기던 남자가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했다. 담배를 건네던 그 손은 가운데로 가지런히 모은 채.

송이는 뒤통수를 한 대 거하게 얻어맞은 것처럼 얼얼했다. 진짜 신입사원이었어? 그것도 우리 팀?

“오, 신입?”

“아, 네.”

최 대리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반겨주듯이 말을 건넸다. 그러자 팀원들이 일제히 지훈 쪽을 바라보았다. 부장실에 있던 조 부장과 태호도 투명 창을 통하여 지훈을 바라보고 있었다.

“제가 오늘 출근을 하다가 접촉 사고가 나서. 죄송합니다. 첫날부터.”

“아, 어쩐지. 사고가 나셨구나. 그런데 나이가?”

“스물아홉입니다.”

누가 한국사람 아니랄까 봐. 보자마자 나이부터 묻는 진만이었다.

“파릇파릇하네. 말 놓을게. 나 최진만 대리야.”

“네, 김지훈입니다.”

어쭈 저 새끼가. 조금 전까지 옥상에서 담배나 처피우고 있던 게 접촉 사고? 눈앞에 목격자가 뻔히 있는데도 뻔뻔하게 구라를 까?

“그리고 이쪽은 앞으로 우리 김지훈 사원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줄 한송이 대리. 참고로 나는 짬이 꽉 찬 대리고, 여기는 갓 진급한 아기대리. 대리 계의 신생아. 같은 대리여도 급이 다르다고 볼 수 있지.”

“잘 부탁드립니다. 한송이 대리님.”

아까만 해도 세상 다 산 것처럼 무심한 표정으로 일관하던 인간이 이렇게 가식적인 미소를 지을 수도 있는 건가. 도저히 정체가 무엇인지 감을 잡을 수가 없는 가운데 쓸데없이 환한 미소가 잘생겨 보이니 짜증이 났다.

“그러고 보니까 둘이 동갑이네?”

굳이 필요 없는 접점까지 만들어주는 최 대리는 신입사원을 데리고 다니며 팀원들에게 인사를 시켰다. 사람 좋은 척하면서 웃음을 잃지 않는 저 얼굴이 가증스러웠다.

전형적인 강약약강인가. 나를 만만하게 보는 건가?

‘들어가기 싫어서요.’

첫 출근하는 주제에 아까 옥상에서 담배를 피우며 그딴 헛소리나 지껄이는 인간이었다. 이런 인간이 들어가는 부서는 정말 끔찍할 거라고, 게다가 사수가 될 사람은 헬게이트가 열린 거라며 속으로 혀를 찼는데.

하고 많은 부서 중에 우리 부서일 것은 무엇이며, 옆자리일 것은 무엇이며, 왜 자신의 부사수인지, 하… 씨바. 제대로 왓더헬이었다.

김지훈이라는 저 사람을 본 것은 단 한 시간도 되지 않지만, 그와 이야기를 나눠본 것은 고작 10분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저건 분리수거도 되지 않는 폐쓰레기라는 강한 예감이 들었다.

[김지훈 씨 우선 이 파일 먼저 읽어보고 있어요. 마케팅 팀 전체적인 프로세스니까 대략적으로라도 훑어보고 있어요. 그거 다 보면 가이드북도 읽어 보고.]

사내 메신저로 업무 프로세스가 정리되어 있는 파일을 전송하였다. 오늘은 처리해야 할 일도 많고, 정신도 없어서 어차피 업무를 가르쳐 줄 시간도 없었다. 저거나 보라고 던져주면 알아서 보고 있으려니 했다.

[대리님.]

[네. 말씀하세요.]

[선배라고 불러도 돼요?]

이 인간이 파일을 보라고 했으면 알겠다고 답부터 할 것이지 다짜고짜 호칭부터 묻고 난리야. 그냥 대리라고 부르면 되지, 무슨 선배는 선배야. 대학을 다닐 때도 다들 누나 아니면 언니라고 편하게 부르라고 했다. 선배는 뭔가 간지러운 것 같아서.

그나저나 지금 신입한테 호칭까지 정해주게 생겼냐 바빠죽겠는데.

[편한 대로 해요.]

[이건 생각해 보고 정할게요. 고민되네요.]

고민할 게 쌔고 쌨다, 인간아. 그리고 이딴 건 속으로만 생각할 것이지 왜 채팅으로 치고 지랄이야. 누군가 그랬다. 이런 개념 없는 신입이 들어올 때는 초장부터 확 잡아놔야 한다고. 안 그러면 기어오른다고.

한동안 욕을 끊었는데 왠지 모르게 다시 욕쟁이가 될 것 같은 불길하고도 강력한 예감이 감돌았다.

[대리님. 뭐 여쭤봐도 돼요?]

후…. 이제야 정신 좀 차리고 메일함 좀 열어보려고 했더니 채팅이 또 날아왔다. 바로 옆자리여서 뻔히 보이는데 확인하지 않을 수도 없어서 창을 열고 답을 보냈다.

[뭔데요?]

[점심시간은 언제부터예요?]

[12시부터요.]

[보통 뭐 드세요?]

[각자 먹고 싶은 거 먹어요. 취향 따라서. 가끔 부장님이 먹자고 하면 같이 먹고.]

