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화 (1/44)

1화

모두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끝나 들뜬 표정이었다. 서로 고생이 많았다면서 덕담을 주고받던 그때, 단 한 사람만은 웃지 못하고 있었다. 시시덕거리며 웃고 떠드는 음성들을 죄다 닥치게 하고 싶었지만 꾹 참고 테이블 가운데 떡 하니 자리를 잡고 있는 술병들을 노려보았다.

나란히 놓여 있는 맥주와 소주를 보면서 오늘은 저것들로 위를 잔뜩 적셔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송이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맥주잔 여섯 개를 세팅했다. 그 안에 소주잔을 넣고는 소주 한 병을 까서 차례대로 따랐다.

“라이터 좀 빌릴게요.”

최진만 대리의 앞에 놓인 라이터를 가져가더니 익숙한 손놀림으로 맥주병의 마개를 땄다. 오프너 따위는 그녀에게 필요치 않았다. 맥주를 각 잔에 따르더니 손목의 스냅을 이용하여 맥주와 소주가 적절하게 혼합이 되도록 만들었다. 정석대로 소맥을 말자면 더 세심한 과정이 필요했지만 지금은 빠르게 알코올을 흡입하고 싶을 뿐이었다.

소맥이 말린 잔을 각자의 자리 앞으로 쑥 밀었다. 잔은 발이라도 달린 것처럼 정확하게 그들의 앞으로 배달되었다.

“짠 하시죠.”

송이의 건배 제안에 조금 전까지 웃고 떠들던 사람들은 잔에 시선을 두다가 일제히 송이를 바라보았다.

“저거 왜 저러냐 오늘. 뭔 일 있어?”

조 부장이 눈을 치켜뜨며 물었다.

그래 이 뱀 같은 새끼야. 뭔 일 있으면 니가 해결해줄래?

오늘 기분 같아서는 목구멍까지 차오른 말도 그냥 내뱉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조금만 더 건드리면 저 면상에 대고 정말 다 쏟아부을지도 몰랐다.

“한 대리도 오늘 기분이 좋아서 술이 좀 땡기나 보죠. 다들 잔 들어.”

옆에 있던 정 과장이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조 부장의 비위를 맞춰주었다.

저 뱀보다 더 미운 새끼. 뱀 옆에 찰싹 달라붙은 간신 같은 새끼.

눈치는 더럽게 빨라서 송이가 터지기 직전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듯했다. 오늘따라 정 과장이 웃을 때 드러나는 하얀 건치가 왜 더 꼴 보기 싫은 걸까. 사람이 한 번 미워지기 시작하면 밥 숟가락 뜨는 꼴도 보기 싫다던데 지금이 딱 그랬다.

정 과장이 먼저 잔을 들자 하나둘 따라서 잔을 들기 시작했다. 조 부장도 가장 마지막에 잔을 들었다.

“부장님 프로젝트 성공적으로 끝난 기념으로 한 말씀 하시죠.”

송이의 옆에 있던 태호가 잽싸게 나서서 조 부장에게 말을 건넸다. 이 쥐새끼 같은 게 왜 아무 말이 없나 했다. 송이와는 동기로 입사하여 처음에는 가깝게 지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부장이나 과장들 앞에서 딸랑거리는 꼴이 참 역겨웠다. 이 팀에서 일을 가장 많이 하는 건 송이인데 어째 태호가 윗사람들에게 더 인정을 받는 것 같았다.

이번 프로젝트만 해도 그랬다. 자료란 자료는 거의 송이가 다 분석하고 준비하여 만들었는데, 나중에 아이디어 하나 냈던 게 채택이 되어 프로젝트의 공이 태호에게로 돌아가는 분위기였다. 그 아이디어도 회의 시간에 송이의 입에서부터 나온 것이었다. 태호가 약삭빠르게 그것을 구체화한 것이다.

“이번 프로젝트는 진 대리 공이 컸지. 우리 태호가 한마디 해.”

“제가 한 게 뭐가 있겠습니까. 부장님께서 다 잘 돌봐주신 덕분이죠. 하하.”

우리 태호? 지랄들 났다 아주. 주고받고 난리도 아니었다. 이 엿 같고도 훈훈한 분위기를 깨버리고 싶었다.

“젊은 사람이 겸손하기까지 해. 그러면 내가 한마디….”

“제가 할게요.”

조 부장이 건배사를 하겠다고 말을 하려는데 송이가 중간에 끼어들었다. 저 기름 낀 목소리를 더 듣고 있다가는 속이 부대낄 것 같았다. 중간에 말이 잘린 조 부장은 송이를 향해 인상을 썼지만 송이는 그딴 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다들 아주 존나게 고생 많으셨습니다. 건배!”

