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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공작의 공개 구혼-79화 (80/201)

79화

“나도 아쉽긴 한데 어쩔 수 없는 선택이야. 딱 1년만 닫아 둘 거야. 그 후에 다시 열면 돼.”

진과 약속한 1년간의 계약결혼이 끝나면, 로엔은 다시 만물상점을 열고 본래의 생활로 돌아오면 된다.

이혼녀라는 꼬리표가 하나 더 붙긴 하겠지만, 상관없었다.

추문 하나가 추가된다고 해서 더 망가질 평판이나 명예도 없었으니까.

“1년 후엔 공작님에게 주인님의 비밀을 말씀하시게요?”

세실의 물음에 로엔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1년 후에 만물상점을 연다는 말을, 그에게 비밀을 모두 털어놓는다는 걸로 오해한 모양이었다.

“상황이 되면 그럴 생각이야. 더는 숨길 이유가 없어질 테니까.”

로엔은 모호하게 대답한 뒤, 얼굴 가리개를 썼다. 그 위에 익숙한 듯 검은 베일을 쓰자 순식간에 표정이 감춰졌다.

‘과연 그런 날이 올까? 그에게 내 비밀을 얘기하고 온전히 서로를 바라보게 될 날이…….’

당연히 올 것이다. 하지만 세실의 말처럼 호의적인 태도는 아닐 테지.

진 로이슈덴이 제가 품은 비밀을 모두 알게 되었을 땐……,

‘아마, 죽이려 들겠지. 그를 이용한 나를 절대 용서하지 않을 테고.’

거짓말을 가장 싫어한다던 그였다. 그러니 두 사람의 끝은 불 보듯 뻔했다.

“세실, 엠마에게 말해 줄래? 조만간 저택에서 애프터눈 티파티를 열 거라고. 초대 목록은 스미스에게 줄 테니 받아 가라고 해.”

“네? 애프터눈 티파티라면 레이디들을 초대하는 그거요?”

세실의 눈동자가 놀란 듯 커졌다. 듣고도 믿기지 않은 표정이었다.

10년 전 사고 이후, 록스버그 공작가에서 처음 여는 파티라 놀라는 건 당연했다.

“맞아, 네가 생각하는 그거. 오랜만에 여는 티파티니, 최대한 화려하게 준비하는 게 좋겠지? 파티에 온 사람들이 소문을 많이 낼 수 있게.”

충격의 여파가 가신 듯 세실의 얼굴에 흥분과 기쁨으로 가득 찬 미소가 떠올랐다.

“그건 걱정 마세요. 제가 최고급으로 준비할 테니까요.”

“부탁할게.”

로엔은 세실을 뒤로한 채 방을 나왔다. 가든파티를 위해 캠벨 후작가의 여름 별장으로 가야 할 시간이었다.

* * *

1시간 후, 록스버그 공작가의 마차가 캠벨 후작가의 여름 별장 앞에 멈춰 섰다. 수도인 칼라일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캠벨 후작가의 여름 별장은 콘티아나 숲에 있었다.

콘티아나 숲은 황실이 소유한 금원만큼이나 아름다운 곳으로, 호수와도 인접해 있어 귀족들이 피크닉 장소로 선호하는 곳이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캠벨 후작가의 가든파티는 뱃놀이로 더 유명했던 게 떠올랐다.

‘하필 뱃놀이라니.’

뱃멀미가 있는 로엔은 오늘만은 제발 뱃놀이가 없기만을 간절히 바랄 뿐이었다.

“어서 오십시오, 공작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마차 문을 열어 준 집사가 로엔을 맞았다.

“손님들은 벌써 도착했나요?”

“다들 일찍 도착하셔서 간단히 차를 즐기시고 계십니다.”

“내가 늦은 모양이군요.”

“아닙니다. 공작님은 제 시간에 오셨습니다. 다만 오늘 초대된 분들께서 유독 일찍 도착하신 것뿐입니다.”

집사의 설명에 로엔이 고갤 끄덕였다.

