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화
“하아, 으음…….”
맨살이 닿고 깊은 곳까지 비벼지는 감각에 로엔은 참지 못하고 신음을 삼켰다. 하나처럼 얽혀 드는 감각에 허리가 야릇하게 비틀리며 그를 힘껏 끌어안았다.
참을 수 없이 온몸이 저릿했다. 안을 가득 채우는 지독한 압박감에 로엔은 연신 신음을 삼키며 아랫배를 꽉 조였다.
“윽, 로엔…….”
맹수가 으르렁거리듯 진이 로엔의 이름을 부르며 여린 귓불을 물었다. 흥분을 이기지 못한 두 사람의 몸이 물 밖으로 나온 물고기처럼 경련했다.
“하음, 아앗!”
탐욕이 뱀의 붉은 혀처럼 두 사람을 휘감았다. 격정에 사로잡혀 전희도 없이 몸을 겹친 두 사람은 정신없이 서로를 얽고 거친 파도처럼 야릇하게 흔들렸다.
뒤엉킨 관능이 두 사람을 삼키곤 놓아주지 않았다. 꺼지지 않는 붉은 용광로의 불꽃이 두 사람의 몸을 삼키듯 일렁거렸다.
두 사람의 입술이 서로를 찾아 얽혀 들었다. 질척하게 맞닿은 입술이 하나처럼 녹아내렸다.
떨어질 줄 모르고 격렬하게 흔들리는 열기에 로엔은 울음을 삼켰다.
“쉬―, 쉿! 괜찮아. 진정해, 로엔.”
로엔이 흥분을 이기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자, 진이 그녀를 달래듯 눈가며 뺨에 무수히 많은 입맞춤을 했다.
진은 로엔이 진정할 때까지 그녀를 품에 끌어안고는 등을 쓸어내렸다. 그의 손길에 어깨를 떨며 울음을 삼키던 로엔의 눈물이 천천히 잦아들기 시작했다.
진의 혀가 로엔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훔쳤다.
“이제 괜찮아요.”
눈물이 멈추자 로엔은 민망해졌다. 갑자기 왜 울었는지 저도 이유를 알 수 없어서였다.
어색함을 감추며 고갤 들자, 진의 손이 로엔의 뺨을 감쌌다. 흥분이 식지 않은 진의 몸이 아직 로엔의 안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안을 빠듯하게 채운 감각에 로엔은 저도 모르게 몸을 비틀었다.
“윽. 잠시만, 잠시만 가만히 있어. 보여 줄 게 있으니까.”
진이 로엔을 품에 단단히 끌어안은 채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래를 이은 채로 서로를 마주 보며 끌어안은 자세가 말을 타는 것 같은 모습이라 민망했다.
로엔이 그의 다리에서 내려오려 하자 진이 고갤 가로저었다.
“위를 봐. 월식이 시작됐어.”
로엔이 위를 올려다보았다. 붉은 달이 거대한 검은 그림자에 의해 삼켜지고 있었다.
“신기해요. 월식을 처음 보는 것도 아닌데.”
눈이 내려서일까? 검은 하늘에 은빛 가루처럼 반짝이는 눈 사이로 보이는 월식은 뭔가 신비한 힘이 느껴졌다.
“소원을 빌도록 해.”
진의 속삭임에 로엔이 눈을 감았다. 그리곤 조용조용 소원을 빌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로엔이 눈을 떴다. 그러자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던 은청색의 눈동자와 마주쳤다.
“당신도 빌었나요?”
“응.”
“뭔데요? 아, 아니다. 알려 주지 않아도 돼요. 소원은 말하지 않아야 이뤄진다고 하잖아요.”
로엔의 말에 진이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내 소원은 말해도 상관없을 것 같아.”
“그래요? 그럼 뭔지 말해 줘요. 듣고 싶어요.”
