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화
저택을 다 뒤졌다고 했으니 남은 곳은 로엔의 방뿐이었다. 만에 하나 침입자가 숨어 있다고 한다면, 로엔이 위험한 상황일 테니 쉽게 발이 떼어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침입자의 흔적이 2층으로 이어져 있었습니다. 확인을 해 봐야 안심할 것 같습니다.”
평소와 달리 라이칸이 고집을 피웠다. 그의 강경한 태도에 로엔이 입술을 깨물었다. 라이칸이 방으로 들어온다면 침대 위가 비정상적으로 볼록한 걸 눈치챌 터였다.
로엔이 재빨리 침대 옆에 있는 휘장의 줄을 잡아당겼다. 그러자 위에 걸려 있던 천이 무겁게 내려앉으며 침대가 어둠에 휩싸였다.
“정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들어와서 확인하도록 해.”
대답이 떨어지자 라이칸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가 침대 주위에 쳐진 휘장을 보곤 잠시 걸음을 멈추는 게 느껴졌다.
“감기 기운이 있어서 쳐 놨어. 여긴 아무도 없으니 욕실이나 다른 곳을 찾아보는 게 좋겠어.”
“알겠습니다.”
휘장 너머로 라이칸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로엔은 제 이불 속에 있는 진에게 얌전히 있으라는 듯 그의 입을 손으로 막았다.
“다 찾아봤어?”
“네. 다행히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 다행이네. 이제 나가 봐. 난 피곤해서 자야겠어.”
“정말 아무 일 없으신 거죠?”
라이칸의 질문에 로엔이 양심에 찔린 듯 입술을 깨물었다.
진의 갑작스러운 방문으로 인해 라이칸에게 걱정을 끼친 것도 모자라, 제 이불 속에 그 남자를 숨기고 거짓말까지 하고 있었다.
로엔은 마음속으로 라이칸만 나가면 당장 진을 쫓아내야겠다고 다짐하며 걱정스러운 듯 서 있는 라이칸에게 거짓말을 했다.
“괜찮아. 피곤해서 그래. 욕조에 너무 오래 앉아 있었거든.”
그녀는 할 필요도 없는 변명까지 해 대며 라이칸을 빨리 방에서 내보내기 위해 애썼다.
“그럼 나가 보겠습니다. 편히 주무십시오.”
로엔은 휘장 안에서 라이칸이 문을 닫고 나가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마침내 문이 닫히고, 발걸음 소리가 멀어지는 걸 듣고서야 안심할 수 있었다.
“갔나?”
그때까지 이불 속에 숨어 있던 진이 이불 밖으로 고갤 내밀며 낮게 속삭였다.
“갔어요. 라이칸이 공작님께서 담을 넘어오는 걸 봤나 봐요. 이제 다신 밤에 찾아오지 마세요. 이러다 들키기라도 하면…….”
“들키게 된다면, 내가 몸이 달아서 널 찾아왔다고 생각하겠지. 결혼할 사이니 그것이 문제될 것도 아니고.”
진이 뭐가 문제냐는 듯 속편하게 대답하고는 로엔의 침대에 편히 누웠다. 하는 폼으로 보아 여기서 자고 갈 생각이라도 하는 것 같았다.
“당연히 문제가 되죠. 대신관께서 주신 규칙을 보셨잖아요. 타라 여신의 축원을 받는 동안 몸도 마음도 정화해야 한다고…… 어읏!”
순식간에 침대에 눕혀진 로엔은 제 몸을 짓누르는 힘에 깜짝 놀랐다. 고갤 들어 보니 진이 제 몸 위 올라탄 상태로 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당혹감에 얼굴이 붉어졌다. 다행인 건 제가 묶어 놓은 검은 천이 아직도 그의 눈을 가리고 있어서 그가 제 얼굴을 볼 수 없다는 점이었다.
그때 진이 고갤 숙여 왔다. 그리곤 제 심장 부근에 귀를 대곤 귀를 기울이는 게 보였다.
“심장이 무섭게 뛰는군. 터질 것 같아.”
뭘 하나 했더니, 제 심장 박동 소리를 듣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야 당연히 놀라서 그런 거죠. 그러니 어서 비키기나 해요. 무거워요.”
