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화
은청색의 눈동자에 담긴 열기에 로엔은 목덜미가 홧홧해졌다.
“흠흠, 목이 마르네요.”
그의 시선에서 벗어나기 위해 샘이 있는 쪽으로 돌아섰다. 그러자 그가 붙잡고 있던 천 역시 그의 손에서 자연스럽게 빠져나왔다.
로엔은 쭈그리고 앉아 공작새의 눈물로 손을 뻗으려다, 미처 장갑을 벗지 않았다는 걸 깨닫곤 멈칫했다.
“기다려. 내가 해 줄 테니까.”
진이 로엔 옆에 무릎을 꿇고 공작새의 눈물이 고여 있는 샘으로 손을 뻗었다. 그리곤 양손 가득 공작새의 눈물을 떠 로엔에게 내밀었다.
로엔은 양손 가득 담긴 공작새의 눈물을 멍하니 내려다보았다.
“얼굴을 가리고 있어 먹는 게 불편하려나?”
또다시 얼굴을 가린 천이 문제였다. 그러나 로엔은 문제될 것 없다는 듯 천천히 고갤 가로저었다. 그리곤 턱을 치켜들더니, 고갤 뒤로 젖히고 물을 받아 마실 준비를 했다.
베일 안에서 천천히 입을 벌리자, 처음엔 이해하지 못한 채 서 있던 진이 성기게 짜인 천을 보더니 로엔의 의도를 이해한 듯 한 발짝 다가섰다.
“차가울 거야.”
로엔이 괜찮다며 눈을 깜빡였다. 진은 손에 든 공작새의 눈물을 한 방울 씩 똑똑, 떨어트렸다. 천 위에 떨어진 물방울이 천 위를 또로록 구르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물방울이 한 방울 한 방울 계속해서 천을 적시자, 야속하게 바닥으로 흘러내리던 공작새의 눈물이 마침내 입 안으로 톡 하고 떨어졌다.
“됐다.”
그의 목소리가 신호가 되어 공작새의 눈물이 로엔의 입안을 적셨다. 로엔은 눈을 감고는 입안으로 흘러 들어오는 공작새의 눈물을 받아 마셨다.
“더 줄까?”
줄기차게 들어오던 물방울이 멈추자 진이 낮게 속삭였다.
아직 갈증을 채우기엔 부족한 양이었지만, 로엔은 감고 있던 눈을 뜨며 고갤 가로저었다. 낮게 가라앉은 그의 목소리에서 진득하고 나른한 열기가 느껴져서다.
“아니요. 이 정도면 충분해요. 공작새의 눈물이란 것도 확인했고. 그러니 이제…… 엇?”
로엔은 제 손목을 강하게 움켜쥐는 힘 때문에 말을 멈췄다. 그리곤 긴장감을 감추며 천천히 고갤 들자, 저를 삼킬 듯 바라보고 있는 진과 눈이 마주쳤다.
등줄기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그와 동시에 아랫배에 도사리고 있던 열기가 확 퍼지며, 묘한 기대감에 몸이 떨려 왔다.
“그럼 이제 내 차례군.”
“……”
“갈증이 났었거든. 그래서 지금 유리엘라 광장에서 아직 마무리하지 못한 걸 하고 싶은데.”
진이 로엔을 끌어당겼다. 조금 전까지 달빛 아래 서 있던 로엔은 진과 함께 동굴의 짙은 어둠 속으로 스며들었다.
“그게 무슨 말인지…….”
여전히 감을 잡지 못한 로엔이 불안한 듯 조심스럽게 물었다. 하지만 그는 설명할 생각이 없는 듯했다.
“네가 원한다면 지난번처럼 눈을 감고 있어도 상관없다.”
순간, 로엔이 얼굴에 확 하고 열이 올랐다. 진이 눈을 감는다는 건 제가 얼굴을 드러낸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그 경우는 딱 두 가지였다.
조금 전처럼 베일이 벗겨져 얼굴을 감춰야 할 때와 두 번째로는…….
진의 손이 로엔의 귓바퀴에 닿았다.
“읏.”
흠칫 놀라 어깰 움츠린 것과 동시에 귀에 걸려 있던 천이 스르륵 흘러내렸다.
