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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공작의 공개 구혼-64화 (65/201)

64화

바짝 마른 입술이 너무도 차갑다. 마치 생명이 빠져나가는 것처럼.

‘드래건의 힘이 각성하기도 전에 위험해질 수도 있겠어.’

치밀어 오르는 불안감에 거짓말처럼 망설임이 사라졌다. 로엔은 그의 입술을 삼키며, 꼭 다물려 열리지 않는 입술을 가르고 안쪽 깊숙이까지 파고들었다.

뜨거웠다. 그리고 바짝 마른 사막 같았다.

하지만 뜨겁다고 여겼던 건 입술뿐이었다. 생명이라곤 전혀 느껴지지 않는 입안은 물기 하나 없이 버석했다.

숨을 불어넣기 위해 안쪽의 여린 점막을 핥는 순간, 혀끝에 지독한 냉기가 느껴졌다. 만년설로 만들어진 화살이 몸을 관통한 순간 진의 몸 역시 온기를 빼앗긴 채, 얼어붙은 것 같았다.

죽음이 한 발짝 문 안으로 들어온 것처럼.

로엔은 짐승이 상처를 치료하듯 그의 입안을 조심조심 핥기 시작했다. 그녀의 뜨거운 숨결이 연신 잠들어 있는 그의 연한 살을 건드렸다.

집요할 정도로 안을 훑고 젖은 숨을 불어넣었지만, 그는 여전히 미동도 하지 않았다.

‘제발 움직여. 체액을 삼켜야 해.’

로엔은 절박하게 그의 말캉한 입술을 삼키고 열심히 숨을 불어넣었다. 초조한 듯 그에게서 입술을 뗀 로엔은 그의 심장 부근에 손을 올려놓았다.

역시 차가웠다. 심장은 미약하게 뛰고 있었다. 벌어진 옷 사이로 화살에 찢긴 비늘이 힘없이 팔딱거렸다. 로엔은 손으로 상처 부위를 힘껏 눌렀다.

“공작님, 내 말 들리세요?”

대답은 없었다. 숨결을 불어넣는다고 했는데도, 아직 의식을 찾기엔 턱없이 부족한 모양이다.

알렉의 어깨 너머로 에드윈과 눈이 마주쳤다. 사냥을 위해 포위망을 조이듯 다가오는 에드윈의 표정이 서늘했다.

제발, 제발.

로엔은 간절히 되뇌며 약병에서 공작새의 눈물을 꺼냈다. 그리곤 입에 물고는 다시 한 번 그의 입술을 열고 타액과 함께 뜨거운 숨을 불어넣었다.

그의 몸속에서 날뛰려는 드래건의 힘을 잠재우고, 의식 밑바닥으로 침잠해 있는 그를 깨우려 애썼다.

‘일어나요. 위험하다고요. 제발, 정신 좀 차려요. 지키고 싶어 하던 당신의 비밀이…….’

그 순간 바람이 불어왔다. 펨부르크의 호수에서 느꼈던 청량하던 나무 향을 품은 바람이다. 로엔은 눈을 질끈 감고는 공작새의 눈물을 그의 목구멍 안쪽으로 깊이 밀어 넣었다.

‘제발 삼켜! 반역자로 몰려 죽기 싫으면 삼키라고.’

다행히 바짝 마른 모래사막 같던 입안이 조금씩 습기를 머금고 질척해지기 시작했다. 로엔은 혀끝으로 그의 혀를 힘껏 눌렀다. 그러자 미동도 않던 그의 목울대가 미약하게 움직였다.

‘조금만 더 하면…….’

로엔은 본능적으로 말캉하고 부드러운 살을 힘껏 빨아 당겼다. 그에게 체액을 나눠 줄 생각만 했지, 무의식적으로 그의 체액을 삼키자 나른한 감각에 심장이 간질거렸다.

키스란 게 일방적으로 주는 행위가 아니라, 서로 체액을 섞고 숨결을 나누는 것이란 걸 이제야 깨달은 사람처럼 혀끝으로 그의 입안을 건드리며 더 많은 체액을 삼키려 했다.

“하아, 으음.”

한 번 맛본 욕심은 멈출 줄 모르고, 그의 입안 깊숙한 곳을 훑고 끈질기게 자극했다. 나른하고 짙은 열감이 심장을 간질인다.