로엔은 최대한 침착한 목소리로 말하려 애썼다. 심장 박동은 그에게 들켰지만, 제 마음이 혼란스럽다는 것은 들키고 싶지 않았다.
진이 고갤 들었다. 그리곤 굉장히 실망스럽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사실 내 심장은 지금 너 때문에 뛰고 있거든. 확인해 봐. 너랑 침대 위에서 한 이불을 덮고 누워 있는 것만으로 터질 것 같아.”
진이 로엔의 손을 잡아다 그의 심장을 눌렀다. 그의 말처럼 무서운 속도로 심장이 뛰고 있었다.
“느껴져? 널 이렇게 원하는 게?”
로엔이 그에게 붙잡힌 손을 빼냈다. 정말 당황스러워 미칠 것 같았다. 귓가에 속삭이는 그의 목소리에 입술이 바짝 마르고, 몸속의 피가 뜨겁게 날뛴다.
그녀의 변화를 감지한 듯 진의 입술이 로엔의 이마에 닿았다 떨어졌다. 밀어낼 생각도 하지 못한 사이, 그의 입술이 다시 그녀의 뺨에 닿았다.
“잠깐, 지금 뭐 하는…….”
로엔이 몸을 들썩이자 진이 어르듯 로엔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그 부드럽고 나른한 감각에 로엔은 저항하는 것도 잊고 그를 올려다보았다.
“걱정 마. 싫다고 하면 그만둘 테니까.”
검은 천으로 눈을 가린 남자가 뭐가 믿을 만하다고, 그의 한마디에 불안감이 사라지는지 알 수가 없다.
“정말 알수록 뻔뻔하다니까.”
진이 동의하듯 로엔의 귓불을 깨물었다. 그리곤 이로 잘근잘근 씹으며 희롱했다. 아프진 않았지만 그의 뜨거운 숨결이 예민한 귓바퀴에 닿을 때마다 온몸이 오소소 떨렸다.
“흐음…….”
기분 좋은 신음이 입술 새로 흘러나왔다. 성감을 자극하는 목소리에 진의 입술이 진득하게 귓불과 여린 목덜미에 들러붙었다.
쪽쪽, 그의 입술이 예민해진 살갗에 닿았다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전부터 느낀 건데, 너에게 좋은 향이 나.”
진이 로엔의 목덜미에 코를 박고는 깊이 숨을 들이켰다. 짙은 꽃 향이 그의 몸속 깊이 잠들어 있던 욕망을 자극했다. 심장에 돋아난 드래건의 비늘을 벅벅 긁고 싶을 정도로 간지러운 감각이었다.
“세실이 욕조에 장미를 넣었거든요.”
로엔의 목소리가 평소와 달리 조금 긴장된 것처럼 느껴졌지만 진은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사실 로엔의 말처럼 장미 향은 아닌 것 같다는 말도 목구멍 속으로 사라졌다.
대신 고갤 들어 로엔의 입술을 찾아 깊숙이 혀를 얽었다. 몸속에서 날뛰기 시작한 뜨거운 피가 그를 집어삼키려 하고 있었다.
“으음, 하아.”
입술을 열고 안으로 밀려드는 나른한 열기에 로엔은 신음을 삼키며 본능적으로 팔을 뻗어 그의 목에 감았다.
그녀의 행동에 침대에 팔을 세우고 있던 그가 균형을 잃고 무너졌고, 로엔은 제 몸을 내리누르는 진의 무게를 고스란히 감당해야 했다.
얇은 린넨 잠옷 위로 느껴지는 그의 단단한 가슴 근육을 비롯해 군살 없이 탄탄한 복근과 무쇠처럼 단단한 허벅다리가 야릇한 열기를 품고 제 몸 위로 들러붙었다.
입술을 열고 집요하게 파고들어 입 안쪽의 여린 점막을 훑어 내리는 감각에 로엔은 본능적으로 허릴 비틀었다.
몸속의 열기와 등을 타고 흘러내리는 날카로운 쾌락을 감당하지 못해 한 행동이었지만, 욕망에 눈이 먼 사내에겐 단단히 붙잡고 있던 이성을 무너뜨리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하아, 미칠 것 같아.”
