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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공작의 공개 구혼-70화 (71/201)

70화

“정말 안 가 보셔도 괜찮겠어요? 그쪽 집사님에게 오늘 방문한다고 약속하셨다면서요?”

상점 안의 물건을 정리하던 세실이 로엔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그렇긴 한데, 내가 가면 난처할 거야. 쫓겨나지 않는다면 다행이지.”

진의 회복력으로 보건대, 지금쯤 의식을 찾았을 터다. 그리고 알렉에게 로열 에스콧에서 벌어졌던 일을 전해 듣곤 기분이 상해 제 목을 조르고 싶어 할 수도 있었다.

그러니 오늘은 방문하지 않는 게 맞았다.

뭐, 공작새의 눈물은 충분히 있을 테고. 또 깨어났으면 은둔자의 숲에라도 가서 치료를 받을 테지.

“말도 안 돼요. 그래도 목숨을 구해 준 은인인데, 설마 그렇게 매정하게 내치기야 하겠어요?”

“아니.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거야.”

협박하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아니 어쩌면, 로이슈덴 공작가에 발을 들인 순간 제 목에 검을 들이댈지도 몰랐다.

가장 숨기고 싶었던 그의 비밀을 ‘록스버그 공작’이 알게 되었으니까.

드래건의 심장에 대한 비밀은 진과 알렉, 그리고 메리언 외엔 알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가 다치자마자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행동했으니 분명 의구심을 가질 터였다.

그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고민이었다.

“정말 너무한 것 아닌가요? 주인님은 폐하와 척을 지면서까지 기껏 살려 줬는데.”

은혜도 모르는 자라며 세실은 혀를 끌끌 찼다. 괜한 짓을 한 것 아니냐는 얼굴이다.

“그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아쉬운 건 나니까. 어쩔 수 없지.”

한마디로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로엔의 대답에 세실이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진짜 마음에 안 들어. 주인님이 공작님에게 매달리는 입장이라니. 발 앞에 엎드려 구애를 해도 모자랄 판에.”

세실이 잔뜩 볼을 부풀리며 억울해 죽겠다는 듯 불만을 토로했다.

“나는 저주받은 괴물 공작이잖아. 그리고 로이슈덴 공작은 아드리안 제국, 아니 타란 대륙에서 가장 잘생기고 인기 있는 사내고. 그런 그를 한입에 꿀꺽하려면 어쩔 수 없지. 이 정도 공은 들여야 하지 않겠어?”

로엔의 농담에도 불구하고 세실은 여전히 입을 삐죽였다. 그러다 뭔가 대단한 결심이라도 한 듯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왕 꿀꺽하실 생각이면, 완벽하게 하세요. 나중엔 주인님한테 빠져서 헤어 나오지 못하도록요. 그리고 최대한 빨리 랑케의 에스테 님도 부르는 게 좋겠어요. 분명 주인님이 가진 매력을 극대화시켜 줄 테니까요.”

주먹까지 쥐고 굳게 결심한 내용이 남자를 유혹하는 것인 모양이다. 참 세실다운 생각이었다.

아니다. 생각해 보면 그게 로엔에겐 가장 필요한 일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진 로이슈덴 공작은 남자이면서도 묘하게 치명적인 섹시미가 있었다. 완전히 사람을 잡아먹을 것 같은 눈빛이기도 하고.

그런 남자를 제 것으로 만들려면 세실의 말처럼 치명적인 한 방이 필요할 터였다.

로엔은 찌를 듯 닿아 오던 진의 은청색의 눈동자를 떠올렸다.

아, 갑자기 왜 이리 더워지는지 모르겠다. 시도 때도 없이 찾아드는 열기에, 정말 더위라도 먹은 건 아닌지 걱정이 될 정도였다.

“그래, 그러는 게 좋겠어.”

로엔의 약속을 듣고서야 세실의 표정이 한결 누그러졌다.

“세실, 이제 넌 들어가.”

“저만요? 주인님은 상점에 남아서 뭐 하시려고요? 할 일도 없잖아요.”

“난 볼 책이 좀 있어. 라이칸이 말했던 독초에 대해 좀 더 찾아볼 생각이거든. 관련된 책이 여기 지하 서고에 있잖아.”

