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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공작의 공개 구혼-147화 (148/201)

147화

“결투는 없을 거야. 그런데 공작님은 어디에 계셔?”

“아, 세이지 님이 오셔서 지금 서재에게 계세요. 대충 얘길 들어 보니, 세이지 님이 황실 근위대를 그만두신 모양이에요.”

“세이지 님이 근위대를?”

“네. 그리고 곧 라우렐 님이라는 분도 그만두신대요. 황실 근위대 소속이라는데, 혹시 주인님도 아세요?”

“응. 캠벨 후작가의 파티에서 본 적 있어.”

그때 일을 떠올리자 로엔은 괜스레 민망해졌다. 계단 아래에 숨어서 진 로이슈덴을 지켜보던 장면을 라우렐에게 들켰기 때문이었다.

“준비는 다 끝났나?”

그때, 방문이 열리며 진이 안으로 들어왔다.

진의 목소리에 로엔이 고갤 들자 그가 멈칫 걸음을 멈췄다. 그리곤 노골적인 눈빛으로 로엔을 머리에서 발끝까지 훑어 내리기 시작했다.

그 나른하고 날것 그대로의 눈빛에 로엔은 민망해져 고갤 돌리려 했다. 그러자 그가 재빨리 로엔에게 다가오더니 그녀의 턱을 붙잡곤 그를 바라보게 했다.

당연하다는 듯 허리에 감은 팔이 소유욕을 드러내며 진득하게 들러붙었다.

“얼굴에 뭘 바른 거지? 평소와 조금 다르군.”

진이 요리조리 얼굴을 돌려 가며 로엔의 얼굴을 살폈다. 그러다 정성껏 발라 놓은 로엔의 입술을 엄지손가락으로 쓸어 닦아 냈다. 마치 화장을 한 게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다.

“파티가 있어서 발랐어요. 레이디에게 치장은 기본 중의 기본이거든요.”

“다음부턴 바르지 마.”

그의 단호한 태도에 로엔이 눈살을 찌푸렸다.

‘어울리지 않는 건가?’

로엔은 진의 서늘한 반응에 세실의 말에 넘어가 화장까지 한 걸 후회했다.

“어차피 베일을 써서 보이지도 않은 텐데요. 아마 아무도 제가 화장을 한 줄 모를 거예요. 그러니…….”

“그건 천만다행이군. 지금도 누가 널 쳐다만 봐도 날이 서는데. 베일이라도 없었다면 네게 눈길 주는 놈들의 눈을 다 뽑아 버렸을 거야.”

음산하게까지 들리는 진의 목소리에 로엔의 귓불이 붉어졌다. 화장이 어울리지 않아서 그러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정반대였다.

“누구 할 소릴 하는지 모르겠네요. 장담하건대, 오늘 파티에 참석한 대부분의 레이디들이 공작님만 쳐다볼걸요?”

진의 은청색 눈동자가 흥미롭다는 듯 로엔을 보았다.

“지금 질투하는 건가?”

낮게 속삭이는 목소리에 들뜬 기색이 역력했다.

“질투는 무슨. 그냥 사실을 말한 것뿐이었어요. 세이지 님이 오셨다죠?”

로엔이 슬쩍 시선을 피하며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

순간 진의 눈썹이 날카롭게 치켜 올라가더니,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로엔을 보았다.

“네 입에서 다른 놈 이름이 나오는 것도 마음에 안 들어. 무엇보다 나한테는 아직까지 공작님이라고 부르면서, 딴 놈들은 이름으로 부르는 것도 짜증나고.”

지금 농담하나? 이름이 뭐라고. 그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고 화를 내다니.

하지만 진의 표정으로 보건대, 그냥 하는 소린 아닌 듯했다.

“그거야…….”

세이지는 평민이라 성이 없다는 사실을 지적하려다 그만뒀다. 그리고 라이칸도 어렸을 때부터 봐 온 터라 자연스럽게 이름을 부른 것뿐이었다.

진이 키스할 것처럼 고갤 숙여 왔다. 청량한 체향과 함께 뜨거운 숨결이 입술을 간질였다.

