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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공작의 공개 구혼-148화 (149/201)

148화

“파티가 이제 막 시작되었다고요.”

로엔의 말에 진이 한숨을 내쉬었다.

“결혼을 축하하는 피로연이라고 해서 열긴 했는데. 다신 이런 귀찮은 파티 따윈 열지 않을 거야.”

아쉬운 듯 고갤 든 진이 로엔의 머리카락에 입을 맞췄다. 머리카락에 신경이라도 있는 듯 뒷목이 바짝 긴장하며 날카로운 전율이 흘렀다.

“로엔, 우리 밖으로 나갈까? 너랑 정말 키스…….”

다행히 진이 다음 말을 끝내기 직전에 음악이 멈췄다.

로엔은 가빠진 숨을 천천히 고르며 그의 손을 놓고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그러자 진 역시도 로엔의 허리에 감았던 팔을 풀고는 허릴 숙여 로엔의 손등에 입을 맞췄다.

손등에 달라붙는 노골적인 열기에 로엔은 갈증이 났다.

“덥네요. 음료라도 마셔야겠어요.”

“기다려. 내가 가져다줄 테니까.”

“그럼 부탁할게요.”

진이 로엔에게 줄 음료를 가지러 자릴 비운 사이, 세이지가 다가왔다. 그리곤 어이없다는 눈빛으로 말했다.

“내 평생 우리 대장이 여인과 춤을 추는 장면을 보게 되다니. 믿기지 않는다니까.”

로엔은 귀족들 사이를 지나쳐 음료를 가지러 가는 진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그리곤 세이지의 말에 여상하게 대답했다.

“그거야 전쟁터에선 춤출 기회가 없었을 테니까요.”

“정말 이유가 그것뿐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로엔이 고갤 돌리자 세이지의 눈꼬리가 위로 치켜 올라가 있었다. 정말 몰라서 이러는 거냐는 듯이.

뭔가 말하려던 로엔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많이 변했나요?”

“그걸 말이라고 해? 난 딴 사람인 줄 알았다니까. 지금까지 봐서 알잖아. 우리 대장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까칠하고 무례한지. 단편적인 예로 지금도 저것 봐. 사람들한테 저러고 있잖아.”

세이지가 턱으로 진 쪽을 가리켰다.

자연스럽게 고갤 돌린 로엔의 눈에 테이블 위에 놓인 음료수 잔 중 뭐가 좋을지 고르고 있는 진이 보였다. 그 짧은 사이에 캐서린을 비롯한 레이디들 무리가 진을 둘러싸고 있었다.

거리가 있어서 무슨 얘길 나누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레이디들이 진에게 음료수를 권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진은 무섭도록 차가운 얼굴로 레이디들 쏘아본 뒤, 제게 건넨 음료수 잔을 무시한 채 옆에 놓여 있는 다른 잔을 집어 들었다.

그리곤 무료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레이디들을 무시한 채 로엔을 향해 걸어오기 시작했다.

“봤지? 우리 대장 인성이 저렇다고. 아무리 주위에 여인이 많으면 뭐 해? 전혀 관심이 없을걸.”

세이지의 말에 로엔이 입술을 깨물었다. 심장이 참을 수 없을 만큼 간지러웠다. 그리고 그가 춤을 추는 동안 입을 맞췄던 귀가 뒤늦게야 불이 난 듯 뜨거웠다.

“저기, 흠흠. 록스버그 공작님?”

진을 보느라 정신이 팔려 있던 로엔은 저를 부르는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어색한 표정으로 서 있던 에드워드 캐슬리우스 백작을 볼 수 있었다.

“캐슬리우스 백작님.”

“늦었지만 결혼을 축하드립니다. 이건 폐하께서 드리는 결혼 선물입니다.”

에드워드가 품에서 작은 상자를 꺼냈다. 상자엔 샬럿이란 로고가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샬럿은 칼라일에서 가장 유명한 보석상이었다.

로엔은 이미 에드윈을 대신해 캐슬리우스 백작이 파티에 참석한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주는 선물을 향해 망설임 없이 손을 내밀었다.

“폐하께 감사하다고 전해 주세……. 진, 지금 뭐 하시는……?”

