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화
“미안. 성급하게 하고 싶진 않았는데…….”
진이 귓불을 삼키며 낮게 속삭였다. 로엔은 야릇하게 허리를 비틀며 그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성급하다니. 절대 그렇지 않았다. 그녀 역시 밀려드는 열기에 애가 달아 있었다.
“그런 걱정 말고 어서 상이나 줘요. 나도 미치겠으니까.”
낮게 속삭이는 로엔의 목소리에도 욕망이 뚝뚝 떨어졌다.
서로 몸을 겹치던 일주일 동안 욕망에 눈을 뜬 건 진만이 아니었다. 로엔 역시도 한 번 맛본 쾌락이 머릿속에 각인된 듯 끝없이 갈급증이 일었다.
“정말 너는…….”
진이 잔뜩 쉰 목소리로 으르렁거린 뒤 로엔의 입술에 깊숙이 입을 맞췄다. 그와 동시에 두 사람의 몸이 하나로 얽혀 들었다.
뜨거운 혀가 벌어진 입안으로 파고들어 오며 여린 살을 집요하게 찔러 댔다.
안을 헤집어 놓는 집요하고 날카로운 감각에 로엔은 허릴 비틀며 진의 허리에 다릴 휘감곤 잔뜩 힘을 주었다.
“하아…….”
“윽, 제길.”
온몸을 관통하는 날카로운 감각과 함께 로엔의 허리가 활처럼 휘었다.
첨벙, 첨벙.
거친 물소리에 로엔은 두 사람이 있는 곳이 물속이란 걸 깨닫곤 그에게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팔에 힘을 주었다. 그리곤 있는 힘껏 그에게 매달렸다.
나른한 열기가 순식간에 온몸으로 퍼졌다. 발끝까지 다다른 전율에 로엔은 몸을 떨며 입술을 깨물었다.
“하아, 진……. 하읏!”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했다. 온몸이 녹아내리는 느낌이었다. 한 치의 틈도 없이 맞닿은 몸이 화염 속에 던져진 듯 뜨거웠다.
물속이라는 불안정한 위치에도 불구하고 한 번 시작된 욕망은 끝도 없이 두 사람을 흔들어 놓았다.
찰방, 찰방. 두 사람의 거친 움직임에 물살이 거센 파문을 만들어 냈다. 폭포수가 떨어지는 굉음 사이로 젖은 신음이 간헐적으로 새어 나왔다.
“진, 아음―. 조금만 천천히…….”
격렬한 움직임을 따라가지 못한 로엔이 흐느끼듯 속삭였다. 쉴 새 없이 파고드는 깊고 질척한 파도에 로엔은 속절없이 흔들렸다.
음습한 열기가 아랫배 안쪽 깊숙한 곳을 집요하게 헤집었다. 로엔은 입술을 깨물며 나른한 쾌락을 삼키려 애썼다.
왜 이렇게 미칠 것처럼 좋은지 알 수가 없었다.
랑케에 드나드는 귀족들 중 남녀의 육체적 욕망에 모든 재산을 탕진하고 영혼까지 파는 자들을 종종 보아 왔다.
그런 자들을 볼 때마다 로엔은 코웃음을 쳤다. 통제되지 못한 욕망이 존재할 것이라곤 생각지 못해서다.
하지만 진과 몸을 얽고 무자비하게 흔들리고 있는 지금, 제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이었는지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중독이었다. 제 몸속의 혈독화 보다 더한 맹독이었고, 벗어나기 힘든 늪이었다.
맹수의 날카로운 발톱이 그녀의 심장을 붙잡고 파고들고 있었다.
“로엔, 로엔…….”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욕망을 부추겼다. 통째로 집어삼킬 듯 저를 바라보는 그의 은청색의 눈빛은 족쇄였다.
진이 탐욕으로 가득한 맹수의 눈을 하고 느른하게 움직였다. 더는 들어올 수 없을 것 같은 깊숙한 곳까지 열고 들어온 진이 로엔을 단숨에 삼켜 버렸다.
