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화
그의 말대로 오늘은 두 사람의 첫날밤이었다.
그가 대신전에서 정신을 잃지 않았다면 로이슈덴 공작가에서 결혼 피로연 파티가 열렸을 터였다.
그리고 파티가 끝난 뒤에 침실에 든 두 사람은 예식 절차에 따라 타라의 연을 교환했을 테고.
‘잠깐, 타라의 연이 어디에 있더라?’
로엔이 타라의 연을 놓아 둔 장소를 떠올리기 위해 생각에 잠긴 사이, 또다시 진의 입술이 로엔의 이마에 와 닿았다.
무방비한 상태로 고갤 들었을 때 바로 눈앞에 진의 은청색의 눈동자가 있었다. 뜨겁게 달아 오른 눈빛이 부담스러워 시선을 내리자 귀족적인 높은 콧날과 모양 좋은 입술이 보였다.
“아.”
그의 입술이 다시 로엔의 눈가에 닿았다. 눈꺼풀에 살짝 닿았다 떨어지는 형태였지만 로엔은 심장에 불이 이는 느낌이었다.
그의 입술이 반대쪽 눈가에 닿았다가 이번엔 콧날을 지나 다시 입술에 닿았다. 유혹하듯 입술을 비비고, 아기 새가 연한 부리로 쪼아 대듯 로엔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진득하게 얽혀 오는 농밀한 키스도 좋았지만 지금처럼 심장을 간질이는 것 같은 키스도 좋았다.
“이제 그만 버티고 허락해 주면 안 될까?”
진의 속삭임이 입술을 건드렸다. 로엔이 손을 뻗어 그의 심장 부근을 어루만졌다.
가까이에서 보니 그의 심장에 난 드래건의 비늘은 검은색이었다. 로엔의 손끝이 드래건의 비늘을 따라 천천히 움직이자, 그의 몸이 흠칫 떨리는 게 느껴졌다.
“읏.”
진이 입을 꾹 다문 채로 눈을 질끈 감는 게 보였다. 긴 속눈썹이 열기를 참는 듯 파르르 떨렸다.
그 모습에 로엔이 고갤 들었다. 그리곤 충동적으로 그의 심장에 돋아난 드래건의 비늘에 입을 맞췄다.
쪽, 쪽.
다섯 개의 비늘에 모두 입을 맞추곤 천천히 고갤 들었다. 진이 그녀를 한입에 통째로 집어삼킬 듯 뜨거운 눈빛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숨 막히는 긴장감이 두 사람을 감쌌다.
입안이 바짝 마르며 알 수 없는 갈증이 느껴져 로엔은 본능적으로 입술을 축였다.
로엔의 붉고 촉촉한 혀가 마른 입술을 핥는 순간, 진의 은청색의 눈동자가 사냥 직전의 맹수처럼 예리하게 빛나더니 곧 억눌린 목소리로 낮게 속삭였다.
“넌, 진짜. 위험하다고 그렇게 경고했는데…….”
진이 로엔을 침대로 밀어 눕혔다. 상체가 침대에 닿는 것과 동시에 그가 입술을 겹쳐 왔다.
허락을 구하듯 조심스러운 키스가 아니라, 지금껏 꾹꾹 눌러 참고 있던 욕망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키스였다.
드래건의 비늘에 입을 맞춘 순간부터 그를 허락했단 사실을 이제야 눈치챈 모양이었다.
질척이는 타액을 삼키며 입 안쪽으로 여린 살을 훑어 내리는 느낌에 로엔은 몸을 떨며 그의 목에 팔을 감았다.
“하읏, 하아…….”
교묘하게 맞물린 입술이 서로의 숨결을 삼키며 하나처럼 들러붙었다.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나른한 쾌락에 아랫배에 순식간에 열이 올랐다. 무겁게 내려앉은 속눈썹이 열기를 이기지 못하고 파르르 떨렸다.
입술로 로엔의 여린 목덜미를 쓸어내리던 그가 이로 로엔의 드레스의 앞섶을 물고 끌어 내렸다.
툭, 투둑.
단추가 떨어져 나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옷 안에 감춰져 있던 새하얀 피부가 드러나자, 로엔이 손을 뻗어 제 심장 부근을 가렸다.