[그렇구나. 하나만 더 여쭤봐도 돼요?]

이 새끼가. 정말. 사람 인내심 테스트하나. 그래, 신입이니까 물어볼 수도 있지. 잘 모를 때니까. 나도 처음에는 이것저것 물어보곤 했으니까. 조금 더 인내심을 발휘하며 그의 물음을 받아주었다.

[말해요.]

[조 부장 새끼가 누구예요? 저 투명창 안에 있는 사람?]

“…….”

송이는 눈을 질끈 감았다. 키보드 위에 자리하고 있는 손가락이 쉽게 움직여지지 않았다. 뭐라 답을 해야 할지 머릿속에서는 답을 찾아보지만 마땅히 답을 할 게 없었다.

[아까 신나게 욕하시길래 누군지 궁금해서요.]

이게 지금 사람 약점 잡았다고 협박하는 거야 뭐야. 이대로 당하고 있을 송이가 아니었다. 길게 숨을 한번 내뱉고는 빠르게 타자를 쳤다.

[잠깐 따라 나와요.]

“지금 나랑 뭐하자는 거예요?”

“뭐가요?”

순진무구하게 정말 무슨 말이냐는 듯이 묻는 저 얼굴을 한 대 쳐주고 싶었다. 사람이 이렇게 뻔뻔할 수도 있나. 아까 거짓말을 술술 할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다.

“김지훈 씨, 내가 부장님 욕했다고 지금 나 협박하는 거잖아? 아니야?”

송이는 존댓말을 하다가 반말로 노선을 바꿨다. 초장부터 기를 잡으려면 확실하게 힘의 우위를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자신도 첫 출근한 사원에게 함부로 반말이나 찍찍 뱉는 상사가 되고 싶지 않았는데 상황이 허락지 않았다.

“이런 걸로 협박이나 하는 양아치는 아닌데.”

양아치 같은 표정으로 양아치가 아니라고 말을 하고 있으니 퍽이나 믿음이 가겠다.

“그럼 그 질문을 던진 의도가 뭔데?”

“진짜 궁금해서 그런 건데. 답 안 나오는 꼰대면 좀 피하려고.”

말 한마디, 한마디 꼬박꼬박 대꾸도 잘한다. 그런데 이 인간 말이 점점 짧아진다.

“그런데 김지훈 씨. 말이 좀 짧네?”

“아, 그랬나요. 죄송해요, 선배.”

선배? 아까는 생각이 필요하다고 하더니 바로 선배라고 부른다. 채팅에서 편한 대로 부르라고 했기에 이걸로 뭐라고 트집을 잡기도 그랬다. 뭔가 공격할 거리가 필요했다. 좀 아껴두었다가 나중에 꺼내려던 말이었는데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바로 공격에 들어가야 했다.

“아까 접촉사고 때문에 지각? 옥상에서 담배 피우던 사람이 접촉사고는 언제 나셨대요?”

송이는 한껏 비꼬며 물었다. 비꼴 때는 역시 존댓말이 최고의 효과를 불러일으켰다. 그의 미간이 살짝 찌그러지는 게 보였다. 그 모습을 보니 오늘 아침부터 부장에게 털린 멘탈이 조금이나마 회복이 되었다.

“아, 이런 기분이셨구나. 협박하시는 거 맞죠?”

“그렇게 들리면 그렇게 듣든가.”

지훈은 잠시 말이 없었다. 아까 옥상에서 표정 없이 담배를 피우던 그 얼굴로 돌아간 듯했다. 저도 곤란하겠지. 신입 사원이 출근 첫날부터 사무실에는 들어가지도 않고 옥상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던 것을 까발리기라도 하면 바로 찍힐 테니까.

송이가 승리의 미소를 짓고 있던 그때,

“쌤쌤으로 하죠.”

“쌤쌤?”

“저도 조 부장 새끼한테 말 안 할게요. 선배가 잘근잘근 씹어댄 거. 선배도 제 비밀 지켜주시고. 공평하죠?”

얘기가 왜 이렇게 되지. 분명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원점으로 되돌아왔다. 그런데 왜 진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거지.

“공평? 지금 나하고 딜하는 거예요? 어이없네.”

“그게 싫으시면 서로 까고요. 그래 봤자 둘 다 피밖에 더 보겠어요.”

참나. 이 새끼 아주 선수네. 능글맞게 웃으면서 딜을 제안해오는 그에게 말려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럴 때일수록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하는데 저 미소를 보고 있으면 자꾸 말려든다. 차라리 눈을 감는 게 나을까.

“그런데 담배도 안 피우면서 아까 왜 나한테 접근했어요?”

옥상에서 그에게 받은 담배는 처음에 한 번만 쭉 빨았다가 그 뒤로는 피우지도 않았다. 그걸 또 언제 봤는지.

“내가 통화 내용 들은 것 같아서 떠보려고요?”

“원래 그렇게 질문이 많아요?”

지훈은 조금 전까지 재잘거리던 입을 다물더니 기분 나쁘게 피식 웃었다.

“제일 궁금한 건 묻지도 않았는데.”

이 건방진 신입은 음흉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또 무슨 소리를 지껄이려고 이러는 건지 불안감이 감돌던 그때,

“선배 취향이 큰 남자 맞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