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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공작의 공개 구혼-152화 (153/201)

152화

‘황제는 진을 죽일 거야.’

약속대로 라딘의 서를 찾을 열쇠를 에드윈에게 건넨다고 해도, 진을 살릴 방법은 없을 터였다. 그리고 에드윈은 본인의 편의를 위해선 저와의 약속 역시 쉽게 깰 수 있는 자였다.

‘믿을 수 없겠어.’

“로엔 록스버그 공작, 신중하게 선택해야 할 것이다. 아드리안 제국에서 록스버그 공작가가 영원이 존속하길 바란다면.”

에드윈의 마지막 경고를 듣고서야 로엔은 접견실을 나갔다.겉으로 보기엔 평온하고 아름다운 오후였지만 로엔의 발아래는 진창이었다.

‘빌어먹을 황제 같으니라고.’

로엔은 진이 있을 황실 기사단으로 향하려다 걸음을 멈췄다. 그리곤 지나가는 시종을 불렀다.

“부탁 하나만 들어주겠어?”

“말씀하십시오, 록스버그 공작님.”

“황실 기사단에 로이슈덴 공작님이 계실 거야. 가서 로이슈덴 공작 부인은 급한 일이 생겨서 먼저 돌아갔다고 전해 줘.”

“그것만 전하면 되는 겁니까?”

“그렇게만 전하면 알 거야.”

로엔이 주머니에서 금화 하나를 꺼내 시종의 손에 쥐여 주었다. 그러자 표정 없던 시종의 얼굴이 금세 환해지더니, 허리까지 숙여 왔다. 그리곤 재빨리 사라졌다.

로엔은 멀어져 가는 시종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곤 재빨리 걸음을 재촉했다.

이곳은 황제의 눈과 귀가 많은 곳이었다. 황제의 비밀스러운 제안을 받은 직후, 그녀가 로이슈덴 공작에게 가는 대신 혼자 집으로 돌아갔다는 사실 역시도 황제에게 빠짐없이 전해질 터였다.

이런 것까지 철저히 계산을 해야 하다니. 정말 지랄 같은 날이었다.

* * *

“공작님, 솔직히 말씀하세요. 저를 보러 온 게 아니라 기다리는 분이 계시는 거죠?”

기사단실에 들어온 뒤로 연신 시계를 확인하는 진을 보며 결국 라우렐이 참다못해 입을 열었다.

“기다리긴 내가 누굴? 세이지가 너도 여길 그만둔다고 해서 이유나 물어볼 겸 들렀다니까.”

진은 앞에 놓인 찻잔을 들어 올리며 여상하게 대꾸했다. 하지만 라우렐은 누굴 속이냐는 표정이다.

“세이지 말대로 곧 그만둘 생각입니다. 더는 있을 이유도 없고.”

황제가 진 로이슈덴에게 적대적으로 돌아선 시점에서 더는 이곳에 머물 이유가 없어졌다. 아니, 오히려 제 입장을 분명히 해야 할 때였다.

“성공이 보장된 길인데. 아쉽지도 않는 모양이군.”

“처음부터 명예나 권력엔 관심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정복 전쟁 내내 미친놈처럼 싸운 것이고요.”

라우렐의 대답에 진이 픽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말처럼 라우렐은 귀족이긴 했지만 세이지처럼 정신 나간 구석이 있었다.

정중하게 예의를 갖춘 미친놈.

그게 진이 생각하는 라우렐의 이미지였다.

“네가 결정한 일인데, 어련히 잘했겠지.”

“정말 왜 오신 겁니까? 제 생각이 딱히 궁금한 것처럼 보이지도 않는데.”

진의 대답에 확실한 증거라도 잡은 듯 라우렐이 평소와 달리 집요하게 물어 왔다.

얼마 전 진이 황제를 알현했다는 사실을 기사단의 말단 단원들을 통해 전해 들었다.

하지만 오늘은 딱히 황궁에 올 이유가 없었다. 솔직히 에드윈이 있는 황궁 쪽으로 오줌도 누기 싫을 터였다. 그런데 직접 걸음까지 하다니.

“황제가 로엔을 불렀어.”

“아―.”

그 한마디로 모든 대답이 됐다.

세이지나 사교계에 떠도는 소문을 통해 진이 로엔 록스버그 공작에게 진심이란 건 들어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황제를 알현하는 데까지 쫓아오다니. 지금껏 그가 보아 온 진 로이슈덴의 성격으론 도무지 상상이 되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그걸, 아무 거리낌 없이 당사자가 해내고 있었다.

“흠흠, 그냥 접견실에 같이 들어가시지 그러셨습니까? 그렇게 걱정되는 얼굴로 기다릴 거면요.”

그의 태도가 너무 어이가 없어 툭 던진 말인데 진이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홀라당 대답했다.

“나야 그러고 싶었지. 하지만 폐하께서 꼭 혼자 오라고 전갈을 보내오셨더군. 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사실 짐작이 안 되는 바는 아니었지만, 로엔이 황제의 협박을 받고 고민할 걸 생각하니 마음에 걸렸다. 그것이 분명 저와 연관된 일일 테니까 더더욱 그랬다.

“별일 있겠습니까? 폐하도 이성이란 게 있으신 분인데, 죽이진 않겠죠. 암살자도 아니고.”

라우렐은 가벼운 어투로 말했지만 진의 표정은 더욱 어두워졌다.

그의 변화에 라우렐의 얼굴이 점점 굳어지기 시작했다.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들어서다.