더는 그의 의도를 모르려야 모를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유리엘라 광장에서 도망치느라 마무리하지 못한 게 뭔지도.
“눈을 감을까?”
“어, 그게…….”
“눈 감았어. 이제 됐지?”
진은 물러날 생각이 없는 듯 보였다. 대답도 하기 전에 눈을 감았으니, 더는 도망칠 수 없음을 말하고 있었다.
잔뜩 달아 오른 귓불에 그의 습한 숨결이 스쳤다. 눈을 감은 진이 감각만으로 제 입술을 찾아 움직이고 있었다.
“하아.”
말캉하고 부드러운 입술이 목덜미를 스치자, 로엔은 억눌린 신음을 뱉어 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여기가 젖었군.”
귓가에 닿아 있던 그의 입술이 이번엔 로엔의 턱을 조심스럽게 훑어 내렸다. 조금 전 진이 흘려보내 준 공작새의 눈물을 먹느라 젖은 부분이었다.
“아, 잠깐……. 읏.”
뜨겁게 젖은 혀가 턱을 핥자, 그 생경하고 진득한 감각에 로엔이 또다시 신음을 삼켰다.
고갤 돌리려 했지만 진의 손이 더 빨랐다. 그는 로엔이 움직이지 못하게 턱을 고정시킨 후 얼굴에 남아 있는 공작새의 눈물을 핥아 먹었다.
갈증을 해갈하려는 것처럼 물기라는 물기는 모조리 삼킬 기세였다.
로엔은 그의 혀가 제 턱을 지나 입가에 닿을 때까지 꼼짝도 하지 못한 채 서 있었다.
“달아.”
그의 뜨거운 숨결이 입술에 닿아 간질거렸다. 로엔은 긴장감에 마른침을 삼키며 입을 열었다.
“설탕시럽을 입힌 과일을 먹었으니 당연하죠.”
로엔의 말에 진이 생각에 잠긴 듯 잠시 움직임을 멈췄다. 그러다 아니라는 듯 고갤 가로저었다.
“달라. 그건 참기 힘든 맛이었는데, 이건 꽤 마음에 들거든. 더 맛보고 싶을 만큼.”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그가 입술을 부딪쳐 왔다. 입가를 핥던 혀가 이번엔 노골적으로 입술에 묻어 있는 단맛을 찾아 움직였다. 집요하게 입술을 핥고 농밀하게 빨아 당기며 단맛을 음미했다.
“흐음, 간지…….”
닫혀 있던 입술이 살짝 벌어지는 순간, 진은 그때를 놓치지 않고 순식간에 입술을 얽어 왔다.
놀라 흠칫 몸을 떨자 진이 입술을 뗐다. 그리곤 아쉬운 듯 로엔의 귓불을 입술로 쓸어내리며 열기를 삼켰다.
“싫으면 지금 밀어내.”
기회는 지금뿐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로엔은 입술을 깨물었다. 선택권을 주겠다는 말과는 달리 진의 입술이 귓불을 시작으로 예민한 목덜미를 쓸며 지분거렸다.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진득하게 들러붙는 열기에 자꾸만 발끝이 곱아든다. 신경이 예민하게 반응하며 잠들어 있던 욕망을 일깨우고 있었다.
“아, 좀. 생각 좀 하게 조금만…….”
“안 돼.”
로엔이 그를 밀어내려는 순간, 진이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그리곤 손목에 찬 타라의 연을 천천히 더듬었다.
로엔이 고갤 들었다. 고집스럽게 약속을 지키느라 그의 눈이 꼭 감겨 있었다.
안타까웠다. 차갑게만 보이던 그의 은청색의 눈동자가 열기에 휩싸인 모습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왜 이러지? 그를 밀어내고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를 붙잡고 싶다니.’
로엔은 복잡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로엔의 시선을 느낀 듯 진이 속삭였다.
“넌 생각이 너무 많아. 그리고 더는 겁쟁이처럼 도망치지 마.”
겁쟁이란 말에 로엔의 표정이 바뀌었다. 혼란스러운 감정으로 흔들리던 에메랄드빛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고집스럽게 빛났다.