감당할 수 없는 빠듯한 열이 온몸에 퍼졌다.
“진, 더는……. 아읏!”
로엔이 진저리를 치며 고갤 가로저었다. 그러자 진이 손을 뻗어 로엔의 머리카락 속으로 손을 밀어 넣었다. 그리곤 커다란 손으로 목덜미를 쓸어내리더니, 이내 느릿하게 붙잡고는 힘껏 제 입술로 끌어당겼다.
농밀하게 혀가 겹쳐진 순간 로엔의 신음이 그의 목구멍 속으로 삼켜졌다. 그와 함께 그의 움직임이 더욱 격렬해졌다. 진이 짐승처럼 낮게 으르렁거리며 몸을 떨었다.
“하윽.”
날카로운 비명 소리와 함께 로엔의 몸이 나른하게 휘었다. 그리곤 거친 숨을 내쉬며 그의 혀를 깨물었다. 순식간에 입안에 피 맛이 났다.
“하아, 로엔.”
진이 아직 갈무리되지 않은 열기를 품고 로엔의 입술에 키스했다. 그리고 말릴 새도 없이 로엔을 안은 채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잠깐, 진…….”
아직 결합이 풀리지 않은 상태로 몸이 들려지자, 로엔은 저도 모르게 온몸에 힘이 들어갔다. 뜨겁고 단단한 것을 품은 이질감에 얼굴이 붉어졌다.
“기다려. 아직 이니까.”
뭐가 아직이라는 것인지 알지도 못한 채 로엔은 그의 품에 안겨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물에 젖은 드레스가 축 처져 무겁게 내려앉았다. 물속에선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었는데 그의 품에 안겨 동굴 깊숙한 곳까지 걸어가는 동안 벗고 싶어졌다.
“잠깐 기다려.”
동굴 속에 있는 커다란 나무 아래 도착하자 진이 로엔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제야 하나처럼 얽혀 있던 몸이 떨어져 나갔다.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려 휘청하고 균형을 잃고 넘어지려 했다. 진이 재빨리 손을 내밀어 잡지 않았다면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을 터였다.
진이 평평한 바위 위에 로엔을 조심스럽게 앉힌 후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잠시 후 언제 가져다 두었는지 두꺼운 모포와 함께 마른 수건을 가져왔다.
“옷은 벗는 게 좋겠어.”
로엔이 반응하기도 전에 진이 물에 젖은 드레스를 끌어 내렸다. 순식간에 알몸이 된 로엔이 당황한 얼굴로 몸을 가리려 했다.
“이미 다 본 사이에. 가려서 뭘 한다고.”
“그래도 부끄러움이란 게 있는 거죠.”
로엔이 눈을 치켜뜨곤 항의하자 진이 픽 하고 웃음을 흘렸다. 그리곤 그녀의 말에 반박하는 대신 커다란 수건을 들어 로엔의 몸을 감싸 주었다.
뽀송뽀송한 수건이 몸에 닿자 날카로웠던 신경이 순식간에 누그러졌다.
“이건 다 뭐예요?”
“전에 가져다 놓았어. 새로 난 비늘이 아플 때면 이곳에서 폭포수에 몸을 담갔었거든.”
진의 설명에 로엔이 고갤 끄덕였다. 그리곤 그가 젖은 몸을 닦아 줄 때까지 얌전히 앉아서 기다렸다.
로엔의 몸에 묻은 물을 다 닦은 진이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제 바지를 벗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그의 탄탄한 하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다리 사이에 자리한 그의 것을 보곤 로엔이 재빨리 고갤 돌렸다.
진이 로엔의 턱을 붙잡더니 이내 입술을 겹쳐 왔다. 처음부터 이럴 생각이었는지 진의 행동엔 망설임이 없었다.
그가 펼쳐 놓은 두꺼운 모포 위에 등이 닿았다.
다행히 커다란 수건이 몸을 덮고 있었으니 망정이지, 달빛이 들어와 서로의 몸이 선명하게 보이는 곳에서 이런 자세로 마주했다면 부끄러워 혀를 깨물고 싶어졌을 터였다.