‘유독 빨리 도착했다라. 내가 오기 전에 뭔가 긴히 나눌 말들이 있는 건가?’

사실 귀족들에게 시간 엄수는 꼭 지켜야 할 철칙과도 같았다. 더 빠르지도, 늦지도 않는 적정한 시간이 정해질 만큼 유난스러웠다.

그런데 더 일찍 도착했다는 집사의 말엔 다른 뜻이 내포되어 있었다.

‘예를 들자면, 처음부터 초대장을 보낼 때 다른 초대객들과 내 시간이 다르게 표기되었다든가.’

그게 아니라면 이 상황을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앞으로 있을 신경전을 생각하자, 벌써부터 지치는 것 같았다.

“라이칸, 너도 같이 갈래? 내 파트너로 참석한다면 레이디 그리젤라 역시 거절하진 못할 거야.”

로엔의 말에 집사가 곁눈질로 라이칸을 보았다. 그리곤 잠시 뭔가 생각하는 눈치더니, 이내 라이칸을 향해 허릴 숙였다.

“러셀 백작님.”

라이칸 러셀 백작.

지금은 로엔의 호위기사로 옆에 있긴 했지만, 라이칸은 남쪽에 영지를 둔 엄연한 백작 신분이었다.

대대로 록스버그 공작가의 가신이기도 한 러셀 백작가는 전통적으로 작위를 물려받을 후계자가 태어나면, 그 후계자를 공작가로 보내 장차 록스버그 공작가의 주인이 될 상속자의 호위를 맡겼다.

그 전통에 따라 라이칸 역시 열 살이 되던 해에 록스버그 공작가로 왔고, 공작가의 유일한 상속녀인 로엔의 호위기사가 된 것이다.

3년 전 러셀 백작이 죽은 후 라이칸이 작위를 물려받아 러셀 백작가의 주인이 되었다. 그러니 그가 로엔의 파트너로 캠벨 후작가의 파티에 참석한다고 해도 문제될 게 없었다.

“아닙니다. 저는 주위에 있겠습니다.”

라이칸의 대답에 로엔이 고갤 끄덕였다.

“그래, 레이디들만 초대된 파티에서 네가 있는 건 서로에게 불편한 일이기도 하겠지.”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집사의 얼굴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갑자기 초대객이 늘어날지도 모르는 상황이 무척이나 난처했던 모양이다.

“공작님, 제가 사람을 시켜 러셀 백작님께서 편히 계실 수 있도록 조치하겠습니다.”

집사가 눈치 빠르게 끼어들었다.

“그래 주면 고맙죠. 그런데 이름이?”

“젠입니다, 공작님. 편하게 불러 주십시오.”

“그래요. 아, 그리고 이건 잘 부탁한다는 의미예요.”

“아닙니다, 공작님. 이러지 않으셔도…….”

“알고 있어요. 젠은 유능한 집사라 이런 게 필요 없다는 것쯤은. 하지만 나는 나에게 친절을 베푸는 사람에겐 꼭 사례를 하는 게 원칙이라. 그러니 받아 줘요.”

젠은 잠시 고민하는 눈치더니, 이내 로엔이 건넨 금화를 받아 들었다.

“거절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니……. 절 따라오십시오. 오찬장까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로엔은 라이칸에게 눈짓을 해 보이곤 젠을 따라 들어갔다.

“오늘 파티에 누가 참석했는지 대충 알 수 있을까요?”

“그것이라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폐하께서 특별히 후작님께 요청해 여는 파티라 크게 물의를 일으키실 분은 없을 테니까요.”

에드윈의 요청으로 여는 파티라고?

로엔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로열 에스콧에서 마지막으로 에드윈을 보았을 때를 떠올렸다. 분명 에드윈은 저를 차갑게 쏘아보고 있었다. 마치 배신이라도 당한 듯 분노에 떠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저를 위해 파티를 열다니.

젠을 따라 오찬장으로 가는 동안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대체 누굴 파티에 초대한 거지? 혹시 마지막으로 내게 그의 편이 될 기회를 주려는 건가?’