“도망은 누가 친다고. 그러는 공작님이야말로 도망치지 마세요.”
로엔은 진의 입가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떠오르는 걸 보며 그의 도발에 넘어갔다는 생각에 아차, 싶었다. 하지만 되돌리기엔 늦었다.
지금 도망친다면 이번에야말로 그가 말한 겁쟁이가 될 테니까.
“그건 걱정 마. 제국민들이 보는 앞에서 네게 청혼까지 한 마당에 돌이키는 건 불가능하니까.”
그의 손이 타라의 연에서 떨어져 나갔다. 그리곤 고갤 숙여 사랑스럽다는 듯 로엔의 입술에 제 입술을 비볐다.
두 사람의 뜨거운 숨결이 또다시 얽혀 들자, 로엔의 이성이 완전히 날아가 버렸다.
순식간에 두 사람을 감싼 팽팽한 성적 긴장감에 공기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허락해.”
“……”
대답이 없자, 진의 입술이 다시 로엔의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아프진 않았지만 간지러워 저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어서. 참는 게 고역이라 정말 머리가 돌 것 같거든.”
뭘 참고 있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그의 목소리가 열기로 잔뜩 쉬어 있었다. 뜨거운 혀가 다시 로엔의 입술을 건드렸다. 얼른 허락하라고 유혹하는 것 같았다.
그의 키스에 애가 닳은 건 로엔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하아, 그만 기다리고 제발 빨리해요. 감질나서 죽겠으니까.”
열기가 고스란히 담긴 다소 거친 말투에 진이 픽 하고 웃는 게 느껴졌다. 순간 제가 뱉어 낸 말에 얼굴이 달아올랐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지금은 그와의 키스가 급했다.
“으음―.”
그의 혀가 깊숙이 얽혀 든 순간 로엔의 입술 새로 만족스러운 신음이 흘러나왔다. 로엔은 본능적으로 그의 목에 팔을 감고는 살짝 턱을 기울였다.
순식간에 그의 혀가 더욱 깊이 파고들며 농밀하게 혀를 얽어 왔다.
진의 두 팔이 로엔의 가느다란 허릴 감고는 답삭 끌어안았다. 그의 무게에 로엔이 뒷걸음을 치다 보니 이내 동굴의 단단한 벽이 등에 닿았다.
진과 벽 사이에 갇힌 로엔은 끈적끈적하게 달라붙는 그의 입술을 삼키며 그에게 매달렸다.
“하아, 으읏.”
두 사람의 입술이 얽혔다 떨어질 때마다 질척해진 타액이 야릇한 소릴 만들어 냈다. 두 사람의 거친 숨결이 서로의 입술 새로 삼켜 들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의 안을 탐하는 격렬한 몸짓에 동굴 안의 공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등줄기에 야릇한 전율이 흘렀다. 처음 느껴 보는 감각에 로엔은 허릴 비틀며 그에게 힘껏 매달렸다.
“하아, 좀 더…….”
뭘 더 원하는 건지 모르겠다. 하지만 몸속의 피가 뜨겁게 날뛰고 있었다.
혈독화로 인해 간헐적으로 찾아드는 갈증과 열기와는 다르다. 좀 더 본능적이고 노골적인 쾌락을 원했다.
“말해 봐. 뭘 더 해 주길 바라는지.”
진이 농밀하게 얽혀 있던 입술을 떼곤 유혹하듯 속삭였다. 로엔은 모르겠다는 듯 고갤 가로저었다. 그가 입술 위에서 웃는 게 느껴졌다.
“생각해 봐. 지금 내가 뭘 해 줬으면 하는지.”
사랑스러워 죽겠다는 듯 로엔의 입술에 쪽쪽 입을 맞춘다. 진득하게 욕망을 드러냈을 때와는 달리 담백한 키스였다.
“흐음, 하아―.”
그런데도 나른한 신음을 뱉어 낼 만큼 온몸에 열기가 가득했다. 특히 아랫배 안쪽에 느껴지는 간질거림을 참을 수가 없었다.
자꾸만 허릴 비틀며 그의 단단한 몸에 닿기 위해 안달하는 저를 볼 수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