세실이 고갤 끄덕였다.

만물상점의 건물을 지을 때부터, 상점 지하에 비밀서고를 만들어 금지된 주술에 관한 책과 공작가의 비서들을 숨겨 놓았던 게 떠오른 모양이었다.

“그럼 조금만 더 계시다가 들어오세요. 지난번처럼 책을 보다가 너무 늦게 오시지 마시고요. 암살자가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니까요.”

어제 저택으로 날아든 암살자의 화살이 생각났는지 세실이 두려움으로 어깰 움츠렸다.

“걱정 마. 경고를 보내긴 했지만 그리 쉽게 모습을 드러내진 못할 거야. 이제 라이칸도 돌아왔잖아.”

“그렇긴 해요. 타이밍 좋게 라이칸 님이 오셔서 얼마나 안심이 되는지 모르겠어요. 그나저나 오늘 좀 이상하긴 한 것 같아요. 상점에 개미 새끼 한 마리 나타나지 않다니.”

만물상점을 연 후 처음 있는 일이라 의아하긴 했다.

“잡혀 있던 예약도 줄줄이 취소한 걸 보면, 어제 일로 레이디들이 앓아누웠다는 소문이 사실인 모양이에요. 아참, 그러고 보니 캔싱턴 백작가의 영애가 로열 에스콧에서 정신을 잃었다죠?”

“맞아. 내 눈으로 직접 봤어.”

“정말 통쾌한 것 있죠. 그들이 그렇게 무시하던 주인님에게 타란 대륙 최고의 신랑감을 빼앗겼으니, 화병이 안 나고 배기겠어요? 그레이트 모먼트의 기사를 읽으면서, 즐거워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었다니까요.”

알렉이 가져다준 어제 날짜의 그레이트 모먼트 특별판과 오늘 자 아침 신문의 기사를 떠올리는지 세실의 입가에 감출 수 없는 미소가 떠올랐다.

거기다 상점 문을 열자마자 귀족가의 하인들이 차례차례 상점을 방문했다. 다들 하나같이 몸이 아파 예약을 취소하겠다는 말이었다.

“어차피 며칠이야. 로이슈덴 공작이 깨어나 사실을 부정하면 그만이니까.”

“그러니까 그 전에 홀라당 잡아먹어야죠. 도망 못 치게요. 아, 그러고 보니 너무 아깝네요. 어제 아파서 정신을 잃었을 때 뭐라도 하셨어야 했는데.”

그제야 세실이 왜 그렇게 로이슈덴 공작가를 방문하는 것에 신경을 곤두세웠는지 짐작이 됐다. 치료를 핑계로 진을 찾아가 그를 유혹하라는 뜻인 모양이었다.

“세실, 정신 차려. 그건 범죄라고.”

“아니, 제 말은 덮치라는 게 아니라요. 입술 도장이라도 찍었어야 했다는 의미였죠. 목에 키스 마크를 떡하니 새겨 놓고 오셨어야 했다고요.”

괜스레 정곡이 찔려 민망해졌다.

사실 입술 도장이라면 몇 번이나 진하게 찍어 놓긴 했다. 공작새의 눈물을 먹이기 위해서였지만, 그와 입술을 얽는 순간 치료나 약을 먹인다는 행위가 순식간에 다른 의미로 변질되어 버렸다.

정말 미쳤었다. 두 사람이 뭘 하는지, 다 볼 수 있을 만큼 개방된 장소였는데. 이성까지 잃고 그의 입술에 집중해 버리다니.

로엔은 그때를 떠올리며 쓰게 웃었다.

정말 의식을 잃은 사람을 상대로, 대체 뭘 한 건지. 최대한 자제했어야 했는데…….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어서 들어가.”

“네. 아참, 오늘 저녁은 라이칸 님과 함께 먹기로 한 것도 잊지 마시고요.”

로엔이 고갤 끄덕이자, 세실은 서둘러 외투를 입곤 상점을 나갔다. 로엔은 닫힌 문을 바라보다 다시 앞에 놓여 있는 책으로 시선을 돌렸다.