로엔은 달콤하고 기분 좋은 감각에 스르륵 눈을 감았다. 본능적으로 젖은 입술을 움직여 그의 숨결을 삼키자, 맞닿은 살덩이가 농밀하게 얽혀 들었다.

또다시 바람이 불었다. 청량한 숲의 향이 두 사람을 감싼 순간, 말라붙었던 입안에 맑은 향이 고이기 시작했다.

마침내 그가 꿀꺽 소릴 내며 그녀가 불어넣은 숨결과 함께 공작새의 눈물을 삼켰다,

“으윽!”

꽉 막혀 있던 숨이 터지고, 그것이 신호가 되어 그가 입안에 고여 있는 뜨겁고 나른한 습기를 삼키기 시작했다. 고갈된 생명을 탐하듯 그의 입술이 모든 것을 삼킬 것처럼 빨아 당겼다.

목덜미에 오소소 소름이 확 끼쳐 들며, 등줄기로 나른한 전율이 흐른다.

그에 의해 집어삼켜진 젖은 살덩이가 아릿해 눈물이 핑 돌았다. 하지만 아픔보단 안도가 더 컸다.

키스를 하는 내내 초조함과 긴장으로 굳어 있던 로엔의 미간이 그제야 스르륵 풀렸다. 다행이었다.

* * *

에드윈은 경마장을 가로지르는 동안 평정심을 잃지 않기 위해 애썼다.

조금 전 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로이슈덴 공작의 암살 사건이 일어났다. 갑작스럽게 날아온 화살이 진의 몸을 관통하는 모습을 본 귀족들은 새파랗게 질린 모습으로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겁쟁이처럼 탁자 아래 몸을 숨기는 귀족들을 보며, 에드윈은 코웃음을 쳤다.

‘미친. 진이 화살을 맞다니.’

사실 처음 계획은 진을 직접적으로 노린 건 아니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신성한 피를 가졌다는 짐승이 아니라, 그가 화살에 맞고 쓰러졌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에드윈은 가슴 벅찬 희열과 함께 웃음이 입 밖으로 비어져 나오는 것 같아, 입 안쪽의 연한 살을 짓씹어야 했다.

‘오늘 일로 분명한 경고가 됐을 테니, 더는 거만하게 굴지 않겠지.’

에드윈은 비틀린 입술을 끌어 올리며, 표정을 가다듬었다.

냉정함을 잃고 의식 밑바닥에 있는 어둡고 질척한 감정이 밖으로 튀어나오기라도 한다면, 귀족들에게 의심을 사기 딱 좋은 상황이었다.

흠흠, 헛기침으로 목을 가다듬으며 뒤따라오는 귀족들의 분위기를 살폈다. 다행히 귀족들은 진의 사고에 넋이 나간 듯 멍한 표정이었다.

에드윈은 안도하며 진이 있는 쪽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그리고 그 순간, 그의 짙은 눈썹이 위로 치켜 올라가며 눈살이 일그러졌다.

‘믿을 수가 없군.’

로엔 록스버그가 의식을 잃고 누워 있는 진을 향해 고갤 숙인 것이다. 멀리서 보아도 연인에게 하듯 입이라도 맞추는 모양새였다.

헛웃음과 함께 경악에 가까운 화가 치밀었다. 절대적으로 신뢰하던 친우에게 배신이라도 당한 것 같았다.

에드윈은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그리곤 진의 상태에 대해 먼저 물어야 한다는 사실도 잊은 채, 로엔을 향해 경고하듯 낮게 읊조렸다.

“록스버그 공작, 지금 뭘 하는 거지?”

안도하며 가슴을 쓸어내리던 로엔은 날카롭게 울리는 에드윈의 목소리에 어깨가 그대로 굳어졌다.

질척하게 엉겨 있던 입술을 떼려 하자, 달콤한 사탕을 빼앗긴 아이처럼 진이 입술을 물고 놓지 않는다.

아직 의식이 없는 상태인데도, 로엔의 체액이 그에겐 생명줄이란 걸 본능적으로 아는 듯하다.

“읏, 잠깐만. 놓아줘야…….”

얼굴이 붉어질 만큼 지독한 당혹감이 넘쳐흘렀다. 아주 잠깐, 에드윈과 귀족들의 시선에도 불구하고 그와 더 입술을 맞추고 싶단 욕망이 떠올라서였다.