하지만 로엔의 손이 상자에 닿기 전에 에드워드가 들고 있던 상자가 툭 하고 바닥을 뒹굴었다.

돌아보니 진이 서늘한 표정으로 에드워드를 쏘아보고 있었다.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캐슬리우스 백작?”

당황한 에드워드가 바닥에 떨어진 상자를 집어 들었다. 그리곤 냉기가 뚝뚝 떨어지는 진을 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공작님, 결혼을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이건 폐하께서 두 분께 전하는 결혼 선물입니다. 그것을 록스버그 공작님께 전하던 중이었고요.”

오해라는 듯 에드워드가 상황을 상세히 설명했다. 하지만 진의 눈매는 여전히 날카로웠다.

“록스버그 공작이 아니라, 로이슈덴 공작 부인이라고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지금 이 파티가 로이슈덴 공작 부처의 결혼피로연이란 걸 잊은 모양이군, 캐슬리우스 백작.”

“……그렇겠군요. 제가 실수를 한 것 같습니다. 로이슈덴 공작 부인, 무례를 용서해 주십시오.”

에드워드가 정중하게 사과를 했다.

로엔은 그런 두 사람을 번갈아 보며 난처함을 숨기지 못했다. 하지만 진은 에드워드 따위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로엔에게 들고 있던 음료 잔을 건넸다.

“마셔. 덥다고 했잖아.”

잔을 받아 든 로엔이 그의 안색을 살피며 고갤 끄덕였다.

“고마워요, 진.”

로엔은 공작이란 칭호 대신 이름으로 그를 불렀다. 그제야 날카롭게 날이 섰던 진의 표정이 조금 누그러지는 게 보였다.

하지만 흥미진진한 눈빛으로 세 사람을 지켜보는 귀족들은 진의 변화를 읽어 내지 못했다.

그저 두 남자 사이에 감도는 팽팽한 긴장감에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마음을 졸일 뿐이었다.

“뭐야, 대장? 지금 캐슬리우스 백작하고 결투라도 하려는 건 아니지?”

세이지가 이 상황이 재미있다는 듯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그의 특유의 장난스러운 말투에 진과 에드워드 사이에 감돌던 팽팽한 긴장감이 깨어졌다.

서로를 쏘아보던 두 사람은 감정을 갈무리하듯 서로 고갤 돌렸다.

“그러니까 이게 폐하께서 주신 선물이란 거지?”

세이지가 에드워드의 손에서 상자를 받아 들더니 이내 알렉을 불렀다. 그리곤 그에게 상자를 건넸다.

“가져가, 알렉. 이것 때문에 사람 하나 죽어 나가면 큰일이잖아.”

“제가 잘 보관하겠습니다, 공작님.”

알렉이 위험한 물건을 치우듯 서둘러 상자를 들고 자릴 뜨자, 세이지가 이제 됐냐는 듯 세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대장, 열도 식힐 겸 잠깐 테라스나 나갔다 오지 그래. 지금 대장 때문에 이곳에 있는 사람들이 오줌을 지릴 판이거든. 봐 봐. 새파랗게 질린 얼굴들이잖아.”

천박한 말투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도 세이지의 말에 이의를 제기하는 이가 없었다.

사실 귀족들은 진이 뿜어내는 냉기에 바짝 긴장해 있었다. 한 달 전 검술 시합장에서 보였던 살기가 고스란히 느껴져서다.

“그게 좋겠군. 로엔, 잠깐 나갈까.”

진의 제안에 로엔이 순순히 그의 팔에 손을 올려놓았다. 그러자 진의 입가에 의기양양한 미소가 떠오르더니, 에드워드를 향해 고갤 돌렸다.

“캐슬리우스 백작, 파티에 참석해 줘서 고맙군. 이왕 폐하 대신 왔으니 충분히 즐기도록 해. 로엔이 파티 음식을 직접 준비해 아주 맛있거든. 그럼 우린 이만 갈까, 로엔?”

진의 시선이 로엔에게 향한 순간, 냉기가 감돌던 진의 얼굴에 지금까지 한 번도 보인 적 없는 화사한 미소가 떠올랐다.