“보여 줘.”
진의 입술이 로엔의 손등에 몇 번이나 입을 맞췄다.
그가 가진 힘이라면 충분히 로엔의 손을 밀어낼 수도 있었을 테지만 그녀 스스로 보여 줄 마음이 생길 때까지 기다리려는 모양이다.
“뭐가 걱정인지 모르겠군. 내 심장에 난 추악한 것에도 입을 맞춘 네가.”
“추악하지 않았어요.”
로엔은 제 입술이 드래건의 비늘에 닿는 순간, 제 입술이 상처 입지 않도록 순하게 비늘을 옆으로 눕히던 게 떠올랐다.
마치 맹수가 발톱을 털 속에 숨기곤 한껏 예뻐해 달라는 것처럼 느껴져, 귀엽기까지 했다.
“그러니 보여 줘. 분명 너처럼 아름다울 테니까.”
아이를 달래듯 진의 입술이 로엔의 손가락을 물었다. 그리곤 마디마디에 입을 맞추며 빨리 보고 싶다는 듯 재촉을 한다.
옷깃을 붙잡고 있던 손이 스르륵 풀리며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그제야 진이 손을 뻗어 천천히 드레스의 앞섶을 열었다.
순식간에 새하얀 가슴 위에 붉은빛을 뿜어내는 꽃이 모습을 드러냈다.
전에 맡아 본 적이 있던 향이었다. 아마 그때 맡았던 꽃 향 역시 혈독화에서 나는 향인 모양이었다.
“처음 보는 꽃이군. 이름이 뭔지 아나?”
로엔이 천천히 고갤 가로저었다.
“독초라는 것밖엔 아는 게 없어요. 아버지께서 남기신 밀서엔 아드리안 제국이 생기기 전에 이미 사라진 꽃이라고 써 있었고요.”
진의 손끝이 붉은 꽃잎에 닿았다. 새하얀 피부 위에 새겨진 꽃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진한 향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럼 독초가 아닐지도 모르겠군. 이렇게 아름다운데 독초일 리 없을 테니까.”
진이 고갤 숙여 붉은 꽃잎에 입을 맞췄다.
“읏―.”
뜨겁고 말캉한 입술이 맨살 위에 닿자 온몸에 나른한 전율이 흘렀다.
입술로 꽃잎을 쓸던 진은 이내 맛보고 싶다는 듯 혀로 천천히 핥았다.
로엔은 뜨겁고 축축한 혀가 만들어 내는 열기에 신음을 삼키며 저도 모르게 시트를 그러쥐었다.
발끝까지 곱아드는 감각에 순식간에 열이 올랐다.
그의 입술과 혀가 진득하게 살갗에 달라붙었다. 꽃잎을 삼키던 그의 입술이 어느새 탐욕에 젖어 로엔의 부드러운 융기를 삼켰다.
“흐읏, 하음……!”
순식간에 찾아든 낯선 열기에 로엔이 놀라 그를 밀어내려 했다. 하지만 그의 입술은 이미 한 번 맛본 달콤함에 중독된 듯 떨어질 줄 몰랐다.
그의 손이 드레스를 완전히 끌어 내렸다. 안에 입고 있던 린넨 속옷까지 힘없이 벗겨지자 로엔은 시트를 끌어당겨 몸을 가리려 했다.
“왜 자꾸 숨기려고만 하는지 모르겠군. 이렇게 예쁜데.”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진의 말에 로엔이 새빨갛게 물든 얼굴로 그를 쏘아보았다.
“그렇게 보고 싶으면 공작님부터 먼저 벗든가요.”
부끄러움을 숨기기 위해 따지듯 말하자 진이 픽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곤 기다렸다는 듯 입고 있던 셔츠를 벗기 시작했다.
단추가 하나하나 풀리고 검술로 다져진 탄탄한 어깨와 가슴 근육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몸은 마치 신이 정성들여 섬세하게 조각한 것처럼 완벽했다.
로엔이 그의 몸에서 눈을 떼지 못하자 진이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다행히 마음에 든 모양이군.”
진의 속삭임에 로엔이 재빨리 시선을 피했다. 하지만 진의 손에 턱을 붙잡힌 로엔은 그의 몸을 다시 봐야만 했다.