‘존나게’라는 단어에 유독 강세를 두었다. 그 뉘앙스는 누가 보아도 비꼬는 투였다. 우렁차게 건배를 외치며 송이는 그대로 원샷을 때렸다. 어찌나 수직으로 꺾어서 들이부었는지 입 사이로 술이 넘쳐 흘러내렸다. 손바닥으로 대충 훑어내고는 손에 묻은 술을 바닥에 털어냈다.

제대로 똥을 씹은 것처럼 보이는 조 부장의 얼굴을 보자 안에 묵혀 두었던 체증이 조금은 내려갔다. 송이가 벌써 다음 잔을 말고 있는 사이에 정 과장은 사색이 되어 조 부장을 달래느라 여념이 없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표현이 참 솔직해요. 저런 게 젊은 패기 아니겠습니까. 부장님도 한잔 드시죠.”

정 과장이 겨우겨우 달래서 조 부장에게 술을 권했다. 조 부장은 뭐라고 한마디 하려다가 참고 있는 듯했다. 날이 날이니만큼 흥을 깨고 싶지 않아 보였다.

“한송이.”

송이가 자리에 털썩 앉아 태호가 나지막하게 송이를 불렀다.

“오늘은 조용히 마셔라. 분위기 파악 좀 하고.”

진지한 태호의 표정에도 송이는 피식 웃으며 잔을 가득 채운 소맥을 연거푸 입에 털어 넣었다. 크아. 위장을 가득 적신 소맥이 확 올라왔다.

“너나 닥치고 드세요. 분위기 파악도 열심히 하시고.”

“이게 진짜.”

“둘이 뭐 그렇게 심각해? 사랑싸움해?”

그때 최 대리가 능글맞게 웃으며 말을 걸어왔다. 항상 실없는 농담을 던지며 우스갯소리나 해대는 사람이었다. 같이 대리를 달았던 동기들은 모두 과장이 되었는데 아직도 혼자만 대리일 정도로 뺀질대면서도 회사에는 잘 붙어 있었다. 음주가무에만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는 전형적인 월급 루팡이었다.

“한송이, 소맥 잘 마네. 이제 하산해도 되겠어.”

처음 입사를 하고 회식 자리에서 현란하게 소맥을 말던 최 대리의 모습을 감탄하며 봤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 소맥은 눈 감고도 말았다.

“대리님 덕분이죠.”

이럴 때는 생각 없이 사는 것 같아 보이는 최 대리를 상대하는 게 제일 나았다. 이 사람은 적어도 뒤에서 꿍꿍이를 부리는 인간은 아니니까.

“한송이, 오늘 달리는 거야? 이런 날은 내가 한잔 말아줘야지.”

어릴 때부터 시작하여 30년의 음주 경력을 자랑하는 최 대리는 소맥 마스터답게 적절한 비율로 바로 말아 송이에게 건네주었다. 송이는 맥주의 기포가 아직 남아 있는 잔을 들고 쭉쭉 들이켰다.

* * *

처음 서울 한복판에 위치한 대기업에 최종 합격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송이는 날아갈 듯 기뻤다. 부모님도 아주 기뻐하셨다. 그리고 다음 날 바로 칼 같은 음성이 들려왔다.

‘이 좁아터진 집구석에서 한 명이라도 나가야지. 이제 돈벌이도 하니까 나가서 살아.’

부모님은 가차 없이 나가서 살라고 명을 했다. 이만큼 키워줬으면 알아서 살라고 하면서. 송이 또한 그럴 생각이었다. 이 나이가 되도록 동생인 송주와 한 방에서 같이 지내는 것도 고역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집값이었다. 회사 근처는 당연히 엄두도 내지 못했다. 수중에 있는 돈은 거의 없었고, 은행에서 대출을 받은 돈으로 구할 수 있는 곳은 회사와 먼 외곽 지역이었다.

빌라인지 오피스텔인지 모를 애매한 건물의 14층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한 명이 살기에는 그래도 나쁘지 않은 투룸이었다. 서울과 멀수록 낮아지는 월세는 그녀를 이 먼 곳까지 데려다 놓았다. 그때부터 지옥 같은 출근길이 시작되었다.

버스를 타고 지하철역까지 가서 노선을 두 번이나 갈아타야 하는 아침마다 기나긴 여정이었다. 오늘은 그 여정이 더욱 고역이었다.