로엔의 눈동자가 호기심으로 반짝였다. 그러자 진이 로엔을 바짝 제 품 안으로 끌어안는가 싶더니, 이내 양탄자 위에 로엔을 눕혔다.
“흐읏.”
아래가 이어진 채로 몸을 움직이자, 잦아들었던 감각이 순식간에 불을 지폈다. 발끝까지 관통하는 나른한 열기에 로엔은 거친 숨을 삼켰다.
“하아, 진……. 하읏!”
소원을 말해 준다고 하더니, 진은 허릴 움직여 로엔의 안으로 깊숙이 파고들었다. 고집스레 안을 짓치는 열기에 로엔은 허릴 비틀며 그의 목에 팔을 감고는 힘껏 매달렸다.
“갖고 싶어.”
“뭐가, 으음…….”
“널 닮은…….”
귓가를 울리는 그의 목소리에 로엔의 눈이 커졌다. 그가 한 말이 처음엔 이해가 되지 않아서였다.
“지금 뭐라고…….”
“널 닮았으면 좋겠다고.”
아이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당장에라도 제 소원을 이루려는 듯 다급해진 진의 움직임을 통해 그것이 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온몸을 꿰뚫을 듯 파고드는 감각에 등줄기가 선연했다. 발끝까지 곱아드는 감각에 로엔은 허릴 비틀며 숨을 삼켰다.
온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전신을 휘감은 격정에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했다.
‘말도 안 돼. 그가 원하는 게, 아이라니.’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일이었다. 계약 결혼을 제안했을 때 그 역시 후계자를 원치 않는다고 했고, 무엇보다 그녀의 몸속에 맹독이 흐르는 동안엔 아이를 가질 수도 없었다.
그런데, 그의 한마디에 몹시도 아이가 갖고 싶어졌다. 심장이 뜨겁게 요동쳤다. 본능적으로 로엔은 진의 심장에 돋아난 검은 비늘을 힘껏 물어뜯었다.
“윽.”
진이 고통에 몸을 떨며 어깨를 굳혔다. 하지만 이내 허릴 움직여 깊숙이 로엔의 안으로 파고들었다.
“아읏, 하아…….”
통제를 잃은 진은 거칠게 로엔의 안을 헤집었다. 로엔은 정신없이 흔들리며 연신 농밀한 신음을 뱉어 냈다.
그 순간 진이 고갤 숙여 로엔의 입술에 혀를 얽어 왔다. 진득하게 달라붙는 입술이 서로의 타액을 삼켰다.
하나처럼 맞닿아 있던 진이 입술을 떼곤 눈을 마주쳐 왔다. 그리곤 욕망으로 잔뜩 흐트러진 로엔을 보며 낮게 속삭였다.
“그게 월식에 빈 내 소원이야.”
월식의 정점이었다. 검은 그림자 속에 숨겨져 있던 악마의 별이 붉은 달을 모두 집어삼켰다. 그 순간 모든 것들이 어둠 속에서 숨을 죽였다.
200년 전 위대한 예언가 라딘의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던 별이 어둠 속에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타에라에 의해 어그러진 운명이 다시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로엔, 내가 널…….’
진은 입 밖으로 새어 나오려는 감정을 꾹꾹 눌러 참았다. 겁이 많은 제 반려는 제 급작스러운 감정에 놀라 도망칠 수도 있었다.
진은 뜨겁게 이는 감정을 제 몸 안에 봉인했다. 그리곤 그의 모든 것을 그녀의 안에 쏟아 내기 시작했다.
그에 응답하듯 흔들리는 두 사람의 몸 위로 붉은 용광로의 신비로운 푸른 불꽃이 일렁였다.
그때, 툭 하고 외투 속에 있던 양피지가 바닥으로 굴러떨어져 펼쳐졌다. 노파가 모리에게 주었다던 크립텍스의 설계도였다.
그 순간 월식의 빛이 천창을 통해 안으로 들어오더니, 순식간에 양피지를 비췄다.