“눈 돌리지 마. 난 욕심이 많아서 네가 나 외에 다른 것을 보는 건 절대 용납이 되지 않으니까.”
진이 고갤 숙여 로엔의 입술에 깊숙이 혀를 얽어 왔다.
그와 입술을 겹친 순간 수치심도 부끄러움도 순식간에 사라졌다. 오직 그가 주는 열기와 짙은 쾌락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흐음, 하읏. 공작…….”
농밀하게 키스를 하던 진이 고갤 들었다. 그리곤 그녀의 머리카락을 쓸어내리며 낮게 속삭였다.
“진이다. 앞으로 진이라고 불러.”
“……진.”
그녀의 입술 새로 그의 이름이 흘러나오자 그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은청색의 눈동자 역시 열기로 인해 더욱 짙어졌다.
“로엔.”
그가 로엔을 불렀다.
“네.”
“시모네타.”
“……네.”
“앞으론 날 속이지 마. 그게 뭐든.”
진의 말에 로엔은 입술을 깨물었다. 다행히 진은 로엔의 망설임을 눈치채지 못한 듯 또다시 입술을 겹쳐 왔다.
입술을 핥고 입안의 타액을 모두 삼키려는 듯 집요하게 안을 파고들었다.
“하아, 진…….”
머릿속에 떠올랐던 생각은 그가 불러일으킨 쾌락에 순식간에 휘발되어 날아가 버렸다. 로엔은 그의 목에 팔을 두르곤 힘껏 끌어당겼다.
그의 몸이 로엔의 몸을 짓눌렀다. 지금껏 한쪽 팔로 지탱하고 있던 그가 온전히 로엔의 몸에 무게를 싣곤 한껏 달아오른 몸을 부딪쳐 왔다.
로엔은 아랫배에 느껴지는 묵직하고 단단한 감각에 허릴 비틀었다. 그리곤 손을 뻗어 침대 옆에 있는 줄을 당겼다.
침대 위에 단단히 고정되어 있던 휘장이 무겁게 내려앉으며 침대를 감쌌다.
환하던 침대 위가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서로의 얼굴과 몸의 윤곽이 보일 정도긴 했지만 로엔은 어둠이 주는 비밀스러움에 안도했다.
진 역시 어두워진 침대 안에서 더는 망설이지 않았다. 휘장이 주는 은밀함이 마음에 들었는지 그의 키스가 노골적일 만큼 탐욕스러워졌다.
허리에 걸려 있던 드레스를 마저 벗겨 낸 진은 제 바지도 마저 벗어 침대 아래로 떨어뜨렸다.
두 사람의 옷이 서로 얽히듯 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굉장히 외설적이었다.
로엔은 질끈 눈을 감았다 떴다. 두려움과 흥분이 뒤섞인 감각이 온통 그녀를 흔들어 놓았다. 숨을 내쉴 때마다 심장이 무섭게 뛰며 뜨거운 숨이 입술 새로 흘러나왔다.
“로엔.”
진이 몸을 겹쳐 왔다. 머리카락을 쓸고 흉터가 없는 뺨을 어루만지는 손길이 눈물이 날 정도로 다정했다.
“먼저 미안.”
진이 로엔의 이마에 입을 맞추며 사과를 했다. 그리고 그의 다정함은 그것으로 끝이 났다.
타 버릴 것 같은 욕망을 이기지 못하고 그녀의 몸속으로 파고드는 감각과 휘몰아지는 쾌락에 더는 다정함은 없었다.
사납고 집요한 잔혹한 욕망만 있을 뿐이었다.
폭우처럼 쏟아지는 열기에 로엔은 몇 번이나 신음을 삼키며 그에게 매달려야 했다.
그로 인해 한 번도 열린 적 없던 곳이 열리고, 상냥하지 못한 움직임으로 그곳을 채워 가는 동안 로엔은 허릴 비틀며 울음 섞인 신음을 흘려야 했다.
관능이 눈을 떴다. 아픔이 느껴졌던 안쪽 깊숙한 곳이 어느새 쾌락으로 채워졌다.
녹아내릴 것 같은 열기에 발끝이 오므라들었다. 아랫배 안쪽 깊숙한 곳에 고여 있던 열이 그에 의해 파헤쳐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