어제 마신 술이 아직도 깨지 않았다. 최 대리가 말아주는 소맥을 넙죽넙죽 받아마시다가 어느 순간부터 기억이 끊겼다. 집에 어떻게 왔는지도 몰랐다. 신기한 것은 그렇게 필름이 끊겼는데도 출근 시간만 되면 눈이 번쩍 떠진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어제의 만행도 서서히 떠올랐다.

‘가끔 가발 삐뚤어져 있으면 진짜 웃긴 거 알아요?’

‘사무실에서 트림 좀 하지 마요. 드러워 죽겠어.’

‘진태호가 일 다 했냐고요. 이번 프로젝트에서 개고생은 내가 다 했는데!’

차라리 아예 기억에서 지워졌으면 쪽팔릴 일도 없을 텐데. 왜 술에 취해서 잠이 들면 다음 날 기억이 선명해지는 걸까. 할아버지 때부터 대대로 내려오는 유전자라고 아빠가 지나가듯이 말한 적이 있었다.

다 맞는 말이기는 했다. 맞기는 한데, 그 상대가 모두 조 부장이라는 게 문제였다. 오늘 출근하면 얼마나 시비를 걸지 안 봐도 훤했다.

“어어어!”

어젯밤의 일을 상기하고 있는데 버스 안의 사람들이 크게 휘청, 하더니 소리를 지르는 게 곳곳에서 들렸다. 버스의 급작스러운 방향 전환에 버스 안은 잠시 아수라장이 되었다. 발 디딜 틈 하나 없이 빼곡하고 들어찬 내부는 거의 생지옥이었다.

아침에 속이 울렁거려 변기를 붙잡고 조금 게워냈는데 지각을 면하기 위해 좋지 않은 속을 부여잡고 급하게 집에서 나왔다. 사람들이 가득한 버스 안은 갖가지 향이 진동했다. 갖은 샴푸 냄새부터 시작하여, 어제 삼겹살 집에서 진하게 회식이라도 했는지 고기 냄새가 밴 자켓, 옷을 빨지 않고 내내 입고 다니는지 쉰 냄새가 나기도 하고, 덜 마른 옷을 입고 나왔는지 역한 냄새가 풍기기도 했다.

게다가 버스가 움직일 때마다 좋지 못한 속이 자꾸만 부대꼈다. 이대로 출근은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오늘 같은 날은 지각까지 하면 어젯밤의 일과 더불어 아주 개같이 까이기 좋은 떡밥을 조 부장의 손에 쥐여주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까이는 것은 기정사실이지만 그래도 덜 까이고 싶은 마음에 지각만은 면하게 해달라고 믿지도 않는 신을 향해 빌고 또 빌었다.

“어제 좋다고 달리시더니 지각까지 하시고?”

중간에 도저히 참지 못하고 지하철에서 내려 화장실에서 다시 게워냈다. 그 때문에 출근 시간이 20분은 더 걸렸다. 출근을 하자마자 정 과장에게 불려가 까이는 중이었다.

“…죄송합니다.”

“뭐가 죄송한데?”

송이는 입을 열 수 없었다. 그녀의 머릿속에서 몇몇 영상이 스치고 지나갔다. 어제 조 부장에게 주사를 부린 말과 행동들. 그리고 오늘 지각. 어느 하나 딱 지정하여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뭔 짓을 했는지 알기는 알아?”

어제의 기억이 드문드문 나기는 했지만 아직 다 나는 것도 아니었다. 그 말은 자신이 했던 행동 중에 까일 게 아직도 남아 있을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무슨 짓을 했는지 모른다는 것만큼 무서운 것도 없었다.

정 과장의 눈빛이 그녀의 머리카락 쪽으로 향했다. 송이는 급하게 뛰어온 것을 떠올리며 산발이 된 머리카락을 정돈했다.

“후… 어제 프로젝트 잘 끝내놓고 다 같이 축하하는 자리에서 깽판을 쳐?! 너 내가 전에도 말했지. 회식 때 달리지 말라고. 전에도 그랬다가 부장님한테….”

정 과장의 연설이 끝을 모르고 달리고 있는데 송이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그가 한숨을 내쉬면서 전해져 오는 모닝 커피와 입 냄새가 혼합된 복잡미묘한 향기가 그의 위장 깊숙한 곳에서부터 올라와 그녀의 후각을 강타했다.

부글부글.

어떻게든 참아보려고 했지만 그 역한 향이 트리거가 되어 겨우 가라앉은 속이 다시 부글거리며 반응을 하기 시작했다.

“우웁!”

송이는 입을 손으로 가리고 다급하게 사무실을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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