조금만 고갤 들면 입술이…….

“흠흠, 저기요. 두 분께서 신혼이신 건 알겠는데요. 이제 내려가셔야 하거든요. 파티장에서 두 분을 기다리는 귀족들이 대충 셈해도 백 명은 넘어서요. 그들을 다 기다리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세실은 말로는 방해해서 죄송하다고 말하고 있었지만, 표정으로는 이제 닭살 좀 그만 떨고 제발 내려가자고 말하고 있었다.

“이제 그만 내려가야 할 것 같네요.”

세실의 말에 로엔이 민망한 듯 뒤로 물러섰다. 그리곤 옆에 놓여 있는 검은 베일로 손을 뻗었다.

“이리 줘. 내가 해 줄게.”

진이 로엔의 손에 들려 있는 베일을 가져갔다. 로엔은 긴장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은청색의 눈동자가 로엔의 얼굴을 좇았다. 얼굴을 볼 수 없는 그 잠깐의 시간이 견딜 수 없다는 듯, 그녀의 얼굴을 눈에 담겠다는 듯이.

그의 시선에 귓불이 붉어졌지만 로엔 역시도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대신 베일이 눈을 가리고 얼굴을 다 덮을 때까지 천천히 기다렸다.

베일이 입술 끝에 다다랐을 때, 갑자기 진이 고갤 숙여 왔다. 조금 전 세실의 방해로 닿지 못했던 입술이 맞물렸다.

“읏―.”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로엔이 눈을 들었을 땐 진이 베일은 놓은 후였다. 뺨을 비롯해 귓불이 발긋해졌다.

더 농밀하고 난잡한 키스도 한 사이인데. 로엔은 소년처럼 제 입술을 훔친 지금의 키스에 심장이 더 뛰었다.

“걱정 마. 날 쳐다보는 여자들이 모래사장의 모래알처럼 많다고 해도, 눈길조차 주지 않을 테니까. 그럼 가실까요. 로이슈덴 공작 부인?”

진이 로엔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파티에 참석하는 레이디들이 수십 명은 될 텐데, 눈길도 주지 않겠다니. 그건 파티에 참석한 레이디들을 다 무시하겠다는 뜻이었다.

한마디로, 불가능했다.

하지만 농담일지언정 그리 기분 나쁘진 않았다.

그의 손을 내려다보는 로엔의 입가에 설핏 장난스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기대해 보죠, 괴물 공작의 아름다운 기사님.”

* * *

록스버그 공작과 로이슈덴 공작의 결혼피로연 파티에는 생각보다 많은 귀족들이 참석했다.

결혼식이 있고 2주 후에 열리긴 했지만, 귀족들은 그것에 대해 전혀 괘념치 않은 눈치였다.

다만, 파티의 주최자인 진의 무례한 태도가 문제였다.

진과 인사를 나누기 위해 서 있던 레이디들이 진의 차갑고 무심한 태도에 시시각각 창백한 얼굴로 변해 가고 있었던 것이다.

‘농담이 아니었나?’

로엔은 냉기가 뚝뚝 떨어지는 얼굴로 레이디들 곁을 지나치는 진을 보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춤을 꼭 춰야 하는 건지 모르겠군. 그냥 건너뛰면 안 되나?”

진이 사교계의 규칙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퉁명스럽게 말했다.

“어쩌겠어요? 파티의 주인공이 춤을 추지 않으면 시작이 되지 않는걸. 그런데 춤은 배우셨죠?”

로엔의 물음에 진이 고갤 돌려 눈을 마주쳐 왔다.

“걱정 마. 네 발을 밟아 창피를 당할 일은 없을 테니까.”

그러고 보니 진이 나온 황실 아카데미에서 승마를 비롯해 사교계에서의 기본적인 매너를 배운다고 들었다. 아마 그 교육 과정에 댄스 역시 포함되어 있을 게 분명했다.

더는 미룰 수 없어 진이 알렉에게 고갤 끄덕여 보였다.

이내 20년 만에 로이슈덴 공작가의 그레이트 홀에서 음악이 연주되기 시작했다.

