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화
진이 로엔의 허리에 팔을 감았다. 그리곤 정신을 차릴 틈도 없이 한 손으로 베일을 걷어 올리더니, 깊숙이 혀를 얽어 왔다.
성급한 열기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질투심이든 아니면 욕망이든.
갈급하게 혀를 얽고 힘껏 빨아 당기는 힘에 로엔은 저도 모르게 신음을 삼켰다. 등줄기에 익숙한 쾌락이 따라붙었다.
“하아, 로엔. 앞으론 나 외엔 그 누구도 쳐다보지 마.”
진이 입술을 떼지 않은 채 로엔의 이름을 속삭였다.
그가 보이는 미친 집착과 소유욕에 두려움을 느껴야 마땅했다. 하지만 저는 변태가 맞는 모양이다. 그의 속박과도 같은 질투에 심장이 뜨거워졌다.
“진? 으음.”
입술에 닿는 그의 뜨거운 숨결에 로엔은 몸을 떨었다.
언제 움직였는지 알 수 없었지만 로엔의 등에 차가운 벽이 닿았다. 로엔이 나른한 신음을 삼키며 천천히 입술을 열었다.
순식간에 밀려든 거친 파도가 그녀를 흔들었다. 두려움을 느낄 만큼 강렬한 격랑이었다. 이성의 끈을 놓고 그에게 매달리고 싶을 만큼.
“팔을 목에 감아.”
그의 속삭임에 로엔은 망설임 없이 팔을 뻗어 그의 목을 감싸 안았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두 사람의 몸이 한 치의 틈도 없이 맞닿았다.
순식간에 두 사람의 몸이 얽혀 들자, 그 야릇한 감각에 몸속의 피가 뜨겁게 날뛰었다.
“넌 너무 예뻐서 문제인 것 같아. 베일로도 네 미모가 감춰지지 않으니.”
지금 뭐라는 거지?
하지만 로엔은 달콤함에 빠져 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다른 놈들 앞에서 그렇게 웃지도 말고, 쳐다보지도 마. 내가 미치는 꼴을 보고 싶지 않다면.”
정말 중증인 건 분명했다. 베일 안에서 웃든, 쳐다보든 누가 알아챈다고.
솔직히 말해서 아드리안 제국에서 괴물 공작인 그녀에게 이렇게 시도 때도 없이 질투를 하는 사람은 진 로이슈덴뿐일 터였다.
대부분의 귀족들은 로엔이 만들어 낸 괴물 공작이란 소문 때문에 그녀에겐 관심조차 없었다. 오히려 꺼림칙해하거나, 경멸했으면 모를까.
“대답은?”
진이 초조한 듯 대답을 재촉한다. 하지만 로엔은 대답 대신 발끝을 세워 그의 입술에 키스했다.
서늘하던 그의 은청색의 눈동자가 한순간 격한 열기로 일렁인다.
“이제 답이 됐나요?”
“하아, 미치겠군.”
진이 욕설을 뱉어 내며 그녀의 허릴 힘껏 끌어안았다. 그리곤 고갤 기울여 깊숙이 혀를 묻어 왔다.
“그러지 말고 혀 좀 내밀어 봐.”
입술을 겹친 상태에서 낮게 속삭이자 뜨거운 숨결이 입술을 간질였다. 그 야릇한 속살거림에 등줄기에 전율이 흘렀다. 아랫배에 뭉근한 열이 퍼지며 자꾸만 발가락이 곱아들었다.
로엔이 혀를 내밀자 그의 혀가 더욱 농밀하게 얽혀 들었다. 로엔은 그에게 매달려 입안 가득 밀려든 격랑에 몸을 맡겼다.
질척하고 탐욕스러운 키스가 계속됐다.
‘갖고 싶어. 지금 당장, 그가 날 가득 채웠으면 좋겠어.’
순간 머릿속을 가득 채운 생각에 놀라 로엔은 눈을 떴다.