로엔은 그의 미소에 숨을 삼켰다. 이건 정말이지, 작정하고 사람을 홀리는 미소였다.

순간 그레이트 홀에 있던 귀족들 역시 진의 미소에 매혹된 듯 숨을 죽였다. 어떤 레이디들은 얼굴을 붉히며 휘청대는 이도 있었다.

모두가 그의 미소를 봤다고 생각하자, 로엔은 불쾌감이 일었다. 그렇게 홀리고 다니지 말라고 경고했건만, 이건 대놓고 색기를 흘리고 있었다.

로엔이 마땅찮은 표정으로 진을 쏘아보며 불퉁하게 말했다.

“그러는 게 좋겠네요.”

로엔의 서늘한 목소리에 진의 은청색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짙어지더니, 입가에 걸린 미소가 더욱 깊어졌다. 로엔의 질투를 눈치챈 모양이었다.

순간 진이 소유욕을 드러내며 그녀의 허리에 팔을 감아왔다. 순식간에 두 사람의 거리가 한 치의 틈도 없이 가까워졌다. 로엔은 그를 밀어낼 새도 없이 진에게 이끌려 테라스로 걸음을 옮겨야만 했다.

“질투는 안 해도 돼. 내 눈엔 너만 보이니까.”

낮게 속삭이는 진의 목소리에 로엔의 얼굴에 순식간에 붉어졌다. 베일을 썼으니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제 표정을 모두에게 들켰을 터였다.

귀족들은 테라스로 향하는 두 사람을 보며 충격을 받은 듯 누구 하나 먼저 입을 여는 이가 없었다.

만년설보다 차갑고 거만한 진 로이슈덴이 미소를 지은 것도 놀라운데, 그 미소의 주인이 그 누구도 아닌 로엔 록스버그라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은 눈치였다.

“세상에나, 지금 우리가 뭘 본 거죠?”

“믿을 수가 없네요.”

등 뒤로 귀족들의 속삭이며 들려왔다. 그러거나 말거나, 진은 로엔을 보며 봄날의 햇살처럼 녹아내릴 뿐이었다.

테라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자, 신선한 공기가 뜨겁게 달아 오른 뺨의 열기를 식혀 줬다.

로엔이 고갤 휙 돌리고 그에게 한 소리 하기 위해 입을 열려는 순간, 그가 한발 먼저 입을 열었다.

“제길, 눈을 뽑아 버렸어야 했는데.”

로엔이 놀라 그를 올려다보았다.

“경고했을 텐데? 너와 눈이 마주치는 놈들은 그게 누가 되었건, 눈을 뽑아 버리겠다고.”

진이 감정을 고스란히 드러내며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그가 날을 세워서인지 로엔은 재빨리 분위기 파악을 하며 슬쩍 꼬릴 내렸다.

“그거야 축하 인사를 하는데 고갤 돌릴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그러니 눈을 마주쳤다고 보긴 어렵지 않겠어요?”

“난 눈도 마주치지 않았어. 끈질기게 따라붙는 손길도 뿌리쳤고.”

그의 말에 로엔은 고갤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거짓말 조금 더해서 그는 레이디들과 눈도 마주치지 않기 위해 무뢰배라도 된 양 굴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로엔이 더 난처해 얼굴이 붉어질 지경이었다.

“저도 똑같이 무례하게 굴라는 뜻인가요?”

로엔이 그건 불가능하다는 투로 말했다.

“똑같이 할 필욘 없지만 선을 그으란 뜻이야. 내가 가지 않았다면 캐슬리우스가 건넨 상자를 받았을 것 아냐. 그렇게 되면 그놈이 닿았던 곳에 네 손이 닿을 테고.”

순간 로엔의 머릿속이 멍해졌다.

‘그러니까 지금, 진이 화를 내는 진짜 이유가 에드워드의 손에 닿았던 물건이 내 손에 닿았을지도 몰라서라는 거지?’

조금 황당했다. 대체 이런 사소한 부분까지 질투를 느끼는 사람이…….

“난 싫어. 내 것에 딴 놈이 닿는 건 죽어도 못 봐.”

……있었다. 그런 미친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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