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화
“흐읏, 하아.”
끈적하게 들러붙는 쾌락에 몸을 떨며 허릴 비틀자, 진이 고갤 숙여 입을 맞춰 왔다. 이미 통제를 벗어난 몸은 그가 주는 쾌락에 경련하며 떨리기 시작했다.
“쉬, 쉿. 진정해. 괜찮아.”
격렬한 흔들림과는 달리 그의 목소리는 녹아내릴 것처럼 다정했다. 정말 반칙이었다. 로엔은 눈을 감고는 그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뜨겁고 단단한 그의 몸이 땀으로 젖어 번들거렸다. 하나처럼 들러붙는 그 감각에 로엔은 나른한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다 그녀의 입술에 닿는 서늘한 감각에 눈을 떴다. 그녀의 눈앞에 드래건의 검은 비늘이 보였다.
‘먼저 사과까지 하며 다정하게 굴 것처럼 하더니.’
이건 순 거짓말쟁이였다. 쾌락에 몸이 떨려 왔지만, 한편으로 아랫배 안쪽이 아릿했다. 그에 의해 여린 살이 집요하게 짓쳐져 쓸릴 때마다 열기와 함께 아픔이 느껴졌다.
유치하게도 그 순간 심술이 파도처럼 밀려오자, 로엔은 눈앞에 있는 드래건의 비늘을 이로 꽉 하고 물었다.
“윽.”
굳게 닫혀 있던 밀지를 열고 쾌락을 쫓아 허리 짓을 하던 진이 움직임을 멈췄다. 그리고 열기로 잔뜩 흐려진 눈으로 로엔을 내려다보았다.
로엔은 그와 눈이 마주치자 비늘을 문 이에 힘을 주었다. 잇자국이 날 정도로 세게 물자 진의 입가에 나른한 미소가 떠올랐다.
분명 아플 텐데도 진은 뭐가 그리도 기분이 좋은지 웃고 있었다.
로엔이 물고 있던 드래건의 비늘을 놓아주자 진이 그녀의 턱에 입을 맞췄다.
“나는 더 해도 상관없는데. 네 마음이 풀릴 때까지 물어도 좋아. 내가 한 잘못을 이걸로 대신해도 좋고. 미친 소리처럼 들리겠지만, 지금은 네가 주는 고통도 달게만 느껴지거든.”
새초롬하게 올라갔던 로엔의 눈썹이 다시 제자릴 찾았다. 그의 다정함을 이길 수가 없었다.
“미안하다고 사과까지 하고선. 처음부터 이럴 생각이었던 거죠?”
한순간 참고 있던 원망이 터져 나왔다. 지금까지 한 번도 보인 적 없는 표정이, 얼핏 투정과도 닮아 있었다.
진이 로엔의 항의에 고갤 가로저었다.
“맹세하지만 절대 아니야. 나도 처음이라 제어가 되지 않아서 그런 것뿐이라고.”
스스로도 곤혹스러운지 진이 로엔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는 진득하게 입술을 문질렀다. 움직임을 멈추고 있는 지금도 밀려드는 쾌락에 대한 열망으로 미칠 것 같았다.
고통을 참고 인내하는 건 자신 있던 그였지만 로엔 앞에선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새롭게 눈 뜨게 된 감각의 파도에 이미 중독되어 버린 것 같았다.
진이 고갤 들었다.
“약속해. 다음번은 절대 이러지 않을 거야.”
“좋아요. 이번 한 번만 용서…… 하읏!”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진이 질퍽해진 안을 헤집고 쉴 새 없이 밀고 들어왔다. 유연하게 호를 그리며 몸이 야릇하게 흔들렸다. 하나로 녹아내린다는 감각이 너무도 적나라했다.
열기로 붉어진 눈꼬리에 눈물이 맺혔다. 진이 입술로 연신 눈물을 삼키며 달래는 소리가 들려왔다.
“로엔, 하아. 로엔…….”
그의 속삭임이 귓가를 울렸다. 로엔은 그의 목에 팔을 두르곤 힘껏 끌어안았다.
파도가 밀려들었다. 거대한 파도가 로엔을 집어삼켰다.