위험했다. 이러다 파티가 한창인 테라스에서 진과 짐승처럼 몸을 겹칠 것 같았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욕망으로 인해 흐릿하던 의식 또한 또렷해졌다.
“잠깐, 진. 잠깐만…….”
로엔이 재빨리 그를 밀어냈다. 하지만 진은 이성이 날아가기라도 한 듯 그녀의 속삭임에도 불구하고 입술을 삼키는 데 열중해 있었다.
“진짜. 좀 떨어지라고요. 이러다 소문나겠어요. 장소도 가리지 못하고 짐승처럼 군다고.”
로엔이 손으로 그의 입을 막았다. 억지로 입술이 떼어진 후에야 진은 정신이 든 듯 고갤 들었다. 열기로 멍해 있던 진의 시선이 로엔의 얼굴에 닿았다.
“로엔, 방으로 갈까?”
아직 정리되지 않은 격정에 진의 호흡이 거칠었다. 뚝뚝 끊기는 말투와 거침 숨소리가 로엔의 손에 닿았다.
“…….”
“응?”
로엔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자, 그가 손끝에 노골적인 유혹을 담아 입을 맞췄다.
“알았으니까 제발 그만 좀 해 봐요.”
로엔이 그를 밀어냈지만 그의 입술은 좀처럼 떨어질 줄 몰랐다. 로엔의 손끝에, 그리고 입술에 무자비하게 입을 맞췄다.
“진, 저도 말 좀 하게 멈춰 보라고요.”
그제야 진이 입술을 떼곤 로엔을 내려다보았다. 열기로 번뜩이는 얼굴을 하곤 최대한 욕망을 참으며 얌전히 기다리는 모습이 저에게 길들여진 맹수처럼 보였다.
로엔은 검지를 들어 그의 심장을 꾹 눌렀다.
“읏…….”
정확히 그녀의 손이 닿은 곳은 심장 주변에 돋아난 드래건의 비늘이었다.
로엔의 손이 옷 위에서 비늘을 누르자, 바짝 날이 서서 단단하게 솟아 있던 비늘이 순한 양이라도 된 듯 납작 엎드렸다. 마치 제 주인을 알아보기라도 한 듯이.
“말해. 할 말 있다며.”
“자꾸 자극하지 마세요. 그렇지 않아도 꾹꾹 눌러 참고 있는데.”
“뭘 말하는 건지 모르겠어.”
“남자만 욕망이 있는 건 아니라는 뜻이에요.”
“아…….”
“자꾸 그런 눈으로 절 보면 나도 미치겠다고요. 그러니 이제 절 안아요. 요즘 들어 시도 때도 없이 하는 것 있잖아요.”
“뭐?”
“자꾸 묻지 말고, 날 번쩍 안아 들라고요. 다리에 힘이 풀려서 도저히 방까지 못 갈 것 같아서 그래요.”
그리고 파티에 참석한 귀족들을 남겨 둔 채 방으로 갈 공식적인 핑계도 필요했다. 그 핑계가 귀족들에게 먹힐지, 먹히지 않을지는 확신할 수 없었지만.
“그러니까…….”
“방에 가자면서요. 손님들은 유능한 집사인 알렉이 알아서 할 테죠. 당신 말처럼, 우린 신혼이니까요.”
로엔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진이 로엔을 두 팔로 번쩍 안아 들었다. 이젠 그의 팔에 안겨 옮겨지는 게 처음처럼 부끄럽지도 않았다.
진은 좋아 죽겠다는 듯 웃더니, 서둘러 테라스 문을 열고 그레이트 홀로 들어섰다.
바람을 쏘이러 나갔던 두 사람이 생각지도 못한 모습으로 나타나자, 파티를 즐기던 귀족들이 또다시 눈을 마주치며 귓속말을 하기 시작했다.
귀족들 역시 그들의 모습에 이젠 크게 놀라는 기색도 없었다.
뭐, 생각해 보면 결혼식에서도 이렇게 안고 들어온 마당에 이 정돈 충격도 아닌 모양이었다.