농밀하게 입술을 얽어 오던 진이 참을 수 없는 듯 묵직한 하체를 로엔의 아랫배에 문질렀다.
당장에라도 가느다란 로엔의 두 다리를 벌려, 열기로 단단해진 제 몸을 로엔의 안으로 밀어 넣고 싶다는 생각에 미칠 것 같았다.
진은 로엔에게서 입술을 떼곤 묵직하게 내리누르는 날카로운 감각을 견뎠다.
“공작님, 아래에 뭔가가 있는 것 같아요.”
로엔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걱정스러운 듯 진을 올려다보았다. 검은 천으로 눈을 가리고 있는 탓에 그의 표정을 확인할 수 없었지만, 팽팽하게 긴장된 턱이며 굳은 입매가 뭔가 지독한 고통을 견디는 느낌이었다.
“아프면 확인을…….”
로엔이 몸을 일으키려 하자 진의 표정이 더욱 굳어졌다. 그리곤 입속으로 욕설을 짓씹는 듯 감정을 삼키더니 낮게 속삭였다.
“가만히 있어”
진이 로엔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그리곤 입술을 그녀의 목덜미에 부비며 또다시 경고하듯 속삭였다.
“네가 움직일수록 더 위험해져. 그러니 제발 자극하지 말고 얌전히 있어. 네가 감당하지 못할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거든.”
로엔의 아랫배에 닿는 뭔가가 더욱 부피를 키우며 단단해졌다.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뜨겁게 꿈틀거리기까지 한다.
그 순간 로엔의 얼굴은 물론 온몸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지금 제 아랫배를 찌르며 꿰뚫을 것처럼 움직이는 것의 정체가 뭔지 깨달아서다.
‘지금 이게 남자들의…….’
랑케의 페이라스모스들이 남자의 물건을 두고 음담패설을 하는 걸 들은 적이 있었다. 가끔 너무 크고 단단해서 힘겹다는 말을 했었다. 그리고 로엔은 의술을 공부하는 동안 남자 몸에 대한 해부학 책도 본 적 있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책이나 타인들의 음담패설로 전해 듣는 것과 직접 느끼는 건 너무나도 큰 차이가 있었다.
생각보다 충격적이었다. 그리고 걱정도 됐다.
‘모든 남자들이 이렇게 다 큰 건가?’
만약 진만 비정상적으로 큰 것이라면, 치료를 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이상한 생각을 하는 것이라면 당장 그만둬. 난 정상이니까.”
마치 제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진이 웃음을 삼키며 낮게 으르렁거렸다.
“그게 아니라, 걱정이 돼서.”
“걱정은 내가 아니라, 널 해야지. 내 걸 품어야 할 사람이 너니까.”
진이 귀엽다는 듯 로엔의 코끝에 입을 맞췄다. 그리곤 뺨에도 턱에도 이마에도 입맞춤을 해 댔다.
그가 손을 뻗어 연신 머리를 쓰다듬기까지 하자 자신이 어린 강아지가 된 것 같았다.
만족스러울 만큼 로엔의 얼굴에 입맞춤을 한 진이 몸을 일으켰다. 이제 돌아가려는 모양이었다. 로엔 역시 그를 따라 몸을 일으켰다.
“가시려는 건가요?”
“더 늦기 전에 가야지. 내일은 방문 전에 사람을 보내도록 하지. 아니, 아니다. 내일은 말을 타는 건 어때? 교외에 로이슈덴 소유의 마구간이 있어. 근처엔 호수도 있고.”
오랜만에 교외로 나가 말을 타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그리고 당분간은 밀폐된 공간에서 단둘만 있는 것을 피해야 할 것 같았다.
진이 문제가 아니라, 그와 함께만 있으면 몸이 달아 있는 자신 때문이었다. 이러다 그가 덮치기도 전에 제가 먼저 달려들어 일을 치를 것 같았다.
사실 지금도 돌아가려는 그를 붙잡고 싶은 마음이었다. 채워지지 않은 갈증에 아랫배가 아릿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