아무리 몸을 겹치고 욕망에 몸을 떨었다고 해도 이건 다른 차원의 민망함이었다.
“왜 자꾸 고갤 돌리는지 모르겠군.”
로엔이 자꾸 시선을 피하는 게 불만이라는 듯 양손으로 그녀의 뺨을 감쌌다. 그리곤 움직이지 못하게 그녀를 붙잡은 채 그녀의 몸에 무게를 실었다.
“하음―.”
격렬한 정사의 여파인지 아직 채 갈무리되지 않는 열기로 인해 그의 몸이 닿자 등줄기에 나른한 열기가 확 끼쳐 들었다.
이미 그녀의 몸은 그가 가져다줄 욕망으로 벌써부터 떨리고 있었다.
‘내가 이렇게도 욕망에 취약한 사람이었다니.’
로엔은 조금 전 폭포수 아래에서 진과 몸을 나누던 모습이 떠오르자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은둔자의 숲이 사람이 찾지 않는 곳이라고 해도, 사방이 트인 장소였다. 그런 곳에서 욕망을 참지 못하고 그와 몸을 섞다니. 그런 자신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는 거지?”
“그냥, 아무 생각도 안 했어요.”
로엔의 뻔한 거짓말을 알아챘을 텐데도 진은 말꼬리를 잡는 대신 천천히 입술을 겹쳐 왔다.
“너 때문에 미칠 것 같아. 정신 나간 놈처럼 누가 볼지도 모르는 곳에서 사랑까지 나누다니.”
쪽, 쪽. 소리를 내며 그가 로엔에게 입을 맞췄다. 그도 저와 같은 생각을 한 모양이었다.
“거기다 지금도 널 갖고 싶어 안달이 나 있고.”
진이 제 욕망을 드러내며 로엔의 아랫배에 자신의 하체를 문질렀다.
묵직한 무게감과 함께 뜨겁고 단단한 것이 로엔의 배를 찔러 왔다. 그리곤 손을 뻗어 로엔의 다리를 붙잡고는 양쪽으로 벌리며 위로 밀어 올렸다.
몸을 감싸고 있던 수건이 벌어진 다리와 함께 말려 올라갔다. 순식간에 물기에 젖은 로엔의 여린 속살이 모습을 드러냈다.
“잠깐, 진.”
로엔이 재빨리 손을 내려 말려 올라간 수건을 끌어 내리려 했다. 하지만 다음 순간 로엔의 손 역시 진에게 붙잡힌 채 모포에 고정되었다.
“널 갖고 싶어, 로엔.”
그의 입술이 뺨에 그리고 턱에 닿았다 떨어졌다.
허락을 구하고 있었지만 얼굴에 닿는 그의 입술에선 명백한 욕망이 느껴졌다.
또한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맹수처럼 날뛰는 힘에 로엔의 몸이 먼저 녹아내리고 있었다.
날것 그대로의 열기를 품은 은청색의 눈동자가 로엔을 바라보았다.
로엔은 그의 뜨거운 시선에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아랫배가 열기로 지글지글 끓는 느낌이었다.
로엔이 고갤 끄덕이자 그것이 신호가 되어 두 사람의 몸이 하나로 얽혀 들었다.
끝도 없기 계속될 것 같은 열락이 두 사람을 휩쓸었다.
동굴 안은 질척한 남녀 간의 정사 소리로 가득했다. 짙은 어둠이 숲의 고요를 깨고 이른 새벽빛이 동굴 안으로 밀려들 때까지 두 사람의 갈급한 움직임은 멈추지 못했다.
두 사람의 몸이 쾌락으로 흔들릴 때마다 로엔의 손목에 채워진 타라의 연의 공작새가 신비로운 빛을 뿜어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서로에게 취해 그 사실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다만 아주 기이한 것은, 야릇한 소음에도 불구하고 공작새가 침입자를 인식하지 못한 듯 고요했다는 점이었다.
마치 두 사람을 안전하게 지키듯 공작새가 커다란 날개를 펼치고 은둔자의 숲을 감싸 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