떨림이 멈추지 않았다. 처음 겪는 지독한 쾌락이 로엔을 뿌리째 흔들어 놓았다. 그녀의 세계가 흔들리는 느낌이었다. 울컥 뜨거운 감정이 그녀의 목구멍을 짓눌러 왔다.
대신전에서 벌어졌던 모든 일들이 꿈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녀의 피를 삼키던 진의 모습이 낙인처럼 찍혀 머릿속에 각인되었다.
「로엔.」
「시모네타.」
「앞으론 날 속이지 마. 그게 뭐든.」
그의 목소리가 귓속을 아프게 파고들었다. 로엔은 그제야 울컥 참았던 것을 토해 냈다.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러내렸다. 그리고 그 순간 로엔은 까무룩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 * *
로엔이 천천히 눈을 떴다. 잠에서 깨어난 직후 두통 없이 맑은 정신으로 일어난 건 실로 오랜만이었다. 입가에 저절로 기분 좋은 미소가 떠올랐다.
“일어난 모양이군.”
상쾌한 비누 향과 함께 커다란 손이 로엔의 얼굴을 감쌌다. 그리곤 말릴 세도 없이 그가 입술을 겹쳐 왔다.
아침부터 나누기엔 다소 농밀한 키스였지만 진은 아무렇지 않은 듯 혀를 얽고 입술을 삼켜 왔다.
밤새 서로의 몸을 탐하며 진득한 쾌락을 나눈 터라 나른한 만족감에 저절로 신음이 새어 나왔다.
로엔 역시도 그의 목에 팔을 감고는 키스를 되돌렸다.
“어딜 가는 건가요?”
비누 향과 함께 단정하게 차려입은 그의 옷이 눈에 들어왔다.
“폐하께서 전갈을 보내오셨어. 만나자는군.”
진이 아쉬운 듯 다시 입술을 겹쳐 왔다. 도톰한 아랫입술을 물고 사탕이라도 된 듯 빨아올렸다. 쪽 소리가 나게 맞닿았던 입술이 떨어졌다.
그가 불러일으킨 열기가 순식간에 아랫배에 고였다. 또다시 그와 몸을 겹치고 싶다는 욕망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처음으로 몸을 나눈 뒤로 시시때때로 찾아드는 감각이라 이젠 거부할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저 남녀의 자연스러운 행위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폐하가요?”
“응. 대신전에서 쓰러졌다는 말을 듣고 상태가 어떤지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다는군. 뭘 확인하고 싶다는 건지 알 수는 없지만.”
순순하게 말하고 있었지만 진의 눈동자엔 서늘한 냉기가 떠올라 있었다.
“폐하께서도 알고 계신 모양이군요. 록스버그 공작가의 저주에 대해서.”
로엔의 뺨에 입을 맞추던 진이 고갤 들었다.
“혹시 이번 일도 폐하께서 벌인 일이라고 생각하나?”
“정황상 그런 것 같아서요. 어떻게 록스버그 공작가의 저주에 대해 알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사실 록스버그에 내려오는 저주는 200년 동안 철저히 비밀에 붙여 왔거든요.”
로엔이 어깰 으쓱해 보였다. 하지만 전혀 짐작이 되지 않는 것만은 아니었다. 10년 전 부모님이 마차 사고로 돌아가시기 전까지, 선대 황제는 끊임없이 결혼을 요구해 왔었다.
겉으로 보기엔 록스버그 공작 부처가 결혼을 거절한 것처럼 보였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본격적으로 선대 황제가 태도를 달리한 건 부모님이 죽고 난 후였다.
처음으로 검은 베일을 쓰고 선대 황제 앞에서 섰을 때, 그의 표정이 잊히지 않았다.
끔찍한 흉터 때문이라고 생각했었지만 황제의 눈동자엔 경악에 가까운 두려움이 담겨 있었다.
아마, 그때 정확히 안 모양이다. 제 몸속에 흐르는 혈독화가 어떤 끔찍한 일을 벌일 수 있는지.
존더부르크 황가에 제 저주받은 피가 섞이게 된다면 순혈의 고귀함을 잃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을 테지.
“선대 황제일까?”