로엔은 짧은 시간 동안 여러 가지 가능성을 타진했다. 하지만 오찬장에 누가 참석했는지 확인할 때까진 그 어떤 결론도 내릴 수 없을 것 같았다.

“여깁니다.”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두 사람은 오찬장 입구에 도착해 있었다.

“즐거운 시간 보내십시오, 공작님.”

로엔이 고갤 끄덕이자 젠이 서둘러 자릴 떴다.

로엔은 오찬장 안으로 바로 들어가는 대신, 잠시 숨을 골랐다. 머릿속에 어지럽게 떠돌던 상념을 밀어내곤 냉정함을 되찾았다.

로엔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그리젤라가 로엔을 발견하곤 반겼다.

“록스버그 공작님, 어서 오세요. 오시는 데 불편한 점은 없으셨나요?”

로엔이 등장하자마자 잡담 중이던 레이디들의 목소리가 거짓말처럼 멈췄다.

순식간에 찾아든 정적과 함께 제 시선을 피하는 레이디들을 보아하니 로엔은 지금까지 레이디들이 제 얘길 하고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오는 길은 불편하지 않았답니다. 오랜만에 칼라일을 벗어날 수 있어서 좋았고요.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레이디 그리젤라.”

그리젤라는 환하게 미소로 화답한 후, 로엔에게 자릴 권했다.

“이쪽으로 오세요. 공작님 자린 여깁니다.”

로엔이 자리에 앉기 전 그리젤라를 응시했다. 배치된 자리가 제 자리가 맞느냐는 의미였다.

귀족들에게 있어서 자리 배치는 권력이었다.

특히 황실에서 여는 연회에선 귀족들의 서열에 의해 자리가 결정되었기 때문에 어떤 자릴 받느냐가 아드리안 제국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록스버그 공작가는 오랫동안 첫 번째 자리를 차지했다.

하지만 10년 전 사고를 기점으로 엄청난 재력에도 불구하고 가장 구석으로 밀려나게 되었다.

로엔의 정치적 입지가 약한 탓도 있었지만, 괴물 공작이란 이유로 귀족들의 기피 대상이 된 것이 더욱 크게 작용했다.

그런데 황후가 될 그리젤라가 주체한 파티에서 제 자리가 바뀌었다. 그것도 테이블의 맨 위인 상석으로.

분명 자리가 바뀐 이유가 있을 터였다.

“앉으세요, 공작님. 곧 오찬이 시작될 겁니다.”

로엔은 선선히 그리젤라가 권한 자리에 앉았다.

그리젤라가 입구에 서 있던 하녀장에게 고갤 끄덕이자, 기다렸다는 듯 테이블에 갖가지 음식들이 채워지기 시작했다.

음식이 세팅되는 동안 로엔은 긴 테이블을 채운 레이디들을 확인했다. 그리젤라의 절친인 레이디 샬럿과 베스, 그리고 캠벨 후작가와 인연이 있는 레이디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다 오찬 테이블 맨 마지막에 앉아 있던 의외의 인물을 보곤, 로엔이 눈살을 찌푸렸다.

‘캐슬리우스 백작이 캠벨 후작가의 사람이었나?’

로엔은 앞에 놓인 음식을 내려다보며 빠르게 기억을 더듬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접점이 없었다.

대신 캐슬리우스 백작 역시 진 로이슈덴 공작과 함께 정복전쟁에 참전했던 기사라는 것을 기억해 냈다.

그런데 황제인 에드윈의 부탁으로 열린 가든파티에 와 있다는 건…….

‘캐슬리우스 백작이 에드윈의 사람이었던 모양이네.’

새롭게 안 사실에 로엔은 미간을 찌푸렸다.

제 추측이 맞는다면 전쟁터에 있었던 5년 동안 캐슬리우스 백작이 황제의 눈과 귀가 되어 진을 감시했을 터다.

‘잠깐, 그런데 왜 레이디들만 참석하는 가든파티에 캐슬리우스 백작을 부른 거지?’

그 부분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 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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