그러자 양피지 위에 그려져 있던 설계도에서 푸른빛이 일렁이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새로운 형태의 그림이 모습을 드러냈다.
진과 로엔이 일렁이는 빛에 놀라 고갤 들었다. 그리고 그들 앞에 펼쳐져 있던 양피지에 나타난 헤르파 사막의 지도를 보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노파가 모리에게 남긴 건 그냥 호리우스의 눈으로 만든 크립텍스의 설계도만이 아니었다. 헤르파 사막의 지도와 함께 라딘의 서를 찾을 열쇠가 숨겨 있는 장소까지 남겨 놓았던 것이다.
마치 그들이 그곳을 찾기 위해 이곳에 올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이.
* * *
안톤과 세이지는 헤르파 사막 입구에서 로엔 일행이 도착하길 기다렸다.
그들이 북쪽 마을로 떠난 뒤 록센에 남은 두 사람은 바쁜 시간을 보냈다.
안톤은 사막을 횡단하는 동안 필요한 물품을 구입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세이지는 또 다른 일을 처리하느라 분주했다.
록센에 도착한 이후 미행이 붙었기 때문에, 한시도 눈을 떼지 않는 자를 따돌리며 진이 명령한 일을 처리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일을 처리하고 나자, 약속한 사흘이 다 되어 있었다.
날이 밝자마자 세이지는 안톤과 함께 헤르파 사막으로 말을 달렸다. 사막에서 필요한 짐을 실은 마차엔 짐꾼으로 보이는 소년이 타고 있었다.
“저 꼬맹이도 데려가는 건 아니지?”
세이지가 어린 소년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자 안톤이 사막 입구까지만 함께 갈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여전히 떨떠름한 얼굴을 하자, 안톤은 마차의 짐을 낙타에 실을 때까지만이라고 다시 한 번 못 박았다.
그제야 세이지는 표정을 풀었다. 며칠 동안 적의 감시를 받다 보니 본의 아니게 예민해져 있었다.
“늦는 모양입니다.”
안톤이 주머니 안에서 회중시계를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벌써 정오가 한참이나 지나 있었다.
북쪽 마을에서 헤르파 사막까지 한나절이면 도착했다. 그런데 로엔과 진이 아직까지 도착하지 않자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설마 오는 길에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니겠지?”
세이지가 말하는 무슨 일이란 게 뭔지 깨달은 안톤이 고갤 가로저었다.
“로엔 님께서 우리가 물건을 찾아 헤르파 사막을 나올 때까진 적들이 우릴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공격을 받는다고 해도 로이슈덴 공작님과 라이칸 님이 있으니 걱정할 필요도 없고요.”
“뭐, 그렇긴 하지.”
안톤의 말에 세이지가 동의하듯 고갤 끄덕였다. 세이지는 빈 마차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소년을 바라보았다.
“진짜 안 보내도 돼? 병든 닭처럼 졸고 있잖아.”
“아, 그게 돌려보내려고 했더니 로엔 님을 뵙고 가고 싶다고 해서요. 말레 상단의 주인을 볼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으니까요.”
그래서 허락했다는 뜻이었다.
세이지는 소년에게서 시선을 떼곤 다시 앞을 주시했다. 다행히 록센에서 줄기차게 그의 뒤를 쫓던 감시자는 헤르파 사막으로 향한 순간 거짓말처럼 종적을 감췄다.
안톤의 말처럼 적들의 공격 시점은 모든 일이 끝나고 헤르파 사막을 빠져나올 때인 모양이다.
“저기 오시는 모양입니다.”
안톤의 말에 세이지가 고갤 돌렸다. 그의 말처럼 멀리서 말을 달려오는 두 사람이 보였다.
“여기, 여기!”
세이지가 손을 들어 두 사람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먼저 말을 멈춘 진이 말에서 내려 로엔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고마워요, 진.”
그의 손을 붙잡고 말에서 내린 로엔이 빠른 걸음으로 안톤과 세이지에게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