“그렇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리고 선대 황제에게 록스버그의 비밀을 알려 준 자가 있을 테고요.”
“록스버그 공작가의 가신들 중 배신자가 있었다는 뜻인가?”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로엔의 생각은 아니었다.
“점성술사거나, 아니면 흑마술을 다룰 줄 아는 자일 거예요. 아버지께서 남기신 밀서에 록스버그 공작가의 저주를 풀기 위해 은밀하게 그런 자들을 찾고 있다는 말이 적혀 있었거든요. 아마 그들 중 하나가 폐하께 전했을 테죠.”
무엇보다 지금껏 록스버그 공작가에서 태어난 여아가 살아남은 건 로엔 한 사람뿐이었다.
그리고 그런 로엔을 위해 아버지는 록스버그 공작가가 가진 돈을 이용해 수많은 정보와 사람들을 찾아 나섰었고.
그 과정에서 비밀이 새어 나갈 확률이 더 컸다.
“그럼 선대 공작께서 남긴 그 밀서들 중에 배신자를 찾을 수 있는 단서가 있을지도 모르겠군.”
“그렇지 않아도 본격적으로 살펴볼 생각이에요.”
로엔의 대답에 진이 고갤 끄덕였다.
“다녀와서 함께 살펴보도록 하지. 내가 올 때까지 쉬고 있어. 움직이는 게 힘들 테니까.”
진의 말에 로엔의 얼굴이 붉어졌다.
첫날밤 이후, 로엔은 사흘이나 침대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말도 안 되게 큰 그를 품은 탓도 있었지만 진의 몸속에 독이 사라지지 않아서였다.
그리고 몸을 겹치고 서로를 탐하는 행위가 진의 몸속에 있는 독을 해독시키는 데 탁월한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안 이후, 로엔 역시도 그를 밀어내지 못했다.
처음엔 고통처럼 느껴지던 행위가 횟수가 거듭될수록 정신이 나갈 정도로 좋았다. 그와 몸을 잇고 있는 동안은 그 어떤 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열락과 쾌락에 몸을 떨 뿐이었다.
“이게 다 누구 때문인데요.”
“나 때문이지. 그러니 얌전히 있으란 뜻이야. 다녀와서 내가 다 해 줄 테니까.”
아이도 아니고. 다 해 준다니. 지금 하는 걸로 봐선 목욕 시중은 물론 음식까지도 먹여 줄 태세였다.
“어서 다녀오시기나 하세요. 폐하께서 기다리실 테니까요.”
진이 로엔의 머리카락 속으로 손을 밀어 넣고는 살짝 움켜쥐었다. 그리곤 아쉬운 듯 그녀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는 입술을 문질렀다.
간지러운 감촉과 함께 나른한 열기가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다. 금방이라도 다릴 벌리고 그의 것을 품고 싶다고 속삭일 것 같았다.
귓불을 잘근잘근 씹고는 사랑스럽다는 듯 몸을 끌어안았다. 그리곤 팔에 힘을 주어 힘껏 안고 난 뒤에야 그녀를 놓아주었다.
침대에서 일어선 진이 흐트러진 옷을 바로잡고는 로엔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겨 주었다.
“다녀올게.”
진이 방을 나갔다. 로엔은 침대에 일어나 창가로 걸어갔다. 조금 전부터 창밖으로 익숙한 새가 날아다니는 게 눈에 들어왔던 것이다.
닫혀 있던 유리창을 열자 하늘을 배회 중이던 전서구가 로엔의 신호를 알아차리곤 급속하게 하강하기 시작했다.
로엔은 창가에 내려앉은 전서구의 다리에 매달린 편지를 풀어 내용을 확인했다.
무심한 표정으로 편지를 읽던 로엔의 눈동자가 편지의 하단으로 갈수록 믿기지 않는다는 듯 예리하게 빛났다.
“게르피온이었다니.”
타란 대륙의 북쪽 땅.
로엔은 전서구를 날려 보낸 후, 벽난로로 걸어와 편지를 던져 넣었다. 화르륵, 소릴 내며 편지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마침내 찾았다.
록스버그의 저주를 풀 실마리를.
로엔의 눈동자가 그 어느 때보다 예리하게 빛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