정말 미쳤나 보다.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남자와 거리낌 없이 입술을 맞대고 싶다니.

로엔은 얽혀 드는 그의 입술을 가까스로 떼어 내곤, 고갤 숙인 상태에서 쓰고 있던 검은 베일을 벗어 진의 몸을 덮었다.

세실이 챙겨 준 얼굴 가리개를 꺼내 쓰면서도, 로엔은 에드윈과 귀족들 앞에서 베일을 벗고 있어야 한다는 게 불안했다.

하지만 얼굴을 드러내는 위험성보다 사람들의 시선에서 진의 심장에 돋아난 드래건의 비늘을 숨기는 게 더 급했다.

결국 얼굴에 철판, 아니 얼굴 가리개를 쓰고 뻔뻔하게 구는 게 최선일 듯했다.

“당장 해명을 해야 할 것이다, 록스버그 공작. 지금 내가 본 그대의 행동이 믿기지가 않는군.”

경악과 질책이 혼재된 에드윈의 목소리가 채찍처럼 로엔의 뺨을 내리쳤다. 천천히 고갤 들어 에드윈과 눈이 마주쳤다. 그의 눈동자가 얼음처럼 차가웠다.

아니, 악의로 가득했다. 마치 배신자를 보듯 당장에라도 분노를 터뜨릴 것처럼 위험스러워 보였다.

“믿을 수가 없네요. 로이슈덴 공작님에게 입을 맞추다니.”

“거리의 여인처럼 천박하게. 거기다 부끄러움도 없이 정신을 잃은 사람에게 입을 맞추다니.”

멸시와 악의가 가득 들어찬 목소리가 날카로운 송곳니처럼 로엔의 귓속을 파고들었다. 시선을 비껴 소리의 근원지를 찾았다.

순간 그녀를 쏘아보던 캔싱턴 백작과 눈이 마주쳤다. 소름 끼치게 욕심 많은 눈이었다.

‘이상도 하지. 그와 특별히 얽힌 일도 없는데, 저런 눈빛으로 나를 보다니.’

로엔은 캔싱턴 백작이 제게 품은 적의가 무엇인지 진심으로 궁금해졌다.

깊게 침잠되어 있는 그의 분노는 그녀가 진 로이슈덴을 차지한 것에 대한 감정만은 아닌 듯 보였다. 더 지독하고 진득한 것이었다. 살기가 느껴질 만큼.

“록스버그 공작!”

에드윈이 불쾌한 듯 로엔을 불렀다. 그녀의 시선이 에드윈이 아닌, 다른 곳에 닿아 있다는 사실이 화가 난 모양이었다.

그제야 로엔이 고갤 돌려 에드윈은 마주했다.

“폐하, 로이슈덴 공작님께 공작새의 눈물을 먹이고 있었습니다. 살려야 했으니까요.”

다행히 흘러나온 목소리엔 떨림이나 모멸감 따윈 없었다. 대신 로엔의 뻔뻔스러운 대답에 귀족들이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충분히 납득되는 말이긴 했다. 정신을 잃은 사람에게 약을 먹이는 방법이라면, 로엔이 말한 그 방법뿐일 테니까.

하지만 귀족, 그것도 레이디가 공개적인 장소에서 할 만한 행동은 아니었다.

아드리안 제국에서 레이디의 순결은 가문의 명예와 직결되는 문제였다. 약혼이 결정되었다거나, 결혼한 여인이 아니라면 절대 해선 안 되는 행위였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지나치군요. 미치지 않고서야…….”

“공개 구혼을 약혼으로 착각한 모양이죠. 어마어마한 돈을 베팅할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다니까요. 정말 남자한테 단단히 빠져 정신까지 놓은 모양이군요. 자존심도 없이.”

또다시 귀족들의 입이 로엔을 승냥이처럼 물어뜯었다.

돈지랄도 로이슈덴 공작이 관련된 일 앞에선 소용없었나 보다.

얼마 전까지 그녀에게 잘 보이기 위해 눈을 맞춰 오던 귀족들이, 로엔이 로이슈덴 공작에게 약을 먹이기 위해 입 좀 맞췄다고 다시 벌레 보듯 쳐다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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