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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공작의 공개 구혼-145화 (146/201)

145화

랑케 앞에 마차가 멈췄다. 벤투스가 서둘러 마차 문을 열어 로엔을 맞았다.

“오셨습니까, 공작님.”

“잘 지냈지?”

“네.”

짧게 대답한 벤투스가 뒤따라 내리는 라이칸에게도 인사를 건넸다. 마차에서 내린 로엔은 외투의 후드를 깊게 눌러썼다.

오늘의 방문은 대신전을 찾은 진의 외출을 틈타 비밀리에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평소보다 더 조심스러웠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벤투스가 재빨리 랑케의 비밀 문을 열고 로엔을 밀실로 안내했다.

밀실 안으로 들어가자, 먼저 와 기다리고 있던 말레 상단의 총책임자 안톤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셨습니까, 공작님. 결혼 축하드립니다.”

“오랜만에 뵙는군요, 안톤. 고마워요.”

로엔이 자리에 앉자, 라이칸을 비롯해 세 사람이 각자 자리에 앉았다.

“제가 오늘 여러분을 부른 이유는 게르피온에서 보내온 전갈 때문이에요.”

세 사람 모두 그 내용을 대충 알고 있는 듯 고갤 끄덕였다.

“게르피온으로 가실 생각이십니까?”

“최대한 빨리 떠날 생각이에요.”

로엔의 대답에 모두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태연한 반응이었다.

로엔은 묵묵히 제 의견을 기다리는 세 사람을 천천히 바라보다, 말레 상단의 안톤에게 시선을 멈췄다.

“안톤, 조만간 폐하께서 말레 상단의 교역권을 제한하실 거예요. 제가 로이슈덴 공작님과 결혼하면서 눈 밖에 났거든요.”

“그것이라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무리 폐하께서 상단의 교역권을 제한한다고 해도, 교역의 상대국들이 저희 상단이 아니면 교역하지 않을 테니까요.”

그동안 각국을 오가며 발 빠르게 줄을 대놓은 모양이었다.

“수고했어요, 안톤.”

“그렇다는 건 폐하께서 로이슈덴 공작을 견제한다는 소문이 사실이었던 모양이군요.”

대화를 듣고 있던 벤투스가 걱정 가득한 목소리로 단정 짓듯 말했다.

“맞아요. 사실 이 부분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말해 줄 순 없지만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요.”

“혹시 로이슈덴 공작님께서 황권을 원하시는 겁니까?”

충분히 의혹을 가질 만했다. 정복 전쟁을 승리로 이끈 진 로이슈덴은 제국민들의 평범한 시선으로 보아도 현 황제보다 믿음직한 자였으니까. 그리고 타란 대륙에 미치는 영향력 역시 황제를 뛰어넘고 있었다.

“검술 시합장에서 보인 로이슈덴 공작의 모습은 진짜예요. 제국의 검인 로이슈덴 공작가는 오직 폐하의 손에 의해서만 움직인다는 그 말도 사실이고요.”

“그럼 도대체 왜…….”

벤투스가 황제의 태도를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혀를 끌끌 찼다. 그런 충성 맹세를 듣고도 의심의 끈을 놓지 못하는 황제가 어이 없는 눈치였다.

“좀 더 오래된 이유가 있어요. 존더부르크 1세가 정한 금기와 연관이 있다고만 알면 될 거예요. 아, 그리고 벤투스. 폐하 곁에 알려지지 않는 자가 있는지 알아봐요. 대신전에서 얼핏 본 자인데, 폐하와 마차에 함께 타더군요.”

아드리안 제국에서 암살 위협으로부터의 차단을 이유로 황제와 마차에 탈 수 있게 허락된 자는 몇 되지 않았다.

‘황후와 그의 혈족인 진 로이슈덴 정도일까?’

그런데도 그자는 당연하다는 듯 마차에서 황제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마디로 에드윈이 그를 혈족만큼이나 중시 여긴다는 반증이었다.

“알겠습니다. 곧 알아보겠습니다.”

“내 생각으론 그자가 금기주술을 쓰는 것 같아. 지난번 로열 에스콧에서 일어난 사건 역시 그자와 연관이 있을 거예요. 지금껏 함구하고 있었지만, 그날 로이슈덴 공작님을 공격한 무기는 만년설을 제련해서 만든 것이었어요.”

“아.”

믿기지 않는 듯 안톤과 벤투스가 서로를 응시했다. 그리곤 방 안에 무거운 침묵이 감돌았다.

“게르피온에 뭔가가 있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안톤의 말에 로엔이 고갤 끄덕였다.

“라이칸, 네가 보고 온 것들을 두 분께 말해 줘.”

로엔의 명령에 지금껏 침묵을 지키고 있던 라이칸이 입을 열었다.

“암살자를 추적해 게르피온에 갔던 걸 다들 기억하실 겁니다. 암살에 쓰인 화살촉이 만들어진 대장간을 쫓다가 알게 된 사실입니다. 화살촉을 의뢰한 자가 아드리안 제국의 높은 신분의 사람이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지금껏 보지도 듣지도 못했던 무기를 만들어 달라는 의뢰도 받았다고 했습니다. 아마, 조금 전 공작님께서 말씀하신 그 무기인 듯합니다.”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설마…….”

황제일 것이라곤 생각지도 못했었다. 벤투스와 안톤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사실 생각해 보면 그 수많은 암살 시도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꼬리 하나 잡지 못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황제가 록스버그 공작의 암살을 지시했기 때문이었다.