홀로 남겨진 상점 안은 고요했다.

읽고 있던 책장이 사락, 사락 소릴 내며 규칙적으로 넘어갔다. 책장에 닿아 있던 손끝 역시 일정하게 같은 움직임을 반복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한가로운 오후의 고요가 익숙해질 무렵, 청명한 종소리가 로엔의 의식을 깨웠다.

딸랑, 딸랑.

이유도 없이 심장이 간질거렸다.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묘하게 이는 고양감을 애써 무시한 채, 로엔은 시선을 여전히 책에 두고 말을 건넸다.

“세실, 왜 또? 뭘 또 놓고 간 건데?”

종종 있었던 일이라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핀잔을 주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세실에게선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평소와 다른 반응에 결국 로엔은 읽고 있던 책을 덮었다. 그리곤 고갤 들어 뭔가 말하기 위해 입을 연 순간, 그대로 굳어졌다.

당연히 세실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그이길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정말 그가 눈앞에 나타났다.

“공작님? 여긴 어떻게……?”

이렇게 어눌할 수가.

짐작했으니 능숙하게 말을 건네야 했다. 그런데 놀란 마음이 진정되지 않고 버벅거린다.

세실에게 지금쯤 그가 의식이 돌아왔을 것이라 말하긴 했다. 하지만 기대한 마음과는 달리, 막상 그가 아픈 몸을 이끌고 만물상점에 나타나자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으윽!”

로엔이 어찌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사이, 진이 낮은 신음을 뱉어 냈다.

“괜찮으세요?”

또다. 그가 고통을 호소하며 휘청거리자 믿기지 않게도 몸이 먼저 반응했다. 의식하지도 못한 사이, 넘어지려는 진의 팔을 붙잡고 그를 부축하고 있었다.

“하나도 안 괜찮아.”

목이 꽉 잠겨 있었는지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잔뜩 쉬어 있었다.

“네?”

안타까움에 로엔이 그의 안색을 살폈다.

“아파. 그래서 널 찾아 여기에 온 것이고.”

고통을 참는 듯 눈살을 찌푸리며 진이 로엔에게 몸을 기대 왔다. 그의 무게를 온몸으로 버티며 로엔은 여전히 어리둥절했다. 이 상황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아서다.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아프면서 여길 왜 온 걸까? 은둔자의 숲으로 가는 쪽이…….’

하지만 그녀의 의문은 오래가지 않았다. 고갤 든 진이 로엔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치료해 줘. 갖고 있잖아. 내 특효약.”

특효약이라니. 설마 내 입술…….

그가 말한 특효약이 뭔지 깨달은 순간 얼굴은 물론 귓불이 홧홧했다.

미쳤나 보다. 분명 그런 의도가 아닐 텐데, 제 심장이 그와의 키스를 의식하기라도 한 듯 뛰고 있었다.

“어엇, 저는…… 그러니까…….”

당황한 로엔이 부축하던 그의 팔을 놓고는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으윽, 젠장!”

혼자 남겨진 진의 몸이 균형을 잃고 위험스럽게 휘청거렸다. 그리곤 고통을 억누르며 신음을 토해 냈다.

“아, 죄송해요. 너무 놀라서…….”

로엔이 다시 그를 붙잡자, 조금 전과는 달리 진이 온전히 그녀에게 기댔다. 마치 그녀를 다신 놓치지 않겠다는 듯 움켜쥐는 힘 역시 달랐다.

“어엇!”

로엔은 그의 무게를 온몸으로 받아 내며 뒤로 밀리지 않기 위해 버텼다.

하지만 그녀보다 훨씬 키가 큰 데다 몸무게 역시 차이가 나는지라, 뒤로 밀리며 어느새 로엔의 몸은 벽과 진 사이에 갇혀 옴짝달싹도 하지 못하는 상태가 됐다.

“하아. 이제야 좀 괜찮네.”

그가 힘이 부친 듯 작게 한숨을 내쉬며 그녀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두근.

그가 거칠게 숨을 내쉴 때마다 더운 숨결이 목덜미에 닿았다. 그 나른한 열기에 로엔의 어깨가 굳어졌다.

“아파. 네가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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