“무슨 일 있으신 겁니까, 로이슈덴 공작님?”
그나마 진과 안면이 있는 에런 홈볼트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걸어왔다.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서. 준비한 음식은 충분하니, 파티를 즐기는 데는 문제없을 거야.”
“아, 네. 그렇죠.”
“하지만 내가 배웅은 하지 못할 것 같군. 세이지, 알렉.”
진이 세이지와 알렉을 불렀다. 그러자 두 사람이 사람들을 헤치고 다가왔다.
“뭐야. 뭔데?”
“부르셨습니까, 공작님.”
세이지가 눈살을 찌푸리며 뭐냐고 묻는 반면, 알렉은 최대한 예의 바르게 제 주인을 향해 고갤 숙였다.
“배웅은 두 사람이 하는 게 좋겠어. 우린 아주 급한 일이 생겨서.”
순간 그레이트 홀 안에 묘한 정적이 흘렀다. 귀족들의 얼굴이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사실 로엔을 품에 안고 그레이트 홀로 들어선 순간부터, 진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야릇하고 퇴폐적인 분위기에 눈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르던 참이었다.
그런데 아주 급한 일이 생겼다고 말을 한 순간, 그곳에 있던 귀족들은 진과 로엔에게 생긴 아주아주 급한 일이 뭔지 단박에 눈치챌 수 있었다.
결혼한 지 2주가 된 신혼부부가 불이 붙어 파티도 끝나기 전에 침대로 뛰어들겠다는 뜻이었다.
“흠흠.”
여기저기에서 귀족들의 헛기침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붉어진 얼굴을 옆으로 돌리며 민망함을 삭이는 모습도 보였다.
“지금 그러니까, 파티도 안 끝났는데 들어가 자겠다고?”
세이지의 노골적인 물음에 진이 어깰 으쓱했다. 그러면 안 되는 법이라도 있느냐는 투였다.
“정말 못 말린다니까. 전쟁터에선 수도사처럼 굴더니 결혼하자마자, 이건…….”
“입 다물고, 배웅이나 잘 해.”
진이 더 이상 말했다간 가만있지 않겠다는 듯 경고를 했다. 그러자 세이지가 알았다는 듯 두 손을 들어 보였다.
“알았다고. 알았으니까, 좋은 시간이나 보내. 아무 때나 암컷한테 구애하는 맹수처럼 굴지 말고.”
“흠흠.”
귀족들의 헛기침 소리가 노골적으로 커졌다.
“그럼 충분히 파티를 즐기시다 돌아가시길 바랍니다.”
진은 귀족들을 향해 건조하게 말하고는 서둘러 그레이트 홀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졸지에 주인이 없는 파티에 남게 된 귀족들은 허망한 표정으로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아무리 신혼이라지만 두 사람의 애정행각은 도가 넘은 수준이었다.
“그런데 정략결혼이었던 것 아니었나요?”
“제가 알기로도 돈에 팔린 결혼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하지만 결혼식이 열리던 대신전에서부터 오늘 피로연 파티까지, 진 로이슈덴이 로엔 록스버그를 대하는 태도는 정략결혼을 한 신랑 같지 않았다.
그는 내내 좋아 죽겠다는 표정으로 안달이 난 얼굴이었다.
거기다 검술 시합장에서 한 차례 묵사발을 만들어 놓았던 에드워드 캐슬리우스 백작에게 보인 질투 어린 태도 역시 한몫했다.
“정말 믿을 수가 없군요. 내 생전 로이슈덴 공작님의 저런 모습을 보게 되다니.”
“소문이 사실일지도 모르겠군요. 로이슈덴 공작님이 제 신부에게 단단히 빠져서 물불 못 가린다는 소문이요.”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던 귀족 하나가 믿기지 않은 진실 하나를 발견했다는 듯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그리고 그 한마디는 아드리안 제국의 사교계를 뒤흔들어 놓기에 충분했다.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침실로 향하는 두 사람의 입술은 떨어질 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