“그럼 게르피온에 가는 이유가 황제의 목줄을 쥘 증거를 찾기 위한 것입니까?”

“최종 목표는 그것이 아닙니다. 제가 찾는 건 북쪽 마을에 나타났다는 노파입니다. 사실, 얼마 전 대신관에게 신탁이 내려졌다는 얘길 들었습니다.”

“신탁이요? 하지만 그것은…….”

“황족인 존더부르크가에만 내려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죠. 하지만 대신관의 말론 이번 신탁의 주인은 저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두 번째 내려진 신탁에 호리우스의 눈으로 만들어진 원통형의 물건에 대해 언급했고요.”

“공작님은 신탁이 말한 호리우스의 눈으로 만들어져다는 그 원통형의 물건이 뭔지 알고 계신 겁니까?”

안톤의 물음에 로엔이 천천히 고갤 끄덕였다.

“처음에 알지 못했어요. 하지만 얼마 전 서고에서 책을 찾다가 우연히 알게 된 사실이 있어요. 고대의 주술사들은 중요한 것들을 숨길 때 그 비밀을 푸는 열쇠로 그런 것들을 만들었다고 기록되어 있더군요.”

고대 주술사와 비밀. 그리고 그것을 푸는 열쇠.

처음엔 그 연결고리를 찾지 못해 헤매었다. 하지만 그것들을 록스버그 공작가의 저주나 존더부르트 1세에 의해 사장된 ‘라진의 서’와 연관 지어 보면 빠르게 답이 도출되었다.

대신관이 보았다던 신탁의 물건은 라딘의 서를 찾는 열쇠인 동시에, 록스버그 공작가의 저주를 푸는 실마리였다.

“혹시 이 모든 일들이 사장된 ‘라딘의 서’와 관계가 있는 겁니까?”

벤투스의 말에 로엔이 고갤 끄덕였다. 더는 참을 생각이 없어서였다.

“저는 라딘의 서를 찾기 위해 게르피온에 갈 생각입니다.”

밀실 안에 무거운 침묵이 다시 내려앉았다.

안톤이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는 듯 불쑥 입을 열었다.

“로이슈덴 공작님도 아십니까?”

“아니요. 대신관께 신탁의 내용에 대해 같이 듣긴 했지만, 그 내용이 라딘의 서와 연관 있다는 건 모를 거예요. 그리고 그는 록스버그 공작가의 저주를 풀어 줄 자가 자신이란 것도 모르고요.”

“그게 무슨……?”

로엔이 고갤 들어 세 사람을 차례차례 응시했다. 그리곤 결심이 선 듯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록스버그 공작가의 저주를 푸는 가장 근본적인 요건이 무엇인지 알고 계실 거예요.”

“그야 당연히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껏 불가능한 일이었고, 금기시되어 온…….”

안톤이 그가 아는 사실을 주절거리다, 순간 뭔가 걸리는 게 있는 듯 입을 다물었다. 그리곤 어떤 깨달음을 느낀 듯 그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하게 변했다.

“설마 금기된, 그러니까 드래건의…….”

그것이 다였다. 다음 말은 차마 입에 담을 수도 없는 반역이라 입안으로 삼켜졌다.

“말도 안 돼. 그런 사람이 존재했다니.”

또다시 밀실 안에 무거운 침묵이 감돌았다.

“혹시 폐하께선 그 사실을 알고, 그래서 로이슈덴 공작님을…….”

“짐작은 그래요. 하지만 폐하가 그 모든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 로이슈덴 공작을 반역죄로 죽이지 않는 건 의외더군요.”

로엔의 지적에 벤투스와 안톤이 고갤 끄덕였다. 그들 역시 같은 생각인 듯했다.

“아마 폐하께서도 라딘의 서를 찾고 계신 것 같아요. 사라져 버린 세 번째 예언. 그 진실을 말이에요.”

“그럼 앞으로 어떻게 되는 겁니까? 로이슈덴 공작가와 결혼을 한 지금, 록스버그 공작가의 존망 역시도 위험한 상태입니다.”

“알고 내린 결정이에요.”

로엔의 대답에 벤투스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공작님, 너무 위험합니다. 마지막 순간엔 로이슈덴 공작의 손을 놓고 폐하를 따라야 하지 않겠습니까?”

로엔이 생각에 잠긴 얼굴로 벤투스를 응시했다.

“아직 결정 내리지 않았어요. 폐하께선 록스버그 공작가의 저주도 알고 계시거든요. 그러니 무작정 로이슈덴 공작의 손을 놓고 폐하와 한배를 탈 수도 없는 노릇이죠.”

오히려 황제인 에드윈보다 진 로이슈덴을 더 믿었다.

에드윈은 웃는 낯으로 태연하게 암살자를 보내는 자였지만, 진 로이슈덴은 한 번 한 약속은 꼭 지키는 자였으니까.

“우선 모든 결정은 라딘의 서를 찾고 나서 할 생각이에요. 그리고 그 선택의 기준은 록스버그 공작가의 저주를 푸는 데 있고요.”

그제야 라이칸을 비롯해 안톤과 벤투스의 얼굴에 그늘이 사라졌다. 대신 그들의 얼굴엔 비장한 각오가 떠올라 있었다.

“출발 일정이 정해지면 연락 주십시오. 그 전에 모든 준비를 끝마치고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로엔이 안톤을 향해 고갤 끄덕여 보이곤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곤 랑케에 왔던 것처럼, 은밀하게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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