두 사람이 마주 보고 섰다. 진이 로엔을 향해 정중하게 손을 내밀었다.

불빛 아래 서 있는 그의 모습이 너무도 매혹적이라 로엔은 그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저와 춤을 춰 주시겠습니까, 로이슈덴 공작 부인?”

두근.

분명 조금 전까진 춤 같은 건 귀찮아 죽겠다고 하더니.

로엔에게 손을 내미는 진의 입가엔 장난스러운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그레이트 홀로 내려온 후로 처음 보이는 미소였다.

사람을 현혹시키는 나른하고 섹시한 미소에 주위에 있던 귀족들이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정말 타고난 바람둥이라니까.’

사실 문제는 서늘할 정도로 금욕적이게 생겨서는 유혹의 페로몬을 무차별적으로 뿌려 댄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그 모든 행동이 무의식의 발로였고.

타고나길 색기가 넘치다 못해 철철 흐를 정도로 태어난 것이다.

“어딜 보는지 모르겠군. 춤은 나와 추면서 다른 쪽으로 고갤 돌리다니.”

진의 목소리에 로엔의 시선이 제자릴 찾았다. 진이 불만스러운 듯 다시 한 번 로엔을 본 다음, 서둘러 그녀의 허리에 팔을 감았다.

순식간에 두 사람의 거리가 가까워졌다.

‘잠깐, 춤을 추는데 이렇게 가까워도 되는 건가?’

로엔 역시 파티나 무도회에서 춤을 추는 건 처음이라, 춤을 출 때 허용되는 거리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음악에 맞춰 댄스 플로어를 도는 동안 귀족들의 시선이 경악과 부끄러움으로 점철된 걸 보며, 두 사람의 거리가 예법에 맞지 않는 거리는 아니란 사실을 똑똑히 알 수 있었다.

“저기, 우리 조금만 떨어지는 게 좋겠어요. 예법에…….”

“예법 따위 신경 쓸 것 없어. 신혼이니 잠시도 떨어지고 싶지 않아서 그렇다고 다들 이해하겠지.”

그의 무심한 말투에 로엔의 뺨이 홧홧해졌다. 그리곤 음악에 맞춰 움직이는 동안 진은 드레스 자락 사이로 그의 탄탄한 다리를 밀어 넣으며 더욱 노골적으로 행동했다.

다분히 성적인 의도를 품은 움직임이었다.

‘정말, 춤이 이렇게 야해도 되는 거야?’

두 사람이 추는 건 왈츠였는데 분위기는 서로를 유혹하는 야릇하고 섹시한 종류의 춤이었다.

“제가 불편해서 그래요. 조금만 떨어져 주세요.”

로엔이 사정하듯 그를 올려다보며 낮게 속삭였다.

‘뭔 남자가 못하는 게 하나도 없는지.’

제 허리에 팔을 감고 음악에 맞춰 움직이는 그의 모습이 느른한 맹수처럼 유연했다. 그래서인지 굉장히 관능적이었다.

두 사람의 손끝이 맞닿고, 시선을 교환하고. 그리고 허리에 두른 팔이 그녀를 제 품으로 끌어당길 때마다 노골적인 열기가 읽혔다.

“지금 너에게 키스하고 싶어. 파티 같은 건 그만두고 다 쫓아낼까?”

진이 고갤 숙여 오더니 베일을 사이에 두고 로엔의 귓불에 입을 맞췄다. 뜨거운 감각에 놀라 흠칫 몸을 떨자 진이 노골적으로 혀를 내밀어 여린 귀를 쓸어내렸다.

미쳤다. 주위에 있던 귀족들 역시 진의 행동을 본 듯 눈을 크게 뜨곤 두 손으로 입을 가리는 게 보였다.

“그만해요. 다들 우릴 쳐다보고 있어요.”

“보라고 해. 난 상관없으니까. 이걸 계기로 빨리 돌아가면 더 좋고.”

진이 고갤 더 숙여 이번엔 로엔의 목덜미에 입술을 비볐다. 그 노골적인 행동에서 그가 뭘 하고 싶은지 분명히 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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