“혹시, 그러니까……”

“맞아.”

끝까지 뱉어 내지 못한 말에 진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꾸했다.

라우렐은 너무 놀라 입을 다물지 못한 채 허공을 응시했다. 설마설마하는 마음으로 물었는데, 그게 사실이었다니.

‘황제였다니. 지금까지 록스버그 공작을 암살하려던 뒷배가 존더부르크가였다니.’

갑자기 라우렐이 자릴 박차고 일어섰다. 그리곤 차를 마시고 앉아 있는 진을 내려다보며 다급하게 말했다.

“그럼 여기에 느긋하게 기다리면 안 되는 것 아닙니까? 얼른 가 보셔야죠.”

진이 조용히 찻잔을 내려놓으며 일어나길 재촉하는 라우렐을 올려다보았다.

“폐하께선 이성이 있는 분이라며? 네가 네 입으로 별일 없을 거라고 하지 않았나?”

놀리듯 말하는 진을 보며 답답하다는 듯 라우렐이 재빨리 대답했다. 상황이 바뀌었던 것이다.

“그거야 사실을 알기 전이라 그런 거죠. 제가 잘못 판단한 것 인정할 테니, 어서 일어나십시오. 빨리 가 봐야 하지 않…….”

똑똑.

그때 기사단실의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이지?”

“단장님, 황궁에서 시종이 찾아왔습니다. 급히 로이슈덴 공작님께 전할 말이 있다고 합니다.”

동시에 두 사람의 시선이 맞닿았다. 같은 생각을 하는지 두 사람의 눈동자에 초조함이 스치고 지나갔다.

“들여보내.”

이내 문이 열리고 시종이 안으로 들어왔다.

“나에게 전할 말이 있다고?”

“네. 로이슈덴 공작 부인께서 급히 일이 생겨 먼저 돌아간다고 전해 달라고 하셨습니다.”

“급히 돌아갔다고? 다른 얘긴 없었고?”

“그렇게만 전하면 아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접견실에서 나왔을 때의 표정은 어땠지?”

진이 도무지 로엔의 행동이 이해가 되지 않는 듯 캐물었다.

“베일을 쓰고 계셔서 얼굴을 보지 못했지만 평소와 같으셨습니다. 차분하셨고 목소리도 담담하셨습니다. 별로 이상함은 느껴지지 않았고요.”

“그래?”

“네. 그럼 다른 말씀이 없으시면 저는 가 보겠습니다.”

시종이 두 사람에게 예를 갖춘 뒤 기사단실을 나갔다.

진은 닫힌 문을 보며 생각에 잠긴 얼굴로 가만히 앉아 있었다.

“급한 일이 생기셨다니. 대체 폐하와 무슨 말을 나눴기에 공작님이 기다리고 있는 걸 뻔히 알면서 혼자 돌아가신 걸까요?”

라우렐도 이해가 되지 않는 듯했다.

“황궁에 있는 폐하의 눈 때문일 거야. 분명 접견실에서 나와 관련해 좋지 못한 얘길 들었을 테고, 에드윈은 제안을 했겠지. 내게서 떨어지라고.”

“설마 결혼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그런 말을 했겠습니까?”

“분명히 했을 거야. 그래서 나에게 오지 못한 거지. 만약 황제의 제안을 들었는데도 아무런 거리낌 없이 내게 왔다면, 그 대답은 뻔할 테니까.”

거절. 황제의 제안을 거절하겠다는 뜻을 공고히 하는 행동이었다.

하지만 로엔이 혼자 황궁을 떠난 것이라면, 에드윈에게 재고의 여지가 있음을 암시하는 말이 될 터였다.

‘시간을 벌려는 것이군. 대체 무슨 제안을 했기에…….’

“아.”

진은 에드윈이 뭘로 로엔을 협박했는지 알 수 있었다.

‘드래건의 심장. 반역죄.’

분명 에드윈은 드래건의 심장을 삼킨 것을 빌미로 반역죄를 물었을 터였다. 그리고 함께 반역자가 되어 죽고 싶지 않으면 황제의 편에 서라고 했을 테고.

뻔히 읽히는 수였다.

“짐작되는 것이라도 있으십니까?”

“돌아가 봐야겠군. 이제 폐하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 줘야지.”

뜻 모를 말을 뱉어 내며 진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기사단을 그만두면 술이라도 한잔 먹도록 하지. 세이지와 같이.”

“제게 시키실 일이 있으시면 언제든 말씀해 주십시오.”

라우렐의 말에 진은 잠시 생각에 잠긴 듯 말이 없었다. 그러다 뭔가 생각났는지 신중하게 입을 열었다.

“라우렐, 부탁 하나만 해도 될까?”

“뭐든 말씀하십시오, 공작님.”

“당분간 기사단에 머물도록 해.”

“네? 하지만…….”

“황제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그를 감시해 줘.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말이야. 그리고 그의 곁에 있는 자가 누군지도 알아보고.”

진의 말에 라우렐이 납득이 된 듯 고갤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당분간 이곳에 머물면서 황제의 주위를 살피겠습니다.”

“뭐든 좋아. 아주 사소한 것까지 놓치지 말고 감시하도록 해. 그리고 하루에 한 번 내게 전갈을 보내도록 해.”

진의 말에 라우렐이 긴장한 표정으로 고갤 끄덕였다.

“곧 연락하지.”

진이 기사단실을 나왔다. 그리곤 대기 중이던 마차에 올라 록스버그 공작가로 마차를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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